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쇼, 음악을 말하다 : 거장 극작가의 음악 평론
조지 버나드 쇼 / 포노(PHONO) / 2021.9.10
아일랜드 더블린 태생인 버나드 쇼는 젊은 시절 극작가로 성공하기 위하여 런던으로 이주해 글쓰기에 전념했고, 각종 매체에 문학, 연극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평론글을 써내려갔다. 그의 말마따나 “악보를 읽는 법도, 그 어떤 악기로 음표 하나 소리 내는 법도 모르”던 쇼는 순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만으로 음악 평론가가 되었으며, 그렇기에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능히 읽을 수 있는 음악 평론”을 쓰고자 했다. <쇼, 음악을 말하다>에 담긴 글들은 이렇듯 쇼만이 쓸 수 있는, 쇼를 닮은 글이라 할 수 있다.
버나드 쇼는 약 13년간 신문과 잡지의 비평란을 담당하며 수많은 글을 남겼다. 출간된 음악 평론집만 해도 장장 2,7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이 책 <쇼, 음악을 말하다>는 그 가운데서 오늘날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만한 글들을 뽑아 엮은 것이다. 쇼의 나이 서른 초반이던 1880년대 후반에서 1890년대 초반에 걸쳐 약 6년간 〈스타The Star〉와 〈월드The World〉지를 통해 선보인 음악 평론이 그 가운데서도 정수로 꼽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글들 대부분이 바로 그 시기에 쓰인 것들이다.
○ 목차
옮긴이의 말 _ 음악 평론가 버나드 쇼 05
제1부 _ 음악평론이라는 일
‘코르노 디 바세토’가 듣고 기록한 《런던 음악계, 1888-1889》의 서문 19
평론과 자살 69
파괴적인 힘 71
개인적 원한 74
전문적 분석 77
그저 들을 일이로다 81
선거 유세 86
장송 행진곡 92
제2부 _ 주요 레퍼토리
모차르트
〈돈 조반니〉 99
모차르트 서거 100주기 110
듣기 좋은 시시한 소품들이라고? 122
그의 부드러움 126
모차르트와 베토벤 129
베토벤 서거 100주기 131
1892년, 로시니 탄생 100주년 140
베버의 〈마탄의 사수〉 148
베를리오즈
〈파우스트의 천벌〉(1889) 155
〈파우스트의 천벌〉(1893) 157
펠릭스 모틀 163
할레 오케스트라 165
할레 오케스트라의 〈파우스트의 천벌〉 167
트롬본 170
작곡의 기법 172
바그너
〈라인의 황금〉 175
음의 시인 184
바이로이트 193
다시, 바이로이트 203
베르디
〈팔스타프〉 212
베르디에 관해 한마디 더 하자면 223
쇤베르크와 무조 음악 246
제3부 _ 음악에 관한 문제
오페라 연기에 관해 251
〈리골레토〉 253
오페라 연출 257
통속극화된 오페라 270
새로운 이탈리아 악파 276
종교적이란 무엇인가? 291
헨델의 〈메시아〉 294
다시, 〈메시아〉 298
교회 내의 음악 307
〈라 마르세예즈〉 312
딕션 315
파데레프스키(1890) 321
파데레프스키(1893) 323
리사이틀 렉처 328
찾아보기 334
○ 저자소개 : 조지 버나드 쇼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 비평가, 웅변가. 더블린 중산층 가정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초등학교 교육밖에 마치지 못했다. 모친의 영향으로 음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어릴 때부터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베르디 등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나 휘파람으로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정규 교육을 받은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개인적으로 음악 외에도 문학, 미술에 관심을 보이며 배움을 이어나갔다. 1876년 런던으로 이주하여 작가이자 소설가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18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연극과 음악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894년 희곡 《무기와 인간 Arms and the Man》으로 첫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약 13년간 신문과 잡지의 비평란을 담당하며 주로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분야의 평론 활동을 이어갔고, 1880년대 후반에서 1890년대 초반에 걸쳐 약 6년간 〈스타 The Star〉와 〈월드 The World〉지를 통해 선보인 음악 평론은 그의 수많은 글 가운데서도 정수로 꼽힌다. 음악 평론은 엘리트 계층보다는 모든 사람이 즐겁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평소 소신대로, 전문 용어를 피해가며 비전문가를 위한 글을 썼다. 대표 극작품으로 《인간과 초인 Man and Superman》(1903) 《피그말리온 Pygmalion》(1913) 《성녀 조앤 Saint Joan》(1923) 등이 있으며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역자: 이석호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버나드 쇼 음악평론집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필립 글래스 자서전 『음악 없는 말』을 비롯해 『다시, 피아노』 『스타인웨이 만들기』 『슈베르트 평전』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왜 말러인가?』 등 스무 권에 가까운 음악 관련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책 속으로
