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서적소개
시드니의 도반들
기후 스님 / 맑은소리맑은나라 / 2025.4.30
- 아타 我他의 경계가 사라진 팔순 납자 衲子, 선심 禪心으로 돌아본 삶의 지난 여정 旅程
호주 시드니 정법사 회주 기후 스님의 신작 에세이집 『Sydney의 도반들』이 출간되었다. 2009년 1월, 독자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구도소설 『꿈속의 인연들』 이후 16년 만의 신작 (新作)이다.
통상 도반 (道伴)은 길을 가다 만난 이를 말하지만, 책에 나오는 도반은 사람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사람, 사물, 심지어 동물도 포함하며 한평생 수행길에 함께 했던 모든 존재들, 즉 불도 (佛道)를 함께 걸었던 모든 길동무를 뜻한다. 그래서 책에는 어릴 적 속가에서의 추억들이 담겨 있고, 출가 후 치열했던 수행의 나날들이 새겨져있다. 승속 (僧俗)과 시공 (時空)을 넘나드는 여러 인연담 (因緣談)들이 한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렇듯 세납 (歲納) 여든을 훌쩍 넘긴 노승 (老僧)의 마음엔 삶의 고해 (苦海)를 함께 항해했던 도반들과의 시간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살아 있다.

- 말 없는 가운데 법을 전하고, 글 없는 가운데 화두를 던지다
『Sydney의 도반들』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살아가는 자연과 사람들, 특히 스님의 삶에 깊은 인연을 맺어온 도반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멀리 호주 시드 니까지 가져온 장독, 맷돌, 등잔 등 오래된 물건들을 통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고 조상들의 얼을 기리는 스님의 각별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스님과 도반들의 소중한 인연들을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 과거와 현재, 흑백과 컬러의 조화로운 공존
『Sydney의 도반들』의 특별한 점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강원 강 사와 선방의 수좌로 수행해 온 기후 스님과 도반 스님들의 <흑백사진>은 깊은 세월의 흔적 을 보여준다. 반면, 이역만리 시드니에서 30여 년간 불법을 전해온 재가 불자들의 <컬러사 진>은 현재의 생생함을 전달하며 마치 ‘부조화 속의 조화’처럼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 울림의 메시지
책의 본문에는 삶의 지혜가 담긴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채, 걸러내는 물건이다…쉽고 분명하게 골라내듯 사기꾼과 거짓말쟁이를 한눈에 알아채는 인간채는 없을까?욕심과 허세를 줄여라! 그 속에서 인간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에필로그에 담긴 깊은 존경과 깨달음
에필로그에서 정법사 신도회장은 회주스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현하며 책에 대한 감상을 전한다. 꿈에서라도 뵙기를 발원했던 회주 스님과의 감격적인 만남, 그리고 스님의 소탈 한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깊은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세수 여든을 넘긴 고령에도 텃밭을 가꾸고 전통 장류를 손수 만드는 스님의 모습에서 “말 없는 가운데 법을 전하고, 글 없는 가운데 화두를 던진 것 아닌가” 하는 깊은 통찰을 보여 준다.

○ 목차
무풍한송
엿기름
난 누구인가?
금개구리 절
반점
등잔불
뿌리
개와 불성
월하스님 (조계종 9대 종정)
개다리소반
반고굴
걸망 속의 해골
박바가지
양푼이의 독백
엿장수 가위
성화처럼
오줌싸개
우정
세필
호박꽃도
원두막 귀신
기념의 영역
툇마루 (행자실)
동자에게 묻다
아란야
가야산 해인사
보광전 공양주
바디
원앙새
자리 바디
꽃과 가시
맷돌
다리미
나랏 말쌈이 중국과는
채
대꼬바리
자연
땡땡땡
허물
피난표지
석등
풀솔
저울
절뒤주
달마의 수염
주판
폈고리
수저
호랑이야 놀자
6년간의 침묵
은빛대학
차마고도
연꽃향기
동심
도반
밀양 무봉사
어무이와 어머니
탄허 스님
졸업장
옻독
독초의 위력
頂宇 스님
탈
블라디미르와 (러시안)
달마

○ 저자소개 : 기후 스님
1943년 경북 안동 오지마을에서 태어났다.
첫돌도 되기 전에 천연두를 앓아 사춘기시절까지 마음고생이 심하였다.
스님은 1965년 범어사 금강암에서 행자로 출가하여, 1969년 통도사에서 사미계를 수지하고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통도사와 해인사에서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용화사, 봉암사, 수도암, 통도사 등 제방선방에서 여러 안거를 보냈으며, 경주 기림사에는 6년 동안 묵언정진을 하였다.
스님은 묵언을 끝으로 선방생활을 접고, 1991년 호주로 건너가 정법사를 창건한 후 그곳에서 15년 동안 해외포교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암으로 판정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암수술을 받았다.
그후 스님은 스스로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오로지 선수행으로만 암치료에 임하였다.
지금은 장대비가 하루만 내려도 그 순간부터 길이 끊기고, 깊은 눈이 오면 녹지 않아 3개월씩이나 소식이 단절되며, 그 흔한 손전화도 통하지 않는 깊은 산중 토굴에서 7년간 홀로 지내고 있다.
스님은 선방수좌이면서도 걸림이 없어 대중이 즐겨 부르는 곡에 가사를 짓기도 하고, 시를 써서 깊은 산중을 찾는이를 맞이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천연두도, 암도 스스로 사라져 버렸다.

