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시인 백석 평전•시 전집 세트 [전4권]
백석 저, 송준 편 / 흰당나귀외 / 2012.9.5

- 한국이 낳은 천재 시인 백석. 그의 일생, 그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다
백석 시인은 묻혀 있는 존재다. 일제 말기 펴낸 시집 ‘사슴’은 당대 문단의 충격이었다. 북부 지역 사투리에 담은 향토적 감수성과 정갈한 시어는 독자를 사로잡았다. ‘사슴’은 발간되자마자 이내 동났다. 당시 학생이었던 시인 윤동주는 ‘사슴’을 구할 수 없어 시집을 빌려다 손수 베껴 간직했다고 한다. 시인 김기림은 ‘사슴’을 가리켜 “문단에 던진 폭탄”이라며 감탄했다. 백석은 김소월과 더불어 북방의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됐다.
『시인 백석』은 모던보이, 고독한 천재 시인,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운의 시인 백석 (1912~1996)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다. 전 3권으로 출간, 그 분량도 분량이려니와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북한에서의 구체적 삶이 처음 실렸다.암울한 시기 주옥같은 시어를 토해낸 고독한 영혼, 혼돈의 시기 자신만의 길을 간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 문단 역사에 독특하고 보석 같은 존재, 백석 시인의 삶과 정신을 추적한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것이다.
- 시인백석. 1: 가난한 내가 사슴을 안고 – 고독한 천재 시인 백석,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한다! 『시인백석. 1: 가난한 내가 사슴을 안고』는 19세 최연소의 나이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 고독한 천재 시인 백석.
이 책은 그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다. 백석의 삶을 전체적으로, 본격적으로 들여다 본 이 평전은 전 3권으로 구성했으며, 알려지지 않은 북한에서의 구체적 삶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깜찍한 여우와 어진 물오리’ ‘계월향 사당’ ‘감자’ ‘우레기’ ‘굴’ 등의 작품과 더불어 ‘기린’ ‘산양’ ‘멧돼지’ ‘강가루’ 등 삽화에 이르기까지 처음 공개되는 백석의 창작물을 샅샅이 만나볼 수 있다. 이제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천재 시인 백석의 성장과정과 정신세계의 원천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 시인백석. 2: 만인의 연인 쓸쓸한 영혼> – 『시인백석: 만인의 연인, 쓸쓸한 영혼』제2권
한국이 낳은 천재 시인 백석, 그의 일생, 그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조명한 책으로, 모던보이, 고독한 천재 시인,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운의 시인 백석 (1912~1996)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다. 암울한 시기 주옥같은 시어를 토해낸 고독한 영혼에 대한 이야기, 혼돈의 시기 자신만의 길을 간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이야기, 한국 문단 역사에 독특하고 보석 같은 존재, 백석 시인의 삶과 정신을 추적한 의미 있는 기록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 시인백석. 3: 산골로 가자 세상을 업고 – 『시인백석: 산골로 가자 세상을 업고』제3권
한국이 낳은 천재 시인 백석, 그의 일생, 그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조명한 책으로, 모던보이, 고독한 천재 시인,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운의 시인 백석 (1912~1996)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다. 암울한 시기 주옥같은 시어를 토해낸 고독한 영혼에 대한 이야기, 혼돈의 시기 자신만의 길을 간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이야기, 한국 문단 역사에 독특하고 보석 같은 존재, 백석 시인의 삶과 정신을 추적한 의미 있는 기록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 백석 시 전집
백석의 시는 국내 시문학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시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해방이 되기 전까지의 주옥같은 시 110여 편은 시인으로서 남길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시를 우리 국민들에게 선사를 해 주었다. 백석의 초기시들은 그대로 고향의 정취가 가득한 풍경호를 연상케하는 수준 높은 명시들로 이루어졌고 시집 사슴 이후의 시들에 해당하는 중기의 시들은 시인 백석의 성숙해져가는 서정적 자아가 펼치는 주옥같은 명음으로 이루어졌다.
