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살아남은 자의 아픔
프리모 레비 / 노마드북스 / 2011.2.22
1945년 10월, 평균 생존기간이 3개월인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처절한 경험과 사유를 시와 소설과 성찰록 등 다양한 형식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시집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에게 주는 ‘존 플로리오상’을 수상했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은 그가 생전에 펴낸 2권의 시집인 ‘쉐마’와 ‘브레마의 선술집’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전체 82편 가운데 60여 편을 가려내 수록하였다.

나치학살과 야만성에 초점이 맞춰 사실을 과장하고 미화시키고 감정적인, 대부분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는 달리 프리모 레비의 글은 매우 간명하고 담담하다. 나치의 야만성을 밖으로 격렬하게 고발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으로 내면화시킴으로써 나치를 하나의 현상 이전에 먼저 그 본질을 추적한다. 생존의 극한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운명에 섣불리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내면으로 성찰의 날을 세워 자신을 단련시킨 시인의 모습이 빛을 발하는 작품집이다.
○ 목차
1부 이것이 인간인가
그 시절
포솔리 수용소의 석양
이것이 인간인가
기상나팔
부나 수용소
기억의 고통
묘비명
라이나 마리아 릴케 이후에
죽음이 나를 아는 체하네
기차는 슬프다
반딧불
침묵의 행군
천국과 지옥
생각하지 않은 죄
작별인사
아우슈비츠의 소녀
도시빈민촌
동부 유태인

2부 고통의 나날들
의심하지 않는 죄
장송곡
고통의 나날들
생쥐
개미군단
플리니우스의 유언
거미여인
늙은 두더지
야간경비원
용설란
진주조개
달팽이
코끼리의 유언
갈릴레오
체스
체스?2
철인10종 경기
삼손
데릴라
화형식
낙타
3부 성찰의 시간
증인심문
수태고지
수레바퀴
내 삼각모자
검은 별들
나무의 마음
아내의 생일
글쓰기 작업
살아남은 자의 아픔
성찰의 시간
먼지의 세계
생채기
덧없이 죽어간 자들의 노래
봄
내 벗들에게
8월
빨치산
석양
게달레 대장
인생연감
편역자 해설
단테의 지옥을 통과한 오디세우스처럼…

○ 저자 소개 : 프리모 레비 (Primo Michele Levi)
이탈리아 화학자, 작가. 1919년 7월 31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자유로운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수줍음 많은 성격에 어려서부터 학업에 뛰어났고 유대인이라는 별다른 자각 없이 유년을 보냈다.
1941년 토리노 대학교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유대인을 탄압하는 파시스트 정부의 인종법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행동당 조직 ‘정의와 자유’에 가담, 파시즘에 저항운동을 벌이다 1943년 12월 파시스트 민병대에 체포되었고 이듬해 2월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5년 1월 구소련의 붉은군대에 의해 해방되기까지 11개월을 수용소에서 보냈는데, 당시 새로 들어온 수감자는 평균 석 달을 버티기 어려웠다.
해방 이후에도 고향인 토리노를 밟기까지는 유럽 각지를 돌아 아홉 달이 걸렸다.
1946년, 훗날을 해로할 루치아를 만났고 도료 공장의 화학자와 관리자 일을 생업으로 삼았으며 수용소 경험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듬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삶을 기록한 첫 책 ‘이것이 인간인가’를 지인의 신생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으나 10년 이상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63년 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담은 ‘휴전’을 출간해 제1회 캄피엘로상을 받았다.
이후 ‘주기율표’ (1975), ‘멍키스패너’ (1978), ‘지금이 아니면 언제?’ (1982),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1986)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1987년 4월 11일, 자택의 층계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수용소 트라우마로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 출판사 서평
-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시인
24살 때부터 파시즘에 저항하는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리고는 며칠에 한 번씩 시체소각실 굴뚝의 ‘검은 연기’를 보며 살았다. 1945년 10월, 평균 생존기간이 3개월인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처절한 경험과 사유를 시와 소설과 성찰록 등 다양한 형식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 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은 그가 생전에 펴낸 2권의 시집인 ‘쉐마’와 ‘브레마의 선술집’을 하나로 묶은 것이며, 전체 82편 가운데 60여 편을 가려낸 것이다. 그는 시집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에게 주는 ‘존 플로리오상’을 수상했다.
