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신학연구입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 대한기독교서회 / 1983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Friedrich Schleiermacher, 1768 ~ 1834), 교부신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을 집대성한 근대 신학의 아버지이자, 칸트 철학의 한계를 극복한 초기관념론과 초기낭만주의 철학을 주도한 사상가이다. 할레 대학에서 신학, 철학, 고전학을 공부하고,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 원목을 지냈으며, 슐레겔, 노발리스 등과 함께 초기낭만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할레 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베를린 대학 창립을 주도했으며, 베를린 학술원 회원으로서 신학부와 철학부의 교수를 지냈다. 고전문헌학자로서 플라톤 전집을 독일어로 옮겼으며, 독일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화철학자였고, 베를린 삼위일체교회의 설교자로서 국가와 교회의 개혁을 주도한 실천적 지성인이었다.
주요 저서로는 계몽주의의 물결 속에서 종교의 독자적 지평을 보여준 『종교론』과, 신앙이 절대의존감정임을 역설한 『기독교신앙』이 있으며, 이밖에도 『독백』 『성탄 축제』 『신학연구서술』 등의 저서가 있다. 철학 분야에서는 『변증법』 『해석학』 『윤리학』 『심리학』 『미학』 등 다수의 강의록을 남겼으며, 이 강의들은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오늘날의 철학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 목차
제1판에의 서문
제2판에의 서문
기초이론
제1부 철학적 신학
서론
제1장 변증학적 원리들
제2장 변론학의 원리들
철학적 신학에 대한 결론적 고찰
제2부 역사적 신학
서론
제1장 주석신학
제2장 교회사
제3장 교의학과 교회론
역사적 신학에 대한 결론적 고찰
제3부 실천적 신학
서론
제1장 교회봉사의 원리
제2장 교회정치의 원리
실천적 신학에 대한 결론적 고찰
○ 저자소개 :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Friedrich Schleiermacher)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Friedrich Schleiermacher, 1768 ~ 1834). 개혁교회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프로이센의 브레슬라우에서 자랐다. 모라비안 학교에서 경건주의적 교육을 받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어느샌가 자신의 신앙에 의심을 갖게 되었고, 모라비안들은 이에 적합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할레대학교에 진학했고 곧 신약성서를 역사 비평 방법으로 해석하는 일에 흥미를 보였으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심취했다. 1796년 목사안수를 받은 이후 베를린으로 옮겨가 플라톤의 저작들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에 한동안 몰두했고, 1799년에는 ‘종교론’을 출간하여 종교를 멸시하던 근대 계몽주의자들에게 인간에게는 자신 안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음을 변증했다. 나폴레옹 전쟁 때문에 한동안 베를린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그는 1810년 베를린 대학교의 신과대학 학장으로 부임하여 신학을 가르쳤고, 1815년부터는 대학교 전체의 총장을 역임했다.
‘기독교 신앙’은 슐라이어마허가 1821년 집필, 1830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외 ‘신학연구입문’, ‘성탄축제’ 등의 저작을 남겼다. 한국에는 ‘종교론: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최신한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해석학과 비평'(최신한 옮김, 철학과현실사, 2000), ‘신학연구입문'(김경재 외 2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성탄축제'(최신한 옮김, 문학사상사, 2001) 등이 있다.
– 역자 : 김경재
한신대를 졸업한 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과 고려대 대학원에서 현대신학과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미국 듀북 대학 신학원과 클레아몬트 대학원 종교학과를 거쳐,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에서 문화신학·종교 신학 교수로 일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한국문화신학회 회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삭개오작은교회 원로목사, 한신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폴 틸리히 신학 연구』, 『해석학과 종교신학』, 『이름 없는 하느님』, 『김재준 평전』, 『함석헌의 종교시 탐구』 등이 있다.