○ 목차

- 시인백석. 1: 가난한 내가 사슴을 안고
여는 시
저자의 말
추천사
프롤로그
제1부 시인의 탄생
01 시인의 고향
02 오산학교
03 일본 유학
04 조선일보 시절
제2부 시인의 불꽃
05 막역지간 허준
06 창작의 불꽃
07 시집《사슴》
08 교편을 잡다
제3부 시인의 사랑
09 문단의 찬사
10 다시 통영으로
11 사랑하는 여인의 결혼
12 자야
부록1
부록2
색인

- 시인백석. 2: 만인의 연인 쓸쓸한 영혼
여는 시
저자의 말
추천사
프롤로그
제4부 시인의 절망
13 침묵을 깨다
14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5 그해는 쓸쓸했네
16 시의 생, 고향
제5부 시인의 가난
17 시대의 혹한 속에서
18 짚신 신고 다니는 시인
19 친구들
20 북방으로
제6부 시인의 허무
21 은둔
22 다시 잉걸처럼
23 고독을 마주하다
24 남은 자들의 그리움
부록1
부록2

- 시인백석. 3: 산골로 가자 세상을 업고
제3권-가난한 내가, 사슴을 안고
여는시
저자의 말
추천사
프롤로그
제7부 시인의 재기
25 그래도 문학을 움켜쥐고서
26 문단에 드리운 그늘, 시인의 암울
27 시대의 바람 앞에 흔들림 없이
제8부 시인의 선택
28 해방공간
29 이념을 뛰어넘은 자유 영혼
30 다시 시대를 울리다
제9부 시인의 수난
31 전쟁의 소용돌이
32 포성은 멎고 새소리 들리지만
33 험로, 문학신문 시절
제10부 아! 시인 백석이여
34 삼수갑산으로
35 펜을 꺾다
36 별이 지다
저자후기
작품연보
백석연보
색인

- 백석 시 전집
여는 시
제1부 하늘이 내인 시인
위대한 천재 시인 백석 / 순수시인 백석 / 노리다께 가쓰오 / 한국 최고의 시인 백석 / 학풍 / 후대의 평가 / 신경림 / 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 / 80년대 전반기의 평가
제2부 백석 시 전집
1 해빈수첩
해빈수첩
개 / 가마구 / 어린 아이들
늙은 갈대의 독백
사랑의 신 / 정주성 / 늙은 갈대의 독백 / 비 / 나와 지렝이 / 산지 / 주막 / 통영 / 힌밤 / 고야 / 겨울은 아름답다 / 교외의 눈
2 시집 사슴
얼럭소 새끼의 영각
가즈랑집 / 여우난곬족 / 고방 / 모닥불 / 고야 / 오리 망아지 토끼
돌덜구의 물
초동일 / 하답 / 주막 / 적경 / 미명계 / 성외 / 추일산조 / 광원 / 힌밤
노루
청시 / 산 비 / 쓸쓸한 길 / 석류 / 머루밤 / 여승 / 수라 / 비 / 노루
국수당 넘어
절간의 소 이야기 / 통영 / 오금덩이라는 곧 / 시기의 바다 / 정주성 / 창의문외 / 정문촌 / 여우난곬 / 삼방
3 남행시초
통영
통영 / 오리 / 이두국주가도 / 탕약 / 湯藥 / 연자ㅅ간 / 황일
남행시초
창원도 / 통영 / 고성가도 / 삼천포
4 함주시초
함주시초
묘비명―이주하 이 곳에 눕다― / 북관 / 노루 / 고사 / 선우사 / 산곡 / 바다 / 단풍 / 추야일경
산중음
산숙 / 향악 / 야반 / 백화
5 물닭의 소리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 석양 / 고향 / 절망 / 외가집 / 개 / 내가 생각하는 것은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동해
물닭의 소리
삼호 / 물계리 / 대산동 / 남향 / 야우소회 / 꼴두기
6 서행시초
머리카락
가무래기의 낙 / 멧새소리 / 박각시 오는 저녁 /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 동뇨부 / 안동 / 安東 / 함남도안 / 머리카락 / 髮 の 毛
서행시초
구장로 / 북신 / 팔원 / 월림장
7 만주시초
조당에서
목구 / 수박씨, 호박씨 / 南瓜の種子 / 북방에서 / 고독 / 설의 / 고려묘자 / 허준 / 아카시아 / <호박꽃초롱> 서시 / 귀농 / 국수 / 힌 바람벽이 있어 / 촌에서 온 아이 / 조당에서 / 塘にて / 두보나 이백같이 / 杜甫や李白の如く / 焚火
나취했노라
당나귀 / 나 취했노라 / 산 / 적막강산 /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칠월백중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8 북한에서의 시
멧돼지
병아리 싸움 / 까치와 물까치 / 지게게네 네 형제 / 메、돼지 / 강가루 / 기린 / 산양
집게네 네 형제
집게네 네 형제 / 쫓기달래 / 오징어와 검복 / 개구리네 한솥 밥 / 귀머거리 너구리 / 산′골총각 / 어리석은 메기 / 가재미와 넙치 / 나무 동무 일곱 동무 / 말똥굴이 / 배′군과 새 세 마리 / 준치 가시
우레기
감자 / 우레기 /굴
천년이고 만년이고
계월향 사당 / 등고지 / 제3인공위성 / 이른 봄 / 공무려인숙 / 갓나물 / 공동식당 / 축복 /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 / 돈사의 불 / 눈 / 전별 / 오리들이 운다 / 송아지들은 이렇게 잡니다 / 앞산 꿩, 뒤、산 꿩 / 천 년이고 만 년이고 / 탑이 서는 거리 / 손、벽을 침은 / 돌아온 사람 / 석탄이 하는 말 / 강철 장수 / 사회주의 바다 / 조국의 바다여 / 나루터
제3부 백석 시 해설
1 백석 시어사전
2 해설
저자 후기 / 작품 연보 / 작가 연보

○ 저자소개: 백석 (白石) 본명은 백기행 (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였다. 1924년 오산소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일 때 조만식, 홍명희가 교장으로 부임한 적이 있고, 6년 선배인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한 후,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고, 조선일보사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東京]의 아오야마[靑山] 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하였다. 