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사 1 : 일본이 말하는 일본 제국사, 1926 ~ 1945 전전편 戰前篇
쇼와사 2 : 일본이 말하는 일본 현대사, 1945 ~ 1989 전후편戰後篇
한도 가즈토시 / 루비박스 / 2010.8.15
일본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쇼와사 (‘쇼와’는 일본 히로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이다)에 대한 붐을 불러일으킨 책.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알기 쉽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일본의 근현대사와 정면으로 맞선다.
복잡한 세계정세와 일본의 극단적인 육군의 행보, 천황과 정치 권력의 흐름,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맞물리며 성난 기차처럼 전쟁을 향해 질주해가는 일본, 그리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고, 연합국 (미군)의 점령하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 목차
- 1권
추천사 · 9
서장 · 13
쇼와사의 뿌리에는 ‘붉은 석양의 만주’가 있다.
러일전쟁의 승리가 가지는 의미
국가 흥망의 40년 / 국방의 최전선인 만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지나유기》에서
정세가 악화된 쇼와 시대의 개막
1장 · 29
쇼와는 ‘음모’와 ‘마법의 지팡이’로 막을 열었다
장작림폭살사건과 통수권 간범
장작림폭살사건의 범인은? / 천황이 격노하다 / 태도를 바꾼 원로 사이온지
통수권 간범이란 무엇인가? / 군사에 관해서는 기타 잇키
2장 · 49
쇼와를 엉망으로 만든 출발점은 만주사변
관동군의 야망인 만주국의 건국
천황의 간신이라 불린 사람들 / 천재 전략가, 이시하라 간지의 등장
사이온지가 천황을 견제하다 / 나무젓가락은 오른쪽으로 굴렀지만…
신문들은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3장 · 75
만주국은 일본을 ‘영광스러운 고립’으로 이끌었다
5·15사건에서부터 국제연맹 탈퇴까지
전쟁을 선동하는 신문사 /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황군이 입성 / 혹독해진 세계의 여론
상해사변을 뒤로하고 정전으로 /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될 것이다’ ‘문답무용’
리튼 조사단이 본 것 / 42 대 1의 결의
4장 · 103
군국주의를 향한 길은 이렇게 정비되어갔다
육군의 파벌싸움, 천황기관설
소란스러운 방공대연습 / 육군에 대한 최후의 저항 / 군정의 에이스와 작전의 귀신
중국일격론이 통하다 / 천황기관설의 목적은? / 만세일계의 천황의 통치
5장 · 125
2·26사건의 주안점은 궁성점거계획이었다
전쟁체제로 성큼 내딛다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 문화의 어머니 / 용감한 부인들 / 천황을 제압한다는 의미
삼전우표는 동료라는 부호 / 우리는 성공했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히로타 내각이 남긴 것
6장 · 153
중일전쟁, 깃발행렬과 제등행렬의 파도는 계속되는데…
노구교사건, 남경사건
중시되지 않았던 서안사건 / 7월 7일 오전10시 넘어 / 연대장이 독단전행으로 내린
명령 / 제3자의 음모가 있었다 / 남경학살은 있긴 했지만… / 수렁에 빠져버린 전쟁
장개석을 상대하지 않은 치명타
7장 · 181
정부와 군부는 모두 강경 노선만을 고집, 그리고 노몬한
군축 탈퇴 , 국가총동원법
해군 중견 클래스의 강경론 / 초대전함을 건조해야 한다
국가총동원상 필요가 있을 때 / 스탈린처럼 대담하게 / 노몬한의 비극
전쟁은 의지가 강한 쪽이 이긴다
8장 · 205
2차세계대전의 발발은 모든 문제들을 날려버렸다
영미와는 대립, 독일에는 접근
양식 있는 해군 3인방의 고군분투 / 유서를 쓴 야마모토 이소로쿠
강경해지기 시작한 미국 / 파마를 금지시키다 / 스탈린의 악마적인 결단
이제부터는 일개 병사로서 싸운다
9장 · 231
왜 해군은 삼국동맹을 받아들였을까?
