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세키가하라전투 전5권
시바 료타로 / 청어람미디어 / 2002.7.1
일본인들의 정신적 스승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 세키가하라 전투는 일본 3대 전투의 하나로, 일본이 중세에서 근대로 도약하는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시바 료타로는 세키가하라 전투의 규모나 영향력이 워털루 전쟁 못지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전쟁의 승패가 일본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봉건제가 엄격하게 정착됨으로써 일본사의 특수성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
1598년 일본 열도를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하를 차지하고자 하는 야망을 품는다. 이를 알아챈 미쓰나리는 자신의 성에 은거하면서 이에야스에 대항할 계획을 세운다. 마침내 세키가하라에서 이에야스의 동군 8만과 미쓰나리의 서군 10만이 격전을 벌이고, 격렬한 전투 끝에 시대의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된다.
시바 료타로는, 전투에서 패한 것은 미쓰나리 쪽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진정으로 승리한 것은 미쓰나리라 생각한다. ‘미쓰나리는 전투에는 졌을지 몰라도 역사에 의를 남기는데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평생을 일본인의 정체성 탐구에 바친 작가답게, 역사소설의 외양 속에 깊이있는 사색과 철학을 담아 넣었다. 러일전쟁을 조국방위전쟁이라고 한 발언 때문에 군국주의자로 몰리기도 했지만, 만년에 그가 한 발언들-교과서 왜곡에 대한 규탄, 2차 세계대전의 어리석음-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한마디로 규정해버릴 작가가 아니다.
철저한 고증 아래 쓰여진 소설의 구성이 치밀하며, 문체도 간결하면서 굵직굵직 강한 느낌을 준다. 일본 고유의 용어에 대한 설명이 충실하며, 책 말미마다 일본 전국시대에 대한 설명과 연표, 해설을 수록하여 소설의 이해를 돕는다.
○ 목차
– 1권 히데요시의 죽음

옮긴이가 읽는 분들께
다카미아의 암자
사람과 사람
여자와 여자
나라
처마 밑 원숭이들
후시미 성 아래
과자
히데요시와 이에야스
혼란
히데요시의 죽음
하카타의 기요마사
도라지 무늬
서리 내린 아침
소송
후지주로의 딸
암약
오사카로
문책사
평판
암살
무코지마
부록

– 2권 이에야스의 모략
검은 옷
도도 저택
도시이에의 죽음
지는 봄
밀약
탈주
변환
모재.모지.모략.모의
세다의 이별
위세와 명망
엄청난 연극
오사카 성으로
나시노 마루
호슌인
오쓰의 하룻밤
분도야
오노 마을
여름 달
우키타 가 소동
아이즈 와카마쓰
오슈의 눈
부록
– 3권 미쓰나리, 일어서다
구니누케
도전
풍운
이에야스, 움직이다
비와 호반
습격
도주
쓰루가 사람
안코쿠지 에케이
전서
탈출
호소카와 가라샤
맹염
하타가시라
밀사
시마즈 이신 뉴도
미나쿠치 관문
긴고 주니곤
와카샤 쇼쇼
북상군
후시미 공격
부록

– 4권 결전 전야
부젠 사람
비보
내일
후쿠시마 진
여섯 푼의 동전
다키묘가
광풍
운명
대나무 베기
다마루
구와나의 성주
나베시마
구키
미노의 성들
사자
기후 주나곤
선진
도하
기묘한 사람
에도 출발
미노 오가키
고도 강
부록

– 5권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에치가와
초조감
잇토쓰사이
신슈 우에다 성
밀서
이에야스, 진에 오다
세키가하라로
마키타 가도
마쓰오 산
안개 속
난구잔
혼란
인화
안개 걷히다
손톱을 씹다
배신
이시다, 무너지다
오토자카
후지카와 구릉
후루하시 촌
6조
시모카와하라
부록
해설

