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소유냐 존재냐
원제: To Have or to Be?
에리히 프롬 · 에릭 프롬 / 범우사 / 1999.10.31
독일 출신 유대인 에리히 프롬이 말년에 저술한 「소유냐, 존재냐」는 현대사회 인간존재의 문제에 대한 그의 사상을 총결산한 책이다.

범인의 일상적 경험에서부터 불타, 그리스도, 에크하르트, 마르크스 등의 사상까지 더듬으면서 그는 인간의 생존양식을 두가지로 구별한다.
재산·지식·사회적 지위·권력 등의 소유에 전념하는 「소유양식」과 자기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며 삶의 희열을 확신하는 「존재양식」이다.
○ 목차
1. 위대한 약속, 그 좌절과 새로운 대안
2.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
개관
일상경험에 있어서의 소유와 존재
구약·신약성서 및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저작
3. 두 가지 생존양식의 기본적 차이에 대한 분석
소요양식이란 무엇인가?
존재양식이란 무엇인가?
소유와 존재의 새로운 측면
4.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
종교·성격·사회
인간변혁의 조건과 새로운 인간의 특색
새로운 사회의 특색

○ 저자소개 : 에리히 프롬 · 에릭 프롬 (Erich Fromm)
에리히 프롬은 한평생 근대인에게 있어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으며 소외를 넘어선 인본주의적 공동체를 위해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 속의 적과 싸운 사람이었다.
그는 마르크스로부터 사회 구조의 변혁에 대한 감각을, 프로이트로부터 인간의 심연을 분석하고 해방하려는 의도를 배웠다. 방법론적으로는 ‘사회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였으며 이 3자의 역학관계에 의해 역사와 사회의 변동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사회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근대 사회의 숨어있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납득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광기로 가득찬 나치즘을 수용하고 지지한 대중들의 심리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나온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에리히 프롬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론이 확립되었음을 선언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 책은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한 근대인의 심리적 기반이 나치즘이라는 우상을 수용했음을 밝힌 것이다.
나아가 프롬은 사회심리학적 시각으로 현대인들의 소외의 양상을 유형별로 고찰하고 근대적 세계 속에서 인간이 참다운 자기를 실현하여 가는 길을 찾고자 하였다.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은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인간을 소외로 몰고 가는 근본적인 틀임이 거듭 밝혀지고, 이를 넘어서고자 할 때 인간 개인의 내면적 해방과 사회구조의 변혁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고 프롬은 주장한다. 이를 통해 『건전한 사회』, 즉 인본주의적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요 삶의 보람이라는 것이 프롬의 생각이다.
이러한 프롬의 주장은 너무나 원론적인 것이어서 때로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제 인식과 방향 설정에 하나의 유효한 도구가 됨은 부인할 수 없겠다. 그 외 저서로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가 있다.
– 역자 : 최혁순
1933년 강원도 강릉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출판계에서 종사하다가 1980년 미국으로 이민, 현재는 미국에서 저술활동을 하면서 한국에 미국의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저서로는 『최신미국여행정보』『최신미국생활정보』『미국으로 가는 길』『필수여행자영어』등이 있고, 역서로는『소유냐 존재냐』『미래를 살다』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존재 양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지식[앎]의 특성에 대해서는 석가모니, 헤브루 예언자들, 예수, 에크하르트 수사, 지크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 등으로 대표되는 사상가들을 떠올리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보는 앎이란 이른바 상식적 지각이 가져다 주는 기만성(欺瞞性)을 인식하는데에서 출발한다. 물리적 현실에 대한 우리의 상(像)이 ‘참으로 실재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참이며 자명하다고 여기는 것의 상당 부분이 주변 사회의 암시적 영향으로 야기된 미망[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따라서 앎[깨달음]은 미망을 깨뜨리는 것,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비롯된다. 앎은 표면을 뿌리까지 뚫고 들어가서, 그래서 근원에 이르러서 적나라한 현실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진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을 뚫고 들어가서 비판적이고 능동적으로 진실을 향해 가급적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 p.63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과감히 현상에 직면하라… 인간은 초인이 되었다. 그러나 초인간적인 힘을 지닌 이 초인은 초인간적인 이성의 수준에 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그의 힘이 커짐에 따라 점점 그는 가련한 인간이 된다. 초인이 되면 될수록 자기 자신이 비인간적으로 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각성해야만 한다.’ — p.20
‘소유’와 ‘존재’간의 선택은 상식에 호소할 것이 못된다. ‘소유’는 누가 보더라도 우리 생활의 정상적인 기능이다. 살기 위해서는 물건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물건을 소유해야만 그것을 즐길 수가 있다. 소유 – 그것도 더 많은 소유 – 를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어떤 인물에 대해 “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는 표현이 허용되는 문화 속에서 어떻게 소유와 존재간의 선택 따위가 가능할 것인가?