군사국가의 길로 치닫다
사치는가장 큰 적 / 떠나는 버스를 놓치지 마라 / 최후의 방파제가 무너졌을 때
돈 때문에 영혼을 판다? / 피와 고생과 눈물, 그리고 땀
10장 · 257
독소의 정략에 휘둘리는 와중에 남진론을 제창
독일의 소련 진공
북부 인도차이나에 감행한 무력 진주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 / 전쟁으로 내달리기
시작한 해군 중앙 / 기원2600년… / 마쓰오카 외상의 유럽여행
히틀러의 악마적인 유혹 / 기분이 좋아진 스탈린 / 영웅은 머리를 전향한다
11장 · 285
네 번의 어전회의, 이렇게 전쟁은 결단되었다
태평양전쟁 개전의 전야
외무성 내의 대미영 강경파 / 깨끗하게 사라진 미일 양해안 / 대미영 결전을
포기하지 않고 / 의욕이 충만했던 ‘관특연’ / 전쟁을 그만두지 않을 것을 결의하다
오케하자마와 히요도리고에와 가와나카지마 / 기회는 이제 오지 않는다!
대미 전투를 결의하다 / 니이타카 산에 올라가라 1208
12장 · 323
영광에서 비참으로, 그 역전은 너무나도 빨랐다
한순간의 전승
전쟁 통고는 틀림없이 있었다 / 몰래 공격했다는 영원한 오명
오로지 대승리에 취한 일본 국민 / 미드웨이의 지는 해
13장 · 345
대일본제국에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과달카날, 임팔, 사이판의 비극에서 특공대 출격으로
과달카날을 빼앗기다 / 야마모토 장관의 전사 소식 발표 / 호우 속의 임팔가도
사이판 탈환은 불가능 / 특별공격은 모든 해군의 뜻?
14장 · 369
일본 항복을 앞에 두고 권모술수가 극에 달한 미국과 소련
얄타회담, 도쿄대공습, 오키나와 본섬 결전, 그리고 독일 항복
너무나 위험한 소이탄 / 일본 가옥은 나무와 종이다 / 지는 벚꽃과 남은 벚꽃도
모두 흩날리다 / 쇼와천황이 쓰러진 날 / 질질 끈 대답
원자폭탄과 포츠담 선언의 묵살
15장 · 397
견디기 힘든 감내, 참기 힘든 인내
포츠담 선언 수락, 그리고 종전
히로시마 사자의 행렬 /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기란 불가능 / 첫 번째의 성단
예속과 제재하에서 / 두 번째의 성단에 따라서 / 항복한다는 것의 어려움
종장 · 419
310만 명의 사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은?
쇼와사 20년의 교훈
못 다한 이야기 · 425
노몬한사건으로부터 배운 것
환상, 독선 그리고 당황스러움 / 시바 료타로에 대해서
대장이 보내온 한 통의 편지 / 사건의 시작은 국경 침범
연구위원회가 내린 결론 / 정보는 천황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핫토리 참모와 쓰지 참모 / 남진론을 부르는 대합창 / 노몬한사건의 교훈
일본인의 결점을 여실히 기록
맺음말 · 447
참고문헌 · 450
주요 인명, 지명, 사건 · 451
- 2권
추천사
서장. 천황과 맥아더의 회담으로 전후가 시작되다 – 패전과 일억 총참회
ㆍ일억의 눈물바다
ㆍ평화는 역시 좋은 것이다
ㆍ맥아더가 왔다
ㆍ자유와 관용과 정의의 이름으로
ㆍ교수형에 처해져도 상관없다
ㆍ헬로 헤드 바우
1장. 가혹한 점령정책과 대책 없는 정부 – GHQ에 의한 군국주의 해체
ㆍ암시장의 번성
ㆍ극한의 기아
ㆍ계속 전개되는 점령정책
ㆍGHQ에 휘둘리는 대책 없는 일본
ㆍ평화국가를 향한 길
ㆍ전쟁의 책임을 추궁당하다
2장. 기아로 인해 넋이 나간 일본인 – 정당과 저널리즘의 부활
ㆍ사과의 노래와 페니실린
ㆍ변화무쌍한 평화의 가격
ㆍ정당과 저널리즘이 부활하다
ㆍ미국의 다양한 사상개조
3장. 헌법개정문제를 둘러싼 일대 혼란 – 마쓰모토 위원회의 모색
ㆍ포츠담 선언은 무조건 항복인가?