P.21
나 또한 일자리를 내던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싫은 소리를 해야 할 지경에서 그를 구해주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문예란에 음악 관련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지면을 배정해달라고 했다. 테이 페이는 정치와 관련된 내 견해를 듣지 않아도 되는 조건으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고 흔쾌히 동의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음악 평론이라면 읽기도 힘들뿐더러, 읽어도 요령부득인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글이라 생각해온 그는 “부디 부탁이니 바흐의 B단조 운운만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나 역시 음악 평론의 그러한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애초에 제안을 한 이유도 나라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능히 읽을 수 있는 음악 평론을 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_ (‘코르노 디 바세토’가 듣고 기록한 《런던 음악계, 1888-1889》의 서문 중)
P.63~64
연주에서 듣기 좋은 것과 듣기 불쾌한 것을 구분하고 정확한 것과 부정확한 것을 판별하는 건 당장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들을 상대해야 할 때는 날카롭고 분석적인 관찰력과 분별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언뜻 귀에 듣기는 좋으나 위대성은 부족한 범속한 예술가들의 연주와 경계선을 그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평론가라야 비로소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연주와 오로지 극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연주를 변별하고 자신의 판단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는 법이다. 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은 무릇 다음과 같은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무척이나 손쉬운 성취에 과분한 절찬이 쏟아지면 왠지 부끄러워져 쥐구멍을 찾는 심정이 되고, 심혈을 기울여 성취한 훌륭한 결과물에 아무도 격려를 해주지 않으면 허탈한 심정이 드는 것을 말이다. _ (같은 글)
P.64~65
나는 세련되고 학술적이기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 읽기조차 힘들고 종종 앞뒤도 맞지 않는 글인 음악 평론의 품격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 음악에는 일자무식이었던 대개의 편집인들은 평론가들이 가져다 바치는 글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지면에 옮겼다. 편집인들의 무지 속에 인내된, 가식으로 가득한 헛소리와 악의로 똘똘 뭉친 파벌주의에 대한 나의 염증이 간혹 상스러운 표현이 되어 불거져 나올 때도 있었지만, 모쪼록 내가 쓰던 칼럼을 그 무렵 ‘새로운 저널리즘’으로 불리던 흐름의 선도적 존재로 여겨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러면 오히려 내가 대단히 예의를 차려 글을 썼다고까지 생각하시게 되리라. _ (같은 글)
P.69
확실히 평론에는 자살보다 나은 점이 있다. 자살이란 건 당사자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다. 하지만 평론은 다른 사람을 갉아먹으면 그만인 것이고. _ (‘평론과 자살’ 중)
P.74
