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민음사 / 2010.4.30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개선문> 등 전쟁 소설로 유명한 에리히 레마르크의 또 하나의 전쟁 비극.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의 독일군 병사를 주인공으로 짧지만 아름다운 사랑과, 전쟁의 참혹한 양상을 동시에 담았다.
1958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다.
○ 목차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1898년 독일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다.
뮌스터 대학교 재학 중에 징집되어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서부 전선에 투입되었으나 부상을 입어 후방으로 이송되었고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종전을 맞았다.

이후 임시직 교사, 경주용 자동차 운전사, 스포츠 잡지 기자 및 편집자 등 다양한 일을 하며 글을 썼다.
데뷔작 『꿈의 다락방』(1920) 이후 참전 체험을 바탕으로 쓴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29)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32년 나치스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로 거처를 옮겼으며, 1939년부터 구 년간 미국에 망명해 있다가 스위스로 돌아왔다.
양차 대전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 『개선문』(1946), 『생명의 불꽃』(1952),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4), 『검은 오벨리스크』(1956) 등의 작품을 남겼다.
1967년에 독일 정부로부터 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 심장병으로 로카르노의 병원에 입원했다가 1970년 사망했다.
– 역자 : 장희창
어, 이럴 수가. 책만 살짝 펼치니 연암 박지원이나 괴테 같은 유명한 분이 바로 코앞에 등장하시네. 그분들의 따뜻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지고 흔들리던 마음의 중심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나는 고전을 읽고 또 읽는다.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갔던 멋진 분들.
지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쩌다가 해직되었던 적이 있다.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자유 시간이 넘쳐 났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던 괴테의 《파우스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같은 독일의 고전 20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20여 년 만에 복직, 지금은 동의대학교에서 학생들과 같이 ‘책 읽기와 글쓰기’를 공부하며 잘 지내고 있다. 독서 평론집인 《춘향이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 《장희창의 고전 다시 읽기》를 펴내기도 했다.
○ 책 속으로

P.143
음식보다 더 긴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던가? 희망은 그 어떤 알 길 없는 뿌리들로부터 솟아오르지 않던가?
P.251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답을 구하는 것은 결정을 회피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도 선생님께 실제로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은 자신을 향해서 물어본 것이지요. 종종 다른사람에게 물어본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P.306
무치히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걸어갔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그래도 위안이 된다고 그래버는 생각했다.
자신의 불행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P.339
그들은 계속 걸어갔다. 저녁놀은 더 짙고 더 깊어졌다. 그들의 얼굴과 손이 붉게 물들었다. 그래버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갑자기 그들이 이전과 달라 보였다. 각자 자신의 운명을 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때는 판단을 내리고 용감해지는 것이 쉽다. 그러나 무언가를 가지게 되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더 쉬워질 수도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며 때로는 거의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용감해지는 것은 언제든 가능했지만, 이제 그것은 다른 모습이고 전혀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며 또 바로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적의 점령지에서 정찰대에 쫓겨 아슬아슬하게 피난처로 도피했지만, 이전보다 더 안전하지도 않고 잠깐 동안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신기해요. 그래도 봄이 온다는 게. 여긴 파괴된 거리이고 봄이 올 이유도 전혀 없어요. 그런데도 어디선가 제비꽃 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
P.385
그래버는 발길을 돌리며 생각했다. 나는 나를 지탱해 줄 무언가를 가지려고 했어. 하지만 그것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나를 두 곱이나 고통스럽게 한다는 점은 몰랐던 거야.
P.419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죽음을 맞았으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는 겁니다. 점심은 들었든가요?˝
˝예. 정식으로, 포도주와 좋아하시는 후식도 곁들여서 말입니다. 생크림을 얹은 사과 케이크를요.˝
˝그렇군요, 클라이네르트 부인. 그 정도면 훌륭한 죽음입니다. 나도 그런 식으로 죽고 싶어요. 그러니까 부인도 그렇게 목을 놓아 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라.˝
˝언제 죽어도 이른 건 마찬가지랍니다. 일흔이 되어도 마찬가집니다. 장례식은 언제인가요?˝
P.499
슈타인브레너가 웃었다. 그는 남이 비웃는 것을 알아차리는 귀가 없었다. 그의 잘난 얼굴이 만족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P.424
요제프가 어깨를 으쓱했다. ˝증오! 그런 건 사치야! 증오하면 경계심을 잃게 돼.”