ㆍ무시당한 국체 보호의 조건
ㆍ엇갈린 고노에와 맥아더의 회담
ㆍ마쓰모토 위원회의 발족
ㆍ백열하는 헌법초안노의
ㆍ걱정스런 천황제의 앞날
ㆍ꽁무니를 빼는 사람들
4장. 인간 선언, 공직추방 그리고 전쟁 포기 – 공산당의 인기, 평화헌법의 맹아
ㆍ천황페하, 인간이 되다
ㆍ사랑받는 공산당
ㆍ맥아더를 움직인 일본인의 편지
ㆍ이제는 평화로운 일본으로
5장. 두 번째 성단, 나는 상징이어도 좋다 – GHQ의 헌법초안을 받아들이다
ㆍ이상이 결여된 헌법초안
ㆍ일본인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다
ㆍ충격적인 GHQ안
ㆍ극단적인 인플레 치료
ㆍ48시간 이내로 답을 달라
ㆍ드디어 완성된 신헌법
6장. 도쿄재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 냉전 속에서 철저하게 재판 받은 일본 현대사
ㆍ냉전의 시작
ㆍ사회당 내각의 성립
ㆍ격변하는 세계정세
ㆍA급 전범은 어떻게 정해졌는가?
ㆍ도쿄재판은 무엇이었나?
ㆍ천황은 소추할 수 없다
ㆍ익살극에 적군과 아군 모두 땀을 흘리다
ㆍ한숨만 나오는 비화들
ㆍ판결이 내려지다
ㆍ씁쓸한 뒷맛
7장. 공포와 같은 GHQ의 우선회 – 개혁보다는 부흥, 덧지라인의 공과 죄
ㆍ미소 대립의 격화
ㆍ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이용되는 일본
ㆍGHQ내부 대립
ㆍ개혁보다 경제부흥을
ㆍ연이어 터지는 기이한 사건들
8장. 한국전쟁은 신풍이었나? – 거칠게 불어닥친 레드퍼지와 특수 폭풍
ㆍ돈줄이 막히다
ㆍ적색은 모두 추방하라
ㆍ아프레게르의 폭주
ㆍ한국전쟁으로 특수가 들끓다
ㆍ굿바이, 맥아더
9장. 새로운 독립국 일본의 출항 – 강화조약을 모색
ㆍ반미 무드에 조바심이 난 미국
ㆍ전면 강화인가, 단독 강화인가
ㆍ요시다 VS 델레스의 공방
ㆍ군대의 씨앗인 경찰예비대의 편성
ㆍ강화조약과 안보조약의 두가지 문제점
ㆍ천황 퇴위 발언을 하는 자는 비국민이다
10장. 혼미한 세상, 여러 가지 사건들 – 기지문제, 핵실험에 대한 저항
ㆍ사라져가는 점령의 그림자
ㆍ돈은 1년, 땅은 만년
ㆍ<도쿄이야기>가 그려낸 전 후 풍경
ㆍ개헌과 재군비론을 낳은 복고의 파도
ㆍ고정되지 않은 목표에 표류하는 일본인
11장. 55년 체제가 만들어진 날 – 요시다 독트린에서 안보합동으로
ㆍ요시다 1인 장기정권
ㆍ하토야마 파의 반항으로 자유당이 반으로 갈라지다
ㆍ사상 최대의 정변, 드디어 무너진 요시다 내각
ㆍ가까스로 보수합동을 만들다
12장.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 – 개헌과 재군비라는 강경노선을 향해
ㆍ헌법개정과 재군비의 실패
ㆍ소련과의 국교가 회복되다
ㆍ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
ㆍ안타깝게 단명한 야인 수상
ㆍ불안을 퍼트린 강경노선
ㆍ근평문제와 경직법
13장. 60년 안보투쟁 이후에 온 것 – 미치 붐, 그리고 정치투쟁의 종막
ㆍ미치 붐이 가져온 것은?