유학 중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즐겨 읽었고, 모더니즘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1934년 졸업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서울생활을 시작하였고, 허준, 신현중 등과 자주 어울렸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8월 30일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주막」, 「여우난골족」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6년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한정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해에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함흥에서 소설가 한설야, 시인 김동명을 만났고, 기생 김진향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고야」, 「통영」, 「남행시초 (연작)」 등을 발표하였다.
1937년 소설가 최정희, 시인 노천명, 모윤숙 등과 자주 어울렸으며, 「함주시초」, 「바다」 등을 발표하였다. 1938년 함경도 성천강 상류 산간지역을 여행하였고, 함흥의 교원직을 그만두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산중음 (연작)」, 「석양」, 「고향」, 「절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물닭의 소리 (연작)」 등 22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9년 자야와 동거하면서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경 (神京, 지금의 장춘 (長春))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만에 그만두었다. 6월부터 만주 체험이 담긴 시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10월 중순 자신이 번역한 토마스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의 출간을 앞두고 교정을 보러 경성에 다녀갔다. 「목구」, 「수박씨, 호박씨」, 「북방에서」, 「허준」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41년 「귀농」,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발표하였다. 1942년 만주의 안둥 [安東] 세관에서 일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0월에 조만식을 따라 소설가 최명익, 극작가 오영진 등과 ‘김일성 장군 환영회’에 참석해 러시아어 통역을 맡았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되었으나 처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가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허준이 백석이 해방 전에 쓴 시 「적막강산」,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등을 보관하고 있다가 1947년 말부터 1948년 가을에 걸쳐 서울의 잡지에 실었다. 1948년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발표하였다. 남쪽 잡지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였다.

1949년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등을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1953년 전국작가예술가대회 이후 외국문학 분과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번역에 집중하였다. 1956년 동화시 「까치와 물까치」, 「집게네 네 형제」를 발표하였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나의 항의, 나의 제의」 등의 산문을 발표하였다. 10월에 열린 제2차 조선작가대회 이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정현웅의 삽화를 넣어 간행하였고, 동시 「멧돼지」, 「강가루」, 「기린」, 「산양」을 발표한 뒤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6월에 「큰 문제, 작은 고찰」과 「아동문학의 협소화를 반대하는 위치에서」를 발표하면서 아동문학 논쟁이 본격화되었고, 9월 아동문학토론회에서 자아비판을 하였다. 1958년 시 「제3인공위성」을 발표하였고, 9월의 ‘붉은 편지 사건’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문학적 활동이 대부분 중단되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에 있는 국영협동조합으로 내려가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았다. 삼수군 문화회관에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면서 농촌 체험을 담은 시 「이른 봄」, 「공무여인숙」, 「갓나물」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60년 1월 평양의 『문학신문』 주최 ‘현지 파견 작가 좌담회’에 참석하였고, 시 「눈」, 「전별」 등과 동시 「오리들이 운다」, 「앞산 꿩, 뒷산 꿩」 등을 발표하였다. 1961년 「탑이 서는 거리」, 「손벽을 침은」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62년 시 「조국의 바다여」, 「나루터」 등을 마지막으로 발표하였다. 10월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활동을 일절 하지 못하게 되었다.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사망하였다.