프리모 레비는 생존의 극한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운명에 섣불리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내면으로 성찰의 날을 세워 자신을 단련시켜 왔다. 어쩌면 아름다운 세이렌의 치명적인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돛대에 자신의 몸을 밧줄로 단단히 묶었던 오디세우스처럼, 그도 내면의 돛대에 성찰의 밧줄을 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귀환은 나치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긴 승자의 전리품으로 보이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의 글은 매우 간명하고 담담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나치학살과 야만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분노의 목소리도 높고 응징과 심판의 목소리도 높다. 진실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증언문학이 그렇듯 사실을 과장하고 미화시킨 격정적인 작품들도 적지 않다.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그런 글에 익숙한 독자들의 눈에는 프리모 레비의 작품들이 잎이 무성한 여름나무보다는 간명한 겨울나무를 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프리모 레비는 나치의 야만성을 밖으로 격렬하게 고발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으로 내면화시킴으로써 나치를 하나의 현상 이전에 먼저 그 본질을 추적한다.

- 생각하지 않는 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죄. 우리는 지금 어느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가?
그의 시는 우선 고통스런 비유들이 많아 가슴이 저민다. 수용소 동료들의 몸은 ‘곤충의 허물’이거나 ‘뼈로 만든 허수아비’이고, 그 팔과 다리는 ‘장작개비’, 손가락과 발가락은 ‘성냥개비’에 곧잘 비유된다. 그것들은 몸통에 겨우 붙어있는데 그 몸통마저도 이미 속이 텅 빈 껍질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서 있지만 무너져 있고 무너져 있지만 흩날리는 잿가루에 불과한 것이다. 날마다 찾아오는 새벽과 태양도 ‘배신자’로 보이고, 하얀 눈도 ‘유령’ 같은 존재로 보인다. 흐린 날씨에 불길한 유령들이 수용소 안으로 자욱하게 찾아온다.
그렇다고 해서 수용소 철조망 바깥에 내리는 눈이 면피하는 건 아니다. 그것들은 비록 유령까지는 아니지만 담 너머 불구경하는 ‘방관자’란 혐의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구름은 태양과 동료들을 분리시키고 경계선을 긋기 위해 수시로 나타는 ‘위험한 물체’다. 기억은 예리한 날에 새겨진 무수한 ‘칼의 상처’들이다. 그 상처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 또한 ‘한 방울씩’ 흐른다. 수용소의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시간은 천천히, 더디게 흘러갈 뿐이다.
그때처럼 보초를 서면 적들도 감히/우리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그런데 어떤 적들 말인가?/모두가 서로의 적이고 내면의 경계마저 분열돼/이미 오른손은 왼손의 적으로 변해버렸다./하지만 어서 일어나라, 노병들이여/이제는 나치가 아닌 그대 안의 적들이여!/아직도 우리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작품 속의 ‘적’은 나치가 아니라 ‘내 안의 적’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그때처럼 보초를 서면 나도 무너지지 않고 우리도 분열되지 않는다. 나의 보초는 나이고 우리의 보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 나치들이 우리의 내부로 침투해 왕성하게 암약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꼬집고 있다. 파쇼와 싸우다가 파쇼로 변하듯, 나치와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나치로 변하지 않았는지를 아프게 묻고 있는 것이다.
사실 프리모 레비의 가장 큰 딜레마는 광기와 야만의 상징인 나치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유태민족인 이스라엘이 대신 차지했다는 점일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가 책과 강연을 통해 나치의 광기와 폭압을 줄기차게 증언하고 폭로했지만, 바로 그 시간에도 나치한테 당했던 유태인들이 오히려 미국의 비호 아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무차별적으로 공습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만 바뀌었을 뿐 나치와 다름없는 참혹한 비극은 여전히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니 같은 유태인으로서 그가 스스로 얼마나 캺끄럽고 견디기 어려웠겠는가.
따라서 그의 눈엔 나치나 이스라엘이나 ‘공존의 거부’라는 측면에서는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또 그 고뇌의 흔적이 바로 이 작품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내 안의 적’, 그것은 이제 미국과 유태민족이고, 그들이 군림하고 있는 한 전쟁도 폭력도 종식되지 않음을 이 시는 통찰하고 있다.
