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쇼펜하우어 인생론
쇼펜하우어 / 종합출판범우 / 2018.1.15
– 학계와 일반인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에세이집 ‘소품과 보유집’의 역서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만년에 자신의 철학의 정수(精髓)를 요약하고 쉽게 해설하여 일반인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쓴 철학적 에세이집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삶의 괴로움, 삶의 허무, 생존의지, 사랑, 여자, 교육, 죽음, 문예, 윤리, 종교, 정치, 사회에 관한 13편의 에세이와 『나의 반생』이란 자전으로 된 이 책은 학계와 일반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의 글은 한편으론 지옥의 사자가 내리는 절망적인 선언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인생의 낙오자가 내뱉는 무의미한 넋두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의 참된 긍정을 위해 한번쯤은 거쳐야 할 부정의 논리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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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7
1. 삶의 괴로움에 대하여 11
2. 삶의 허무에 대하여 51
3. 살려는 의지에 대하여 63
4. 사랑의 형이상학 81
5. 여자에 대하여 127
6. 교육에 대하여 147
7. 죽음에 대하여 157
8. 문예에 대하여(Ⅰ) 166
9. 문예에 대하여(Ⅱ) 178
10. 윤리에 대하여 190
11. 종교에 대하여 217
12. 정치에 대하여 224
13. 사회에 대하여 228
나의 반생(半生) 237
해 설 256
연 보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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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8년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811년 베를린대학교에 들어가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1813년 베를린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집필,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충족이 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 역자 : 최현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역서로는 <마하트마 간디>, <간디 어록>, <사랑의 샘가에서>, <신곡>, <채근담> <삼국지>, <수호지>, <팡세>, <빙점>, <두뇌혁명>, <향연, 뤼시스>, <그리스 로마 희곡선>, <엔트로피>, <현대 살인백과>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 편집자의 말
철학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쇼펜하우어는 19세기 대표적 철학자인 니체의 스승으로 오늘날 서양 철학사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천재적인 철학자이다. 세계와 인생에 대한 그 나름의 독창적인 해석에는 염세주의가 담겨 있지만, 충분히 고민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색의 소재들을 풍성히 담고 있다. 자신의 철학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형이상학적 철학 용어는 되도록 줄이고 생활 속으로 철학을 가져온 책이 바로 『쇼펜하우어 인생론』이다. (…하략)
○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에세이집인 『소품 (小品) 및 보유집 (補遺集)』 (Perga und Paralipomena, 1851)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소품 및 보유집』은 쇼펜하우어가 만년 (57세)에 그의 철학의 정수를 요약하고 쉽게 해설하여 일반인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쓴 에세이집이다.
쇼펜하우어는 당시까지 철학계와 일반인 모두로부터 그의 철학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그의 철학으로 하여금 비로소 세상의 광범위하고도 깊은 관심을 끌게 한 작품이다. 이 책은 학계와 일반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것은 충격적인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반 철학서가 갖지 못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는 철학서에서는 쓸 수 없었던 날카로운 풍자, 명쾌한 비유, 비판과 독설을 마음껏 휘둘렀던 것이다.
이 책은 13개의 에세이와 1개의 자전(自傳)으로 되어 있다. 13개의 에세이는 삶의 괴로움·허무·생존의지·사랑·교육·죽음·정치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나의 반생 (半生)〉이라는 자전은 그가 32세 때(1820년) 베를린 대학의 사강사(私講師)로 취임하기 위해 제출했던 이력서이다.
인생과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불행이나 고통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입장이 있어 왔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만큼 독특한 입장에 서서 그것을 적나라하고 날카롭게 파헤친 사람은 아직 없을 것이다. 그는 인생에 있어서의 고통과 불행을 직시하여 자기 철학의 중심 테마로 삼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맹목적 생존의지 (生存意志)의 종족유지를 위한 장난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다만 생존의지가 시키는 대로 고통에 대하여 벌이는 휴전없는 싸움의 연속’이며, 인간은 그러다가 허무하게 ‘손에 무기를 든 채 죽어가는 존재’이다.