백석은 소월과 만해, 지용이 다져놓은 현대시의 기틀 위에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세움으로써 한국 시의 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한 시인이다. 평안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시어로 끌어들이고 고어와 토착어를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시켰다. 또한 우리말의 구문이 품고 있는 의미 자질을 적절히 활용하여 경험세계를 감각적으로 재현하였다. 백석의 시는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정제된 운율이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 형식 대신 이야기 구조를 갖춘 서사지향적인 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때 ‘이야기 구조’는 서사양식처럼 사건의 서사적 진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면 묘사와 서술에 의미의 중심이 놓여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주 짤막한 형태로 이루어진 시들은 대상의 미감을 가장 압축된 형태로 포착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시각 외에 청각과 후각, 촉각, 미각 등 거의 모든 감각을 사용하여 대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표현해냈다. 구체적인 생활 현장에서 벌어지는 삶의 면면들을 그려낸 시들은 풍속을 시로 재현해냄으로써 풍속사적인 의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백석의 시 중에서 1인칭 화자의 주관적 독백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서정시들은 특별한 수사나 기교 없이 평명한 언어로써 차분하게 내면을 성찰하고 있다.
– 편저 : 송준
1962년생으로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잡지, 시사주간지 기자 생활도 했다. 젊은 시절 백석 시에 꽂혀 백석 연구에 몰두했다. 백석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를 독학으로 익혔다. 백석의 상징적 얼굴 사진도 그가 일본 청산학원에서 찾아낸 것이다. 백석을 실제로 만나보기도 한 그는 자타 공인 백석 관련 자료 수집의 1인자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카사노바와 엽기들』 등의 저서와 『나뭇잎새는 떨어진다』, 『백석시선집』 등의 편저가 있다.

○ 출판사 서평
- 한국이 낳은 천재 시인 백석. 그의 일생, 그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다
2012년 백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평전이 처음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백석 시인은 묻혀 있는 존재다. 일제 말기 펴낸 시집 「사슴」은 당대 문단의 충격이었다. 북부 지역 사투리에 담은 향토적 감수성과 정갈한 시어는 독자를 사로잡았다. 「사슴」은 발간되자마자 이내 동났다. 당시 학생이었던 시인 윤동주는 「사슴」을 구할 수 없어 시집을 빌려다 손수 베껴 간직했다고 한다. 시인 김기림은 「사슴」을 가리켜 “문단에 던진 폭탄”이라며 감탄했다. 백석은 김소월과 더불어 북방의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됐다.
만주에서 해방을 맞은 백석은 이후 북한에 남았다. 북녘의 고향 땅 가족 곁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그는 분단시대에 월북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백석은 한반도 반쪽에서 한동안 금기어였다. 오랫동안 그의 시와 문학적 성취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더구나 북한에서의 행적과 창작활동은 알려지지 않았다. 백석은 수십 년간 어둠 속에 갇힌 존재였던 것이다.
「시인 백석」은 시인 백석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다. 국내에서 백석의 삶을 전체적으로, 본격적으로 들여다 본 평전은 「시인 백석」이 처음이다. 전 3권으로 출간, 그 분량도 분량이려니와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북한에서의 구체적 삶이 처음 실렸다. 이 책은 어둠 속에 갇힌 백석을 햇빛 아래로 건져 올린 노작이다. 또한 제1권과 제2권의 표지를 장식하는 사진은 저자가 이번에 새로 발굴한 백석의 사진들이다.
- 스스로 가난하고 쓸쓸한 길을 간 자유로운 영혼이자 시대와 타협하지 않은 고독한 영혼
백석은 타고난 시인이었다. 그는 한편의 시집으로 문단에 우뚝 섰으며 지금까지 그 시집은 한국 문학의 걸작으로 남았다. 그는 「사슴」 이후로 시집을 내지 않았다. 그러다 1939년 홀연히 만주로 떠났다. 명예, 사랑, 성취 따위는 백석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하고 고독하고 자유롭게 살고자 했다. 이후 만주에서 발행되는 신문 「만선일보」를 통해 다수의 산문을 발표했다.