P.246
불과 이 주 전에 거닐었던 고향의 도시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휴가라는 것도 없었고 엘리자베스라는 여인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죽음과 죽음 사이에 있는 거친 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전쟁 비극의 대가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개선문』 등으로 세계 대전의 참화를 겪은 동시대인들에게 뜨거운 울림을 선사하며 감동과 교훈을 동시에 주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1954년에 발표한 이 작품에서 그는 2차 대전 중 독일군 휴가병이 겪는 짧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며 전쟁의 끔찍함과 그럼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인간의 희망을 담아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운명적인 사랑을 병치함으로써 소설이 줄 수 있는 극적 체험의 정수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출간 4년 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 전쟁의 상처 속에서 피어나는 애잔한 사랑 노래
2차 대전이 한창인 독일과 러시아의 전선, 독일군은 서서히 다가오는 패전의 그림자를 느낀다. 병장 에른스트 그래버는 2년 만에 휴가를 받아 고향에 돌아오지만, 집은 공습을 받아 폐허로 변해 버렸고 부모님의 생사도 알 길이 없다. 산산이 부서지고 파괴된 거리, 그나마 온전한 문짝에 붙어 있는, 가족을 애타게 찾는 쪽지들.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조심’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사람들. 평안한 휴가를 꿈꾸던 그래버에게 이런 고향의 모습은 전장보다 더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버는 부모님의 소식을 찾아 헤매다 동창생이었던 엘리자베스를 만난다. 그녀의 아버지는 독일의 승리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 수용소에 끌려가 있다.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도시에 홀로 남겨진 두 젊은이는 서로를 의지하며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기에 이른다. 한편 학교를 떠난 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은 휴가 나온 소위, 다리를 절단한 부상병, 그리고 나치스의 돌격대장이 되어 그래버의 앞에 나타나고, 학창 시절 은사 폴만 선생은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아 숨어 지낸다. 그래버는 폴만 선생과 대화를 나누며 전장에서 막연하게 느껴 왔던 전쟁과 폭력의 무서움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그 역시 전선으로 돌아가 이 재앙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3주간의 짧은 휴가가 끝나고 그래버는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 둔 채 다시 최전방으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돌아간다. 전선은 떠날 때보다 훨씬 불리해졌고 이어지는 공격에 동료들은 하나둘 죽어 간다. 어느 날 그래버에게 러시아인 포로들을 감시하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다시 러시아군의 맹공격이 시작되자 친위대 병사가 포로들을 사살하려 하고, 그래버는 급박한 상황에서 최후의 결단을 내린다.
레마르크는 독일군 병사 그래버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개인에게 전가하는, 나아가 인류 전체에 일으키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특히 전쟁은 물론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모습을 그리며 폭력으로 얼룩진 절박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동시에 어떤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삶에의 의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발휘되는 인류애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강한 신념을 드러냈다.
- 참혹한 전쟁과, 그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이야기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전•후반부에는 주인공 그래버가 복무하고 있는 러시아 전선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특히 참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실감 나는 전투 묘사는 다른 작가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레마르크만의 재능이다. 작품을 접한 독자들은 ‘러시아에서의 죽음은 아프리카에서의 죽음과는 다른 냄새를 풍겼다.’라는 첫 문장이나, 눈 속에 파묻혔던 시체가 눈이 녹으며 드러나는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절로 감탄하게 된다.
또한 레마르크는 역사의 거대한 급류에 휘말린 개인의 모습을 집중해서 조명했다. 그래버가 전장과 고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전쟁의 시대를 살아 내고 있다. 나치즘으로 무장한, 살인 기계 같은 친위대 병사 슈타인브레너나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돌격대장 빈딩은 권력을 가진 자이자 전쟁의 가해자이다. 반면 전쟁의 피해자로서 고통을 겪는 사람은 일반 병사와 시민이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처하려고 발버둥 친다. 공습으로 가족을 잃고 도박에 빠져 버린 휴가병이 있는가 하면 애국단 모임의 일원으로 나치스의 선전을 충실히 따르는 부인이 있다. 공습 경비원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게슈타포가 두려워 몸을 사린다. 여기서 작가는 유대인 요제프의 입을 빌어 말은 어떤 태도가 옳고 그른지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어려움을 들려준다.