ㆍ안보개정의 시동
ㆍ데모로 해는 저물고
ㆍ지긋지긋한 정치, 이제는 경제다
ㆍ월급이 배로 오르다
14장. 폭풍같은 고도경제성장 – 올림픽과 신칸센
ㆍ열심히 일하는 일본
ㆍ대중소비시대의 도래 – 소니와 혼다
ㆍ일본의 풍경은 바뀌었다
ㆍ머니빌딩이 세워지다
ㆍ생활을 바꾼 세 가지 물건
ㆍ선망의 대상, 공단주택
ㆍ냉전의 격화, 긴장하는 세계
ㆍ저널리즘은 혹한의 동절기
ㆍ알고는 있지만 무책임한 시대
ㆍ여전히 외교가 없는 일본
ㆍ케네디 암살이 가져다준 것은
ㆍ올림픽과 신칸센
15장. 쇼와 겐쿠로의 통고 – 단카이 파워의 분출과 미시마 사건
ㆍ사토 에이사쿠의 등장과 쇼와 겐쿠로
ㆍ기대 받는 인간상과 비틀즈
ㆍ격동하는 세계정세
ㆍ베이비붐 세대의 반역
ㆍ도쿄대 야스다 강당의 함락
ㆍ만국박람회와 미시마사건
ㆍ오키나와 반환으로 전후가 완결되다
종장.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전후사의 교훈
ㆍ현대사까지
ㆍ전후란 무엇인가 – 현재를 돌아보며
ㆍ그 이후의 전후
ㆍ앞으로 일본은
여담. 쇼와 천황과 맥아더 회담의 비화
ㆍ맥아더의 감동
ㆍ역사를 알아가는 재미
ㆍ두 번째 회담 – 화제의 중심은 도쿄재판?
ㆍ세 번째 회담 – 신헌법과 맥아더의 예언
ㆍ네 번째 회담 – 실체가 드러난 안전보장
ㆍ다섯 번째 회담 – 천황의 진의
ㆍ여덟 번째 회담 – 흔들리는 일본의 치안
ㆍ아홉 번째 회담 – 국제정세에 대한 우려
ㆍ열 번째 회담 – 드디어 강화문제로
ㆍ열한 번째 회담 – 작별인사
ㆍ천황과 맥아더의 회담을 안다는 것의 의미
맺음말
참고문헌
주요 인명, 지명, 사건
○ 저자소개 : 한도 가즈토시
작가이자 수필가. 역사소설가. 《쇼와사》출간 후 일본에서 크게 유명세를 탔으며, 일본 근현대사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양식 있는 지성, 영향력 있는 논객으로 유명하다.
1930년 도쿄에서 출생해 도쿄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문예춘추>에 입사한 후 <주간문춘>, <문예춘추>의 편집장, 이사를 거쳤다. 1965년 오야 소이치의 이름으로 《일본의 가장 긴 하루-운명의 8월 15일》을 발표한 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서로는《어쩌면, 소세키 선생》,《노몬한의 여름》,《막부 말기사》,《스미다 강의 건너편, 나의 쇼와사》 등 다수가 있다. 1993년 《어쩌면 소세키 선생》으로 닛타지로 문학상, 1998년 《노몬한의 여름》으로 야마모토 시치헤이 상, 2006년 《쇼와사》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 군부와 야스쿠니 신사의 A급 전범 합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호헌파이다.
‘일본의 가장 긴 하루’, ‘노몬한의 여름’ 등 쇼와 (昭和) 역사 연구와 역사 소설가로 유명한 일본의 작가 한도 가즈토시 (半藤一利)는 2021년 1월 12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당시 NHK, 아사히 신문 등에 따르면 한도 작가는 전날 도쿄 (東京) 세타가야 (世田谷) 구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후 사망이 확인됐다.
1930년 도쿄도 출생인 그는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한 후 ‘분게이슌주’ (文藝春秋)에 입사했다. 분게이슌주, 슈간분슌 (週刊文春)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록히드 사건 보도를 지휘하기도 했다.
편집자로서 군사평론가 고(故) 이토 마사노리(伊藤正徳)의 일을 도우며 전쟁사와 쇼와 역사 연구를 했다.
1965년 동료 편집자들과 집필힌 ‘일본의 가장 긴 하루’를 오오야 소이치 (大宅壮一) 명의로 발표했다. 태평양전쟁 종결을 결정한 1945년 8월 15일 정오까지의 24시간을 정리 한 책이다. 군인 등 당사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두 차례나 영화화되며 인기를 끌었다.
편집자로서 당사자에게 여러 에피소드를 들은 후, 개편 과정에서 위증을 제거하는 수법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는다. ‘논픽션’ 작가로도 유명하다.
