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 어떻게 살 것인가?
자끄 엘륄 / 대장간 / 2008.8.25
- 기독교와 관련하여 서구 사회의 흐름을 분석하고, 그러한 분석을 기초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좌표를 성경적 관점에서 설명한 책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과 천국 사이에 윤리 혹은 문화라는 다리를 놓고 그 한 가운데 안주하려고 한다. 그러나 윤리나 문화와 같은 인위적인 것으로써 신앙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이 노력은 선택 가능한 여러 방법 중 가장 반기독교적인 태도다.
○ 목차
-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 기독교의 혁명성
- 현대인의 우상
- 기독 지성인의 소명
- 어떻게 살 것인가
○ 저자소개 : 자끄 엘륄 (Jacques Ellul, 1912 ~ 1994)
“사고는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라는 지성인의 행동강령을 말한 프랑스 지성으로, 마르크스의 사회경제학적 접근과 기독교의 가치관을 조화시킨 4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이자 실천가이다. 1912년 1월 6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937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연구부장으로 지명되었으나 비시 프랑스 (Vichy France) 정부에 의해 해임되었다. 1936~1939년 사이에 프랑스 정계에 투신하여 활동하였고, 1940~1944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열렬히 가담했다. 1953년부터는 프랑스 개혁교회의 총회 임원으로 일하였다.
법학박사인 그는 다수의 책을 저술하여 사회학자, 신학자,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졌다. 보르도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신앙과 삶’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였다. 사후인 2002년 이스라엘의 얏 바셈 (Yad Vashem)재단에 의해 나치 치하의 유대인 가족들을 위험을 무릎쓰고 도와준 것이 밝혀져 “열방가운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기술 (technique)에 대한 개념으로 현대사회를 설명하였으며, 법과 제도, 자유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였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의 다양한 저서를 집필하였는데, 한국에는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1990), 『뒤틀려진 기독교』(1991), 『하나님이냐 돈이냐』(1992) ,『의심을 거친 믿음』,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등 주로 신학관련 서적이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기술체계, 마르크스와 예수 등 사회와 역사 분야의 서적이 소개되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2009)는 엘륄의 유작으로 영미권보다 한국어로 먼저 번역 소개된 바 있다.
○ 독자의 평 1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며 , 기도하다 발견한 책.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꼭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
하나의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시켜 주는 , 스케일이 큰 책인데 생각보다 어렵진 않다.
기존에 붙들고 있던 세계관이 이 책을 읽고 나서 ,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면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물론 , 이 책이 이야기 하는 바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 나 또한 이 길을 하나의 ‘참고 사항’ 으로 인식하며 , 약간은 비판적으로 읽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지닌 강점은 ‘굉장히 실재적이고 , 사실적이다’ … 어려운 개념화를 할 필요 없이, 세상을 잘 설명해 내고, 세상 속에 잘 적용이 되기 때문에 큰 힘이 느껴진다.
비록 , 이 책은 ‘이 세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명시해 두지 않았지만, 개략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하며, 무엇보다도 이 책의 의의는, ‘세상을 바르게 직시하고, 설명해낸 것’ 에 있을 것이다.
핵심적인 부분을 몇 가지 이야기 하자면, 결국 우리는 결코 세상처럼 살아가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분리되어 서도 안 된다는 ‘이율배반’ 적인 긴장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이 책은 지적한다.
특히, 이 세상의 혼란과 무의미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며, 그러 하기에 그리스도인만이 이 세상 속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 이 전제에 동의를 한다면 그의 이야기가 매우 수월하게 이해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할 일은 모든 정치, 경제적 상황이 안고 있는 진정한 영적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며, 그 해결책은 결코 합리적일 수 없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오직 ‘생명’과 관계 있는 것이며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수 많은 기독 지성인들이, 성경적인 재물관, 성경적인 이념, 체제 등을 정립하려고 많은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성공할 수 없으며, 그것은 성경을 오독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상당히 충격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 그 어떤 관점도 진정한 해갈을 주지 못한 이유가 설명 되면서, 그가 말하는 것과 같은 제 3의 대안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이 혁명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혁명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 ‘예수’가 혁명적인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하는 그의 메시지는, 분명 현실 참여 적이고, 실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 그 기저에는 철저한 믿음과 신앙의 힘이 깔려 있다. (이게 이 사람의 말이 매력적인 이유이리라.)
