서적소개
빌헬름 텔 / 간계와 사랑
Wilhelm TellㆍKabale und Liebe
프리드리히 폰 실러 / 민음사 / 2011.11.21
실러는 절대주의 체제에서 시민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 독일의 작가이자 문학 이론가, 역사가, 철학자로 괴테와 더불어 고전주의 문학 이론을 확립하고 독일 문학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실러 최후의 대작인 「빌헬름 텔」은 명사수 텔의 전설을 압제자의 폭정에 맞서 자유를 수호하는 스위스 민중의 투쟁기로 발전시킨 고전주의 대표 희곡이다.
초기 대표작인 「간계와 사랑」은 신분이 다른 연인이 간계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이야기로 당대 귀족 사회의 타락과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한 시민 비극이다. 이들 작품에는 실러의 작가적 열정, 자유와 정의에 대한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빌헬름 텔 / 간계와 사랑』은 섬세한 시적 대사와 긴장감 넘치는 극적 구성,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적, 미학적 통찰력과 비판 의식으로 시대마다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꾸준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목차
빌헬름 텔
간계와 사랑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프리드리히 폰 실러 (Friedrich von Schiller, 1759 ~1805)
의사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실러 (Friedrich Schiller, 1759 ~ 1805)는 1759년 11월 10일에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 (Wurttemberg) 공국의 작은 마을인 마르바흐 (Marbach)에서 태어나 군의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슈바벤 지방의 로르히 (1764), 루트비히스부르크 (1766)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다.
1773년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오이겐 (Karl Eugen) 공작의 명령에 의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트 사관 학교인 카를스슐레 (Karlsschule)에 입학해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어서 1780년에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1781년에 익명으로 첫 번째 드라마 『군도 (群盜) : Die Rauber)』를 자비로 출판하고, 그다음 해에 이 작품이 초연되면서 ‘질풍노도’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군도』의 혁명적인 내용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실러는 1782년 9월에 공국을 탈출해서 만하임,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튀링겐 지방의 바우어바흐 (Bauerbach)로 피신해 리터 (Ritter)라는 이름으로 의사 활동을 시작한다. 1787년 7월 실러는 바이마르로 가서 괴테의 친구들인 헤르더와 빌란트를 만나고 이들의 영향으로 역사학과 그리스 고전 연구에 빠진다. 1788년 9월에는 드디어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괴테와 만나고 괴테의 주선으로 예나대학에서 역사학을 강의하게 된다.
사회적 신분을 얻게 된 실러는 샤를로테 폰 렝게펠트에게 구혼해 1790년 2월에 결혼한다. 실러는 열정적으로 역사 연구에 매진해 [30년 전쟁사 : Geschichte des dreißigjahrigen Krieges] (1791 ~ 1793)를 비롯한 많은 역사 논문을 발표한다. 그러나 너무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1791년 1월에는 심한 발열로 중병이 들어 그해 여름까지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상태에 빠진다.
병으로 교수직을 내놓은 실러는 칸트 연구에 몰두한다. 1794년 초에는 예나로 거주지를 옮긴다. 1795년 『호렌』을 발행하기 시작한다. 『호렌』에는 헤르더, 피히테,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 알렉산더 폰 훔볼트, 요한 하인리히 포스와 프리드리히 횔덜린과 같은 쟁쟁한 작가들과 철학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호응을 받지 못하자 괴테와 함께 자신들을 비방하는 문인들을 공격하는 2행시 모음집인 [크세니엔]을 실러가 1796년부터 발행하는 『문예 연감 : Musen-Almanach』에 발표하게 된다.
1797년은 실러의 “발라드의 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많은 발라드 (담시)가 나왔다. 그 가운데 [장갑 : Der Handschuh], [잠수부 : Der Taucher], [종 (鐘)의 노래 : Lied von der Glocke], [폴리크라테스의 반지 : Der Ring des Polykrates], [이비쿠스의 두루미들 : Kraniche des Ibykus] 등이 유명하다.
