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아이젠하워 : 상하, 국적,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소통과 통합의 리더
존 우코비츠 / 플래닛미디어 / 2017.3.14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은 어둡고 불확실한 미래와 마주해 있었다. 2년 동안 한국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유럽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은 날로 심화되었다. 미국 국민은 검증된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고, 그들이 제34대 대통령으로 선택한 인물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였다. 미국 국민은 왜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표하며 열광했는가? 그는 어떤 리더였는가?
현재 우리는 국내외 문제로 혼란스런 상황을 맞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정한 리더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리더는 어떤 리더인가? 세상에는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통합해 이끌어갈 것인가?
역사 속 훌륭한 인물들의 리더십은 단순히 말뿐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그들이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살아 있는 교훈으로서 혼란스런 정치·사회·국제 문제에 직면한 우리에게 그것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해준다. 요즘과 같은 진정한 리더가 부재한 정치 혼돈, 분열의 시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아이젠하워다.

○ 목차
서문
PART 1 타고난 리더
들어가는 말 | “여기 아이젠하워가 있다”
CHAPTER 1 “캔자스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독일 이민자 출신, 캔자스 주 애빌린에 정착하다 |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어린 시절 | 정의감에 불타는 최고의 싸움꾼 | 육체적으로 강하고 진지한 생각을 가진 건강한 소년 | 독서를 통해 받아들인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다 | 애빌린 너머의 세상을 꿈꾸다 |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들이 꿈을 설계하도록 격려한 어머니 | 무료 교육과 미식축구 스타가 되려는 꿈 때문에 웨스트포인트를 선택하다 | 창의성과 독립적 사고가 설 자리 없는 웨스트포인트 | 팀 플레이, 자신감 그리고 열정을 통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미식축구 | “별들이 쏟아진 기수”
PART 2 교육훈련 장교
CHAPTER 2 “나는 해외 파병을 원한다”
제19보병연대의 소위로 군인의 삶을 시작하다 | 메이미와의 결혼 | “나에게는 조국이 첫 번째이고, 당신은 두 번째요” |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연이어 거부당한 참전 요청 | 훈련병들에게 사랑받은 훈련 담당 장교 | 훈련을 잘 시키면 시킬수록 육군은 그가 미국에 남아 있기를 더욱더 원했다 |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엄격한 원칙주의자 |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또다시 잃은 참전 기회
CHAPTER 3 “헤아릴 수 없는 빚”
아주 좋은 준비 기간 | 대륙횡단 차량 원정대 | 아들 아이키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절망의 시기 | 또 다른 열렬한 전차 신봉자 조지 패튼과의 만남 | 소중한 멘토 폭스 코너와의 만남 | 도전의식을 갖게 해준 진정한 배움터 포트 리븐워스
CHAPTER 4 “훌륭한 장교가 진급해야 한다”
맥아더로부터 인정받다 | 직언을 서슴지 않다 | 맥아더와의 인연의 시작: 육군 참모총장 특별보좌관에 임명되다 | 정치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설득과 협상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 | 맥아더와 함께 필리핀으로 | 맥아더와의 관계 악화 | 소문난 조직 전문가 |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동시에 필리핀을 떠나 본국으로
CHAPTER 5 “나는 싸울 준비가 된 사람을 원한다”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상식에 따라 지휘하다 | 왜 싸워야 하는지 병사들에게 이해시켜라 | 공정하고 철두철미한 야전 지휘관 | “자기확신을 가져야 한다” | “출신이 아닌 자질과 능력으로 평가해야 한다” | 전술과 전략을 경험하는 최고의 자리 | 군에서 언론의 가치를 깨닫다 | 야전 지휘관이 될 기회가 또다시 날아가다
CHAPTER 6 “언제나 예기치 않은 일은 일어난다”
맥아더를 상대하는 마셜의 대변인 | 아이젠하워의 진가를 알아본 마셜 | 유럽 전역을 위한 작전 초안을 만들다 | 패튼의 격려 | 마셜이 찾는 모든 일에 꼭 맞는 적임자 | 유럽 작전 전구 사령관에 임명되다
PART 3 유럽 작전 전구 사령관
CHAPTER 7 “우리는 싸우기 위해 여기에 있다”
“비관주의와 패배주의는 참을 수 없다” | 런던에서의 첫 기자회견: 언론을 그의 편으로 만들다 | 영국군과 미군의 원활한 관계를 위한 노력 | 다방면의 기량을 보유한 멀티플레이어 | 영국인들을 사로잡다 | 임무를 잘 수행하는 팀을 만들 줄 아는 능력 | 소박한 휴식처 | 첫 번째 군사적 난제
CHAPTER 8 “우리는 끓는 주전자 위에 앉아 있다!”