그는 6개 언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독일어, 중국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특히 러시아어를 잘했다. 대부분의 외국어를 독학으로 섭렵했다. 해방 후 고당 조만식 선생의 러시아어 통역비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많은 러시아어 소설과 시를 번역했다. 그의 번역 작품은 수준급이었다. 북한에서 백석은 번역가로 활동했다. 그가 번역해 내놓은 소설 「고요한 돈강」은 북한에서 유명했다. 하지만 마지막 3권 번역 원고를 전쟁 통에 유실하는 바람에 절망이 컸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북한에서도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유배당하듯 삼수갑산으로 들어갔다. 극한으로 자신을 내몬 것이다. 그는 삼수갑산에서 고독하고 자유롭고 싶었다. 백석은 눈 감을 때까지 시인의 마음으로 살았다. 그래서 외로움과 가난함은 그의 운명이었다. 그는 천생 시인이었던 것이다. 「시인 백석」은 진정한 시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 새로운 사실들 다수 발굴, 백석 연구의 보물창고 같은 평전
책에 실린 ‘깜찍한 여우와 어진 물오리’ ‘계월향 사당’ ‘감자’ ‘우레기’ ‘굴’ 등은 그 내용이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또한 백석의 초기 번역시 ‘사랑의 신’도 발굴해 실었다. ‘기린’ ‘산양’ ‘멧돼지’ ‘강가루’의 삽화 또한 최초로 공개되었다. 저자는 베이징 도서관, 옌벤 도서관 등을 샅샅이 뒤져 백석의 숨겨진 창작물을 찾아냈다. 수십 년간 백석 연구에 몰두한 저자 송준은 백석 자료를 가장 많이 발굴해낸 주인공이다. 머리카락을 한껏 뒤로 치켜 올린 청년 백석의 대표적 사진도 그가 발굴했다. 「시인 백석」은 백석의 미공개 작품 여러 편을 싣고 있다. 이는 향후 백석 연구에 적잖은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책은 충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에 알려졌던 사실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백석과 여류문인들 사이의 관계, ‘자야’의 실체 등이 그것이다. 백석의 지인 정현웅, 허준, 김문집, 임화, 정지용, 김종한, 오장환 등 우리 문학계 보석들의 글과 풍모가 생생하게 기록됐다. 문단 뒷풍경이 흥미롭다.
백석은 동시작가이기도 했다. 「시인 백석」은 북한에서 발표된 동시 여러 편을 싣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시어는 「사슴」에 실린 시와 달리 또 다른 맛을 안긴다. 또 백석이 북한에서 왕성한 번역활동을 했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백석이 우리말로 옮긴 러시아 시들은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을 여지없이 증명하는 그의 번역 솜씨를 만나볼 수 있다.

- ‘백석 시 전집’ 북한에서 쓴 시와 번역시를 포함, 백석 시인의 시 전부를 총망라!
.민족과 이념의 경계를 넘어, 이 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사랑받는 백석
.한국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백석!
최초 발굴! 〈감자〉 〈우레기〉 〈굴〉 〈계월향 사당〉, 번역시 〈사랑의 신〉 외 다수의 미공개 시 전격 공개!
.3200여 개에 달하는 백석의 시어를 집대성한 〈백석시어사전〉 수록!
“1930년대 우리 민족문학의 별들 가운데 하나인 백석은, 1930년대의 어둠을 밝힌 틀림없는 일등성이다.” -고종석 (문학평론가)
.한국 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
백석의 시는 국내 시문학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시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해방이 되기 전까지의 주옥같은 시 110여 편은 시인으로서 남길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시를 우리 국민들에게 선사를 해 주었다.
백석의 초기시들은 그대로 고향의 정취가 가득한 풍경호를 연상케하는 수준 높은 명시들로 이루어졌고 시집 사슴 이후의 시들에 해당하는 중기의 시들은 시인 백석의 성숙해져가는 서정적 자아가 펼치는 주옥같은 명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중기시들을 지나서 백석의 후기시들이다. 만주시절을 중심으로 해방이 되기 전까지의 작품들은 한국시가 바라는 가장 바람직한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박씨, 호박씨〉를 필두로 해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까지의 시들이 그것이다. 친구를 노래한 〈허준〉이나 만주의 목욕탕을 묘사한 〈조당에서〉 그리고 〈두보나 이백같이〉와 〈북방에서〉 그리고 〈힌 바람벽이 있어〉나 심지어 남의 시집에 써준 서문격인 〈호박꽃초롱 서시〉는 백석이 위대한 시인이라는 것을 알리는 시금석이기도 했다.
