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설득의 경제학
존 메이너드 케인스 / 부글북스 / 2009.1.15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1930년대 불황기에 세계를 향해 쏟아낸 설득의 에세이를 모았다. 케인스는 미국과 독일, 영국에서만 실업자가 1천만 명을 넘었던 당시 불황의 원인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한편으로 희망의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고, 1930년대 공황 당시에 각 매체에 쓴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미국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진 1929년 당시 케인스가 쓴 글을 모은 단행본 <Essays in Persuasion>에 실린 일부 에세이와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편지와 신문에 발표한 글을 수록했다.

○ 목차
1.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2. 생산비 절감안을 묻는 총리의 질문에 답하다
3. 번영의 파도를 일으키는 방법
4. 폭리는 인플레이션의 결과이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아니다
5. 인플레이션은 부의 분배에, 디플레이션은 부의 생산에 더 나쁘다
6. 구두쇠가 부자가 못 되는 이유
7. 1930년 대불황의 원인은 신규 투자의 붕괴였다
8. 저축과 지출로 본 경제의 의미
9. 화폐가치의 붕괴가 은행에 미치는 영향
10. 혁명이 반드시 요구되는 경제적 개선은 없다
11. 자유방임주의의 종언
12. 나는 자유주의자일까?
13. 우파에서 창의적인 힘과 건설적인 의지를 끌어내라
– 허버트 조지 웰스의 ‘윌리엄 클리솔드의 세계’를 읽고
14. 손자 세대에는 경제가 어떻게 전개될까?
15. 일반이론은 어떤 사회철학을 낳을까?

○ 저자소개 : 존 메이너드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
존 메이너드 케인스 남작 (John Maynard Keynes, 1st Baron Keynesof Tilton in the Country of Sussex, CB, 1883년 6월 5일 ~ 1946년 4월 21일)은 1883년에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중산계급 지식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케인스는 이튼을 거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과 통계학을 전공하면서 철학과 경제학도 함께 공부했다. 1906년부터 식민지 인도를 지배하기 위한 영국 정부의 중앙부서인 인도부에서 근무하다가 2년 뒤인 1908년에 사직하고 케임브리지대학으로 돌아가 강사와 특별연구원의 신분으로 경제학 연구를 계속했고, 1913년에 첫 저서로 《인도의 통화와 재정》을 펴냈다.
일차대전 중에는 영국 재무부의 공무원이 되어 전시재정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했고, 1919년에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 영국 재무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파견됐다. 그러나 이 강화회의의 논의가 패전국인 독일에 배상의무를 무겁게 부과하는 쪽으로 귀결되자 그렇게 하는 것은 전후 경제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직했다. 그는 1919년에 《평화의 경제적 결과》, 1922년에 《조약의 수정》을 잇달아 펴내 독일의 배상의무 규모를 축소시킬 것을 주장했고, 1923년에는 《화폐개혁론》을 통해 전후의 디플레이션적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불황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경제학적 사고의 전환과 경제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관한 논의를 담은 《화폐론》과 《번영으로 가는 수단》을 1930년과 1933년에 각각 펴낸 데 이어 고전파 경제이론을 비판하고 불황타개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내용의 대표작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을 1936년에 펴냈다.
이차대전 중에는 영국 중앙은행의 이사와 자유당 상원의원을 지냈고, 연합국의 승전이 가시화되면서부터는 전후의 국제경제 질서에 관한 연합국들 사이의 논의에 영국의 대표로 참여했다. 특히 1944년에 미국에서 열린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가칭 ‘방코르’라는 세계 공통의 통화단위를 도입하고 세계중앙은행과 국제청산동맹을 설립하는 것을 뼈대로 한 전후구상을 제안했다. ‘케인스 안’으로 불리는 이 제안은 국제수지 불균형의 책임을 적자국가가 지게 하는 내용의 미국쪽 ‘화이트 안’에 밀려 극히 일부만 협상결과에 반영됐다. 그는 1946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역자 : 정명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RED BOOK>(칼 구스타프 융) <흡수하는 정신>(마리아 몬테소리)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 <나는 내가 낯설다>(티모시 윌슨)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노베르토 앤젤레티)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1930년대 불황기에 세계를 향해 쏟아낸 설득의 에세이
미국과 독일, 영국에서만 실업자가 1천만 명을 넘었던 당시 불황의 원인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한편으로 희망의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세계화로 크게 달라진 환경에 살려면, 우리 모두 나름대로 경제를 공부해야 한다. 이번의 위기를 통해 ‘부활’하게 된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에세이는 그 길잡이로 충분하다. 미국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진 1929년 즈음 케인스의 육성이 그대로 들린다.
당시 케인스가 쓴 글을 모은 단행본 <Essays in Persuasion> (설득의 에세이) 에 실린 일부 에세이와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편지와 신문에 발표한 글을 모은 것이 <설득의 경제학>이다.
케인스는 <Essays in Persuasion>서문에서 “경제에 대한 예언을 내놓기는 쉽지만 사람들에게 어떤 의견을 설득시키는 작업은 무척 어렵다.”고 밝힌다. 사람들이 25세나 30세가 지나면 경제에 관한 의견을 좀처럼 바꾸려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과거와의 단절이 요구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제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직도 그대로 통할 듯할 말이다.
이 에세이들을 보면 당시 미국이나 영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케인스의 ‘과격한’ 이론에 꽤나 반대했던 것 같다. 1929년 4월 로이드 조지 당시 영국 자유당 지도자가 실업자 110만 명을 구제할 대규모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스탠리 볼드윈 총리가 주춤거리자, 케인스는 “볼드윈의 파이프 담배 한 모금에 수천 파운드가 사라진다.”고 안타까워한다.
케인스가 인간의 경제활동을 보는 시각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따뜻하다. 당시 불황이 고령의 류머티즘 때문이 아니고 젊은이의 성장통 때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개인의 차원에서나 국가의 차원에서나 자신감과 활기, 대담성, 모험이 요구된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의 신뢰와 경제 관련 정보의 공유가 강조된다. 또 그때 기준으로 1백년 후 (2030년경)면 인류의 경제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때가 되면, 자신을 위해서 돈에 매달리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사람 냄새가 풍기는 세상이 다시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 한편으로 자기주장엔 자신감이 넘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는 예전 방식을 권하는 경제 고문들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이 쇠퇴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경고한다.
에세이들은 1930년대의 글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로 손색이 없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경제의 기본 가락은 언제나 똑같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