북아프리카의 딜레마와 문제 | 횃불 작전 | 지로냐, 다를랑이냐? | 쏟아지는 비난과 시련 |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다 | 시칠리아 공격을 이끌 최고사령관에 임명되다 | 전투 경험 부족이 낳은 시디부지드 전투와 카세린 패스 전투의 쓰라린 패배 | 전투에서 부진한 제34사단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다 | 북아프리카 전역 승리와 전투 경험을 통한 성장
CHAPTER 9 “균형이 잘 잡혀 있어야 한다”
자신감을 되찾게 해준 판텔레리아 섬 공격 | 패튼과 몽고메리 사이에서 길을 잃다 | 패튼을 구하다 | 이탈리아에서 고전하는 연합군 |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할 연합군 총사령관이 되다
PART 4 연합군 총사령관
CHAPTER 10 “실패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가족과의 짧은 만남 | 영국군도 극찬한 능력, 도덕성, 정직성, 솔직함 겸비한 연합군 총사령관 |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한 준비 | 회의적인 처칠에게는 확신을, 악동 패튼에게는 관용과 신뢰를 | 너무나 인간적인 | 노르망디 작전 기간 중 공군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 작전을 연기해야 하는가? | 불확실한 날씨가 가장 큰 변수 | 외로운 최종 결정
CHAPTER 11 “위대한 십자군 전쟁”
디데이, 주위는 던져졌다 | 야전 지휘관들에게 재량권을 주다 | 자신의 전략을 굽히지 않고 처칠을 설득하다 | 병사들을 가식 없는 애정으로 대하다 |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다”
CHAPTER 12 “보석처럼 빛나는 포용력과 지혜”
연합군의 선전으로 인한 축제 분위기에도 신중함을 잃지 않다 | “몬티에 비하면 패튼은 문젯거리도 아니다” | 통합된 연합군을 만들기 위한 노력 | 심각한 보급 문제 | 쓰라린 교훈을 남긴 마켓 가든 작전
CHAPTER 13 “병사들의 전쟁”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으로 인해 병력 부족에 시달리다 | 히틀러의 무리한 아르덴 역습 계획 | 독일군의 아르덴 역습 개시 | 아이젠하워의 위기 통제력이 빛을 발하다 | 몽고메리와의 신경전과 아이젠하워의 극약 처방 | 병사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정해줘야 한다
CHAPTER 14 “임무는 완수되었다”
독일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한 계획 | 독일군을 괴멸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 | 전선의 병사들에게 힘과 위안을 주다 | 잔인한 역사의 현장, 유대인수용소를 직접 방문하다 | 아이젠하워가 베를린 점령을 거부한 이유 | 루스벨트의 서거, 히틀러의 자살, 그리고 독일의 항복 | 경계를 뛰어넘는 통합과 공동의 목표를 향한 노력은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PART 5 미국 제34대 대통령
CHAPTER 15 “나는 아이크를 좋아해”
개선장군의 귀환 | 전후 독일에서 처리해야 했던 골치 아픈 문제들 | 육군 참모총장, 컬럼비아 대학 총장, 나토 최고사령관이 되다 |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로 제34대 대통령에 선출되다 | 매카시즘 광풍과 아이젠하워의 침묵, 그리고 후회 | 군비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협력과 군비감축을 외치다 | 행정부 수반으로서 헌법 준수 의무를 다하다 | 대통령 재선과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에 대한 경고 | “신이시여, 저를 거두어주옵소서”
CHAPTER 16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은 없다”
아이젠하워를 뛰어난 리더로 만든 다섯 가지 자질 | 1.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집중력 | 2. 팀워크 | 3. 공감 능력 | 4. 언론에 정통하고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능력 | 5. 의무에 대한 헌신
○ 저자소개 : 존 우코비츠
군사전문 작가로 『태평양 알라모 (Pacific Alamo)』와 『의무에 대한 헌신 (Devotion to Duty)』을 썼다.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 및 《시카고 트리뷴 (Chicago Tribune)》에 기고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미시간 주 트렌턴 (Trenton)에 살고 있다.