‘역사 탐정’으로도 불리며 근대 이후 일본 역사를 주제로 한 집필을 계속했다. TV방송 등에도 출연하며 활동해왔다.
1945년 3월 10일 도쿄대공습 당시 도망친 경험이 있는 그는 일본제국주의 등을 경계하며 평화헌법 수호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8년 3월 아사히 신문 주간지 AERA과의 인터뷰에서는 ‘혐한’ 등 헤이트스피치 (특정 민족·인종에 대한 증오 표현)에 대해 양이 (攘夷; 외국인 배척) 정신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 역자: 박현미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한국해양연구소, 세종연구소 등에서 번역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옮긴 책으로 『루이와 3A3 로봇』 『걱정 많이 걱정인 걱정 대장 호리』 『식빵을 버리려다』 등이 있습니다.
○ 책 속으로
- 1권
P.41-42
입헌군주제에서는 국무(정치)와 통수(군)의 최상위자가 완전히 의견의 일치를 보아서 천황에게 알린 일은 설령 군주 자신이 내심으로는 찬성하지 않아도 재가를 해주어야 하는데, (중략) 쇼와사의 출발점에 벌어진 이 사건(장작림폭살사건과 내각총사직)의 의미는 사건 그 자체의 크기보다는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쇼와천황은 이후에는 내각이나 군부가 일치해서 정한 일에 ‘노’라고 말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관철합니다. 즉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입헌군주국에서 군주의 존재방식이라고 깨달은 것 같습니다. 쇼와사는 항상 이 점에서 출발하고 이후 일본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전전편 p41~42)
P.64-72
이타가키가 “이렇게 된 바에야 운을 하늘에 맡기고 나무젓가락을 세워서 정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습니다. 오른쪽으로 구르면 중지, 왼쪽으로 구르면 결행이라고 정한 뒤 젓가락을 굴려보았더니 오른쪽으로 굴렀던 것 같습니다. 그럼 중지를 해야 될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미나미가 그의 평소 성격대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조선군은 국경을 넘어서 만주로 들어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부분이 쇼와사의 병폐, 또는 한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실이 밝혀지자 와카쓰키 수상이 “뭐라고? 이미 만주로 들어갔단 말이지. 그렇담 어쩔 수 없군.”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육군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중략) 23일 조간 신문은 ‘조선군의 만주 출동’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쇼와 7년 3월에는 만주국이 건설되었고, (중략) 본래 대원수의 명령 없이 전쟁을 시작한 중죄인으로 육군 형법에 따르면 사형을 당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출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쇼와가 엉망이 된 것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전전편 p.64~72)
P.169-170
남경에서 일본군에 의해 대량학살과 각종의 비행사건이 일어난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라 저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 국민에게 마음속 깊이 사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도쿄재판에서 말했던 것처럼 30만 명을 죽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남경 시민을 소개疏開한 상태라 시민이 30만 명이나 남아 있지 않았고, 군대도 그렇게 많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중략) 일본군은 칭찬을 받을 만한 군대가 아닙니다. 쇼와 14년 2월에 일본 육군성이 몰래 만든 <비밀문서 제404호>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중략)
“어느 중대장은 (중략) 강간을 한 뒤의 처리방식까지 가르쳐주었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을 하나하나 조사했더니 모두 강도 살인, 강도 강간의 범죄자들뿐이다.” (전전편 p.169~170)
P.99-101
정식으로는 2월 24일, 국제연맹은 총회에서 일본군의 만주철수권고안을 42 대 1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때 일본만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중략) 확실히 연맹 탈퇴는 일본 외교의 실패라고 썼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신문은 42 대 1이 멋지다는 칭찬 일색이었고 마쓰오카에 대해서도 기특하다는 듯 ‘오늘날 일본에 이런 영웅은 없다’며 치켜세웠습니다. (중략) 일본 국민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는 것이 이후 일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상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고립’을 택했다는 말을 마구 써대니 일본 국민은 점점 고립감과 세계에 대한 배척감이 강해져 전 세계를 적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 후 고립화된 일본은 점점 군부가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고, 배외주의적인 양이사상에 압도된 국민적 열광에 힘입어 전쟁의 길로 돌진하게 됩니다. (전전편 p.99~101)
P.297-298
바로 그때입니다. 8월 1일 미국은 석유의 대일본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고 통고합니다. 이 이후 일본은 미국에서 석유 한 방울도 받지 못하게 되는 긴급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해군 중 몇 명은“뭐라고? 설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정부나 군부는 미국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략) 나가노 총장은 7월 29일 천황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물자가 없어지고 점차 곤궁해질 텐데 어차피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전쟁을) 빨리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략) 천황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러일전쟁 때의 해전과 같은 대승을 거두긴 힘들겠지?”
