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
그레고어 멘델 / 지만지 / 2014.11.19
‘멘델 법칙’은 곧 ‘유전 법칙’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전학에 가장 기초가 되는 핵심적인 원리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멘델 법칙이 탄생하기까지의 끈질긴 실험 과정과 결과가 고스란히 담긴 논문이다.
멘델 법칙의 생생한 탄생 과정과 멘델의 집요하고 참을성 있는 탐구 태도를 엿볼 수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들어가면서
실험 식물의 선택
실험의 종류와 절차
잡종 형태
잡종으로부터 1세대
잡종으로부터 2세대
3세대 이상 잡종
몇 종류의 개립형질 상태가 결합된 잡종의 자손들
잡종의 생식세포
다른 식물을 대상으로 한 잡종 실험
결론과 논의
옮긴이에 대해
○ 저자소개 : 그레고어 멘델 (Gregor Mendel, 1822 ~1884)
1822년 7월 20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메렌 지방 (현재의 체코)의 작은 마을인 하인첸도르프에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나 22일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어려서는 리프니크에 있는 피아리스트 학교에 다니다가 이후 오파바에 있는 인문고등학교, 즉 김나지움에 진학했고, 1840년 올뮈츠 에 있는 철학연구소 2년제 과정에 입학해 1년간의 휴학 끝에 1843년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정원 일, 꿀벌 키우기 등에 관심이 많았으나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철학연구소를 졸업한 뒤, 경제적 문제도 해결하면서 공부하기 위해 1843년부터 브륀에 있던 성토마스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멘델은 기상학, 식물학, 물리학, 수학 등을 자유롭게 공부했으며, 특히 온실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었다. 1851년부터는 빈 대학 물리학과 수업 보조 조교 생활을 시작했고, 수학, 화학, 곤충학, 고생물학, 식물학, 식물생리학 등의 강의를 수강했다. 특히 도플러 효과로 유명한 도플러 교수의 실험물리학 강의를 들으면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서도 이해했다. 1853년에는 다시 브륀으로 돌아와 1854년부터 완두콩을 교배하기 시작했다.
– 역자 : 신현철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학석사와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수년째 교양과목으로 ‘대학론’과 ‘영화속대학’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 <진화론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한국의 보전생물학>(공저)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Diese Entwicklung erfolgt nach einem constanten Gesetze, welches in der materiellen Beschaffenheit und Anordnung der Elemente begru?ndet ist, die in der Zelle zur lebensfahigen Vereinigung gelangten.
이러한 발달은 세포의 생명력 있는 융합에 관여하는 요소의 배열과 물질 조성에 근거한 일정한 법칙에 따라 진행된다.
○ 출판사 서평
– 멘델 법칙의 정수
멘델 법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실험 결과들이 나열되어 있다. 차례대로 살펴보면, 1) 유전학 재료로서 지녀야 할 특성으로 대립형질 상태를 규정했고, 2) 대립형질 상태는 잡종에서 우성과 열성으로 구분되어 나타나는데, 이들의 비는 3:1로 우성이 많음을 밝혔으며, 3) 이러한 비율이 잡종 제2세대에서도 지속됨을 확인했고, 4) 여러 개의 형질이 관여할 때에도 이러한 우성과 열성 관계 및 3:1이라는 비율이 유지됨을 규명했다. 그리고 난세포와 정세포가 지니고 있는 대립형질 상태를 역교배 실험으로 추정했고, 이를 토대로 당시 논쟁 중이었던 꽃가루(정세포)와 밑씨(난세포)의 관계가 1:1 대응 관계임을 밝혔다. 그는 또한 완두콩을 재료로 해서 규명된 사실들이 다른 식물에서도 적용 가능함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멘델은 오늘날의 유전자 또는 대립유전자에 해당하는 요소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들 요소가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강제로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풀리는 과정을, 즉 오늘날의 감수분열 현상을 유추함과 동시에 생물의 형질을 전체로서 파악하지 않고 단위 형질들의 집합으로 설명했다.
– 멘델 법칙의 재발견
1900년에 더프리스, 코렌스 체르마크 등 세 사람이 각기 독립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전에 멘델이 발표한 논문의 타당성을 인정하게 되고, 각자 연구 논문을 발표하면서 멘델 법칙은 재발견된다. 논문 발표는 더프리스가 시작했다. 그는 멘델의 논문 별쇄본을 가지고 있던 바이에링크로부터 멘델의 논문을 받았다. 더프리스는 멘델의 논문 내용을 자신의 연구 내용과 비교, 검토한 후 자신의 연구 내용의 요약본을 불어로 발표할 때에는 멘델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았으나, 논문 전체를 1900년 <독일식물학회보> 18권, 83∼90쪽에 발표할 때에는 멘델의 연구 업적을 인용했다. 더프리스의 학문적 경쟁자인 코렌스는 더프리스의 연구 요약본만을 보고 나서 멘델의 업적이 누락되어 있는 점을 확인하고, 이러한 내용과 자신의 연구 내용을 논문으로 정리해 <독일식물학회보>에 투고했다. 이 논문은 <독일식물학회보> 18권, 158 ~ 168쪽에 게재되었다. 한편 체르마크 역시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더프리스와 코렌스의 연구 결과를 보고 나서 곧바로 <독일식물학회보>에 연구 결과를 투고했고, 18권, 232∼239쪽에 게재되었다. 이 세 사람의 연구는 서로 정보 교환 없이 단독으로 진행되었지만, 논문의 결과를 논의하면서 멘델의 논문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이전까지 단편적으로 인용되어 오던 멘델의 업적이 세상에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멘델의 업적을 널리 소개한 사람은 영국의 생물학자 베이트슨이다. 그는 멘델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했고, 이와 동시에 ‘유전학(Genetics)’이란 새로운 학문을 개척했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유전학이라는 용어는 베이트슨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