– 역자: 박희성
아주대와 고려대에서 역사 (歷史)를 전공했고, 육군정보학교 중국어반을 수료했다. 두원공대 군사학과 교수를 거쳐, 고려대 역사연구소 및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북한아카이브센터 연구원으로 전쟁사 및 군사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소부대전투를 탐구하는 모임인 ‘창끝전투’의 운영진이다.
저서로는 『워너비 검은 베레』(공저), 『대만국민당당사관특종당안목록집』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패튼』, 『아이젠하워』, 『드골』, 『마셜』(공역), 『리훙장 평전』(공역) 등이 있다. 다큐멘터리 <만주벌의 독립전사들! 청산리전투>, <1:1000의 독립전쟁 김상옥>, <조선정예부대 ‘타이거 헌터’> 및 <진짜사나이 300>의 자문을 맡았다.

○ 출판사 서평
- 상하, 국적,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소통과 통합의 리더 아이젠하워의 삶과 그의 리더십을 담은 평전
“나는 아이크를 좋아해 (I like Ike)!”
이 친근감 넘치는 구호는 1952년 미국을 사로잡은 아이젠하워 대선 후보의 슬로건이다.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은 어둡고 불확실한 미래와 마주해 있었다. 2년 동안 한국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유럽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은 날로 심화되었다. 미국 국민은 검증된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고, 그들이 제34대 대통령으로 선택한 인물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였다. 미국 국민은 왜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표하며 열광했는가? 그는 어떤 리더였는가?
현재 우리는 국내외 문제로 혼란스런 상황을 맞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정한 리더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리더는 어떤 리더인가? 세상에는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통합해 이끌어갈 것인가?
역사 속 훌륭한 인물들의 리더십은 단순히 말뿐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그들이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살아 있는 교훈으로서 혼란스런 정치·사회·국제 문제에 직면한 우리에게 그것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해준다. 요즘과 같은 진정한 리더가 부재한 정치 혼돈, 분열의 시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아이젠하워다.
이 책은 ‘상하, 국적,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소통과 통합의 리더’ 아이젠하워의 삶과 그의 리더십, 그리고 그를 불세출의 리더로 만든 자질 다섯 가지를 담은 평전이다.
아이젠하워는 가난한 독일 이민자 집안 흙수저 출신으로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뒤 다른 동기들이 유럽 전장에서 야전 지휘관으로 활약하며 승승장구하는 동안 국내에서 교육훈련 장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헌신하며 참전 기회만을 기다리던 중 폭스 코너, 맥아더, 조지 마셜, 루스벨트로부터 진가를 인정받으며 급부상해 연합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통합된 연합군을 이끌고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나치 독일을 패배시키고 전후(戰後) 미 육군 참모총장, 컬럼비아 대학 총장, 나토 최고사령관을 거쳐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서 존경을 받은 미국 제34대 대통령이 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 루스벨트, 처칠, 맥아더, 마셜, 패튼 등 쟁쟁한 정치 지도자와 군 지휘관들로부터 인정받고 병사들과 주둔지 영국인, 미국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리더 중의 리더
그러나 미국 국민이 그에게 열광한 것은 그의 화려한 경력 때문이 아니라 그 화려한 경력 뒤에 숨어 있는 그의 리더십과 자질 때문이다. 그는 루스벨트, 처칠, 맥아더, 마셜, 패튼 등 쟁쟁한 정치 지도자와 군 지휘관들로부터 인정받고 병사들과 주둔지 영국인, 미국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리더 중의 리더였다.
이 책은 그의 소통과 공감, 통합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디데이 전날, 그는 상륙작전 첫날 투입될 낙하산부대를 직접 방문했다. 그는 병사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한 것이 아니라 부대원 한 명 한 명을 직접 만나 가벼운 대화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용기와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는 대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여러분 머리 위에서 비행기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비행기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병사들은 오히려 그에게 걱정하지 마시라고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와 병사들은 서로를 존중했고, 서로에게 위안과 힘이 되어주었으며, 상하관계를 뛰어넘어 우리는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이젠하워의 소통과 공감, 통합의 리더십에 감명받은 부대원들은 연합군 사령관을 만나 사기충천하여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수송기를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이처럼 그는 최고 자리에 있는 사람답지 않게 겸손했고, 병사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누구보다 공감하여 그들과 소통하고 서로 위안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한 팀이라는 팀정신을 이끌어냈다. 병사들이 그를 아이크, 아이크 삼촌이라고 부를 만큼 그는 병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함께 공감한 리더였다.