1799년 바이마르로 이사한 실러는 30년 전쟁 (1618 ~ 1648)의 비극적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인 『발렌슈타인 : Wallenstein』과 시 [종의 노래 : Das Lied von der Glocke]를, 1800년에는 『메리 스튜어트 : Maria Stuart』를, 1801년에는 『오를레앙의 처녀 : Jungfrau von Oreans』를 연이어 완성한다. 1802년에는 귀족 칭호를 수여받아 프리드리히 폰 실러로 불리게 되었다. 1803년에 실러는 『메시나의 신부 (新婦) : Die Braut von Messina』, 1804년에 『빌헬름 텔 : Wilhelm Tell』을 차례로 완성하고 『데메트리우스 : Demetrius』를 작업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끝을 맺지 못한다.
실러가 죽기 몇 달 전부터 실러가 죽었다는 가짜 뉴스가 나돌았다. 실러는 1805년 2월부터 실제로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실러는 5월 1일에 극장으로 가는 길에 괴테를 마지막으로 만났고, 9일에 폐결핵으로 인한 폐렴으로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
1805년 5월 12일에 바이마르의 성 야곱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고 1826년 이장을 위해 발굴한 유골이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1827년 12월 16일 바이마르에서 새롭게 건설된 공동묘지의 ‘군주 묘역 (Furstengruft)’에 매장하지 않고 안치되었으며, 나중에 괴테도 본인의 바람에 따라 실러 옆에 놓이게 되었다.
실러는 평생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박차를 가했고, 최고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명예심과 열정에 가득 찬 삶을 살았다. 그에게 이런 의지를 부여한 것은 뜨겁고 격렬한 감정으로, 더 높이 비약함으로써 헌신과 희생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실러는 비극적 운명을 도덕적 행위나 영웅적 행위 또는 범죄적 행위라도 인간의 위대함을 행해 가는 의지와 현세적 정의의 회복으로 생각되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변증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비극적 운명은 그의 드라마에서 역사적 세계와 현실의 세계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러는 이 역사적 현실에 의해 운명적인 인간의 삶의 현실을 보여 주려고 했던 위대한 작가였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간계와 사랑』(1784), 『군도』 (1781), 『발렌슈타인』3부작 (1799), 『마리아 슈투아르트』(1800), 『오를레앙의 처녀』(1801), 『빌헬름 텔』(1804) 등이 있다.
– 역자 : 홍성광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마의 산> 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중단편 소설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카프카의 『성』, 『소송』, 중단편 소설집 『변신』,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 『싯다르타』, 하이네의 『독일·겨울동화』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괴테와 함께 독일 문학을 절정으로 이끈 고전주의 문학의 거장 실러 : 영웅 전설에서 민중극으로 승화한 대작 「빌헬름 텔」, 격정적인 시민 비극 「간계와 사랑」, 진보적 휴머니즘과 인간의 내적 자유에 대한 미학적 고찰이 담긴 작품!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 『빌헬름 텔·간계와 사랑』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7)으로 출간되었다. 실러는 절대주의 체제에서 시민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 독일의 작가이자 문학 이론가, 역사가, 철학자로 괴테와 더불어 고전주의 문학 이론을 확립하고 독일 문학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실러 최후의 대작인 「빌헬름 텔」은 명사수 텔의 전설을 압제자의 폭정에 맞서 자유를 수호하는 스위스 민중의 투쟁기로 발전시킨 고전주의 대표 희곡이다. 초기 대표작인 「간계와 사랑」은 신분이 다른 연인이 간계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이야기로 당대 귀족 사회의 타락과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한 시민 비극이다. 이들 작품에는 실러의 작가적 열정, 자유와 정의에 대한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빌헬름 텔․간계와 사랑』은 섬세한 시적 대사와 긴장감 넘치는 극적 구성,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적, 미학적 통찰력과 비판 의식으로 시대마다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꾸준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역사적 고증과 철학적 고찰, 문학적 감수성이 빚어낸 명작 「빌헬름 텔」
13세기 말 스위스 발터슈테테의 슈비츠, 우리, 운터발덴 세 주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알브레히트가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되면서 폭정이 심해진다. 황제가 각 주에 임명한 태수들도 부역과 착취로 주민들을 괴롭힌다. 이에 세 주의 자유민들은 동맹을 맺고 봉기를 계획한다. 용감하고 신실한 궁수 텔은 목숨을 걸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돕지만 정작 동맹의 권유는 물리친다. 자연의 섭리를 믿는 그는 참고 침묵하면 폭정도 지나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태수 게슬러의 덫에 걸려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화살을 쏘아 맞혀야 하는 비통한 상황을 겪고, 그 후 감옥으로 끌려가는 배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고뇌 끝에 게슬러를 처단한다. 그러는 동안 동맹자들은 평화적으로 봉기에 성공하고, 뒤이어 알브레히트가 조카의 손에 살해된 후 새 황제로 즉위한 하인리히 7세가 세 주에 자유를 허락한다.
