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 김산 / 동녘 / 2005.8.16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청년의 고뇌와 투쟁을 통해 조선인 혁명가로 거듭난 김산 (본명 장지락)의 삶을 벽안의 젊은 여성 님 웨일즈가 기록한 책 『아리랑』.
이 책은 그 시대를 철저하게 호흡해 간 지식인의 생생한 전기이자 숨 가쁜 동아시아 역사의 기록이고 증언이며, 역사가 명하는 바에 따라 불화살같이 살아간 한 조선인 독립혁명가의 피어린 발자취이다.
○ 목차
추천의 글 / 리영희
한국어판 서문 / 님 웨일즈
서장 / 님 웨일즈
1. 회상
2. 조국에서의 어린 시절
3. 독립선언
4. 도쿄 유학 시절
5. 압록강을 건너서
6. 상하이, 망명자의 어머니
7.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
8. 걸출한 테러리스트 : 김약산과 오성륜
9. 결코 결혼하지 않으리라
10. 톨스토이에서 마르크스로
11. 중국 ‘대혁명’에 참가하여
12. 광둥코뮌
13. 해륙풍에서의 삶과 죽음
14. 상하이에서의 재회
15. 위험한 생각
16. 다시 만주로
17. 위대한 첫사랑
18. 아리랑 고개를 넘다
19. 당내투쟁과 개인적 투쟁
20. 살인, 자살, 절망
21. 다시 대중운동으로
22. 다시 일본에 잡히다
23. 두 여인
24. 항일전선
25.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
기록을 끝내며 / 님 웨일즈
해설 / 조지 토튼
역자후기
○ 저자소개 : 님 웨일즈 • 김산
님 웨일즈 (Nym Wales)의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우.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계보학자로 활동했다.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저서를 내었으며, 오랜 기간을 격변하는 아시아에서 보내면서 중국과 한국에 관한 많은 집필을 하였다. 마오쩌둥에 대한 저술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1930∼40년대 중국을 누비며 모택동의 대장정에 참가하였다. 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번 오르기도 했다. 저서로는 『Inside Red China』, 『The Chinese Labor Movement』, 『Red Dust』, 『Sketches and Autobiographies of the Old Guard』 등이 있다.
김산의 본명은 장지락 (張志樂). 평북 용천 출생.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둥, 옌안 등을 누비며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가 이동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24년 고려공산당 베이징지부를 설립하고 1925년 중국대혁명에 참가하였다. 1930년과 1933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37년 중국의 옌안에서 님 웨일즈와 만나게 되었고 님 웨일즈는 이 만남의 성과를 담아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아리랑의 노래 (Song of Ariran)』를 출간했다. 1938년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캉성에 의해 ‘일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됐으나 1983년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회복시키는 복권을 결의하였다.
– 헬렌 포스터 스노 / 님 웨일스 (Helen Foster Snow)
.출생: 1907년 9월 21일, 미국 유타주
.사망: 1997년 1월 11일 (89세),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별칭 / 필명: Nym Wales (님 웨일스)
.직업: 언론인
.배우자: 에드거 스노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출생이다. 컬럼비아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32년 마오쩌둥에 대한 저술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하여 부부가 중국 각지를 보도여행 (報道旅行) 하기를 10년, 특히 국공분열 (國共分裂) 후 중국 지역의 수수께끼를 최초로 푼 부부의 현지답사 활동은 주목을 끌었다. 특히 장지락 (張志樂, 일명 ‘김산’)의 전기 《아리랑》(1941)으로, 일본식민지배와 민족독립운동을 알리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지난 30-40년대 한국 (韓國) 및 중국 (中國) 관련 저술로 널리 알려진 “아리랑”의 작가 헬렌 포스터 스노우가 지난 11일 미국 (美國)에서 사망했다고 그녀의 일본 (日本) 친구들이 13일 전했다. 향년 89세. 17년간의 결혼 생활끝에 49년 이혼한 스노우 여사는 고향인 미국 코네티컷으로 돌아온 뒤에는 족보학에 몰두해 뉴 잉글랜드가 영국의 식민지로 바뀌는 과정을 천착한 역사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미국 유타주의 세다에서 저명한 변호사를 아버지를 둔 모르몬 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타 대학교를 잠시 다니다 아버지의 주선으로 상하이의 영사관에 취직하여 1931년 중국으로 왔다. 중국에 도착한 직후 에드거 스노를 만나 1932년 결혼하고, 베이징 (당시 이름은 베이핑)으로 와서 옌징 대학교 (燕京大學)에서 잠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35년 12.9 항일운동을 취재하였다.