오히려 존재의 본질이 소유이며, 만일 인간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인생의 교사들’은 ‘소유’와 ‘존재’간의 서택을 그들이 각기 제시한 체계의 중심문제로 삼아왔다. 불타(佛陀)는 인간발달의 최고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소유를 갈망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예수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계를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망치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누가복음9:24-25)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자신을 열어 ‘공허’하게 하는 것, 자신의 자아가 끼어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신적 부(富)와 힘을 성취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가르쳤다. — p.35

○ 출판사 서평
1967년 말에 시작된 -렉스프레스-誌에 의한 이 대담은 눈 깜짝할 사이에 광범위한 독자층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성공은 `(렉스프래스-誌는 이들 이론가들과 더불어 한 층 앞으로 나아간다-는 이 대담집의 제목이 철저하게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담은 때에 따라서, 또 질문자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를 보였는데 대담자와 참가자들이 그 `본질`과 그 `사상의 밑바닥`에 이르는 데 때로는 몇 시간, 경우에 따라서는 온종일이 걸렸다. 이들 대화 중 어떤 것은 수백 매에 달하는 타이프에 의한 전사를 다시 압축한 것도 있다. 언어와 정열과 이념, 그리고 흥소, 혹은 노성으로 그려진 이 프레스코화는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에서 롤랑 바르트에 이르는 철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 생물학자, 수학자, 구조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지금까지 수많은 저서에서 추구한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인간성의 문제`를 철학. 정신분석, 종교 역사 등 여러 관점에서 더욱 파헤친 평이한 문제로 고찰한 뛰어난 프롬의 가장 뛰어난 명저 중의 하나이다.
프롬은 이 책에서 인간 생존의 두 가지 잉식. 즉 재산, 지식, 사회적 지위, 권력 등의 `소유`에 전념하는 `소유양식과 자기 능럭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며 삶의 희열을 확신할 부록으로 신프로이트학파의 거두 에리히 프롬과의 대담도 함께 넣었다.
이 책은 저자가 자유에서의 도피, 사랑의 기술 등 수많은 저서에서 추구한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인간성의 문제’를 철학, 정신분석, 종교, 역사 등 여러 관점에서 예리하게 파헤친 명저다.

○ 독자의 평
내게 대학시절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 한 권을 뽑으라면 단연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다. 저자가 언급한 사상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인간의 삶의 태도를 두 가지 양식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인간답게 사는 존재양식을 취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신선하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이번에 독서모임을 통해 다시 읽으며 무한한 인류의 진보에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의 진가를 비로소 알게 됐다. 특히 여성해방운동의 당위성을 역설한 점은 여러모로 진행중인 페미니즘 운동의 전망에 고무적이다.
기계중심의 산업사회가 시작된 이래 자연을 능동적으로 지배하게 된 인류는 무한한 진보와 역사의 발전을 믿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심화와 과학,기술의 끝없는 변신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생활 영역에서 소유양식을 극대화해온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참다운 인간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사회다. 이제 인류는 인류의 생존과 전 지구적 생태계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소유양식에서 존재양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반(反)권력의 대표자로서 여성해방운동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저자는 인생의 위대한 스승인 예수와 부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마르크스의 사상에 심취해 전념하며 그들이 전하는 공통된 메시지를 소유와 존재양식의 삶으로 구분해 전한다. 그는 존재와 소유의 개념을 다음처럼 풀이한다.