실러는 위대한 작가인 동시에 뛰어난 역사가이자 철학가이다. 괴테의 추천으로 예나 대학에서 삼 년간 역사학 강의를 했으며, 『30년 전쟁사』 등의 역사학 명저를 저술하기도 했다. 스위스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실러는 「빌헬름 텔」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추디의 『스위스 연대기』와 뮐러의 『스위스 연방사』를 비롯해 여러 스위스 역사서를 탐독하며 명사수 텔의 전설과 발트슈테테 지역 동맹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동시대 역사가의 눈으로 검증한 스위스 독립사의 역사적 의의를 성실히 구현하려 했다. 그러나 실러는 단순히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양한 극적 장치를 활용해 역사 속 짧은 영웅담을 숭고한 민중 투쟁기로 발전시켰다. 스위스 산악 지대의 목가적인 풍경과 목동의 서정적인 노래로 극을 시작해 앞으로 펼쳐질 압제와 투쟁에 대한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등장인물 각각에게 다양한 성격과 연정, 가족애 등 개별적 갈등 요소를 부여해 극 전체에 흐르는 갈등을 심화했다. 또한 실러는 이 작품에서 평생의 철학적 과제였던 ‘자유’를 위한 인간적 투쟁을 미학적으로 승화시켰으며, 전설 속 텔의 영웅적 면모에 선량하고 용감한 소시민에서 대의를 위해 살인을 불사하는 인물로 변모하는 과정의 고뇌를 더해 극적 효과를 더하는 동시에 정의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오롯이 담아냈다.
텔난 남을 해치지 않고 조용히 살아왔어…
(중략) 넌 평화롭게 살아가던 나를 겁먹게 했고,
경건한 사고방식을 길러 주는 젖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독으로 바꾸어 버렸으며,
나를 끔찍한 것에 익숙하게 만들었어…
자식의 머리를 겨누었던 자는 적의 심장도 맞힐 수 있어.
(중략) 각자 맡은 바 일을 하러 자신의 길을 간다…
그런데 내가 할 일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중략) 이제 오두막 사람들은 자유를 얻고
죄 없는 사람들은 너에게서 안전해질 거야!
너는 더 이상 주에 해를 끼치지 못할 거야.