- “아이젠하워는 군인들 가운데 최고의 정치인이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타고난 리더다”
“아이젠하워는 군인들 가운데 최고의 정치인이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타고난 리더다”라고 루스벨트가 평할 정도로 그는 군인이면서도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고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주는 든든한 존재였다. 군인이었던 그는 사실 정치를 혐오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임무가 주로 정치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협상하고 그들을 설득하고 전술과 전략을 짜고 언론을 상대하는 임무였기 때문에 정치적 감각을 쌓을 수밖에 없었고 또 그것을 잘 수행해냄으로써 야전 지휘관이 되기를 원했던 자신의 바람과는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이 각국의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내려놓고 나치 독일을 패배시키자는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서로 양보하도록 유도해 통합된 연합군을 만들어내고, 국적을 초월해 미군, 영국군 장교들이 한 팀이 되도록 독려하고,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패튼, 신중하고 오만하며 무례하기까지 한 몽고메리와 같은 개성 강한 연합군 지휘관들의 경쟁과 충돌을 중재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승리를 이끌어낸 통합과 중재의 귀재였다.
훗날 그가 자신에게 요구된 역할에 대해 “나는 외교관, 변호사, 기획자, 판매원, 매춘부, 거짓말쟁이, 협잡꾼, 배우, 사이먼 러그리(『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 나오는 노예매매업자), 인도주의자, 연설가, 그리고 부수적으로 …… 군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었고, 머리는 아주 냉철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썼듯이 그는 현실에 기반한 냉철한 멀티 플레이어야만 했고, 그 임무를 잘 수행함으로써 그 임무에 적임자임을 입증해 보였다.
-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언론을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한 리더
또 그는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언론을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한 리더였다. 맥아더가 언론에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과대포장한 정보를 주어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려 했던 것과 달리, 아이젠하워는 육군의 단점까지도 언론에 그대로 보도케 하여 국민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등 언론에 과장 없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여 언론과 상호 신뢰를 쌓아갔고 언론을 통해 국민과 소통했다. 그리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이 아니라 실제 전투에서 고생하며 싸우는 부하들과 병사들에게 돌림으로써 그들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인정을 유도하고 그들에게 공로를 돌렸다. 이처럼 전쟁을 통해 언론의 홍보와 선전의 중요성을 체득한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서 당시 새로운 미디어였던 TV를 최초로 선거에 활용하여 “나는 아이크를 좋아해(I like Ike)!”라는 친근감 넘치는 슬로건을 전달하며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내 제3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나는 모든 주요 문제를 시험하는 하나의 척도를 가지고 있다.
그 척도는 ‘이것이 미국을 위해 좋은가’이다”
1952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전쟁영웅 아이젠하워에게 간절히 구애했다. 결국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그동안 정치에 부정적이었던 그에게 언론이 정치를 혐오하면서 왜 경선 출마를 결심했는지 묻자, 만약 국가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의무의 부름에 또다시 답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신뢰할 수 있는 후보자가 되기 위해 어떤 정치적 훈련을 했는지 묻는 기자에게는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가장 활발한 정치 조직 속에서 보냈다. 미국 육군보다 더 활발한 정치 조직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국제 문제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고,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주요 지도자들을 상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선 공약으로 많은 미군 병사들이 희생당하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는데도 지지부진한 한국전쟁을 조속히 끝내겠다고 약속했고, 대통령 당선 후 한국 방문하여 한국 정부에 군 병력 50만 명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촉구하고 한국에 있는 협상단에게 빠른 시일 내 적과 합의점을 찾도록 지시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전쟁을 끝내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
또한 그는 치열한 군비경쟁 속에서 평화가 위협받자, 세계 평화와 협력의 추구를 촉구하면서 1953년 4월 16일 연설에서 “제작된 모든 총, 진수된 모든 군함, 발사된 모든 로켓은 결국 굶주린 사람들에게서 음식을,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서 의복을 빼앗은 것이다. 중폭격기 1대 생산비는 30개의 도시에 새로운 학교를 건설하는 비용과 맞먹으며, 신형 구축함 1척 건조비는 8,000명을 위한 집을 짓는 비용과 비슷하다. 위협적인 전쟁의 먹구름 아래 인간애는 철십자가에 매달려 있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군비감축에 대한 그의 간청은 전 세계인의 지지를 얻었다.