“존재”라는 말로 나는 어떤 것을 “소유”하지도 않고 또 “소유”하려고 갈망하지도 않으면서 즐거워하고 자기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며 세계와 “하나가 되는” 삶의 양식을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학습과 기억, 대화, 독서, 권위의 행사, 지식의 소유와 인식, 신념, 사랑’ 등의 일상경험에 있어서도 우리의 태도는 소유와 존재양식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사랑하는 것은 생산적인 능동성이다. 그것은 인물, 나무, 그림, 관념을 존중하고 알고 반응하고 긍정하고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생명을 주는 것을 의미하며, 그의 생명력을 증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을 갱신하고 자신을 증대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다. (74p)
하지만 “사랑이 소유양식에서 경험될 때 그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감금하고 또는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압박하고 약화시키며 질식시켜 죽이는 행위이다.”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으로 나타나는 남성의 일방적인 권위의 행사가 사랑이 소유양식에서 경험되는 행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결혼한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의해 결혼했든, 과거의 전통적인 결혼처럼 사회적 편의나 관습에 의해 결혼했든 간에 진짜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부부는 예외처럼 보인다. 실은 사회적인 편의, 관습, 상호의 경제적 이해, 자식에 대한 공동의 관심, 상호의존, 또는 상호증오나 공포 등이 의식 위에서는 ‘사랑’으로 경험된다 –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지 않으며, 지금까지 서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부부의 어느 한쪽, 또는 양쪽이 깨달을 때까지. (75p)
저자에 의하면 “사회적 기능을 조절하는 규범은 그 구성원의 성격 (사회적 성격)까지도 형성한다”고 한다. 산업사회에 있어서는 재산을 취득하고 늘리고 지키겠다는 소망이 재산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 가진 것 없는 계급의 남자라도 아내와 아이, 동물 등 살아있는 존재를 소유하는 것은 가장 큰 즐거움이다. 남성의 주도권으로 대표할 수 있는 가부장제적 질서는 대략 6천 년에서 7천 년 사이에 나타나 조금씩 줄고 있으나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를 낳는 모든 고통이 여자의 것임을 고려할 때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이를 만든다는 것은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착취라는 것을 거의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편 어머니는 어머니대로의 독자적인 형태의 소유권, 즉 어린 시기의 자식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다. 이 공전은 끝없는 악순환을 이룬다. 남편은 아내를 착취하고, 아내는 어린 자식을 착취하며, 청년기의 남자는 이윽고 연상의 남자들에 끼어 여자를 착취하는 등등으로.
저자는 소유양식에서 존재양식으로의 변화는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극소수의 인간이지만, 소수자가 역사적 발전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은 역사상 최초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희망이 더욱 현실적인 것은 새로운 태도의 출현을 가능하게 만든 몇 가지 요인이 역사적인 변화들이며 그것들을 되돌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 변화란 여자에 대한 가부장의 지상권의 붕괴이며,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지배권의 붕괴이다. … 금세기의 성공적인 혁명으로 비록 초기단계에 있기는 하지만 여성 혁명, 어린이의 혁명, 성 (性)의 혁명을 들 수 있다. 이들 혁명의 원리들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통해 받아들여졌으며, 옛 이데올로기는 날마다 점점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112p)
저자는 산업사회에서 인간을 숫자로 환원해 버리는 관료적인 태도는 모든 인간관계에 스며들어 감정이입과 동정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관료제를 극복하고 모든 개인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참여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새로운 사회건설에서 필수다. 특히 가부장제로부터 여성해방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프롬의 인식은 매우 근본적임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 지배로부터 여성의 해방은 사회가 인간화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요인의 하나다.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 전에 세계의 도처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농업의 잉여생산물로 말미암아 노동자의 고용과 착취, 군대의 조직화, 강력한 도시국가의 건설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였다. 그 이래로 중동과 유럽 사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세계문명이 여성을 굴복시킨 ‘남성 연합’에 의해 정복되었다. 인류에 있어서의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이러한 승리는 남자의 경제력과 그들이 만든 군사기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양성 간의 투쟁은 계급간의 투쟁만큼 오래된 것이지만 형태에 있어서는 한결 복잡하다. 왜냐하면 남성은 여성을 일하는 동물로서뿐만 아니라 어머니로서, 애인으로서, 또 위안자로서도 필요로 해왔기 때문이다. 이 투쟁의 형태는 때로는 공공연하고 잔인하지만 대부분은 은폐되어 있다. 여성은 보다 우월한 힘에 굴복하지만 여성 특유의 무기로써 반격했다. 그 주된 것은 남성을 조롱하는 일이었다.
인류의 절반이 다른 절반에 의해 정복되었고, 아직도 정복되고 있다는 것은 양성 모두에게 막대한 손실이 되고 있다. 남성은 승리자의 특징을 띠고 여성은 피해자의 특징을 띠고 있다. … (252p)
마지막으로 저자는 “존재적 사회의 확립’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 ‘광고와 정치선전에 쓰여지는 최면술적 방법은 비판적인 사고와 정서적 자주성에 아주 위험”하기에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 국민의 빈부격차를 줄여야 하고 ‘사회적 의무’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연간 보증 수입’을 제공할 것, 여성이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것, 또 ‘최고문화회의’를 설립하여 정부, 정치가, 국민에게 지식을 필요로 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해주는 것을 그 직무로 삼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효과적인 정보를 효과적으로 보급하는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오늘날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존재적 삶의 태도의 필요성과 절실함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와 개인이 겪는 갈등의 문제를 소유와 존재의 양식을 통해 사유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사회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프롬의 다른 책들 <자유에서의 도피>, <정신분석과 종교>, <사랑의 기술>, <희망의 혁명> 등도 널리 알려진 명저들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오래 전에 읽은 책은 다시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책들도 한 권씩 읽으며 사유의 폭을 넓히고 싶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