그 통찰은 ‘코끼리의 유언’에서는 “세월이 흘러도 증오와 복수만 거듭되는 이 허망한 역사”를 탄식케 하고, ‘수레바퀴’에서는 “내가 놓친 수레바퀴가 절벽 끝으로 천천히 굴러가고” 있는 모습을 단지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꼬집고 있다. 그의 “내 인생과 역사 모두가 온통 허망할 뿐이로구나!”라는 노년의 비관적인 인식은 극한상황 속에서도 가능한 낙관적인 인식으로 간신히 버텨왔던 청년 시절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비교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상처받은 디아스포라 영혼들에게 바치는 슬픈 진혼가
프리모 레비는 이 시집에서 나치의 유태인학살에 대해선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하지 않은 죄’라는 시에서는 홀로코스트 총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이름까지 거명하면서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만난다면 그대는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여전히 신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겠는가?/그럼 어느 신에게 말인가?/또 기꺼이 무덤에라도 뛰어들 것인가?/아니면 오히려 미완성의 작품을 아쉬워하는 예술가들처럼/아직 살아있는 1300만의 생명에 대해 통탄이라도 할 텐가?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나치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뒤의 최후진술에서 “나는 단지 명령만 따랐을 뿐, 저 신 앞에서는 유죄지만 이 법 앞에서는 무죄”라고 말했다. 실은 이날, 프리모 레비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려다가 끝내 가지 않고 기사를 본 다음에 쓴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그런 만큼 감정의 능선이 가파를 법한데도 마치 인문적 성찰로 조율이라도 하듯 차분하게 묻고 또 묻는다.
프리모 레비는 평균 생존기간이 3개월도 채 안 되는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1년을 버티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는 살아서 내가 경험한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역사를 왜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그의 생이 끝날 때까지 거듭 물으며 고뇌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인권마저 완벽하게 유린해버린 아우슈비츠는 과거에서 미래까지 일어날 세계 모든 학살과 폭력의 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이 사라졌다고 해서 지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87년 4월 11일, 프리모 레비는 투신자살을 했다. 그는 죽음으로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다시 들어간 것이다. 첫 번째는 타의였고 이번엔 자의였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회의를 끝내 떨치지 못한 그의 마지막 항변이었다. 이 시집은 상처받은 디아스포라 영혼들에게 바치는 슬픈 진혼가이다.
○ 추천평
1987년 봄, 장시 ‘한라산’으로 40년만에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폭로했던 이산하 시인이 ‘체 게바라 시집’에 이어 오랜만에 프리모 레비의 시집을 편역했다. 반파시즘 레지스탕스, 빨치산 활동과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살아남았다가 끝내 자살한 레비를 통해 이산하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간직하면서 우리 내부의 다양한 ‘괴물들’을 통찰하고 성찰해 ‘생각하지 않은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프리모 레비가 상처받은 영혼으로 쓴 이 시집은 시공을 초월해 묵직한 울림과 서늘한 감동을 준다. _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기하게도 고통은 그 이전의 안락함을 증언한다. 눈물은 행복했던 시간을 증언하고, 죽음은 이처럼 시퍼렇게 살아있던 삶을 증언한다. 프리모 레비, 내 가슴 깊이 핏빛으로 각인된 이름 … 오랜만에 붉은 피가 도는 시집을 읽으며, 난 다시 한 번 살아있는 내 자신이 무얼 증언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_ 공지영 (소설가)
지옥 같은 아우슈비츠에서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왔을 때 프리모 레비에게는 두 가지 할 일이 있었다고 난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지옥이 되는가를 증언하는 것, 그리고 그 지옥을 이겨낼 희망의 단서가 인간에게 있는가 없는가를 질문하는 것, 그렇게 두 가지다. 레비를 기억한다는 것은 곧 인간에 대한 레비의 그 증언과 질문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것이 또 우리가 이 시집을 읽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_ 도정일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죽음의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촉촉한 땅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에게 ‘넌 왜 그리 성급하느냐’고 말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한다. 그런 그가 끝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우리의 너무나 부드러운 무관심이었다. 레비의 이 고통스런 작품들은 마비된 우리의 가슴을 자극하는 아우슈비츠 철조망의 전기충격이다. _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