인생은 고통이며 그 귀결은 허무 (虛無)다. ‘우리가 살아가는 직접적인 목적은 괴로움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잃고 만다.’ ‘무한한 고통도 영원한 즐거움도 없다. 한결같은 이상도, 지속적인 열성도, 한평생 변치 않는 결의도 없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 녹아 없어진다.’
인생에 있어서의 여러 목표와 가치는 모두 허구이며 다만 살려는 의지의 다양한 위장에 불과하다. 인간은 누구나 생존의지의 노예일 뿐이다. 아름다운 사랑도 숭고한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생존의지의 이기적이고 간교한 술책일 뿐이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생존의지를 기각 (棄却)하는 것이다. 의지에 매여 있을 때 인간은 ‘욕구의 육체화요 그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그의 관점을 극명하고 날카로운 필치로 쓰고 있다. 인생의 어두운 면이 발가벗긴 채 드러나 있어 도덕가나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차마 그대로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독자들은 인생의 실상에 접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또 전율하게 될 것이다.
후반부에는 교육·문예·윤리·정치·시회 등 문화비평적인 글이 있다. 그의 시대적 제약이나 개인적 경험의 제약을 감안하면 그의 눈에 비친 문화의 속물화 (俗物化) 경향이라든가 문화의 이기적 본성 등은 누구도 간과할 수 없는 교훈이 있다.
쇼펜하우어의 여성론은 특히 유명하다. 여자는 ‘언제나 후견인이 필요’하며, ‘선천적인 낭비가요, 빈약한 이성과 강한 허영심의 혼합물’이며, ‘선천적으로 남자에게 복종하게끔 되어’있다.
그의 글은 한편으로는 지옥의 사자가 내리는 절망적이고 암담한 선언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인생의 낙오자가 내뱉는 무의미한 넋두리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널리 퍼진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는 동양사상에 조예가 깊었다 하는데 이 책에도 그것이 역력히 나타나 있다. 그는 동양학의 권위자 마이어 교수에게서 일찍이 인도사상을 배웠으며, 베다 (veda)의 범신론 (汎神論)과 불교의 고해사상 (苦海思想)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5개 국어에 능통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으며, 칸트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칸트와 관련하여 말하기를 ‘세계는 나의 표상 (表象)이며, 칸트의 물자체 (物自體)는 맹목적인 생존의지이다’라고 하였다.
이 책에는 이와 같은 형이상학에서 바라본 인생의 이모저모가 흥미롭고 리얼하게 남김없이 그려내고 우리가 이 책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여성이나 정치에 대한 그의 견해가 보수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심오한 형이상학 (形而上學)에 근거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인생을 참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일단 쇼펜하우어의 부정(否定)의 논리를 거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이 책을 펴내는 이유의 하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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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펜하우어 연보
1788년 2월 22일, 독일 단치히 시에서 출생. 3월 3일, 성 마리아 대사원에서 세례를 받음.
1793년 자유시 단치히가 프러시아에 합병되었으므로 부친은 가족을 데리고 함부르크로 이사함.
1979년 부친과 함께 프랑스 여행중 르아브르에 사는 부친의 친구 그레고아르 드 브레시마르의 집에 남아 불어를 배움.
1799년 르아브르에 2년 동안 머문 후 함부르크의 부모에게 돌아왔을 때는 프랑스 사람이 다 되어 독일어 해득에 곤란을 받음. 함부르크에서 철학박사 룬게의 사숙(私塾)에서 4년간 공부함.
1803년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진학하려 했으나 유럽 여행을 마친 후 상인이 되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2년간의 장기 여행을 떠남. 네덜란드를 거쳐 영어를 철처히 공부하기 위해 런던 교외의 윔블던에 있던 신부(神父) 랑카스터의 집에 석달 동안 유숙하고 6개월간 런던 체류.
1804년 늦겨울을 파리에서 보내고 봄이 되자 프랑스 남부지방을 여행. 다시 스위스, 빈, 드레스덴을 거쳐 베를린으로 향함. 이어서 단치히로 가서 성 마리아 대사원에서 견신례(堅信禮)를 받음.