○ 독자의 평
슐라이어마허의 두 번째 대표적인 책 [신학 연구 입문]
– 입문적 강의를 위한 신학연구의 간단한 서술
그는 1810년 베를린 대학이 창립될 때 처음부터 신학대학의 교수 일원이었다. 앞으로 개설될 강좌, 공부에 대해서 소개하기 위한 책으로 쓴 것이 이 책이다. 1811년에 초판 나왔고1830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이 개정판은 약 한 338섹션까지 나와 있다.
그는 ‘신학백과전서’라는 수업을 하였고 그 강의의 교과서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신학교육이나 철학교육에서 전공의 첫 시간에 주로 개론, 입문 이런 식으로 다루어진 시도가 아마도 슐라이에르마허의 이런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요약하면 슐라이에르마허가 보는 신학은 하나의 유기체이다. 유기체라는 것은 기계체와는 다르다. 기계는 어느 부분 하나가 고장 나면 그것만 고칠 수 있지만, 유기체는 하나가 잘못되면 전체가 잘못되고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신학은 여러 분야들이 상호 연관성 중에서 존립하는데 크게 철학적 신학, 역사적 신학, 실천적 신학으로 나뉜다. 이런 분류는 신학의 분과를 나눈 첫 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 에 의하면 신학이라는 것은 다른 제반학문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신학의 중세버전이고, 중세의 다른 모든 학문은 신학의 시녀였다. 요즘 다른 학문들이 신학을 공격하는 태도가 있는 것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신학은 하나의 개별 학문으로서 다른 학문 옆에 놓여있는 것도 아니다. 신학은 오히려 다양한 학문 분야들의 합병체로서, 일종의 실증적 학문이다.
Positivistische Thoelogia인데 이것은 관념적 신학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완전히 두뇌에서 해결되는 관념적인 신학과는 달리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보며, 그것에는 실제적인 증거가 있는 것이 바로 신학이라는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이 실증적이라는 말을 쓸 때에는 나쁜 말은 아닌데, 그러나 그는 신학은 교회의 실천과 항상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동양으로 치면 실학적인 그런 학문이라고 한다. 교회의 지도, 통치, 교회적 실천과 결부되어 있다. 목사나 교사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말씀을 섬긴다던지 가르침을 섬긴다는 것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이러한 제도교회를 비판하였지만, 10년 후에 자신이 교수가 된 뒤에는 제도교회가 가지고 있는 봉사, 직분 등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었다. 슐라이어마허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은 ‘신학이라는 것은 어떤 신의식에 기초해 있지만, 그것이 교회의 실천과 결부되어 있는 하나의 실증적 학문이다.’ 그는 신학을 사변적인 학문에서 실제적인 학문으로 강조를 했다.
그는 신학의 네 가지 성격을 말하는데 학문성, 구체성, 총체성, 실제성(교회적 연관성)이 그것이다.
–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에 대한 세 가지 구분을 보장
.철학적 신학 – 이것은 비철학적으로 사용되었다. 신학의 기본적인 요소들. 즉, 종교이론과 기독교의 본질규정과 관련한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그가 말한 철학신학이다. 우리나라에 철학신학이란 말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철학으로 신학을 하는가? 슐라이어마허가 말한 철학신학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그의 말에 의하면 신학의 본질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 신학을 하나의 유기체로 설명할 때 철학적 신학은 뿌리에 해당된다. (역사신학은 줄기, 몸통, 실천신학은 열매인데 이 둘은 그 뿌리인 철학신학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변증학, 논박학, 종교론 등을 다룬다. 신학은 모든 학문의 원리론임을 다룬다.
.역사적 신학 – 이것은 중간자적 신학으로서, 철학신학과 실천신학을 연결해준다. 이론에 있어서는 철학신학에, 실천에 있어서는 실천신학에 의존해 있다. 보통 우리가 역사신학을 말하면 과거를 중요시 하지만, 슐라이어마허는 역사신학을 과거의 측면을 중요시하지 않고, 현재의 측면을 중요시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역사신학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석의신학(성경신학을 자신의 말로 표현한 것) 교회사, 기독교의 현재 상태에 대한 역사적 인식.
