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선택 : 미하일 고르바초프 최후의 자서전
미하일 고르바초프 / 프리뷰 / 2013.8.8
-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철학과 삶을 알아본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최후의 자서전『선택』.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였던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의 자선전이다. 그의 삶과 철학 부인 라이사 여사와의 만남과 사랑, 일개 지방 지도자였던 얼뜨기 고르바초프가 단시간에 서열과 출신성분이 엄격한 소련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의 지성, 낙관론, 달변, 정치적 민첩성과 당대 실세들과 연줄을 쌓아가는 그의 영리함을 보여준다. 또한 브레즈네프 사망 직전부터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사임 때까지 철막 뒤에서 벌어진 권력투쟁 이면사를 생생히 묘사한다.
고르바초프의 철학과 삶을 통해 그의 정치적 선택의 영향을 미친 요소와 일생을 통해 일관된 가족에 대한 헌신, 진정한 사회주의자의 길이란 어떤 것인가를 말한다. 비록 실패한 비운의 개혁가란 낙인이 찍혔지만 냉전 해체와 세계평화를 구축한 인물임을 이 책은 전달한다.

○ 목차
이 책에 대해
프롤로그
Part 01 나를 키운 사람들
Chapter 1
고향 스타브로폴
전쟁의 상흔
학교로 돌아가다
트랙터 조수로
Chapter 2
모교 모스크바국립대
사회 활동에 뛰어들다
입당원서
라이사와의 첫 만남
학생 결혼식
졸업
Chapter 3
첫 임지 스타브로폴
당을 믿지 않는 사람들
모스크바를 오가며
표도르 쿨라코프와 라이사
후루시초프 숭배자 에프레모프
Chapter 4
지방당 서기가 되다
체제의 틀 안에서
크고작은 사건들
Part 02 정상으로 가는 길
Chapter 5
최초의 페레스트로이카 실험
이너서클에 들어가다
안드로포프, 코시긴, 쿨라코프
Chapter 6
스타브로폴을 떠나다
중앙무대에서의 첫 연설
당중앙위 농업 담당 서기가 되다
Chapter 7
권력 핵심으로
브레즈네프 정체기
Chapter 8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식량난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궁정 암투
버터와 총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의 대결
브레즈네프 사망
Chapter 9
안드로포프 당서기장 재임 450일
레닌 탄생 113주년 기념 연설
안드로포프의 퇴장
강대국을 이끈 병자(病者) 체르넨코
체르넨코의 마지막 날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Chapter 10
아내의 발병
혈액암 진단
회상
뮌스터 병원
분노의 시간들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실
Part 03 페레스트로이카의 길
Chapter 11
변화의 출발점에 서다
술과의 전쟁
시험대에 오른 글라스노스트
경고음이 울리다
Chapter 12
새로운 세계관
위기에 처한 제네바 정신
Chapter 13
지도부 균열
저서《페레스트로이카》출간
옐친과 나
과격 세력의 저항
양극단의 협공 받는 페레스트로이카
Chapter 14
신사고 헌장
다당제로의 길을 열다
봇물 터진 독립선언
8월 쿠데타
연방 사수를 위한 최후의 안간힘
연방 해체를 위한 옐친의 비밀작전
벨라베자 음모
에필로그
해제: 역사의 흐름을 바꾼 거인의 자화상

○ 저자소개 : 미하일 고르바초프
저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85년부터 1991년 말 연방 해체로 물러나기까지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있었고, 처음이자 마지막 소련 대통령이었다.
재임 중 개혁개방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추진하였고, 이는 중동부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대변혁을 불러왔다.
냉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31년 소비에트 연방 스타브로폴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당중앙위원과 농업 담당 서기, 정치국원을 거쳐 1985년 3월에 당서기장으로 선출됐다.
그가 추진한 개혁정책은 체제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을 급속히 분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공산당 내 보수파들은 1991년 8월 구체제로의 복원을 꾀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 기도는 사흘 만에 실패로 끝났으나, 이후 그는 급진 개혁파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내주었고, 1991년 말 연방 해체와 함께 권좌에서 물러났다.
부인 라이사 여사는 1999년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역자: 이기동
역자 이기동은 서울신문에서 초대 모스크바특파원과 국제부 차장, 정책뉴스부 차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1991년 8월 소련의 보수 쿠데타와 베를린장벽 붕괴를 비롯한 동유럽 변혁의 과정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경북고등과 경북대 철학과, 서울대대학원을 졸업하고,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지원으로 미국 미시간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인터뷰의 여왕 바버라 월터스 회고록-내 인생의 오디션><마지막 여행><루머><성공을 지켜주는 10가지 원칙>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저서로 가 있다.
– 감수: 김흥식