1805년 함부르크로 돌아와 긴 여행을 마치고 나서 부친과의 약속대로 상인이 되기 위해 호상(豪商) 이에보쉬의 가게에서 견습 생활을 함. 부친이 창고에서 강물로 추락하여 사망. 모친 바이마르 이주.
1806년 자기 직업이 성격에 맞지 않았지만 부친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 고민함.
1807년 모친에게 편지로 자기 직업상의 고충을 호소함. 모친의 친구 카알 루드비히 페르노가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학자가 되도록 노력하라는 격려의 편지를 보내옴. 고타의 김나지움에 입학. 교장 데오링으로부터 매일 두 시간씩 라틴어 개인 지도를 받음.
1808년 바이마르 김나지움으로 전학. 파소우로부터 라틴어와 희랍어 개인지도를 받음.
1809년 바이마르 김나지움 졸업. 괴팅겐 대학 의과에 입학. 학비를 모친이 부친의 유산 중에서 송금, 쇼펜하우어가 유산의 1/3을, 모친과 여동생이 2/3를 분배받음.
1810년 의과에서 철학과로 옮김. G.E. 슐체로부터 철학을 배우고, 플라톤과 칸트를 철저히 공부함.
1811년 베를린 대학으로 전학.
1813년 베를린 대학에서 4학기를 끝내기 전 전쟁의 불안 때문에 드레스덴으로 갔다가 바이마르의 모친에게로 돌아갔으나 의부와의 불화로 떠남. 〈충족근거율(充足根據律)의 네 근거에 관하여〉를 완성, 예나 대학에 제출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음. 괴테가 이 논문을 읽고 자기의 〈색채론〉 연구에 종사하도록 권고함.
1814년 드레스덴으로 이주. 여기서 도서관과 미술관 등을 이용, 학문과 예술을 연구함.
1816년 〈시각과 색채에 관하여〉를 인쇄하여 괴테에게 보냄.
1818년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완성. 이탈리아로 여행.
1819년 4월, 로마를 거쳐 베니스로 가서 부유하고 지체 있는 애인과 깊은 관계에 빠짐. 6월에 베니스를 떠나 밀라노에서 단치히의 가게(부친의 유산 가운데서 모친과 여동생이 받은 몫의 전부와 그의 몫 일부가 출자되어 있었다)가 파산되었다는 여동생 편지를 받고 자기 재산을 셋이 분배하자는 답장을 보냄. 바이마르로 돌아와 괴테 방문. 베를린 대학 철학과에 구직(求職) 이력서를 제출.
1820년 3월, 베오크 교수 입회하에 〈원인의 네 가지 다른 종류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교직에 취임할 시험강의를 함(이 강의 내용은 베를린 왕립 도서관에 지금도 보관되어 있음). 베를린 대학에 강사로 취임하여 〈철학 총론-세계의 본질과 인간 정신에 대하여〉를 매주 다섯 시간 강의함. 단치히 가게의 채권자 화해협의(和解協議)에 불응하여 그의 출자금은 건졌으나 이에 응한 모친과 여동생은 출자금의 70%를 성살함.
1821년 〈하나의 가지〉라는 자서전적인 산문 집필.
1822년 〈편지 보따리〉 집필.
1825년 여자 재봉사와의 소송사건에서-여자 재봉사가 쇼펜하우어의 하숙 방 응접실에 함부로 드나들고 잔소리가 심해 그녀를 문 밖으로 떠민 것이 이유-패소(敗訴), 그녀에게 평생 일정액의 부양료를 지불하게 됨.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750부 인쇄한 중에서 600부가 팔려 재판을 계획함.
1827년 친구의 권유로 멕시코의 공채(公債)을 사들였다가 손해 봄.
1828년 『비망록』을 집필. 그는 〈진리를 위해 생애를 바친다〉는 표제를 붙임.
1829년 논문 〈시각(視覺)과 색채에 관하여〉 발표. 칸트의 저서 영역(英譯)을 계획함.
1830년 〈사색〉 집필. 라틴어로 된 〈생리학적 색채론〉 발표. 〈센트 포르스의 예언자〉 번역. ( …이후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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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