○ 출판사 서평
- 말 없는 가운데 법을 전하고, 글 없는 가운데 화두를 던지다
도반들 중엔 우리의 옛 것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골동품이라 하기엔 좀 부족하고 고물 (古物)이라 부르기엔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오래 전 일상생활용품들…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또 다른 서문에서 고리타분한 취향으로 보일 수도 있는, 과거 한때 일상생활용품이었던 골동품(!)에 대한 애착에 관해‘억겁의 시공 속에 제행무상 (諸行無常)의 법칙을 안고 사는 우리네들, 그 사소한 것들을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리요 마는 잠시 머무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것에 내 영혼을 담아두고 싶은 한 가닥의 중생심이 발작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겸연쩍게 밝히고 있다. 골동품 도반들, 고물 도반들에 대한 애뜻한 정이 가득하니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이어진 글을 보면, ‘멍석, 풍구대 (알곡을 걸러 내는 것), 베틀 등등 여러 물품들을 시드니까지 싣고 오게 되었다. 아쉽게도 위의 3가지 큰 물품들은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모두 썩어버렸고, 작은 것들만 여러 가지 남아 있다.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망상의 힘에 말려들어 이렇게 책 속에 남겨두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알고 보면, 그 많은 고물 (古物)들을 바리바리 싸서 콘테이너에 실어 배에 태워 태평양을 건너 시드니까지 모시고 온 스님의 속사정이 애틋하다. 오래되어 낡고, 이젠 그 쓸모를 찾기 어려운 옛 물건들을 대할 때면, 자신의 생명과 조상님의 얼이 함께 스며있음을 느끼며, 오줌싸개였던 어린시절의 동심 (童心)이 아른거리고, 함께 뛰놀던 옛 고향 친구들이 생각나며, 언제나 마음에 머물고 계신 어머니와 할머니,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한다.
그 결과, 어릴 적 속가에서의 추억들과 우리의 옛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서툴렀던 초기 출가수행시절의 에피소드를 추려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독자들과 나눔으로써 함께 했던 여러 도반들에 대한 애정을 한 개인의 집착이 아닌 나눔의 보시행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곁에 머물도록 하고팠던 지극한 중생심 (衆生心) 발로 (發露)의 회향 (廻向)이라 할 수 있다.

잊혀진 우리의 옛 것들처럼 우리네 지난 삶 또한 희미한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하지만 그것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경험이며, 고된 삶을 버티게 해준 따스한 위안이다.
실린 글 모두 스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찬찬히 읽다 보면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지난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기에 책에 나오는 도반들은 스님만의 도반이 아니다. 잊고 있었던 친구 (親舊)와도 같은 우리 모두의 도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책에는 언급이 전혀 없는, 아주 특별한 스님의 도반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날 느닺없이 찾아온 위암 (胃癌)이라는 도반이다.
호주에서 15년 째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하던 때였다. 하지만 스님은 덤덤히 그를 받아들였고, 일신 (一身)을 정리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보왕삼매론 寶王三昧論』의 첫 구절 (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易生 염신불구무병 신무병즉탐욕역생.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의 금언 (金言)처럼 별다른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경북 봉화의 어느 토굴에서 지내며 그 흔한 핸드폰도 없이 7년을 홀로 기도정진하여 마침내 위암 도반을 조용히 돌려보냈다. 그런 후 처음 발원했던 대로 해외포교를 위해 훌훌 다 털어버리고 다시 호주로 떠나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책에는 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한 살 때 앓은 천연두로 생긴 얼굴의 흉터 때문에 교육자의 꿈이 좌절되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괴로워했던 출가 수행자의 일생이 압축되어 있다. 허나 내용은 심각하지 않고, 분위기도 무겁지 않다. 목숨을 건 진지한 구도 (求道) 속에도 따뜻한 해학 (諧謔)이 넘친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웃기면서 눈물 나고 재밌는데 짠하다.
책의 후반부엔 부록처럼 육필 원고가 그대로 스캔되어 실려 있어 스님의 멋스런 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다. 암호문(?)을 해독하듯 꼼꼼히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