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자끄 엘륄 / 대장간 / 2010.2.18
이 책은 엘륄 자신이 말한 그의 삶과 연구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로 유일한 책이다. 전반부는 자전적 이야기와 그의 사상을 소개하며, 두 편의 부록에서는 엘륄연구의 근간인 기술의 개념과 엘륄의 사회학적인 글과 신학적 글사이의 이해를 돕는 유용하면서도 핵심적인 글이다.“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엘륄의 말이 왜곡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한편으로는 이 땅에서 더 멋진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우리말 제목으로 삼았다.
– 자끄 엘륄이 말하는 그의 삶과 작품
이 책은 독자들이 엘륄의 사회학적 글과 신학적 글 사이의 관계에 대한 통상적인 오해에 빠지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기술을 이해하는 방식을 세계를 해석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였으며 (부록1), 엘륄 작품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다루고 있다 (부록2).
자끄 엘륄의 삶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적 통일을 명확히 하는 수많은 과학적 풍조들의 속박으로부터의 그가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식별할 수 있었다. 자끄 엘륄은 20세기 후반의 다른 어느 사회과학자들보다도 훨씬 더 명료한 통찰력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경고를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 근원을 이해하는 사람은 더욱 적다.
○ 목차
편집자서문
초판서문
개정판서문
삶에 대한 회고
우리 시대에 대한 이해
현재와 미래
신앙인가 종교인가
부록1 기술에 대한 일반적 오해 바로잡기
부록2 총정리
○ 저자소개 : 자끄 엘륄 (Jacques Ellul, 1912 ~ 1994)
“사고는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라는 지성인의 행동강령을 말한 프랑스 지성으로, 마르크스의 사회경제학적 접근과 기독교의 가치관을 조화시킨 4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이자 실천가이다.
1912년 1월 6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937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연구부장으로 지명되었으나 비시 프랑스 (Vichy France) 정부에 의해 해임되었다. 1936~1939년 사이에 프랑스 정계에 투신하여 활동하였고, 1940~1944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열렬히 가담했다. 1953년부터는 프랑스 개혁교회의 총회 임원으로 일하였다.
법학박사인 그는 다수의 책을 저술하여 사회학자, 신학자,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졌다. 보르도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신앙과 삶’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였다. 사후인 2002년 이스라엘의 얏 바셈 (Yad Vashem)재단에 의해 나치 치하의 유대인 가족들을 위험을 무릎쓰고 도와준 것이 밝혀져 “열방가운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기술 (technique)에 대한 개념으로 현대사회를 설명하였으며, 법과 제도, 자유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였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의 다양한 저서를 집필하였는데, 한국에는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1990), 『뒤틀려진 기독교』(1991), 『하나님이냐 돈이냐』(1992) ,『의심을 거친 믿음』,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등 주로 신학관련 서적이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기술체계, 마르크스와 예수 등 사회와 역사 분야의 서적이 소개되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2009)는 엘륄의 유작으로 영미권보다 한국어로 먼저 번역 소개된 바 있다.
– 편자 : 빌렘 반더버그(Willem H. Vanderburg)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기술과 사회 개발 센터 창립이사로, 일상적 권위주의 세력에 눈이 먼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윤리적으로 설명하며, 자끄 엘륄의 기술 개념을 탁월한 통찰력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Growth of Mind and Culture”, “Living in the Labyrinth of Technology”가 있다.
– 역자 : 김재현
서울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종교학과, 총회신학대학원, 하버드대학 대학원 (신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턴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KIAST Theological Journal 편집장 및 한국고등신학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 역자 : 신광은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 (M.Div. Th.M.)을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 Ph.D을 수료하였다. 현재, 열음터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 메가처치 논박』(정연), 『자끄 엘륄 입문』(대장간), 『사회선교 한걸음』(뉴스엔조이)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 독자의 평
–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이 책의 부제는 자끄 엘륄이 말하는 그의 삶과 작품이다. 이 책을 만나기전 자끄 엘륄의 책을 몇 권 만났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어떻게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 다가온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지금 같은 물질 즉 기술화 되어버린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문제점을 그 오랜 시간 전에 이야기 할 수 있었는가 말이다.
지금의 시대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기술화 혹은 정보화 사회라 부른다. 21세기는 누가 어떠한 정보를 얼마나 빨리 취합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네트워크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성공 여부가 판가름이 난다. 그렇다면 사회적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잘 먹고 잘 사는 것 즉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 한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풍요 속에 빈곤함을 느낀다. 이미 충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무언가가 허전하다.
우리는 항상 두 가지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그것은 바로 물질적인 만족감과 영적인 만족감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물질 문명시대라 일컫는다. 모든 것의 가치는 물질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영적인 충만감을 기본으로 가져야 하는 교회에서도 모든 것의 기준을 물질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더욱 심화되어질 것이며 물질 기준으로 인한 고통은 현 세대 교회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이다.
기술의 발달 혹은 사회의 기술화를 두고 자끄 엘륄은 가진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기술의 첨단적인 도약과 발전은 오히려 인간 사회를 더욱 삭막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쉼 없이 고민하고 일에 매달린다. 그 이유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는 이유를 가지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우리의 삶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느냐는 물음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의 상실이다. 더 나은 기술을 너 나은 기술사회를 추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자끄 엘륄의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전반부는 자끄 엘륄의 삶과 그의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자끄 엘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이념 및 신학적 소견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일부분 해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끄 엘륄의 이야기들은 어렵다. 하지만 이해하고 나면 그의 생각과 사상이 얼마나 뛰어 났는지 알게 된다. 사실 나는 신학적 깊이나 사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끄 엘륄의 책이 어렵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혀 쉽지 않았던 책인 자끄 엘륄의 저서들에 왜 자꾸만 빠져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생각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 독자의 평 2
–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제목부터가 상당히 계몽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런데 제목하고 내용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실로 오랜만에 이런 종류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읽기 전에 제목을 통해 ‘생각은 크되 실행은 작은 것부터’ 라는 내용일 거라는 오버를 했었다. 너무 순진했다.