어디선가 오려낸 기사를 누군가 내게 보내왔다. 읽어보니 평론가 클럽 결성 제안이 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8월 모일의 기사였다. 가만 있자, 평론가가 클럽에 속하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아무와도 친해서는 안 되는 자가 평론가일진대. 만인에게 등을 돌려야 하고, 만인이 그에게 등을 돌려야 하는 존재가 바로 평론가가 아니었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칭찬을 퍼다 주어도 만족을 모르는 예술가, 광고에 눈이 먼 사업가, 쉽게 얻을 수 있는 이름값을 구걸하고 사들이길 원하는 무명인, 호평을 받은 이들의 라이벌, 저주받은 이들의 친구, 친척, 당여, 후원자. 이 모든 이가 외양간 속의 딱한 판관 미노스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 평론가는 온갖 부조리한 방식의 비판을 견뎌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_ (‘개인적 원한’ 중)
P.83~84
양심적인 평론가라면 예술가의 죄과에 상응하는 박해를 가하는 법이다. 절묘하게 비튼 수사와 우호적인 표현을 동원해 개선 방향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도 적절치 않다(물론 빼어난 예술가들은 아무리 꼬아 말해도 대번에 알아듣는다). 대신 설령 잔인한 표현이 되더라도 약효가 직방이 되도록 말을 골라 써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예술가들은 자기 쪽에 뭔가 개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불신하는 존재다. 평론가가 모질되 솔직한 언어로 핵심을 찔러야 예술가는 마지못한 심정으로라도 개전의 노력을 보이는 법이다. _ (‘그저 들을 일이로다’ 중)
P.116~117
〈돈 조반니〉가 내게 준 예술적 가르침은 나를 모든 가능한 방면으로 성장시켰지만, 그 대가로 나는 모차르트를 공정하게 비평할 수 있는 자질을 포기해야 했다. 모차르트의 가장 빼어난 작품과 견주자면 다른 모든 작곡가들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광란에 휘둘리는 선무당 꼴을 면치 못한다고 선을 그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_ (‘모차르트 서거 100주기’ 중)
P.187
바그너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를 이해시키기 위해 오페라 작곡을 접고 극시劇詩 집필에 전력했다. 그러고는 오케스트라와 성악 자원을 총동원하여 거기에 최대한도의 표현적 사실성과 치열함을 부여했다. 이렇게 완성된 새로운 예술 형태에 그는 ‘음악극’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대성당을 ‘개혁된 채석장’이라 부를 수 없듯이 음악극은 이제 더 이상 ‘개혁된 오페라’가 아니었다. 바그너를 비평하는 자들이 당장 첫걸음부터 헛방을 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마치 옛것의 개정판인 양 여기는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말이다. 오페라 및 대본과 관련하여 몇 가지 새로운 사항을 처음으로 창안한 특허권자로서 바그너를 인식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비로소 논리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터무니없는 망신살 뻗칠 걱정 없이, 그를 조목조목 무너뜨릴 수 있다. _ (‘바그너 _ 음의 시인’ 중)
P.218~219
루나 백작은 이런 면에서 베르디 바리톤의 전형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음을 낼 수 있는 바리톤이 아니고서는 루나 백작에 함부로 도전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사나운 고함을 G샤프음까지 밀어 올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보통의 바리톤들은 그 덕분에 저음역의 지구력을 상실했고 음고 전달의 정확성 역시 근사치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이런 그들이 간간이 돈조반니나 피가로 등의 배역을 떠맡음으로써 모차르트 오페라의 인기는 땅에 떨어지다시피 했다. 어차피 본인들에게도 사는 게 짐일 텐데 나로 하여금 이런 불행하고 가여운 군상들을 말살하도록 법이 허락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간혹 하곤 한다. _ (‘베르디 _ 〈팔스타프〉’ 중)
P.291
평론가 노릇을 하다 보면 별의별 해괴한 장소를 다녀야 한다는 불가피한 폐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예배당만은 지금까지 피해왔다. 나는 신앙심 있는 자들 사이에서는 냉소자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독실한 자로 통한다. 〈마술피리〉를 알고 〈교향곡 9번〉에 쓰인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알고 〈파르지팔〉을 아는 자가 그대들의 헌금이나 전례 법규, 잭슨의 〈테 데움〉, 그 밖의 것들과 무슨 상관이겠는가? 매주 일요일 한두 번 회개의 시간을 두는 것으로 본질적 불경함을 무마하려는 자들의 동기라 해봤자 천벌을 모면하려는 속셈이 고작일 테고, 그런 자들은 본인들만 모를 뿐이지 이미 목 밑까지 저주의 손길이 뻗친 상태일 터다. _ (‘종교적이란 무엇인가?’ 중)
P.296
