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삐딱하게 보기
원제 : Looking Awry: An Introduction to Jacques Lacan Through Popular Culture
슬라보예 지젝 / 시각과언어 / 1995.6.30

이 책은 대중문화의 길을 통해 독자들을 라캉의 세계 안으로 안내했다가 다시 정치사회적인 현실세계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라캉 입문서이자 라캉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계 입문서이다.
○ 목차
Ⅰ. 현실은 얼마나 실재적인가?
- 현실에서 실재로
- 실재와 그 변이
- 욕망의 실재를 피하는 두 가지 방법
Ⅱ. 아무도 히치코크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 수는 없다
- 어떻게 속지 않는 자가 오류를 범하는가
- 히치코크식 얼룩
- 포르노그라피, 노스탤지어, 몽타주 : 시선의 트라이어드
Ⅲ. 환상, 관료주의, 민주주의
- 이데올로기적 징환
- 포스트모더니티의 외설적 대상
- 형식적 민주주의와 그에 대한 불복

○ 저자 소개 :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오늘날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이자 ‘동유럽의 기적’이라 불리는 세계적 석학.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태어나 류블랴나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파리8대학교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컬럼비아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파리8대학교, 런던대학교 등 대서양을 넘나들며 세계 주요 대학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냐대학교 사회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 버크벡연구소 인류학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1989년 국제적 명성을 안긴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급진적 정치이론, 정신분석학, 현대철학에서의 독창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꿰어내며 전방위적 지평의 사유를 전개하는 독보적인 철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저서로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새로운 계급투쟁』 등이 있고, 공저로 『거대한 후퇴』, 『지속 가능한 미래』, 『나의 타자』 등이 있다.
– 역자: 김소연
중앙대학교에서 한국영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현재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으며 중앙대 대학원, 단국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실재의 죽음: 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의 이행기적 성찰성에 관하여』, 『환상의 지도』, 『사랑의 내막: 라캉의 눈으로 김기덕을 보다』가 있고, 공저로는 『라캉과 한국영화』, 『라캉과 지젝』, 『헬조선에는 정신분석』 외 다수가 있다. 번역서로 『삐딱하게 보기: 대중문화를 통한 라캉의 이해』,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영화에 관한 질문들』,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 윤리와 승화』 외 다수가 있다.
현재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 한국현대정신분석학회 편집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영화와 정신분석을 매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책 속으로
죽은 자들은 왜 귀환하는가?
라캉의 답변은 우리가 대중문화에서 발견했던 것과 동일하다.
그들의 제대로 매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무언가가 그들의 장례식을 망쳐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귀환한다는 것이다.
죽은 자의 귀환은 상징적 의식, 상징화 과정에 있어서의 교란을 나타내는 기호다.
이것이 바로 라캉이 [안티고네]와 [햄릿]에서 끌어낸 기본적인 교훈이다.
두 연극의 플롯은 부당한 장례식을 포함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시체들’ – 안티고네와 햄릿의 아버지 유령 – 은 상징적 계산 account (이걸 왜 계산이라고 해석했을까?
그보다는 채무관계가 낳을 듯)을 해결하기 위해 귀환한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죽은 자의 귀환이란 육체적인 사망을 뛰어넘어 지속되는 어떤 특정한 상징적 채무를 물질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장받는 것이다.
…
죽은 자의 귀환은 그들이 전통의 텍스트 안에서 정당한 자기 위치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pp.56-57
○ 출판사 서평
- 프로이트와 함께 서구 정신분석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소개한 입문서
라캉의 인식론, 시각이론, 사회정치론으로 구성하여 욕망, 무의식, 환상, 쾌락, 이데올로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등 주요 과제들을 풍부한 사례로 재미있게 설명한다.