집단 수용소 대장들 중에 유머를 갖춘 사람도 있고, 또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동지애를 갖춘 친위대원도 있어. 그리고 애써 세상의 선한 면만을 보면서 끔찍한 일에는 눈을 감아 버리거나 그것을 일시적이거나 엄혹한 필연으로 여겨 버리는 동시대인도 얼마든지 있어. 그들은 말하자면 탄력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지.
엄중한 시국 속에서도 눈앞에 놓인 현실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숙고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는 그것을 그래버와 그의 은사 폴만 선생으로 형상화했다. (스크린으로 옮겨진 영화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 이 역할은 레마르크 자신이 맡아 연기했다.) 그래버는 폴만 선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전쟁의 덧없음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그에게 고향에서의 시간은 생존에 급급해야만 하는 병사로서의 생활과는 매우 다르다. 휴가 동안 그는 엘리자베스와 짧지만 강렬하게 사랑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전쟁 자체에 대해 고민하고 분노한다. 즉 3주간의 휴가는 그래버에게 마지막으로 허락된 치열한 고뇌의 시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살아 있는’ 시간이다. 작품의 원제인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이 직역하면 ‘살아 있을 때와 죽을 때’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품은 일선에 있던 그래버가 고향으로 휴가를 나왔다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쟁의 끔찍함과 무의미함을 깨닫고도 다시 일선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래버의 현실은 백일몽과도 같은 휴가와 대비되어 더욱 비참하게 다가온다. ‘휴가가 아니라 전선에서 보낸 시간에 따라 평가되는’ 병사로서 그는 다음과 같은 독백을 읊조릴 수밖에 없다.
불과 이 주 전에 거닐었던 고향의 도시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휴가라는 것도 없었고 엘리자베스라는 여인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죽음과 죽음 사이에 있는 거친 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전선―고향―전선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궤적이 현실―꿈―현실이자 죽음―살아 있음―죽음의 맥락과 맞닿으면서 전쟁의 비극성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 패전 후 독일 시민 사회를 향한 준엄한 외침

레마르크는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극적이고도 굴곡진 삶을 산 작가이다. 1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일찌감치 전쟁이라는,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대규모 폭력에 좌절했고, 반전 성향의 작품들 덕에 나치스의 집권에 즈음해 스위스로 이주해야 했다. 히틀러 정권 하에서 독일 사회가 파시즘의 광기로 물들어 갈 때 그의 작품들은 다른 반(反)체제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불태워졌다. 1938년에는 국적마저 박탈되어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 길에 올랐다.
그는 오랜 시간을 이방인으로 살아왔기에 조국 독일 사회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었다. 1차 대전 후의 독일은 패전과 경제 위기로 혼란이 극에 달했다. ‘독일인의 자존심을 세우겠다! 먹여 주겠다!’는 선동적인 구호에 민주적인 바이마르 헌법을 자랑하던 독일 시민 사회의 이성은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겉보기에 한 개인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광기가 온 나라로 퍼져 나가고, 국가 단위의 광기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차원의 전쟁으로 번져 나가는 양상을 레마르크는 대서양 건너편에서 씁쓸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신 『개선문』, 『생명의 불꽃』 등 부조리한 현실에 맞닥뜨린 개인들의 이야기를 발표하며 독일 사회의 비이성적인 행보를 비판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도 권력을 위한 무의미한 전쟁, 게슈타포의 감시, 집단 수용소 문제 등 독일 사회의 책임을 철저하게 추궁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면면히 드러나 있다.
그러나 영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판에 이어 출간된 독일어판에서는 원본의 상당 부분이 수정되었다. 친위대 병사 슈타인브레너가 강제 수용소에 근무한 사실이 삭제되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러시아인 포로들을 일반인에서 파르티잔으로 바꾸어 냉전의 정치색을 씌운 것이다. 당시 《베르너 분트》지는 “이전의 독일 병사들이 마음의 상처를 느낄 만한 구절들을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종전 후에도 냉전 이데올로기 뒤에 숨어 독일의 범죄를 은폐하려 했던 시도로 인해 레마르크의 비판 의식은 희석되고 말았다.
이번 한국어판은 독일어판에서 수정, 삭제된 부분을 복원한 판본을 번역 대본으로 삼아, 역사적 과오에 눈 감지 않고 시대의 고통을 저버리지 않는 레마르크의 작품 세계를 명징하게 드러냈다. 무엇을 위해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주인공 그래버의 물음은 50년이 지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깨어 있는 역사의식의 전범 (典範)으로 기억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