헨델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아둔함을 위해 거액의 돈을 쏟아부을 일이 아니라, 누군가 나서서 유능한 예술가들로 구성된 스무 명 규모의 합창단을 조직하여 철저한 연구 및 빈틈없는 연습을 거친 뒤에 세인트 제임스 홀 같은 장소를 선정하여 〈메시아〉를 공연할 순 없는 것일까? 우리 중 대부분은 죽기 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 작품이 진지하게 다뤄지는 공연을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_ (‘헨델의 〈메시아〉’ 중)
P.323
손재주 좋은 외과 의사 선생이 나서서 파데레프스키를 두 사람으로 쪼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작곡가 파데레프스키와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로 말이다. 요즘 이 두 사람은 서로를 간섭하지 못해 시종일관 안달이다.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는 오케스트라 소리를 듣고 흥분되기 무섭게 작곡가 파데레프스키에게 말을 건넨다. “알겠어, 내가 널 위해 다 해주지. 나한테 맡겨놓으라고.” 그러고는 그동안 근질거렸던 손가락을 풀면서 본격적으로 달려든다. 바로 그때 작곡가 파데레프스키가 목청을 높인다. “소리 좀 죽이라고. 내가 쓴 장대한 악절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자네의 그 양손 때문에 그 줄 매달린 상자가 발작하듯 내뿜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전락하고 마는 걸 내가 그대로 내버려둘 것 같나?” _ (‘파데레프스키 <1893>’ 중)
○ 출판사 서평
- 버나드 쇼가 들려주는 음악의 세계, 음악 평론 선집
“짐작건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 평론가.” _ W. H. 오든 (영국 시인)
“할 수 있는 자는 한다. 할 수 없는 자는 가르친다.”
“지옥은 아마추어 음악가들로 가득한 곳.”
“형편없는 목관 악기 연주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연주자의 수명 연장에 기여하기 때문.”
“순교란 재능 없는 자가 유명해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
- 쇼만이 쓸 수 있는, 쇼를 꼭 빼닮은 글
2016년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당시 대중가수가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는 받는 것을 두고 각종 논란이 일었다. 찬사와 우려가 뒤섞인 속에서 그는 조용히 어떤 역사적 기록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되었는데, 그 기록이란 ‘노벨상과 아카데미상을 동시에 거머쥔 인물’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밥 딜런에 앞서 각각 1925년과 1939년에 《성녀 조앤Saint Joan》과 《피그말리온Pygmalion》으로 노벨 문학상과 아카데미 각색상을 모두 받은 첫 번째 인물이 있었다. 바로 조지 버나드 쇼였다.
위의 작품들을 포함해 《무기와 인간Arms and the Man》,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 등의 극작품으로 잘 알려진 버나드 쇼는 그만의 블랙 유머와 촌철살인의 입담으로도 유명하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등 그가 남긴 글들 속에는 인생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과 풍자가 녹아 있다.
빈한했던 가정 형편 탓에 그가 받은 교육이라곤 초등학교 교육이 전부였지만, 버나드 쇼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문학 외에도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 관심을 보이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나갔다. 특히 음악은 아마추어 프리마 돈나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접하고 친숙한 분야였다. 그는 “어머니께서 〈위그노 교도〉 제1막의 시동侍童의 노래를 부르시는 걸 듣고 앙코르를 연호하던 어린 시절부터 이미 떡잎이 보였지만 음악은 줄곧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아일랜드 더블린 태생인 버나드 쇼는 젊은 시절 극작가로 성공하기 위하여 런던으로 이주해 글쓰기에 전념했고, 각종 매체에 문학, 연극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평론글을 써내려갔다. 그의 말마따나 “악보를 읽는 법도, 그 어떤 악기로 음표 하나 소리 내는 법도 모르”던 쇼는 순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만으로 음악 평론가가 되었으며, 그렇기에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능히 읽을 수 있는 음악 평론”을 쓰고자 했다. 《쇼, 음악을 말하다》에 담긴 글들은 이렇듯 쇼만이 쓸 수 있는, 쇼를 닮은 글이라 할 수 있다.