* A. Conte가 말한 사회정학은 역사를 수평적, 사회동학은 역사를 수직적으로 이해.
슐라이어마허는 과거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에 우리 교회에 대한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한 것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상태에 대한 역사인식을 그는 통계학 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말했다. 슐라이어마허가 신학입문에서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실천적 신학이다.
실천적 신학 – 실천적 신학은 이 책의 서문에 실천 신학은 신학공부의 왕관이라고 했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실천적 영역에서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실천신학이라는 말은 슐라이어마허가 제일 먼저 썼다. 실천신학의 창시자는 슐라이어마허! 그는 ‘실천적 적용이 없는 신학은 무익하다’라는 말을 했다. 이 때의 실천은 ‘봉사’의 개념이며 그것은 바로 교회봉사이다.
– 그에 대한 비판
첫째, 슐라이어마허가 실행을 강조하는 실천신학을 정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실용주의적 색채를 풍기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보면, 만일 교회에 가시적인 잘 된 결과만 있다면, 그것이 곧 진리가 될 수 있다는 그릇된 판단이 선다는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신학은 실천적인 열매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학의 주체성을 결과의 측면이 아니라, 성경적 근거에서 봐야한다.
둘째, 신학분과의 뿌리로서 철학적 신학을 설정한 것은,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종교일반론의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만일 철학적 신학을 종교 일반론으로서 강조하게 되면 결국 종교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로 가는 통로를 열 가능성이 있다.
셋째, 슐라이어마허가 말하는 신학에는 성경신학이 대단히 바르게 평가되지 못하고 있고, 나아가서 그의 신학은 성경에 정취되어 있지도 않다. 그래서 이것은 신학을 하나의 초대교회의 근원적인 문서로서만 이해는 것이지, 모든 신학이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에 근거했다는 사상은 없다. 우리의 신학의 뿌리는 성경이고, 그 왕관은 하나님의 영광이지 그것이 무슨 교회적 결과의 측면에서 볼 것이 아니다.
○ 감성의 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
– [우리 시대의 신학자]
부모님께서 다녀가셨어요.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 이후로 부모님과 그리 살뜰하게 세끼 밥 같이 챙기며 피부 맞대고 지내본 적이 없습니다. 지독하게 속 썩여 드렸던 유별난 딸자식 키우시며 맘고생이 많으셨던 두 분. 귀국길 배웅하고 공항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좋은 구경 시켜드리고 좋은 음식 대접하고, 무엇보다 살갑게 웃는 모습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저는 예나 지금이나 감정표현에 참 서툰 사람입니다.
기쁨과 슬픔, 그리움과 애틋함이 빠르게 교차하는 마음, 채 다스리지 못하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이 복잡한 심사를 어떤 신학자의 글에 담아 전해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떠오르는 학자가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 (Friedrich D. E. Schleiermacher, 1768 ~ 1834)입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19세기 초 유럽, 계몽주의와 합리적, 이성적 사고의 발전으로 초래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 대응하여 새로운 신학방법론을 모색한 신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신학(주로 개신교 신학)이 근대적 인간관/세계관과 대화할 수 있도록 기초를 마련한 신학자 중 한사람입니다. 전통적인 개신교 신학방법론이 성경 본문과 본문에 대한 신조를 그 토대로 삼고, 성경에 입각하여 교리 전통을 쇄신하는 것을 신학의 과제로 간주하는데 반해, 슐라이에르마허는 개개인의 인간이 갖고 있는 ‘종교적 자의식’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성서해석과 교리의 배후에 있는 인간의 경험과 느낌을 신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개신교 최초의 ‘주류’ 신학자인 셈이지요. 그중에서도 인간의 감정에 대한 슐라이에르마허의 해석은 신학연구에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옵니다.