또한 그의 훌륭한 점은, 현 시대가 ‘사실’과 ‘진리’를 하나로 보고 있음을 지적한 것인데 , 그들은 자신들이 인정하는 ‘사실’이 아닌 것들은, 더는 ‘진리’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어서 이야기 해 보자면, 인간의 생각, 생활, 감성 등이 모두 경험, 사실 등의 통제에 들어가면서 물질세계에 종속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현실을 잘 직시한 다음에, 그는 계속 자신만의 독특한 주장을 하는데… 어떤 사상, 교리, 혹은 정치 운동에 충성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이야기 하면서 그는 세상에서 말하는 충성은 결국 습관과 고집에 불과하며,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사는 시대에 따라 당신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으로 보이는 입장을 취하여 좌익이 될 수도 있고, 우익이 될 수도 있으며 자유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사회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관점들이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추구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는데… 그의 주장을 이렇게 정치, 사회에 적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의 다른 저서들도 함께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냐, 돈이냐] 등의 책을 통해 그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 하며, 열심히 나름의 견해를 피력한다.
그의 견해에 대해서는, 다양한 토의, 토론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일단 배워가는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관점임에 틀림 없다.
이 책은 인간의 ‘실천’ 을 매우 중요시 여기면서도 , 그 모든 원리 속에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이 최우선 되는 강조점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경건한 느낌을 준다.
결국 그가 이야기 하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인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행하고 하나님께서 그 일에 의미, 가치, 효과, 비중, 진리, 정의, 생명 등을 제공해 주는 식이다.
이 말을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 인간의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죽은 것이며,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전제 안에서, 그는 쉐퍼와 같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고,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는데 힘을 쏟아야 함을 역설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과 합치되는 ‘의사소통’을 하기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그들을 진정 사랑하기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세상 속에서 전존재를 걸고, 힘껏 ‘진리의 삶을 살아내는 것’을 주장하는… 그러나, 그 방법은 세상이 말하는 높은 지위, 많은 재물, 큰 영향력이 아니라, 양과 같은 모습으로… 즉 , ‘자기 희생’ … ‘낮아지는 방법’ … ‘아낌 없이 나누는 방법’으로 이리 가운데 들어가는 것임을
이와 같은 진실한 기독 지성인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길이 아니겠는가.. 때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애쓸 필요가 어디 있는가”
“복음을 단순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사실상 ‘하나님 말씀의 효험’에 대한 이와 같은 ‘확신’은 인류에 대한 사랑의 결핍과 인류가 처해 있는 실제 상황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낸다는 저자의 말에 난 동의한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 빗나간 영성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무대 안에서 인간을 붙잡아 주시며 우리가 처한 시대의 문제들 속에서 그 시대의 방편들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으로 돌려 버린다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나 우리가 주장하는 ‘정통’ 은 위선이요 비겁함이요 또한 나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믿음과 행함을 하나로 움직이는 게 마땅하다.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에…. 행하지 않으면서, 믿고 있다 말하는 것도 아이러니일 것이다. … ‘오직 믿음으로’ 라는 문구는 너무도 오용되어 온 듯 하다.)
결국 , 우리가 말씀 선포를 하려면… 그 단순한 복음을 당당히 전하고 싶다면 ‘싸움에 투입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현대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이해할 때 , 그리고 그들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그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숨겨진 의도, 이유’를 간파해 낼 때 , 우리가 그들이 당하고 있는 육체와 영적인 고통을 그들의 절망감과 고독 속에서 함께 나눌 때, 우리가 모세나 예레미야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가 되었고 예수께서 방황하는 무리들 즉 목자 없는 양들과 동일시하셨던 것처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가 될 때,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엘룰의 말을 기억하면서… 그의 주장은 결코, 비성경적이지 않다.
너무나도 성경적이고, 너무나도 미련한 방법을 주창하고 있다.
그래서 그 속에는 생명이 숨어 있다.
그 속에는 진정한 ‘사랑’이 숨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한다.
○ 독자의 평 2
-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이 책은 교회에 다닌다면서 혹시 모양만 신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매 주일 교회에 나아가 예배를 드린다고는 하지만 세상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은 조화롭게 살아가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세상으로 친히 오신 커다란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세상을 다 감싸 안으시려 던 예수님의 피땀 어린 기도를 기억한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새 일은 세상이 부활사건을 목도케 하시고, 하나님을 주로 시인하고 영접케 하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한다. 왜 교회에 가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불평을 토로한다. 그러나 면밀히 따져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겪어야 할 희생의 부분을 간과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진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이 책은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제시해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의 세력인 선과 악의 정체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속할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 마귀에게 속할 것인가?