“그때와 같은 대승리는커녕 이길지 어떨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전편 p.297~298)
P.366-367
“일본도 이제 끝장이다. 나와 같은 우수한 파일럿을 죽이려 하다니…. 그러나 명령이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중략)
세키 대위는 10월 25일 기지를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0월 28일, 해군은 가미카제특별공격대를‘명령이 아니라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중략) 가미카제특공대나 나중에 나온 가이텐특공대도 모두 병사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서는 해군 리더들의 자신감이나 책임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덕성은 그림자조차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전편 p.366~367)
P.401
일본은 그런 경위를 알지 못합니다. 초강력 폭탄이 떨어졌다고 하니 이것이 원자폭탄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에 조사단을 보냈습니다. 8월 7일, 신문과 라디오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흘러나왔습니다.
一. 지난 8월 6일 히로시마 시는 적B29 여러 기의 공격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一. 적은 이번 공격에 신형폭탄을 사용한 것 같은데 상세한 것은 현재 조사 중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이때까지 원자폭탄이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신형폭탄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전전편 p.401)
P.424
결론은 일본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아무런 근거 없는 자기 과신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무책임함입니다. 오늘날의 일본인에도 이와 같은 면들이 많이 보입니다. 역사는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역사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전전편 p.424)
- 2권
P.14-15
한참 후에는 전쟁이 끝나서 정말 잘됐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극히 소수만이 정말로 그렇게 느꼈을 겁니다. 당시 제 감정을 말씀드리자면, (중략)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커다란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다. 비애의 눈물인지 후회의 눈물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일억 인구는 눈물바다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중략) 당시 일기를 쓰던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으니 (중략) 몇 개를 읽어 보겠습니다.
“천황폐하의 목소리는 녹음된 것이었는데 전쟁을 종결한다는 조서다. 뜨거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이 쏟아지는 눈물은 대체 무슨 눈물인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전후편 p.14~15)
P.18-19
그때까지 우리는 미군이 와서 점령한다면 남쪽 섬이나 어딘가로 끌려가 평생 노예가 될 거라고 배웠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거라면 그 전에 빨리 이것저것 다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방공호에 들어가 담배를 피웠습니다. 무슨 맛인지 전혀 몰랐지만 불량스러운 동급생들과 뻐끔뻐끔 피워대면서 “맛있지?” “어, 진짜 맛있다.”라고 (중략) 바보 같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기억합니다. (전후편 p.18~19)
P.26-27
그리고 미국의 1진이 상류한 날인 28일, 히가시쿠니노미야 수상이 기자회견을 열어 그 유명한 일억 총참회라는 말을 합니다. (중략) 일억 총참회론이 신문에 등장하자 어제까지 국민들을 격려했던 선생들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그래, 우리도 잘못했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국민을 패망으로 이끈 책임이 대체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민족의 정신이나 투쟁심이 나쁘다면 나쁠 수도 있지만 전쟁으로 치달을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결단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반성은 이 순간에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중략) 일본인들은 여기서 제대로 역사를 인식하고 역사를 통해 배우고 일본의 주장, 일본인이 저질렀던 일들과 마주하고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과거의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정말 죄송하다’라며 자국의 전통이나 문화를 전부 부정하고 맙니다. 일본도 심각한 패전 콤플렉스에 빠졌습니다. (전후편 p.26~86)
P.112-113
그리고 12월 22일, 마쓰모토 위원회는 총회를 열었습니다. 이때의 논의가 좀 재미있습니다. 고지마 노보루가 저서《사록 일본국헌법》에서 소개한 것과 다른 사료를 참고해서 재현해 보았습니다. 우선 미노베 다쓰키치 선생의 제안입니다.