아칸소 주 주시사 오발 포버스가 리틀 톡 센트럴 고등학교에 흑인 학생 입학을 막기 위해 국방경대를 동원하자, 아이젠하워는 질서를 복구하고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수호하기 위해 “어느 누구도 정의를 방해하지 말라”고 하면서 제101공수부대 일부를 급파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헌법을 수호하고 준수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처럼 보수 성향의 공화당원임에도 그는 종종 온건 진보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그는 주간 고속도로를 건설함으로써 미국 전역에서 사람과 제품의 이동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
“나는 모든 주요 문제를 시험하는 하나의 척도를 가지고 있다. 그 척도는 ‘이것이 미국을 위해 좋은가’이다”라고 그가 말했듯이, 그는 오로지 미국의 번영과 발전,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 보수와 진보 진영 어느 한쪽의 논리에 경도되지 않고 헌법과 정의에 따라 소신껏 대통령 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그는 재선에 성공했고,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서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 인간적인 리더 : 그의 리더십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 사랑이 깔려 있다
그는 자신을 인정해준 마셜과 루스벨트에게는 확실한 승리를 보장하는 든든한 존재감을, 회의적인 처칠에게는 설득을 통한 확신을,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악동 패튼에게는 관용과 그의 능력에 대한 무한신뢰를, 꼼꼼하고 신중하며 교만한 몽고메리에게는 아량과 포용을, 승진만 생각하고 교육훈련을 등한시하는 장교들에게는 엄격한 원칙을, 두려워하는 병사들에게는 ‘우리는 언제나 함께’라는 위안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국적이 다른 연합군 참모들에게는 우리는 한 팀이라는 팀 정신을, 독일군과 직접 싸우는 야전 지휘관들에게는 작전을 자유롭게 지휘할 수 있는 자유재량권을, 진실을 알려야 하는 언론에게는 과장 없는 올바른 정보와 신뢰를, 주둔지 영국 국민에게는 겸손함과 친근함을, 검증된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미국 국민에게는 국가의 번영과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통합을, 전쟁의 먹구름 아래 있는 세계인에게는 평화와 따뜻한 인류애를 보여준 진정한 리더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리더십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 사랑이 깔려 있다. 그는 전쟁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바라봤다. 그는 실제로 싸워야 하는 병사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을 희생해야 하는 고향의 부모들의 심정까지 공감하는 인간적인 리더였다. 그는 병사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염려 때문에 디데이 전 가능한 한 많은 병사들을 만나고 싶어했다. 2월 1일부터 6월 1일까지 1주일에 다섯 번 내지 여섯 번씩 26개 사단, 24개 비행장, 5척의 군함과 수많은 보급창고와 병원을 방문하여 병사들 한 명 한 명과 대화를 나누며 위안과 힘을 주었다. 그는 장교들의 가장 중요한 무기인 병사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정해줘야 한다고 믿었으며, 자신에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를 병사들에게 돌렸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진짜 희생한 것은 자신이나 다른 지휘관이 아니라 병사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진흙과 눈, 사막의 모래와 산골짜기에서 고군분투한 병사들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 아이젠하워를 뛰어난 리더로 만든 다섯 가지 자질
-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집중력
“그가 가진 가장 탁원한 점은 목표를 추구하는 힘이 강력했다는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아들 존은 아버지를 설명하며 이렇게 썼다. 아이젠하워는 일찍부터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었다. 아이젠하워는 히틀러를 패배시키겠다는 전쟁의 주요 목표를 변화시키는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단호히 거부했다. 정치적 이유로 자신의 계획을 변경하도록 강요하는 강한 압력을 받으면서도 그의 임무를 결코 단념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히틀러를 패배시키고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을 파괴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고, 그는 15개월 만에 그 기념비적인 임무를 완수해냈다.