어떤 것이 선의 부류에 속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주님의 일을 알며,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빛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빛이 어두움에 속할 수 있을까? 빛이 임하면 어두움은 물러간다. 또 빛의 일은 밝을 때, 어두움의 일은 깜깜할 때 더 잘 분별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분별의 기준은 제시되었으니 선택은 믿는 각자의 몫인 것이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삶에 분명한 푯대가 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연합된 산제사를 매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양’인 것은 속죄의 효력을 세상에 베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을 세상 속에서 계속 새롭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양’의 역할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을 말한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영적인 생활과 육적인 생활로 우리의 삶을 이분화 하여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그룹과 세상에 속한 내 그룹을 오갈 때에는 각각의 그 소속된 그룹에 맞는 처세가 아닌 영적, 육적으로 일치된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다시 정비해주고, 마땅히 행할 지침들을 제공해 준다. 순간순간 당혹케 했던 실존의 문제들을 잘 풀어준 좋은 스승이다.
이 책을 받고 나는 생각했다. 서구의 기독교가 초토화되어 이제는 우리의 걸음을 재촉하는 선교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우리의 생활을 재조명해 줄 수 있을지 의아함을 품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에 비추어본 행실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예수님이라면? 매일 삶을 통하여 말씀으로 만나고 기도로 호흡하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지상명령을 수행할 때 그리스도의 나라가 반듯하게 완성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 독자의 평 3
책 내용이 처음엔 다소 지적이고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중간중간 읽다가 앞장으로 다시 넘겨 자크 엘룰 아저씨의 사진과 이력을 보며 참 어렵네. 이 아저씨 되게 똑똑하신 분이긴 분이셨나보네라는 생각 정도로 머리를 식힐 수는 있었지만 다시금 책을 읽어가면서 아무 생각없이 멍 해지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가뜩이나 15개월 사야랑 놀아주며 이 책을 읽는다는건 무리였다.
결국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내려 주시지 않는다면 이 책을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겠다란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이런 겸허함은 처음 느껴보는지라.. 조금 당황 스럽긴 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거의 읽고, 새벽녘.. 마무리 짓기 전에 먼저 말씀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4 : 16-17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단지 읽을 차례가 되어서 읽을 뿐이었던 마태복음이었는데
책의 내용이 불현듯 깨달아지는 두 구절이 있었으니.. 그 하나가 위의 구절이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란 질문이 나의 뇌리에 스치며 정말 이 질문은 내게 꽤나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란 생각이 들기시작했다.
제목이 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이라는걸 감안해 본다면 복음 전파는 우리의 최우선의 사명이 아니겠는가란 생각에 누구의 책임인가란 질문은 이쯤에 등장하기에 무리가 되는 의문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 시점에서 나의 참된 사명을 발견하게 되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나의 사명 즉,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을 좀 더 깊이 있게 깨닫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나의 삶의 목적이.. 무질서한 이 세상과 진리이신 하나님의 질서 사이의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임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완화의 연결고리… 즉, 구원의 좋은 소식을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들을 수 있게 하는 통로 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무척 애를 쓰고 있지만 세상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것이 그들만의 책임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나란 부가적인 의문이 더해지며 누구의 책임인가란 질문의 실마리들을
차근차근 풀어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자꾸만 보여주시던 하나님의 뜻을 이제서야 깊이 있게 깨달을 수 있게 되었는데 위의 말씀,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 라는 말씀을 통해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확고히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사명은, 이러한 빛과 같은 존재, 복음의 말씀을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들을 수 있게 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현대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이해 하고, 그들의 고뇌와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진정한 이유를 이해하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육체와 영적인 고통을 그들의 절망감과 고독 속에서 함께 나눌 때에, 바로 이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었다.
나의 풀리지 않았던 의문에 대한 답으로써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은 나의 빛으로써의 역할의 선행이었다.
이것이 선행 될 때에야 그때에야 비로서 반응을 보여야 할 책임이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되며 진정으로 복음이 그들에게 의미있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오해가 있을 수 있을것 같아 덧붙인다. 나는 우리의 의무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전적으로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즉 그들의 경제적, 지적, 심리적 및 육체적으로 인간적인 수준을 회복하도록 애쓰는 것에 힘쓰는 것이다.
또한가지 무척 놀라웠던 사실 하나는 내가 그들의 심리적인 부분의 인간 수준을 회복하도록 돕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나의 삶을 저자가 말씀하시는 혁명적 삶에 진지하게 비추어 진단해 볼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기술적 차원에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사역을 해 나가고 있는지란 질문에 나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위치가 실제적으로 가장 자살적인 충동이 왕성한 그곳이며, 기도와 묵상으로 그것들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내 스스로 질문해보게 되었다.