“국가의 칭호인 대일본제국에 대해서 말인데, 패전국이 ‘대’라는 글자를 쓰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국이란 말도 어감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냥 일본국으로 하는 것은 어떨까요? (중략) 그리고 제4조의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에서 ‘원수로서’를 삭제하는 것이 어떨까요?” (중략)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할 거라면 제1조에 ‘통치는 신민의 보익을 받아 행한다’라는 말을 보충해서 민주주의를 표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아니, 신민이라는 단어에는 봉건적인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국민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노베 다쓰키치 선생은 갑자기 화를 냈습니다.
“신민은 신민으로 좋지 않습니까? 조칙에는 ‘그대들 신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중략)
“저도 신민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도 국왕에 대한 subjects, 즉 신민이라고 합니다. 국민에 상응하는 단어는 시티즌이지만 시티즌은 공화국민을 의미합니다.” (중략)
……마지막 단계에서 이런 것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일본인의 손으로 헌법을 만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전후편 p.112~113)
○ 출판사 서평
- 외면했던 일본의 근현대사를 이제 일본인의 시각에서 본다!
일본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쇼와사(‘쇼와’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이다)에 대한 붐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알기 쉽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복잡한 세계정세와 일본의 극단적인 육군의 행보, 천황과 정치 권력의 흐름,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맞물리며 성난 기차처럼 전쟁을 향해 질주해가는 일본, 그리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고, 연합국(미군)의 점령하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쇼와사>를 읽는다는 것은 비슷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철저히 다른 나라, 경제적.정치적 위치에서 영원한 동반자이자 라이벌인 일본의 근현대사를 일본인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일본의 근현대사와 정면으로 맞선다.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은 물론, 이데올로기보다 실용주의에 무게를 둔 국가 정책이 국가와 국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도 읽을 수 있다.
- 바로 지금, 일본은 전쟁을 해야만 한다!
독일이 소련을 진공하며 태평양의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린다. 1941년 8월 1일, 일본에게 독이일 삼국동맹에서 빠질 것을 강하게 요구하던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 “2년도 버티지 못한다. 시간을 끌수록 일본의 물자과 병력은 떨어지고 적은 강력해진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전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일본 내 전쟁 강경파와 반대파들이 대격론을 벌이는 동안, 신문은 날마다 ‘대동아공영권의 최단거리’, 즉 전쟁을 선동한다. 결국 주전론자인 도조 히데키 내각이 발동하고 미국이 교섭에서 강경하게 나오면서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 열린다.
<쇼와사>에서 일본이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은 자세하고도 긴박감이 넘친다. 그동안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일본의 전쟁을 일으킨 속사정, 최악의 선택으로 일본을 몰고 간 장본인들의 대책 없는 모습과 그 속에 숨겨진 비화들을 만날 수 있다.
- 영광에서 비참으로, 패전국 일본
몰래 공격했다는 영원한 오명 속에 진주만 공격은 대승을 거두고, 그 후 계속되는 승리에 취해 일본은 대동아신진서 건설, 제국 영토 확장을 꿈꾼다. 그러나 하와이 공격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적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려 했던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대일본제국에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암호가 해독되어 적에게 작전을 읽히고, 과달카날, 인도의 임팔가도, 사이판에서 연이어 완패하고,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돌진하는 특별공격까지 실행하고 만다. 당시 해군은 가미카제특공대는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1945년, 극도로 염세적이고 불안한 분위기의 일본에 도쿄대공습이 가해지고 오키나와에서 전함 야마토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으며, 마침내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되는 최악의 궁지에 몰린다. 그리고 8월 15일, 소위 천황의 ‘성단’에 의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항복을 하게 된다. 이후 패전국 일본의 운명은 맥아더를 대원수로 하는 연합국(GHQ)의 점령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놓이게 된다.
- 일본은 스스로 미국을 위한 ‘위안부’를 만들었다?
저자는 전후 일본이 전쟁의 충격으로 인해 너무나 쉽게 연합군 앞에서 순종적인 아이처럼 ‘변신’했던 역사에 대해 자성적인 비판을 던진다. 한 예로 종전 3일 후, 지도층은 연합군을 맞이할 준비의 일환으로 ‘특수위안시설협회’를 설치하고 1억 엔의 예산을 마련해 위안부 1300여명을 모집한다. 그리고서는 ‘평범한 일본 여성의 순결의 값으로 1억의 비용이면 싸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통해, 강자 앞에서 한순간에 비굴해지는 일본인에 대해 지적한다.