아이젠하워는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정했고, 그런 뒤 그 목표를 자신의 행동을 안내하는 도덕적·군사적 나침반으로 활용하여 혼란을 뚫고 승리로 나아갔다. - 팀워크
“나는 조직의 틀 안에서 나의 참모들과 가능한 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
그는 개인적인 명예나 영광보다는 단결과 팀워크에 가치를 두었다. 제15보병연대를 지휘했을 때 그는 자신의 명령을 정확하게 설명해 병사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해야 하는지 이해시켰다. 아이젠하워는 이 과정이 좀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믿었으며, 민주주의에서는 그런 개방성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에서 그는 전쟁의 본질을 더 완전히 파악할 수 있도록 모든 미군 병사들에게 영국의 형제들이 인내했던 희생에 대한 교육을 받도록 지시했다. 1945년 길드홀 연설에서 아이젠하워는 1942년 미군이 런던에 도착했을 당시의 상황을 언급했다.
“우리 대부분은 전쟁의 현실, 특히 나치가 벌인 전쟁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희생이 과장되었다고 믿었고, 여전히 앞에 놓인 임무의 어려움을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모든 이러한 의심, 의문, 그리고 무사안일주의는 움푹 파인 거리와 도로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싹 사라졌습니다. 결국 우리는 전쟁에서 진정한 파트너가 될 정도로 점차 가까워졌습니다.”
팀을 최우선시하는 그의 고집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여러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과 지휘관들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합군을 온전하게 유지했으며,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뒤에는 자신의 경쟁자였던 로버트 태프트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 공감 능력
참모장 비틀 스미스가 아이젠하워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예하 지휘관들을 방문하고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아이젠하워는 미군 병사 한 명 한 명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병사들이 아이젠하워를 그렇게 사랑했던 주된 이유였다.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의사 결정이 병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일부 지휘관들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결정을 했고, 병사들과 부대를 마치 게임판 위의 말처럼 이동시켰다. 다른 지휘관들은 사단과 군단을 전장으로 보냈지만, 아이젠하워는 사람을 보냈다. 그는 비교적 안전한 지휘소에서 명령을 내리지만, 자신이 내린 그 명령의 결과로 전선의 젊은 병사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전쟁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바라봤다. 그는 실제로 싸워야 하는 병사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을 희생해야 하는 고향의 부모들의 심정까지 공감하는 인간적인 리더였다.
대통령으로서 아이젠하워는 수소폭탄 1발을 만드는 비용으로 학교나 집을 얼마나 지을 수 있는지를 예로 들어 설명함으로써 군비경쟁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려고 했고, 무제한적인 핵개발의 위험을 경고했다. - 언론에 정통하고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능력
아이젠하워는 비협조적인 집단인 언론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언론을 적이 아닌 동료로 대했기 때문에 언론 보도의 부정적인 면을 개선할 수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기자단을 환영했고, 기자들과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했다. 그는 기자들이 자신의 관점과 정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언론이 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했고, 미국 대중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나는 비밀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조건 하에 계획의 전체 내용을 그들에게 말해주었고, 비밀 유지 요구가 끝날 때까지 그 어떤 것도 말하거나 쓰지 말라고 요청할 정도로 기자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보의 소통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기자들은 군 참모들이 본국에 있는 시민들과 심지어는 전투 중인 군인들에게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 의무에 대한 헌신
인생에서 여러 번 아이젠하워는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무의 부름에 따라 행동했다. 군 생활 초기 그는 야전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기를 갈망했지만 참모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야망을 제쳐놓고 어떤 임무가 주어지든 최선을 다해 그것에 매진했다. 많은 웨스트포인트 동기들이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 전장에서 전투를 경험했던 반면, 그는 계속해서 교육훈련 기관에서 근무했다. 그는 거듭 실망했다. 하지만 많은 돈을 벌수 있는 두 번의 제안을 거절하고 군대에 남았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고 국가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아이젠하워는 필리핀에서의 맥아더나 유럽에서의 몽고메리와 패튼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항상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육군 장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처럼 그는 모든 사람에게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다섯 가지 자질은 아이젠하워의 인생을 설명하고 정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메이미가 말했듯이 “그의 정직함, 진실성, 그리고 인류에 대한 존중” 때문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