○ 책 속으로
…그래서 어머니는 크렘린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우리 부부는 돌아가며 어머니를 찾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나는 혼자서 갔다. 우리는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늦게 헤어졌다…. 어머니는 이튿날 새벽 4시에 돌아가셨다. 운명하기 전에 의사들이 나한테 남길 유언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이것이었다. “그 애가 다 알아요.” -본문 중에서
프롤로그
(2000년 9월 21일에 쓴 일기)
라이사가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오늘은 아내의 묘소에 묘비가 세워지는 날이라 가족과 친지들이 아내의 무덤에 모두 모였다. 비석은 조각가 프리드리히 소고얀의 작품이다. 알록달록한 대리석 비석은 표면이 마치 꽃으로 장식한 돌판 같았다. 아주 큰 돌이었다. 비문은 이렇게 쓰여졌다. ‘라이사 막시모브나 고르바초바. 1932년 1월 5일 태어나 1999년 9월 20일에 잠들다.’ 라이사를 빼닮은 젊은 여인이 몸을 구부리고 묘비에 야생화 다발을 놓았다. 벌써 1년이 지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1년이었다.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여러 달 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딸 이리나와 외손녀 크세냐, 아나스타샤, 그리고 친구들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라이사가 떠난 다음에는 몇 달 동안 강연 일정도 모두 중단하고, 그저 다차에 처박혀 있기만 했다. 그처럼 지독한 고독감은 전에는 정말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라이사와 나는 50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늘 꼭 붙어서 지냈지만 한 번도 서로 지루한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같이 있으면 우리는 그저 행복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둘이만 있을 때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서 말한 적은 별로 없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젊은 시절에 시작한 사랑을 끝까지 키워나간다는 언약을 굳게 지키며 살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했다. 라이사의 죽음에 대해 나는 너무 큰 죄책감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왜 아내를 지켜내지 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온갖 기억을 다 되살려내 보았다. 우리가 겪은 일들이 나중에 라이사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런 양심도, 책임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나라의 권력을 차지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아내는 가끔 그 일을 입에 올렸고, 그러면 나는 늘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 법이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면 아내는 이내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내를 보면 나는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아내와의 마지막 시간이 된 9월 19일부터 20일 사이의 밤을 몇 번이고 되새겨 보았다. 아내는 1999년 9월 20일 새벽 2시 57분에 눈을 감았다. 의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런 고통 없이 눈을 감았다. 서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아내는 자기 여동생 루드밀라로부터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기로 한 날을 이틀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 우리가 모스크바의 혼인등록소에 가서 혼인신고를 한 지 46주년을 닷새 앞둔 날이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내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도저히 아내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이리나와 나는 아내의 침대 머리맡에 붙어 앉아 하염없이 아내를 불러댔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이렇게 소리쳤다. “여보, 자카르카, 가지 마, 내 말 들려?” (나는 집안에서 아내를 자카르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손을 꼭 쥐면 아내가 나의 애원에 응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라이사는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나갔다.
앓아눕기 전에 아내와 나는 우리의 장래에 대해 수시로 이야기했다. 한번은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없으면 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어때요? 아마도 당신은 내가 죽으면 다른 여자와 재혼해서 살겠지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누가 죽는다고 그래. 당신은 아직 젊어. 거울을 한번 보라고. 사람들이 하는 말도 못 들었어요? 당신은 너무 지쳐서 좀 쉬어야 하는 것뿐이라고.”
그러면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인네가 될 때까지 살고 싶지는 않아요.” 손녀가 태어나자 얘들이 자기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를 놓고 우리는 머리를 짜냈다. 아내는 바불랴라고 불러 주면 좋겠다고 했다. 직역하면 ‘작은 할머니’란 말이다. 흔히 하는 것처럼 바부시카라고 부르면 너무 늙고 병든 할머니가 연상되어 싫고, 바불랴라고 하면 그나마 좀 젊고 생기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 출판사 서평
-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뼈속까지 사회주의자였던 고르바초프의 어떤 철학과 삶이 그로 하여금 대변혁의 결단을 하게 만들었을까? 지금도 많은 이들이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한 고르바초프의 내면의 결단에 관심과 의문을 갖고 있다. 삶의 어떤 면이 그의 정치적 선택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친 것일까? 바로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아내 라이사와 함께 한 삶에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라이사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일생을 통해 일관된 가족에 대한 헌신. 진정한 사회주의의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뇌와 반성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는 우리가 아는 얼치기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오직 인간의 존엄과 무너져 가는 체제의 회생을 최우선시한 지도자였다.
- 크렘린 권력의 무서운 맨얼굴
일개 지방의 지도자에 불과했던 시골뜨기 정치인 고르바초프가 그토록 빠른 시간 내에 서열과 출신성분이 엄격한 소련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지성, 낙관론, 지칠 줄 모르는 활력, 달변,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 정치적 민첩성과 수완 외에도 쿨라코프, 안드로포프, 수슬로프 등 당대 실세들과의 연줄을 쌓아가는 영리함이 그의 무기였다.
이 책은 또한 브레즈네프 사망 직전부터 고르바초프가 소련대통령 사임 때까지 철의 장막 뒤에서 벌어진 권력투쟁 이면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들의 부침과 대권을 둘러싼 세력 간 합종연횡과, 음모와 배신 등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담겨 있다. 천의 얼굴을 한 권력의 맨얼굴과 감춰진 음모와 비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역사적인 한소(韓蘇) 수교와 88서울올림픽 소련참가도 고르바초프 때 성사됐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남다른 인연이라 하겠다. 고르바초프의 최측근으로 페레스트로이카에 핵심적 역할을 한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는 후일 회고담에서 수교와 올림픽 참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와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 및 야코블레프 3인이 합의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 처음으로 밝혀지는 소련 연방해체 과정의 진실, 엘친과의 악연
목숨을 건 싸움에 도전했다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벗어날 수는 없듯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했던 고르바초프도 최종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실패한 비운의 개혁가란 낙인을 떨쳐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의 시장경제와 민주화의 주춧돌을 놓았고, 냉전 해체와 세계평화 구축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 자서전은 고르바초프란 개인을 보다 잘 이해하게 하고, 특히 80년대 전후의 소련 내부 사정과 연방 해체 과정에서 석연치 않았던 많은 부분들을 해소시켜 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