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슈바이처의 생애
알베르트 슈바이처 / 일신서적출판사 / 1994.6.1
– 20세기의 성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전기
독일계의 프랑스인으로, 30세가 되던 해 봉사활동의 완벽한 실현을 위해 새롭게 의학을 배워, 1913년 아프리카로 가 자신의 삶을 바친 저자가 아프리카로 건너가 의료봉사활동을 하면서 겪은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 목차
1. 슈바이처의 생애
2. 물과 원시림의 사이에서
3. 람바레네 통신
4. 감상과 해설
○ 저자소개 : 알베르트 슈바이처
독일계의 프랑스 사상가ㆍ신학자ㆍ음악가ㆍ의사로 루터교의 목사다. 알사스의 카이제베르크에서 출생했으며 슈트라부스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졸업후에는 목사와 대학강사로, 그리고 오르간 연주가로 활약하였다.
30세 되던 해에 봉사활동의 완벽한 실현을 위해 새롭게 의학 공부를 시작하여 1913년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오고웨 강변의 람바레네에 자력으로 병원을 개설하였으며, 이 후 평생을 아프리카 흑인들의 의료 활동에 헌신하였다. 195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설립하였다.
의사로서 유명하지만 본업은 신학박사로서 강단에 선 학자였고 동시에 프로 음악가이자 파이프오르간 전문가였다. 각각의 분야에 책을 냈다.
“아프리카 봉사에 한정한” 대표 저서로는 ‘나의 생애와 사상'(판본에 따라 노벨상 수상때의 연설문이 번역돼 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람바레네 통신’ 등이 있다. 성장기와 병원 운영과 수술 이야기만 있지는 않고 다양한 주제로 쓴 단편이 때로는 몇 쪽, 때로는 한 챕터를 할애해 들어 있다. 책에 따라 신학적인 주제, 음악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현지에 와서 다양한 백인과 흑인을 만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적도 아프리카에서 지성인으로서 살아남기, 이상적인 선교 사업, 재정 문제, 아프리카 의료의 현실, 열강의 식민지 정부 운영 문제, 식민지의 수출과 수입, 목재 산업, 강제 노동, 흑인 사회 비평, 아프리카의 자연, 병원 반경 약 2백 km 지역에 사는 부족들과 그들의 관계 등.. 약 100년 전 서아프리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그 외 사후 서한집이 국문으로 출판됐고, 철학서로는 “문화와 윤리”도 번역된 적 있다.
– 역자 : 권미영
‘슈바이처의 생애’, ‘법의 정신 2’외
○ 책 속으로
최근 나는 많은 유명한 외과 의사들이 부러워야 할 만한 보기드문 수술을 하였다. 그것은 탈장한 부분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늑골 밑에 뒤로 솟아나온 헤르니아, 소위 요부 헤르니아다. 이 증세의 경우는 생각될 수 있는 모든 복잡성을 보이고 있다. 저녁때가 되어도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실로 꿰맬 때는 요제프가 램프를 비춰야만 했다. 이 환자는 완쾌되었다. 1년 반 전부터 종아리에서 손바닥 만큼이나 기다린 곪은 뼈가 솟아 나왔던 소년을 수술한 것이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썩은 분비물이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겼기 때문에 아무도 소년 옆에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소년 자신도 뼈와 가죽만 남아 있었다. 이제 그 소년은 살도찌고 건강하여 벌써 다시 걷기 시작하고 있다. — p.249
○ 출판사 서평
저자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 1875∼1965)는 독일계의 프랑스 사상가·신학자·음악가·의사. 알사스의 카이제르베르크에서 출생했으며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목사와 대학강사로, 그리고 오르간 연주가로 활약하였다.
30세 되던 해에 봉사활동의 완벽한 실현을 위해 새롭게 의학 공부를 시작하여 1913년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오고웨 강변의 람바레네에 자력으로 병원을 개설하였으며, 이후 평생을 아프리카 흑인들의 의료 활동에 헌신하였다.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자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설립하였다.
또한 그는 특유의 윤리관인 ‘생명의 외경’ 사상을 주장하여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람바레네 통신」 「문학 철학」 등의 저술 활동을 통해신학자·철학자·사상가로서의 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 슈바이처의 생애 약사
1875년 : 1월 14일, 독일의 알자스 지방인 카이저스베르크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39년 :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들어갔다. 1899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성 니콜라이 교회의 부목사가 되었다.
1900년 :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02년에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강사가 되었다.
1904년 :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해서 일생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1905년, 서른살 때 의과 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1912년 : 헬레네 블레슬라우와 결혼을 하였다. 1913년에 의학 박사가 되어 파리 복음 전도회의 파견 의사로 적도에 있는 프랑스 령 랑바레네로 가서 의료 사업을 시작했다.
1917년 :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포로가 되어서 유럽으로 송환됐다. 그후, 문필 활동과 오르간 연주로 봉사 자금을 마련했다.
1924년 : 다시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열고 의료 사업을 확장했다. 그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했을 때에도 계속 아프리카에 머물면서 약품 부족을 무릅쓰고 의료 사업에 전념했다.
1952년 :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 무렵 세계 평화를 호소하고 원자력에 의한 세계의 위기에 모든인류가 함께 대처할 것을 역설했다.
1965년 : 9월 4일, 아흔 살의 나이로 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 세상을 떠나 병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나는 오늘 이 책을 읽고는 슈바이처는 그냥 의사가 된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제1, 2차 세계 대전이 겹처서 힘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