슐라이에르마허에게 감정은 지식이나 행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독립적이고 독특한 정신기능인 동시에, 바로 종교가 발견되는 장소이기도 하죠. 대표적 저술 중 하나인 ‘종교론’ (Über die Religion: Reden an die Gebildeten unter ihren Verächtern, 1799)에서 그는 종교와 감정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종교는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종교는 보다 깊숙한 인간의 요구에 응답한다. 종교는 형이상학도, 도덕체계도 아니다. 종교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본질적인 직관이며 감정이다. 교리는 정확히 말해 종교의 일부가 아니라 종교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종교는 무한한 존재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게 하는 기적이며, 교리는 그 기적을 반영한다. 마찬가지로 신과 영원에 대한 믿음 또한 종교의 일부라 할 까닭이 없다. 인간은 신 없이도 종교를 가질 수 있고, 이 경우 종교는 전 우주에 관한 순전한 명상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관은 개개인의 내밀한 감정의 기원과 움직임을 전격적으로 신학의 영역에 포함시킵니다. 인간이 감정을 갖고 있으며 그 감정을 통해 ‘느낀다’는 것을 슐라이에르마허는 가장 본질적인 종교 행위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좀 더 설명해 볼게요. 사람의 감정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 포함되기 마련입니다. 그 자의식은 언뜻 독립적이고 고유한 것인 듯 보이지만 실은 언제나 의존적이죠. 인간은 다른 이, 다른 존재, 즉 타자(他者)에 대한 관계성 속에서만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습니다. 이 타자에 대한 관계성 속에 의지하여 존재하고 의식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이끌림, 이 이끌림의 근저에는 신이 있습니다. 더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이 무한한 이끌림이 곧 신입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이 이끌림을 감지하는 의식을 ‘신(神) 의식’이라 표현하고, 자의식과 신 의식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절대의존 감정’이라 표현합니다. ‘나’의 감정을 통해 드러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식과 하느님에 대한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신학이라면, 이제 신학의 과제는 우리들 생활에서 발견되는 감정과 느낌을 기술하는 것까지 포함하게 되겠죠.
– 내 감정의 결을 따라 하느님을 느끼기
슐라이에르마허가 이토록 사람의 감정에 마음을 기울이고 신학의 재료로 삼게 된 배경에는 그 자신의 예민한 감수성과 열린 마음과 따뜻한 성정이 크게 작용한 듯합니다. 엄숙한 독일 경건주의보다도 구세주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기쁨을 중시하는 *모라비안 교단에 이끌렸고, 새로운 학문과 철학적 토론에 몰두하다 신학교규범을 어겨 퇴학을 당하기도 했죠. 독일 개혁교회 목사가 된 뒤에도 젊은 지성인들과 어울리길 즐겼고, 크고 작은 사회 · 정치적 사건에 가담했으며, 베를린 대학교 창립에도 공헌했고, 교편을 잡았던 시기에는 많은 학생들에게 존경 받는 교수이기도 했죠. 무엇보다도 그는 이미 기혼인 한 여성을 깊이 사모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아야 했던 아픈 사랑의 경험도 갖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이 사랑의 경험은 간간히 그의 저작을 통해, 또 회자되는 이야기들을 통해 아직도 그의 독자들에게 전해오지요. (*모라비안 교단은 14세기 말 종교개혁가인 얀 후스(Jan Hus)의해 설립되었다. 이 교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모라비아와 보헤미아 지방에서 생겨난 보헤미아 형제단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깊은 종교적 감정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슐라이에르마허의 많은 저작들 중에 ‘종교론’ (Über die Religion: Reden an die Gebildeten unter ihren Verächtern, 1799) , ‘신학연구 개요’ (Kurze Darstellung des theologischen Studiums zum Behuf einleitender Vorlesungen, 1830), ‘신앙론’ (Der christliche Glaub, 1830), ‘해석학과 비평, 그리고 다른 저술들’ (Hermeneutik und Kritik mit besonderer Beziehung auf das Neue Testament, 1838) 등은 철학과 신학연구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슐라이에르마허의 책은 ‘크리스마스 이브: 육화(肉化)에 대한 대화’ (Die Weihnachtsfeier: Ein Gespräch, 영어로 출판된 책의 이름은 Christmas Eve: A Dialogue on the Incarnation)라는 90쪽 짜리 작은 책자입니다. 1805년 겨울,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선물로 주려고 썼다는 이 책은 플라톤의 대화형식을 모방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의미와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표현하죠. 재미있고 사랑스럽지만, 내용과 형식에 있어 슐라이에르마허 신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한 책입니다. 짧게나마 책의 내용을 소개해 볼게요.