에드거 스노는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들과 교분이 깊었고, 서방 기자로서는 최초로 옌안의 공산당 지역에서 방문하여 후에 《중국의 붉은 별》 (Red star over China)라는 저서를 남겼다. 님 웨일스도 남편과 함께 취재하여 《Inside Red China》를 저술했고, 후에 이곳에서 조선인 독립운동가 김산을 알게 되어 《아리랑》(The Song of Ariran)을 저술했다. 또한 부부는 親 중국공산당적인 잡지 《Democracy》의 주된 편집장으로 일했다. 최근에 밝혀진 냉전시대의 문서들은 그들 부부를 공산주의를 따르는 “용공분자”로 묘사하고 있는데, 님 웨일스는 중국 공산당원이었지만, 남편 스노는 공산당원으로 밝혀진바 없다. 이들 부부는 이후 중국에 있는 외국인들이 결성한 항일단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침략 때문에 생활이 곤란해져 결혼생활이 냉랭해지자, 1940년 그녀는 홀로 중국을 떠나 필리핀을 거쳐 미국에 돌아왔고 1949년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그녀는 여생을 코네티컷에서 가족역사 탐구, 소설 습작, 중국관련 에세이를 쓰는 데 보냈다. 1984년에는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1997년 사망했고, 그녀의 유고와 사진, 문서들을 유타에 있는 브리검영 대학교에 기증되었다. 2000년 브리검영 대학교는 그녀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극동지역에 머무는 동안 스노우는 남편의 저술활동에 조력하는 한편으로 한국과 중국의 항일 투쟁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생생한 서술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번 오르기도 했다.
저서로 ‘안에서 본 적색 (赤色) 중국’ (1938), ‘아리랑’ (1941), ‘중국노동운동’ (1945) 등이 있다.
○ 저자소개 : 김산 (본명: 장지락, 張志樂)
본명은 장지락 (張志樂). 평북 용천 출생.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둥, 옌안 등을 누비며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가 이동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24년 고려공산당 베이징지부를 설립하고 1925년 중국대혁명에 참가하였다. 1930년과 1933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37년 중국의 옌안에서 님 웨일즈와 만나게 되었고 님 웨일즈는 이 만남의 성과를 담아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아리랑의 노래 (Song of Ariran)』를 출간했다. 1938년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캉성에 의해 ‘일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됐으나 1983년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회복시키는 복권을 결의하였다.
– 역자: 송영인
○ 출판사 서평
– 아리랑 출간
아리랑 (The Song of Ariran)은 미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님 웨일즈가 1930년대 후반 중국공산당 본부가 있던 옌안에서 인터뷰한 조선인 독립운동가 김산 (본명: 장지락)의 생애를 다룬 전기이다.
.제목: 아리랑 (Song of Ariran)
.저자: 님 웨일즈
.번역가: 송영인
.출판사: 동녘
.출간: 님웨일즈는 인터뷰한 자료를 가지고 중국을 떠나 1941년 필리핀에서 글쓰기를 모두 마쳤다. 그의 글은 미국에서 출판되었고, 이후 1953년에 일본에서도 번역 출판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을 언급하는 것에 대한 대한 금기로 오랫동안 이 책이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의 유학생들에 의해 원본과 번역본이 밀반입되어 운동권 인사들에게 널리 읽혀졌으며,1984년 마침내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김산의 본명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었으나 김일성 북한주석이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장지락”으로 언급하면서 밝혀졌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