○ 독자의 평 1
슬라보예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를 읽게 된 계기는 신입생을 위한 권장 도서중 제목이 가장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되었지만 책은 쉬워 보이는 제목과 다르게 어려운 철학책이었다. 이 책은 자크 라캉이라는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려는 책이다. 그래서 욕망, 무의식 같은 것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영화, 소설 등을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철학이나 심리학에 대한 것을 하나도 모르는 이공계 학생인 나로서는 쉽게 풀어 쓴 것조차 이해하기 버거웠다. 그래서 이 책 하나만 보고 이해하기 힘들어서 지젝과 라캉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먼저 지젝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류블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왔다. 또한 대학시절 공산주의인 유고슬라비아의 영향으로 모든 영화사는 영화를 대학에 보내야했다. 그래서 지젝은 당시 배급된 미국, 유럽 영화의 대부분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에 ‘삐딱하게 보기’에서 영화나 추리소설, 연극의 예시가 나온 이유가 될 것이다. 지젝은 또한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철학 저서를 발간할 정도로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정신분석학적인 면에서 자크 라캉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의 분석 용어나 개념적 틀을 이용하게 되었고, 결국 라캉의 이론을 풀어쓴 ‘삐딱하게 보기’를 발간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자크 라캉은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처음엔 철학을 배웠으나 후에 의학, 정신 병리학을 배우게 된다. 또한 라캉은 그동안 정신병자 치료의 목적으로만 이해되던 정신 분석학을 넓은 영역으로 끌어올렸으며, 프로이트의 지도를 받으면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는 이론을 내기도 한다. 그리고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였다. 그러한 라캉의 영향을 크게 받아 지젝은 ‘삐딱하게 보기’에서 욕망에 대한 글을 쓰고 실재에 대하여 쓰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위 두 사람의 성장 과정, 추구하는 이론 등을 알고 나니 책을 읽기도 훨씬 수월했다. 충동, 욕망, 타자에 대한 개념을 간략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욕망이나 타자 같은 경우는 학교에서도 다뤄본 적이 있었으며 일단 라캉의 이야기를 아니까 처음 읽었을 때의 절망감은 좀 덜했다. 오히려 한 번 더 읽음으로써 흥미마저도 생겼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한번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두 번 세 번 읽고, 그 속에 나오는 여러 이론의 배경 지식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분석적으로 읽으면서 라캉의 철학적 생각이나 정신분석학적인 생각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젝이 어떤 식으로 쉽게 설명하려 하였고, 무엇을 강조했을지 알아봐야한다.

○ 독자의 평 2
이 책은 대중문화를 통한 라캉의 이해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라캉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 책을 읽는다? 나는 확실히 라캉에 대해서 아는 바라 하나도 없는 채로 읽었다. 내가 아직 어려운 책을 읽을 수준이 되지 않고 무수한 번역체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책을 쭉쭉 읽어내기가 참 어려웠다. (솔직히 번역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캉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 채로 이 책의 저자인 지젝에 대해서 읽으면서 재미가 있었다.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라캉의 이론을 대중문화 작품들을 통해 해석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대중문화 작품들을 라캉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욕망과 충동, 현실과 실재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여러 영화와 추리소설(탐정소설)같은 대중문화 장르들을 넘나들며 우리가 평소에 당연히 생각했던 것과 다른 숨겨진 모습들을 파헤쳐준다. 그 중에서 아킬레스의 패러독스처럼 쾌락은 내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내용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 거기서 지젝은 욕망의 실현은 충족시키고자 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쫒아가는 그 과정에 있다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 내용은 나도 가끔 생각해 본적이 있어서 나름 크게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여기서 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인 이야기를 신화적 모티브에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에게 아버지의 역할은 처음부터가 불가능한 쾌락에 금기를 덮어씌우는 것으로 작용함으로써 사실상 우리를 교착상태에서 구해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죽음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통해 우리는 쾌락의 충족을 지연시킬 핑계거리를 찾게 된다고 하였다.
또 인상적 이였던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진땀 흘리면서 읽던 도중에 셜록 홈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탐정소설에 대한 나름대로의 설명을 하는 부분이었는데, 그 내용은 셜록 홈즈를 좋아하던 나를 정말 반갑게 느끼도록 했었던 내용이었다. 글쓴이인 슬라보예 지젝은 탐정소설은 사실주의 소설의 최종적인 몰락과 탐정소설의 출현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정신분석가와 탐정을 비슷한 존재로 설명한다. 이에 대해 더 나아가 프로이드의 꿈(사고, 프로이드는 꿈과 사고를 같다고 주장하였다.) 해석 방법에 대해서도 어렵지만 흥미롭게 전개하였다. 결국 꿈을 해석하는 방법은 탐정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시대로 돌아가는 것고 연결시킨 ‘낯설게 하기’ 부분도 있었다. 여기서는 국가기구에 의해 의도적으로 선택되어 끊임없이 우리의 뇌리를 떠도는 기호들에 대해, 이런 것들의 인위적인 성격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이런 징환 (신호)들을 오히려 컨텍스트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종류의 낯설게 하기를 통해 우리는 징후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데, 이를 정치적인 영역으로 연결시킨 분석이 흥미로웠다. 군중심리 혹은 집단광기처럼 하나의 징후 (예를 들면 스스로 유대인을 때려잡는 몽둥이가 된다든가)에 매달리기도 하고, 트라우마를 안겨준 무언가에 집착함으로써 고통을 극복하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환경운동가들이 구호화한 ‘체르노빌’이라는 은유에 이르면 ‘징후와의 동일화’는 전복의 수단이 된다.
그 외에도 ‘환상의 윤리학’이라는 내용의 글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라캉에게서 이어받은 이 같은 ‘환상의 윤리학’을 통해 우리는 자유주의적-민주주의적 윤리학 (인간의 자연권/보편적 이성)의 와해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도 정치적 실천의 문제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중요한 문제라고 나오고 있다. 지젝은 형식적인 민주주의 안에서 주체는 오직 민족주의의 이름을 걸고서만 나타나게 돼있으며, 민족주의는 신화를 통해 집단적 쾌락을 조직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언급은 물론 지젝이 민족주의의 폭력적 분출을 겪고 있는 동구권의 지식인이라는 조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할 것이라고 한다. 지젝은 서구의 형식적 민주주의 내에서 환경보호론자나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며, 일단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형성된 ‘생활의 패러다임’ 내에서의 근본적 변화라는 기획은 반드시 형식적 민주주의의 토대 자체를 파 들어가게 돼있다”고 말한다. 이런 지적은 나름대로 크게 설득력은 있지만, ‘라캉만이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말하는 지젝에게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난 뒤에도 라캉은 여전히 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젝을 따라 대중문화를 보는 동안 새로운 관점으로 본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 점에서는 대단히 재미있었다. 또한 삐딱하게 보는 것이 묘한 쾌감을 준다는 것에 대해서도 흥미로웠다. 그렇지만 아직은 모두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몇 번은 더 읽어보도록 해야겠다.