‘크리스마스 이브’는 전형적인 독일 중산층 가정의 가족들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합니다. 함께 노래하고 선물을 풀어보며 크리스마스 이브의 분위기를 만끽하던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각자가 이해하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각기 다른 성격과 견해를 가진 가족의 구성원들이 논쟁과 설득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이 책의 중심내용이죠. 어느 누구도 이기고 지는 이 없이 팽팽하던 논쟁은 손님으로 초대되어 늦게 도착한 조제프의 말로 마무리 되죠. 조제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크리스마스는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작은 일들과 소소한 기쁨들에 참여하는 것이에요. 기꺼이 웃고 사랑했던 그 모든 일들이요.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내가 세상과 나누었던 뜨겁고 깊은 키스들이었고, 지금 내가 당신들과 함께 하는 이 기쁨은 내 입술에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키스에요. 당신들은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이들이니까요. 모두들 이리 오세요. 무엇보다도 소피(파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어린 소녀)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면 이리로 불러오세요. 모두 모여 즐깁시다. 그리고 기쁘고 경건한 크리스마스의 노래를 부릅시다.”
– 신학자의 의무, 가족 파티를 준비하는 손길과 같은 것
모두들 피아노 앞에 둘러앉아 노래하며 서로를 축복하자, 대화는 마치 뮤지컬과 같이 음악과 하나 되어 깊어가는 크리스마스 이브로 녹아듭니다. 슐라이에르마허에게 신학자들의 의무란 바로 이런 크리스마스 이브의 파티를 준비하는 손길과 같은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팽팽한 논쟁 속에 담겨있는 의미보다도, 결국 그리스도가 이 땅에 주신 큰 축복에 모두 하나 되어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지요. 누가 옳고 그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히 옳거나 그를 수 없으니까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해하려하는 과정 속에 그저 모두 함께 조금씩 성숙하는 거죠. 우리가 모두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서로에게 이끌리거나 혹은 부딪히는 마음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며 인정하는 것. 그것이 슐라이에르마허에게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심성이었고,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좌표였습니다.
너무 낭만적인가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가족들과 함께 모인자리에서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을 떠올린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서로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가족이 아니던가요. 다 표현하지 못해도 그 마음 읽게 되는 게 가족 아니던가요. 그 이끌림이 참으로 신비롭지 않던가요. 지금 책상 앞에 앉아있는 제 마음 속 얽히고설킨 감정의 결들에도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 아니, 그 기쁨과 슬픔과 애틋함과 서러움과 그리움으로 뒤범벅된 찐득찐득한 감정이 곧 하느님이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오늘 제게는 적지 않은 위로가 됩니다.
– 슐라이에르마허의 책
.신학연구입문, (김경재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83)
– 쉴라이에르마허에 관한 책들
.쉴라이에르마허 신학의 인간학적 원리, (심광섭 지음, 한국신학연구소, 1993)
.쉴라이에르마허에서 리꾀르까지 : 현대 철학적 해석학의 흐름, (김영한 지음, 숭실대학교출판부 2011)
.슐라이에르마허 생애와 사상, (마르틴 레데커지음, 주재용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85)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사상, (목창균 지음, 한국신학연구소 1991)
_ 조민아 교수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구성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셀 드 세르토의 시각을 확대 해석해 중세 여성 신비가 헤데비치(Hadewijch)와 재미 예술가 차학경의 글을 분석한 연구로 논문상(John Fenton Prize)을 수상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