- 가장 활발했고 가장 논쟁적이었던 평론가 : 평론가의 역할은 예술가를 꾸짖고 또 꾸짖는 일
“내 평론 글에 담긴 개인적 감정을 지적하며 마치 내가 경범죄라도 저지른 인사인 양 목소리를 높인 독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쓴 평론은 읽을 가치가 없는 평론이라는 점을. 좋은 예술 혹은 나쁜 예술을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만드는 능력, 바로 그것이 평론가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다. (…) 최선을 다하지 않는 예술가를 보면, 게다가 그나마도 ‘나 스스로만 만족하면 그만이지’ 하는 식으로 서툴게 해버리고 마는 예술가를 보면, 나는 그가 밉다. 그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그의 사지를 토막 내어서 무대 위에다 흩뿌려 던지고 싶다. 오페라를 보러 가서는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초병의 마티니 소총과 탄약 몇 발을 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지휘자나 자만심에 우쭐대며 실수를 남발하는 가수를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제거하고 싶은 욕망이 든다.” _ p.74-75(‘개인적 원한’ 중)
버나드 쇼는 약 13년간 신문과 잡지의 비평란을 담당하며 수많은 글을 남겼다. 출간된 음악 평론집만 해도 장장 2,7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이 책 《쇼, 음악을 말하다》는 그 가운데서 오늘날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만한 글들을 뽑아 엮은 것이다. 쇼의 나이 서른 초반이던 1880년대 후반에서 1890년대 초반에 걸쳐 약 6년간 〈스타The Star〉와 〈월드The World〉지를 통해 선보인 음악 평론이 그 가운데서도 정수로 꼽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글들 대부분이 바로 그 시기에 쓰인 것들이다.
런던에서 가장 활발하면서 동시에 가장 논쟁적이기도 했던 쇼는 책의 서두에서 자신이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나의 평론문은 당시의 지배적인 음악 평론 방식과는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어 아마 다른 언론인들은 이 모든 게 한바탕 농담은 아닐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밟지 않았다 뿐이지(그럼으로써 쇼는 연주자가 될 운명을 모면하는 천운을 타고났다고 농을 친다), 그는 건반 그림이 그려진 책을 가지고 피아노 연주법을 독학하고, 전공자들이 보는 교과서를 공부하고, 모차르트가 쓴 《통주저음 개론》을 읽고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지만 덕분에 다른 위대한 작곡가들보다 음악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긴 했다며 여유를 부린다. 그런 이유로 쇼의 글은 이론적인 차원에 집착하지 않는다. 평론가들이 으레 쓰기 마련인 “학술적이기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 읽기조차 힘들고 종종 앞뒤도 맞지 않는 글”쓰기 역시 지양함으로써 독자 곁으로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다.
버나드 쇼는 모차르트와 바그너 음악을 높이 샀다. 예술에서의 가장 큰 성공은 본인이 속한 혈통의 시원始原이 아니라 마감자가 되는 것이라며, “100년의 시간이 다시 흘러 1991년이 오면 바그너가 20세기 악파의 시작이 아니라 19세기의 끝이자 베토벤 악파의 종결자였음을 온 세상이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는 “모차르트의 가장 완벽한 음악이 19세기의 시언始言이 아니라 18세기의 종언終言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훌륭한 음악에 붙는 연주가 형편없을 경우 거침없이 독설을 날리기도 한다. 어느 날 영국의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라인의 황금〉 연주를 듣고는 “부디 더 이상 나빠지지만 말라고 내가 빌 정도로 형편없었다. 넘실거리는 강물을 표현해야 할 전주곡을 듣고는 마치 라인강이 끈끈한 시럽?그것도 여기저기 덩어리진 시럽?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쓴다.