질문과 답은 나의 현 위치를 돌아보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내 안에 형용 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있었다.
나의 위치에 대해서 이토록 자신감에 차게 하시며, 격려해주시며, 내가 더욱 더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서 친절히 알려주시는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난 내가 이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지금껏 깨닫지 못했기에 지금의 기쁨과 감사가 세상을 덮을만큼 크게 다가온다.
이것은 세상과 하나님나라의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나의 직업을 통하여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메세지였다.
이것이 나의 개인의 일에 국한 되어질것 아니고, 교회와의 연합을 통한 공동체적 과제가 될것임을 또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마태복음 4:23-25
말씀을 통해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깨닫게 한 나머지 한 구절이 있었는데 바로 위의 말씀이었다.
말씀처럼 가르치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같이 생명력을 잃은 그리스도인들과 이미 죽어버린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재건하는 것, 이것이 너의 사명이라는 하나님의 깊은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사명을 쫓아 살아가는 삶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되고 그들을 교육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부어주셨다.
이렇게 볼 때 얼마나 이 책을 통하여 놀라운 깨달음과 구체적인 비전을 부어주시는지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놀라운 깨달음으로서 현대의 사회가 얼마나 수단이 목적화 되어 타락되었는지 여러장의 내용을 통해 실감하게 되면서,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기술이라는 것이 중립적이다라는 강한 확신 속에 살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수단의 자기 정당화에 휘말려 부를 축적하고 기술을 진보시키는 것이 마치 어떠한 진정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인냥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은 바로 현대적 가치에서 등한시 되고 있는 직관, 깨달음에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자각, 내면의 성장.. 이것만이 우리를 진정한 목마름에서 회복시켜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부분 역시 내게 참 희망적이었다.
이러한 내용과 함께 내가 지성을 추구하고 나아갈 때 앞으로의 내 삶에 더해주실 나의 역할 안에서 가져가야할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서의 진정한 지성인의 자세 또한 제시받을 수 있었다.
현실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판단하지 않으며,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것 사이의 경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되, 거룩한 영역을 재발견 하기에 힘쓰고, 인간의 지성을 극대로 활용할것이며!
그러나! 거룩한 영역을 침범할 위험이 있을 때 자발적으로 멈출 수 있는 자제하는 지성인이 될 것을 가슴 깊이 되새기게 하셨다.
또한 사단이 권세를 잡은 현 세대의 상황에 대한 내용을 여러번 접하게 됨으로써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현대적 방법론과 나의 길로부터 얻어지는 결과물들이 조화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더는 놀라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부분은 앞으로 나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사역 안에서 어떠한 결과에도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도록 미리 배려 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라 생각된다.
너무 피상적이고 추상적이다라고만 느껴졌던 책의 내용들을 통해 이토록 어마어마한 깨달음을 얻게 된데에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목적과 수단이 분리되지 않는 삶, 설사 지금의 삶이 수단의 노예가 된 상태라 할지라도 이것으로부터 혼신의 힘을 다하여 벗어나도록 씨름하는 삶, 그러한 삶이 되도록 나의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기도하게 됐다.
세상이 제시하는 행동 방법을 과감하게 거부하며 나의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되기를…
현대 사상의 조류와 완전한 절연을 과감하게 결단하고 헌신과 나눔으로 이 과제를 나와 주님의 몸인 교회와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정말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어 글을 마치기 전 글을 읽는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길 원하는 마음으로 적어본다.
‘나는 세상에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기 위해 내가 현실에서 무릎써야 할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단하였는가.’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새로이 결단하게 되었다.
진실로 자유롭게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도하고 죽기도 하기로 결단한다.
주님의 은혜로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지닌자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로 결단한다.
나의 이 결단은 이미 우리안에 이러한 능력을 부어주신 주님의 말씀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늘 겸손하여..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지성을 추구하며 주님께서 주신 깨달음 안에서 진정으로 지적인 삶이 영적인 삶임을 내 평생 기억하는 은혜를 누리게 되길 기도한다.
무엇보다 다른 어떤것이 아닌, ‘모든것을 견딜 수 있고 또한 며칠 밤을 지새울 수 있을만큼만의 열정과 준비가 필요한 자’를 찾으시고 사용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소박한 뜻과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아무도 가르칠 수 없는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시기를…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기 전에는 발견할 수 없는 길을, 인간의 힘에만 의지 할 경우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길을 나에게,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기도한다.
이 모든것이 부귀도, 지식도, 명예도, 그 어떤것도 아닌 오직 기도와 묵상을 통한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에서만이 가능함을 가슴깊이 깨달으며…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