그렇게 시작된 전후 일본은 연합군이 지시하는 대로 토지개혁과 산업기술, 경제정책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천황제라는 국체를 지키는 데 성공하나, 연합국의 뜻에 따라 ‘천황은 상징이다’라는 방향을 공표하고 미국이 쥐어준 초안대로 신헌법(현재의 평화헌법 제9조를 포함)이 세워져 현재까지도 시끄러운 문제를 남기게 된다. 이후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일본은 정치적 변화를 겪으며 경제발전을 최우선하는 국가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지금의 일본의 형태로 향해 간다.
- 한국전쟁 특수는 경제대국으로 향하는 ‘신풍’이었다!
<쇼와사>는 일본이 고도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별수요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전후 일본은 극도의 가난을 겪으며 ‘1천만 아사자’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연합국의 점령정책에 의해 대기업이 해체되고 산업의 제재를 받으며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당시 일본의 상황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완전히 달라진다. 유엔군의 전진보급기지가 되어 단번에 모든 물자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이때 일본인은 미국의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동시에 대량생산방식과 품질관리를 습득했다. 그 결과 3년의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고 규모도 크게 확대되어, 그 흐름을 타고 발전을 거듭하여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도요타, 혼다, 소니 등 일본 대표기업의 토대도 이때 이루어졌다. 연간 300대의 트럭을 생산하던 도요타가 월 1500대까지 늘려도 수요를 쫒아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문예춘추>의 기자였던 저자는 혼다 사장을 인터뷰한 후 감사의 표시로 주식을 받을 뻔 했는데, 나중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주식이 몇 백배나 뛰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저자는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배워 과거를 딛고 일어난 일본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일본을 어떤 나라로 만들겠다는 고민을 잊은 채 물질주의에만 빠져들었던 역사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지금까지 없었던 일본근현대사
지금까지 쇼와 시대의 역사와 일본 근현대사를 다룬 책들은 여럿 있었으나, 한도 가즈토시의 <쇼와사>는 기존의 어떤 책보다도 일본 근현대사를 종합적으로 완결한 책으로 부를 만하다. 1960년대부터 조금씩 개정되며 영미권에서 일본근현대사의 기본 텍스트로 읽혀온 <일본 근현대사>(w.비즐리,2004개정)와 달리 동양의 역사를 보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일본의 지성의 눈으로 본 책이며, <일본제국 흥망사>(이창위,2005)보다 방대한 자료 전개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그 외 일본인의 저서로 <히로히토와 맥아더>(도요시타 나라히코,2009), <천황과 도쿄대>(다치바나 다카시,2008), <쇼와천황과 일본 패전>(고케츠아츠시,2010)가 출간된 바 있으나 이들은 일본 근현대사를 특정 사상이나 사건, 인물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려는 시도로 쓰여진 데 의의가 있었다. 정치에 국한되거나 폭넓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쇼와사>는 일본이 전쟁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전쟁이 전개되는 양상, 패전 후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변화, 나아가 일상생활의 변화까지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폭넓은 일본근현대사 통사라는 점에서 기존에 출간된 도서들과 단연 차별화되는 책이다.
-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의 쇼와사’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지금 눈앞에서 사건이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체에다 다양한 사료와 직간접적 경험을 적재적소에 곁들여서 잘 버무려냈기 때문이다. 어전회의에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대화체로 재연하거나, 유행어나 유행가를 들어 설명하거나, 특정 사건에 대한 신문, 라디오, 일기 등의 기록을 비교해 놓은 것도 이 책의 묘미이다. 또한 현대사로 가면서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을 통해 일본과 우리의 사회상을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올림픽과 만국박람회로 떠들썩한 일본, ‘단카이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와 기성세대와의 갈등 등이 등장한다.
또한 주요 인물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묘사되어 있어 ‘역사의 기본은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쓰오카는 쵸슈 출신으로 천황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 ‘기골이 단단한 메이지의 남자들로, 점령군 따위는 난 모른다는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 하는 식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일본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 등 현재로 정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스스로의 역사를 냉철하게 판단하는 저자의 역사 서술 능력은 일본내 ‘탁월한 역사 선생’이라는 평가를 실감하게 해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