대체로 평론가들은 특정한 작품을 비평할 때 최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한 채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다. 작품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경우 ‘개인적인 원한’ 같은 것은 없다며 애써 부연하기도 한다. 뛰어난 식견을 가진 전문가라 해도 예술가가 공들인 결과물을 평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는 당당히 ‘개인적 원한’ 때문에 혹평한다고 이야기한다. 양심적인 평론가라면 예술가의 죄과에 상응하는 ‘박해’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예술가를 꾸짖고 또 꾸짖어 개전의 노력을 보이도록 이끄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작곡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공연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헨델 사후 꾸준히 이어지던 헨델 페스티벌의 〈메시아〉 공연은 보통 천 명에 달하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무대를 꾸리는 것이 마치 유행과도 같았다. 하지만 쇼는 이와 같은 대규모 공연이 템포나 표현 면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하며 이를 ‘폭력 행위’로 규정한다. 심지어 천 명의 아마추어 예술가를 “천 개의 목구멍”으로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거칠어지는 이유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오라토리오가 〈메시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쇼가 생각하는 적정 인원은? 딱 스무 명이다.
- 한국내 첫 소개, 유머와 위트 넘치는 쇼의 음악 평론
평생에 걸쳐 수많은 글을 쓰며 인상적인 문장들을 남긴 쇼의 재능은 음악 평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책에는 “천박한 표현이었더라도 여러분을 웃게 하였다면 개의치 않으려 한다. 천박함은 문필가가 필히 가져야 할 가질 가운데 하나다”, “평론가는 시계를 멈추는 존재다. (…) 평론가는 돌로 만든 벽에 자신의 머리를 던져 짓찧는 존재다”, “단 한 차례의 끔찍한 공연에도 발끈하여 예술가의 개인적 원수가 되는 사람이 진정한 평론가요, 훌륭한 공연을 여러 차례 접하고서야 그 화를 누그러뜨리는 사람이 또한 진정한 평론가다” “훌륭한 유머만큼 진지한 것은 달리 없다”처럼 거듭 되뇌게 하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 밖에도 책 곳곳에서 포착되는 그의 시니컬한 농담과 기발한 표현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음악 전문 번역가 이석호는 이렇듯 쇼 특유의 빈정거림과 반어적인 표현들 때문에 머리를 싸맨 적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는 또한 “원석을 손에 쥔 흥분과 쾌감”의 경험을 선사했다고 밝혔다. 모든 사람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철칙으로 평론의 품격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저자와, 그런 저자의 의도가 우리말로도 충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은 옮긴이 덕분에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버나드 쇼의 음악 평론이 1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 눈앞에 당도해 있다.
- ‘음악의 글’ 시리즈
‘음악의 글’은 음악전문출판사 포노가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로, 음악을 좀 더 깊이 읽고 폭넓게 이해하는 통찰이 담긴 글들을 한데 모읍니다. 제1권은 최초의 근대적 음악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과 음악가 _ 낭만시대의 한가운데서》, 제2권은 리트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평생 헌신했던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리트, 독일예술가곡 _ 시와 하나 된 음악》, 제3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 ‘미국 음악의 목소리’ 에런 코플런드의 음악 사용 설명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제4권은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정신 클로드 드뷔시가 자신의 분신 크로슈 씨를 통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제5권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 한스 큉의 《음악과 종교 _ 모차르트?바그너?브루크너》, 제6권은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담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제7권은 작곡가, 지휘자, 저명한 음악 교육자였던 이모겐 홀스트가 집필한 음악 교육서의 고전 《음악의 ABC _ 입문자를 위한 음악 기초 문법》, 제8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휘자 푸르트벵글러가 격변의 시대에 예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음과 말 _ 에세이와 강연록》, 제9권은 음악과 음악가의 위대성에 대해 논하는 아인슈타인의 고전 《음악에서의 위대성 _ 위대한 음악가는 누구인가》입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