○ 저자소개 :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郞)
1923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후쿠다 사다이치 (福田定一).
오사카 외국어 대학 몽고어학과를 마치고, 1959년 ‘올빼미의 성’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받았다.
이어 1966년 발표한 <료마가 가다>로 기쿠지칸 문학상을 받았다.
1972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1983년 요미우리 문학상, 1984년 신초 문학상, 1987년 일본 예술상 등을 받으면서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1987년 이후에는 일본 재계 최고경영자 상담역을 맡기도 했다.
1996년 생을 마쳤고, 1998년 ‘시바 료타로 상’이 제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시바 료타로 전집>(전50권), <꿈꾸는 열도>, <막말의 암살자들>, <명치라는 국가>, <몽골의 초원>, <미야모토 무사시>, <세계속의 일본 일본속의 세계>’, <세키가하라전투>, <소설 풍신수길>, <언덕 위의 구름>, <올빼미의 성>, <제국의 아침>, <타올라라 검>, <풍운의 성채>, <한나라 기행>, <항우와 유방>, <황제를 낚는 풍운아>, <나라 훔친 이야기> 등이 있다.
– 역자 : 서은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도리츠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전주대학교 인문대학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다. 옮긴 책으로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 『회복하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론』,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세키가하라 전투』, 『선생님의 가방』, 『개인적인 체험』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나는 세키가하라의 일거를 의(義) 때문에 일으켰네. 그것을 이(利) 때문에 일으켰다고 오해당하는게 괴롭네.’
또한 미쓰나리는 말했다. 만약 여기서 요지로다유의 불행을 못본 척하고 도망친다면 불의한 일이다. 미쓰나리는 불의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전쟁조차도 불의한 전쟁이 될 것이니 그 뜻을 잃게 된다. (…) 미쓰나리는 거듭 거듭 타일러 끝내 요지로다유가 고발을 하도록 만들었다.
미쓰나리는 자신의 운명을 동굴 안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단 한순간도 자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본문 275쪽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시바 료타로의 작품은 그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유명하다. 7, 80년대 일본의 지식인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선생이 역사소설을 집필할 당시에는 서재에 펜과 원고지뿐이었지만 시바 료타로 선생은 트럭 하나분의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쓴다. 일본의 역사는 시바 선생이 가르친다.”
『세키가하라 전투』 역시 다르지 않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전국시대 말기의 2년 남짓한 기간을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시바 료타로는 이 짧은 시간적 배경 속에 고대의 다이카 개신에서부터 근대의 메이지 유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녹여내면서 일본사 전체의 맥을 짚어내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인해 시바 료타로는 정해진 역사적 시각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었고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주변적 인물들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재창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사카모토 료마인데 시바 료타로의 작품 『료마가 간다』가 발간되기 이전의 사카모토 료마는 그저 교과서에 한두 줄 언급되는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역시 이시다 미쓰나리, 시마 사콘, 오타니 요시쓰구 등 역사적으로 주변적 인물로 치부되었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시바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역사상의 사건이 인간에 대한 통찰과 뛰어난 묘사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친근한 것이 된다는 점에 있다. 4권에 등장하는 오야마 군회의 부분에서 이에야스는 이해관계에 따라 항상 다수의 편에 서려 하는 인간의 습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이것은 시바 료타로의 현실적인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이 회의에서는 복잡하고 약간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인간군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야마우치 가즈토요와 호리오 다다우지의 일화를 보면서 자기 주변의 비슷한 인물을 떠올리는 독자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이러한 시바 료타로의 특성에 대해 “때로는 니힐리스틱할 정도로 어두운 역사관의 예각을 인간에 대한 통찰과 뛰어난 문장력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고 평했다.

○ 추천평
세키가하라 전투는 단노우라 (壇浦) 전투, 도바 (鳥羽) · 후시미 (伏見)의 전투와 함께 일본 3대 전투로 불리는 대전투이다. 서기 1600년 일본 중부의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최대 실력자로 떠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어린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옹립한 이시다 미쓰나리가 각각 동군 8만, 서군 10만을 이끌고 격돌하였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일본의 중세와 근세를 나누는 분수령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주가 (主家)인 도요토미 가를 멸하고 에도에 막부를 설치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의 역사는 약 500여 년 간의 기나긴 중세 시대를 마감하고 근세, 즉 이후 약 270년 간 이어지는 에도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당시까지 변방 지역으로 취급되었던 간토 지역이 역사의 중심 무대로 등장하는 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간토 지역은 일본인들의 인식 속에서 ‘오랑캐의 땅’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러던 것이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개설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중심 지역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의 간토와 간사이 간의 지역 감정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지금도 언어와 생활 습관, 사람의 성격이 많이 다르고 도쿄와 오사카를 축으로 한 서로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