백석의 아름다운 시 중의 하나인 〈나 취했노라〉는 친구인 노리다께 가쓰오에게 개인적으로 써 준 시였다. 술을 마시면서 둘의 우정이 변치 말자는 뜻에서 백석이 술에 취해 일본인 친구에게 일본말로 끄적거려 써준 시였다. 이 시를 받아본 일본의 시인 노리다께 가쓰오는 평생 백석의 시를 찬미하고 백석을 우러르는 백석의 열광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시 한편으로 일본의 시인을 감복케 한 백석. 그 결과 평생 백석을 흠모하는 시인이 된 노리다께 가쓰오.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 지금도 빛나고 있는 것이다. 정녕 이것이 시인의 역량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시인 백석의 찬란한 면모가 아닌가 한다.
.만선일보의 시들
백석의 작품 중에서 만선일보에 소개된 시들은 〈고독〉, 〈설의〉, 〈고려묘자〉, 〈아카시아〉 등 네 편이다. 이들은 엮은이가 백석의 만주시절을 추적하면서 얻은 시들이었다. 백석의 만주시절을 알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만선일보에서 편집자로 있었던 고재기 선생을 만나는 일이었으며 역시 만주에서 만선일보를 보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던 신동한 선생을 만나는 일이었다. 이들을 통해서 엮은이는 “한얼생”으로 백석이 발표를 한 네 편의 시들이 결국 백석의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백석이 스스로 다짐을 한 일은 만선일보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시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조선의 시인이었기 때문에 만주국의 만선일보에는 비록 한글로 나오는 신문이었지만 백석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발표하지 않고 대신 한얼생이라는 필명을 사용했으며 그런 필명도 당시 만선일보 편집자들의 시를 게재해 달라는 집요한 요청에 의해서 백석이 마지못해서 그런 필명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북한에서의 시들
백석의 시는 백석이라는 이름자를 빼면 사실 백석의 시인지 아닌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는 백석이 만선일보에서 쓴 네 편의 시도 마찬가지다. 한얼생이 백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시가 백석이 쓴 것인 것을 아는 것과 유사한 경우다. 백석이 만주에 적응하면서 그런 실험적인 시를 발표했던 것처럼 해방공간에서의 작품 〈병아리 싸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동시 스타일의 새로운 시를 쓰기도 했다. 이는 바로 백석이 처한 현실이 과거 만선일보 때처럼 현격한 변화 속에 새로운 시적 변화를 모색했듯이 북에서도 새롭게 동시 스타일의 시를 탄생시킨 것이다. 사실상 자신에게는 생경한 실험적인 시를 발표한 것이었다.
그런 시도를 백석은 시로서 나타낸 것뿐이었다. 그런 고비 고비마다 저항의 모습이 그런 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서 쓴 백석의 시는 기존의 시와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동시는 병아리 싸움의 연장선상이었고 시들은 수준이 떨어져 붙여놓으면 산문이 되고 늘려놓으면 운문이 되는 그런 작품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의 시가 위대하고 존경받아야 할 대목은 백석이 처한 현실에서는 가히 최상의 시라는 것이다. 즉 북한의 모든 시인들이 경쟁적으로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 동참하여 김일성에 대한 아부로 연일 거친 입을 놀릴 때 백석만은 그런 위치에서 벗어나서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묘사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시인이면 누구나 자신의 시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위대한 김일성 장군” 같은 표현은 백석의 시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즉 우상화 노름에 빠지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그런 쪽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백석이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고 자아비판을 강요당한 이유였다. 우리는 백석의 시에서 백석이 살아서 그런 시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백석이 그런 강요된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번역가로 아동문학가로 활동하는 지혜도 엿보는 기회를 시작품에서 갖는다.
.시어사전
이번 시집에는 백석의 시어사전을 덧붙였다. 백석의 시를 깊이 음미하기 위해서는 시어사전이 역시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책의 말미에 시어사전을 붙였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역시 백석 시에 관한 간단한 해설을 붙였다. 백석의 자세한 행장은 도서출판 흰당나귀에서 나온 백석 일대기 “시인 백석”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