저자는 성장 배경이 순탄치 않았다. 가난했다. 그러나 상당히 총명해서 어떻게든지 부모님은 가르칠려고 했던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배경에는 이것이 큰 영향력을 계속해서 행사한다. 성경을 좋아했고 신앙생활은 하지만 깊이 자신을 드리지는 못한다. 마르크스의 영향력 때문에 성경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읽기 때문이다. 그러다 칼 마르크의 영향을 받아 교회의 역할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한계를 접하게 된다.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과학적이지 않고 열정적이다.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비평이 없고 오로지 상대방의 편견과 전제들에 대해서만 날카롭다. 그리고 거기에는 인간의 삶과 역사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한 해답이 없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운동을 벌이지만 결국은 실패한다. 그는 이것이 전통주의와 변화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학을 마르크스 사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또한 사회 부적응자와 환경에 대한 헌신을 한다. 인간이 문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해한 이 시대는 기술(테크니끄)이 지배한다. 마르크스가 ‘노동’일 가치를 창조하는 결정적인 것으로 봤다면 그는 현대 가치창조는 과학연구와 기술을 형태로 과학을 응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특정한 기술적 조작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소속된 사람들이 하는 것들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냥, 어로, 오두막 짓기, 채집 등의 행동은 기술적인 조작들이다. 18세기와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우리가 알고 있는 현상들과 발전하여 온 현상들은 기술현상들이다. 특히 18세기 이후의 기술은 효율에 의해 평가된다. 기술은 기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인간은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과 약속을 갖고 더 일하게 되고 물질적인 행복을 가지려고 영적이고 지적인 행복을 버렸다. 이러한 행복이 소비사회로 유도한다. 여기서 간과한 것은 기술은 삶이 아니라 하나의 고도로 발전한 형태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이제 기술이 하나의 기술체계(system)가 되었다. 그리고 기술 사회와 인류 사이에 혼란을 가져왔다. 정치집단은 이것을 조정할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 그 이유는 그들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없고 새로운 조직을 찾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류는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제3세계 국가들은 밀려드는 기술체계와 기술도구들을 단기간에 수용해야 하는 데 이것은 그들은 감당할 수 없다. 서방세계들은 이러한 것들을 수용하는데 200년이 걸렸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교육을 통해 기술속에 살고 떠 한편으로는 기술에 대항하여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공동체속에서만 가능하다(개별적인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다). 이처럼 기술은 인간에게 낙담을 주고 절망케 한다. 인간이 기술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종교에 관심을 갖는다. 종교는 자연적이고 무의식적인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사회는 이러한 종교를 파괴하기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인간은 여러 형태를 신앙을 갖게 된다. 종교는 인간에게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제공해 주고 과학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해 준다.
특히 저자는 기독교 계시, 기독교 신앙에 희망이 있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서 조정되지 않고 위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이러한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동화되지 않으시며 다만 인간을 완전히 해방시킬 수 있는 단 한분이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그가 생각한 만큼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인간은 끊임없이 불순종과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도 보게 된다. 좀 더 세상과 나를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바라보는 계기를 제공해 주리라 생각된다. 딱딱하지만 머리를 녹슬지 않도록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 독자의 평 3
18세기의 산업 혁명 이레 기술은 급속도로 거듭 발전해 왔다. 인간의 편의와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한 기술이 본래 목적을 넘어 인간을 밟고 올라서게 되었다. 인간이 기술을 낳았지만 기술이 인간을 지배해 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그것의 진행을 막거나 경로를 변경 시키는 것은 인간의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에 대해 자크 엘륄은 그 부정적인 결과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욕망이 그 자신을 재앙으로 몰아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인간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 보았지만 이제는 기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들여다 본다. 기술로 인간과 세상을 분해, 분석하고, 해석한다. 급기야 기술은 신적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것을 보며 재앙의 날이 앞당기는 일이라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Think globally, act locally’
자크 엘륄은 이 책에서 기술과 세상의 긴장 관계를 역설한다. 기술과 사회, 기술과 미래, 기술과 종교의 긴장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봐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인간과 기술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주시하게 한다. 기술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참으로 가치가 있다. 이 책에 담긴 기술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것의 가치와 방향, 곧 인간의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신앙과 종교를 지나치게 기술적,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그동안 그의 신학 서적을 읽으며 느끼지 못했던 이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것을 제외하고 이 책은 기술에 대한 참으로 번득이는 분석이 돋보인다.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도구의 사용이다. 도구를 보다 정밀하게,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즉 기술 혁명이 인간과 동물을 차원이 다른 존재로 가른다. 인간은 그렇게 다른 동물과 그 존재를 구분시키는 기술을 가졌지만 점점 그것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 단지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발달시킨 기술이 도리어 환경을 지배하고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급기야 비인간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기술은 점점 인간의 간섭을 막고 있다. 반면 인간은 점점 그것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기술지배사회에 대한 신의 경고는 계속 무시 되고 있다. 과연 이 위태위태한 상황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간의 소망과 자유를 점차 빼앗아 가고 있는 기술은 과연 신의 축복일까? 재앙일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