「빌헬름 텔」은 실러가 가난과 병마와 싸우면서 문학적 열정을 쏟아부어 완성한 마지막 희곡이자 실러를 ‘자유의 작가’로 만든 결정적 작품이다. 정의를 위해 사람을 죽인 텔의 고뇌와 민중의 숭고한 무혈 투쟁기에 담긴 평화와 비폭력의 메시지는 월가 시위, 재스민 혁명 등 정의를 위한 투쟁이 계속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
– 통속극의 형태로 동시대를 대담하게 비판한 열정적 시민 비극 「간계와 사랑」
18세기 중엽 독일, 수상의 아들 페르디난트와 시민 악사의 딸 루이제가 사랑에 빠진다. 악사 밀러는 신분이 다른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딸이 불행해질까 봐 걱정한다. 루이제를 짝사랑하는 비서 부름은 페르디난트와 루이제의 관계를 눈치채고 이를 페르디난트의 아버지인 수상에게 일러바친다. 수상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아들에게 영주의 애첩과 위장 결혼을 하라고 협박한다. 한편 영주의 탐욕에 신물이 난 영국 여인 밀포드 부인은 이러한 계략 속에서 진짜 사랑을 찾으려 하지만 페르디난트는 루이제를 떠올리며 끝내 그녀를 거절한다. 이에 수상은 비서 부름과 함께 간계를 꾸며 아들을 연인과 갈라놓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한다. 무고죄로 악사 부부를 잡아들인 뒤 이를 빌미로 루이제에게 다른 연인이 있는 것처럼 거짓 연서를 쓰게 하고 그것을 페르디난트가 발견하게 한 것이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페르디난트는 루이제를 찾아가 그녀를 비난하고 자신과 그녀가 마실 레몬주스에 독을 탄다. 마지막 순간 루이제는 진실을 고백한 뒤 페르디난트와 그 아버지를 용서하며 눈을 감고, 페르디난트는 아버지를 원망하다 결국 그를 용서하고 루이제의 뒤를 따른다.
당시에는 시민 계급이 점차 하나의 계층으로 성장하면서 이들의 삶과 자의식을 반영한 문학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시대 상황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귀족 계층과 시민 계층 간의 충돌 및 갈등을 그린 희곡 갈래가 시민 비극이다. 실러가 쓴 대표적인 시민 비극인 「간계와 사랑」은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통속극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 그 안에는 궁정의 타락과 부패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시종어제 7000명의 장정이 미국으로 떠났는데… 그들이 파병된 돈으로 모든 [보석]값이 치러졌죠.
(중략) 몇몇 건방진 녀석들이 대열 앞으로 나와 연대장에게 물었죠,
영주가 인간들에게 멍에를 씌우고 얼마에 팔아 치우느냐고요…
하지만 자비로우신 우리 영주께서는 모든 연대를 사열식장에 집합시키고,
멍하니 바라보던 얼간이 녀석들을 쏘아 죽이라고 명하셨죠.
우린 요란한 총소리를 들었고, 그들의 두개골이 포장도로에 튀는 것도 봤습니다.
그러고는 전군이 소리쳤죠… “야호, 미국으로!”
당시 사회 비판적인 성격의 작품들이 대개 검열과 탄압을 피하기 위해 과거를 무대로 삼았던 것과 달리 실러는 이 작품에서 동시대를 배경으로 영주의 폭정과 귀족의 타락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특히 병사 판매에 관한 일화는 당시 시민들이 실제로 목격한 사건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오를 때는 사회적 파장 때문에 해당 장면이 삭제된 채 공연되기도 했다. 멜로드라마적인 이야기 전개와 번뜩이는 대사 속에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담긴 이 작품은 당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독일 연극 무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되었고, 다양한 해석과 평가를 낳으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또한 지배 계층의 타락에 대비되는 시민 계급의 도덕성, 사회적 약자이지만 부패한 권력을 과감히 포기하고 자유와 사랑을 찾거나(밀포드 부인) 끝내 양심을 지키며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자비를 베푸는(루이제) 여성들의 덕성을 높이 사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선 실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 추천평
실러가 발전하며 다른 사람이 되어 감에 따라 자유의 이념도 달라졌다. 젊었을 때는 육체적 자유가 그를 사로잡아 이를 작품에 반영했고 말년에는 정신적 자유에 몰입했다. – 괴테
실러의 작품은 음악가에게 극히 어렵다. 작곡가는 시인을 뛰어넘을 줄 알아야 하는데 누가 실러의 작품을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 베토벤
분단된 독일은 정치적인 부자연스러움과는 다르게 실러라는 이름에서 하나가 됨을 느낀다. – 토마스 만(1955년 연설에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