○ 독자의 평 3
처음 이 책을 선택해 읽은 이유는 심리학 관련 서적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많아 심리학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 이 책을 골라 읽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초반 부분 머리말을 읽을 때에도 ‘아 내가 책을 잘 못 고른 것인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선 책의 내용이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이 책은 라캉이라는 정신 분석학자의 이론을 소개하며 풀어나가는 책인데,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라캉이라는 이름은 들은 적도 없었다. 그리고 책의 번역이 너무 별로였다. 원래 원작자가 그런 어투로 글을 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읽기에 너무 어색한 번역투로 글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어떠한 단어 뒤에 영단어를 적어서 (예를 들면 사물 the Thing 이런 식으로 적는다던지) 책을 읽어 내려가다 툭툭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엔 책을 생각하면서 분별적으로 읽기 보다는 저자가 말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읽어내리기 바빴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특히 얘기를 풀어 나갈 때 소설 같은 다른 문학작품에서 부분을 인용해와 예시를 드는 부분이 꽤 재미있었다.
라캉의 시선을 따라서 대중문화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법을 말하는 책이지만 라캉을 모른다고 해서 책을 읽는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왜냐하면 책의 저자인 지젝이 친절한 선생님처럼 라캉의 이론을 잘 설명해주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는 라캉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책을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그의 이론을 설명하고는 대중문화를 ‘삐딱하게’ 바라본다. 욕망, 충동으로부터 시작해 각종 영화나 추리소설을 파헤쳐 가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공포나 환상을 분석한다. 이런 지젝 (혹은 라캉)이 말하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 대중문화를 듣다보면 오히려 이것이 더욱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영화를 분석할 때 주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분석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라캉의 이론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어려움보다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어려움이 더욱 컸다. 사실 나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한편도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 감독의 작품관이나 정신 세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젝이 그의 세계를 분석하는 이야기를 알아듣기가 꽤나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지젝은 라캉의 이론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어려움을 없애주었던 것처럼 이 부분에서도 큰 어려움은 느껴지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환상의 윤리학’이라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이 윤리학 이론은 라캉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타인의 환상공간에 침입하는 것, 그럼으로써 그의 꿈을 망치는 것이 곧 죄’ 라고 말하면서 죄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인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에서 더 나아가 정치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장해 나가 정치적 실천 문제를 다룬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각종 분석을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라캉의 이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입문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서도 계속 말했듯이 그는 라캉의 이론을 매우 친절하게 설명해 나가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저히 라캉의 시선을 따라 대중문화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그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윤리문제,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까지 ‘삐딱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정말 라캉의 시선을 따라 바라본 책일까? 혹시 라캉의 이름을 빌린 지젝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부제가 ‘대중문화를 통한 라캉의 이해’ 인 만큼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혹시 이야기를 서술해 가면서 그의 의견이 섞이진 않았을까? 그래서 라캉의 이론을 전해 주는데 조금의 왜곡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나 같이 라캉의 이론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책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아주 친절히 설명을 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책을 가볍게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가볍게 읽을 정도의 내용이라기엔 너무나도 무겁고 딱딱한 내용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