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아르망스
스탕달 / 시공사 / 2018.7.23
스탕달이 44세 때 쓴 첫 소설로, (스탕달의 다른 소설들이 그랬던 것처럼) 출간 당시에는 평론가의 독설과 대중의 외면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매력이 드러나면서 오늘날 눈 밝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아르망스’는 발표 당시의 실패와는 별개로 ‘성공한 첫 소설’로 평가된다. 스탕달이 불혹의 나이를 넘겨 처음 쓰게 된 이 작품에는 훗날 19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게 되는 스탕달 소설의 특징들이 생생하게, 매혹적인 징후로 담겨 앞으로 만개할 대작가의 소설 세계를 미리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개성 뚜렷한 등장인물,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소설의 역할,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간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 등 장차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의 밑그림이 모두 그려져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 목차
서문 7
아르망스 13
해설_스탕달과 『아르망스』 339
스탕달 연보 365
○ 저자소개 : 스탕달(Stendhal, 본명: 마리 앙리 벨 – Marie Henri Beyle)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근대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스탕달은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던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소설 외에 문예평론·여행기·평전을 남겼다. 문필활동 말고는 나폴레옹시기에 군인·군무원을, 7월혁명 이후에 외교관을 지낸다.
1800년 용기병 소위로 임관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 스탕달은 나폴레옹 제정의 관료로서 몇 차례의 승진과 함께 출셋길에 오르고 나폴레옹 원정군을 따라 알프스를 넘지만, 1814년 나폴레옹 몰락과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문필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회화사』, 『아르망스』 등을 집필했다. 1819년 메칠드와 생애 최고의 연애를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경험은 뒷날에 평론 『연애론』(1822)을 탄생시킨다. 1921년 파리로 돌아와 문필활동을 계속하며 1825년 『라신과 셰익스피어』를 발표하여 낭만주의운동의 대변자가 된다.
첫 소설 『아르망스』(1827)는 성적 불능자를 주인공으로 한 특수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7월혁명 이후 대표작 『적과 흑』(1830)을 출간하며 처음으로 ‘스탕달’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그 밖에 미완성 장편소설 『뤼시앙 뢰방』, 『라미엘』, 사후에 ‘이탈리아 연대기’로 간행되는 『카스트로의 수녀원장』 등 중·단편들을 모은 『한 만유자의 메모』(1838)를 발표한다. ‘이탈리아 연대기’의 연장인 『파르마의 수도원』(1839)은 그의 생애를 매듭짓는 걸작이 된다.
이처럼 발상과 기법의 참신함 때문에 작가 생전에는 많은 이해를 얻지 못하지만, 죽은 뒤 스탕달의 작품은 점점 많은 독자를 얻어 세계적인 명작으로 발돋움한다. 스탕달은 1842년 파리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되었다.
역자: 임미경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상속』, 『아르망스』 ,『세 갈래 길』 ,『볼티모어의 서』,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 『열병』 ,『암고양이』, 『시작은 키스』, 『페르소나』, 『앨라배마 송』, 『적과 흑』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첫문장
옥타브는 이제 갓 스무 살이고, 얼마 전 이공과대학을 졸업했다. 그의 아버지 드 말리베르 후작은 외아들을 파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고 싶었다.
P.34
‘요컨대 나는 조금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거야. 그러니 200만 프랑이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전부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지.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려고 하는 대신 무슨 장사든 해서 부자가 되려고 애썼어야 했는데.’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며 옥타브는 등받이 없는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 작은 의자에는 사촌누이 아르망스 드 조일로프가 있었다. 옥타브의 눈길이 의도치 않게 그녀에게 가 닿았다. 그는 그녀가 저녁 내내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P.79
사랑에 빠지지 않겠노라 거듭 다짐해왔고, 이 정념을 물리치는 것이 인생의 중대사라고 할 수 있는 그가 기꺼운 마음으로 드 보니베 저택으로 달려가는 까닭은 그곳에 언제나 아르망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P.210~211
시선에 잡히는 것마다, 그것이 아르망스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데도 그녀를 생각나게 했다. 미치광이처럼 머릿속이 헝클어진 탓에, 포스터에 박힌 이름이나 상점 간판에서 A 혹은 Z 글자를 발견하기만 해도 아르망스 드 조일로프라는, 잊으리라 다짐한 이름이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였다. 그 이름은 그에게 활활 타는 불길처럼 다가왔다. (……) ‘내게는 그녀를 잊는 일도 허락되지 않는구나!’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마음을 꿋꿋이 다져먹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 아르망스와 함께한 추억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P.242
삶이라는 이 고통과 불행의 바다에서 자신이 잠깐이나마 행복한 순간을 누린 것은 그녀 덕분이었다. 그녀의 조언에 의지해서 그는 세상에 등 돌리는 대신 그 세상에 뛰어들었고, 자신을 불행하게만 하던 그릇된 많은 판단들을 교정할 수 있었다.
P.306
이제까지 그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사랑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당신과 이별한다는 것은 내게는 죽음과 마찬가지예요. 아니 죽음보다 백배 더한 고통이죠. 하지만 내게는 아직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끔찍한 비밀이 있어요. 당신도 그 비밀을 알면 치유되지 않는 내 기이한 행동들이 이해될 거예요.
○ 출판사 서평
- “안녕, 영원히 안녕, 사랑하는 아르망스!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리라!”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 스탕달의 첫 장편 : 첫사랑의 환희와 절망으로 빛나는, 스탕달 문학의 효시·국내 초역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 스탕달의 첫 장편 《아르망스》가 국내 초역으로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에서 출간되었다. 스탕달이 44세 때 쓴 첫 소설로, (스탕달의 다른 소설들이 그랬던 것처럼) 출간 당시에는 평론가의 독설과 대중의 외면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매력이 드러나면서 오늘날 눈 밝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최근에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그해, 여름 손님》에서 주인공 소년이 연인에게 선물한 책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아르망스》는 발표 당시의 실패와는 별개로 ‘성공한 첫 소설’로 평가된다. 스탕달이 불혹의 나이를 넘겨 처음 쓰게 된 이 작품에는 훗날 19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게 되는 스탕달 소설의 특징들이 생생하게, 매혹적인 징후로 담겨 앞으로 만개할 대작가의 소설 세계를 미리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개성 뚜렷한 등장인물,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소설의 역할,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간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 등 장차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의 밑그림이 모두 그려져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 “침묵 속에서, 당신에게” 고백하지 않음으로써 지속되는 기이한 사랑 이야기
『아르망스』의 줄거리는 미모의 귀족 청년 옥타브와 그의 사촌누이 아르망스의 다소 기이한 사랑 이야기다. 옥타브는 자신만 아는 ‘치명적 비밀’ 때문에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스무 살 청년으로, 물질적 가치만을 좇는 귀족 사회에 환멸을 느껴 일부러 기괴한 언동으로 사교계에서 자신을 고립시킨다. 그런 옥타브에게 있어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가 바로 아르망스다. 아르망스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변변한 유산도 없이 친척 귀족 집에 얹혀사는 고아 처녀이지만 옥타브처럼 위선적인 귀족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올곧은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세상에서 유일한 안식처라 느끼면서도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옥타브는 스스로에게 사랑을 금지했으며, 아르망스 또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지나친 자각으로 옥타브의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옥타브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을 향해 마음으로 이끌”려, 언제나 “아르망스의 사소한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아르망스가 가까이 있을 때면 “그럴 작정을 한 것도 아니면서 어느새 말이 많아졌다.” 이는 아르망스 역시 마찬가지여서, 의지로는 옥타브의 사랑을 거부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사는 동안 자신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다고, 차라리 “그 사랑이 가 닿을 끝이 죽음이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상대를 열렬히 원하면서도 스스로 사랑에 빠지는 것을 금하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예견 혹은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확인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사랑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기이한 연인 관계를 이어간다.
스탕달은 당시 사교계에 작가 미상으로 떠돌던 『올리비에』라는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아르망스』를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올리비에』는 ‘성 불능’이라는 소재를 내세워 남성 간의 성애를 다루고 있어 당시 외설 혐의 때문에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성 불능’ 모티브는 『아르망스』에서 ‘고백 불능’으로, 나아가 ‘사랑 불능’으로까지 연결되는데, 스탕달 역시 당시에는 외설 의혹을 피하기 위해 옥타브의 ‘치명적 비밀’을 작품 속에서 끝까지 비밀로 남겼다고 한다. 이는 당대 비평가들에겐 불만의 요소였지만 후대 학자들에겐 이 ‘드러나지 않은 비밀’ 덕분에 작품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졌다. 『아르망스』가 오늘날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텍스트로 살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소설, 소통 불능의 당대 사회를 비판한 작품
스탕달은 소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은 진실의 추구라고 생각했다. 『아르망스』 서문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어떤 작품이 신랄해 보이는 것은 현실에 거울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거울에 비친 모습이 추한 것은 “추하게 생긴 사람이 그 거울 앞을 지나간” 까닭이라고 말한다. 스탕달은 자신의 첫 소설인 이 작품에 “1827년 파리 어느 살롱 정경”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음으로써 자신의 이러한 소설관을 뚜렷이 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밀어닥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귀족들은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회의 역동적 흐름을 거스르며 역사의 방향에서 괴리되어 갔다.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과거 특권에만 집착하여 구체제의 신분 질서를 회복시키려 드는 귀족 사회는 필연적으로 모순과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아해 보이는 귀족의 거실은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며, 가문과 명예는 금전 숭배를 감추는 포장으로 전락한 탓에, 귀족들이 내보이는 세련된 태도와 취향 뒤에는 어쩔 수 없는 권태와 무기력이 깔려 있다. 귀족 사회의 일원이면서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옥타브는 이런 사회적 모순을 되비쳐주는 인물임과 동시에 몰락하는 귀족 계층의 징후들을 담지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기이해 보이는 언동과 신경증, 결국에는 파국을 부르고 마는 무기력은 이런 귀족 사회의 모순을 상징하며, 그의 ‘치명적 비밀’이 연인인 아르망스에게도, 독자에게도 끝내 고백되지 못한 채 소통 불능의 상태로 막을 내린 것 또한 스탕달이 바라본 당시 사회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과 사회를 진실하게 그려내는 일, 인간과 인간의 삶을 그리는 것이 소설이라고 여긴 스탕달은 옥타브와 아르망스라는 생생한 개인을 격변하는 사회 한가운데 자리 잡게 하고 이들의 삶의 도정을 사회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는 방식으로 당대 사회를 파헤쳤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