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아인슈타인의 별 같은 말들 : 인터스텔라를 넘나든 지구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완두콩 / 2015.3.23
1955년, 아인슈타인은 복부대동맥류로 입원했다가 수술을 거부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가야할 시간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남긴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인슈타인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아인슈타인의 ‘별 같은 말들’을 SF로 재구성한 책이다.

○ 목차
프롤로그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004
-아인슈타인, 킵 손을 만나다
1. 제게 특별한 재능은 없습니다 013
– 아인슈타인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별 같은 말들
2. 사람은 버팔로 무리 속에서 태어납니다 035
– 인생에 대한 별 같은 말들
3.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입니다 077
– 과학 연구에 대한 별 같은 말들
4. 순수한 사람이 순수함을 보는 곳에서 돼지는 더러움을 봅니다 123
– 도덕과 종교에 대한 별 같은 말들
5. 사람은 모두 자기 신발 사이즈로 사물을 판단합니다 155
– 철학과 인성에 대한 별 같은 말들
6.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자기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적습니까 183
–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별 같은 말들
7. 평화로 가는 길은 오직 평화로만 열립니다 221
– 평화에 대한 별 같은 말들
8. 저는 ‘고독한 여행자’입니다 251
– 다시 아인슈타인 자신에 대한 별 같은 말들

○ 저자소개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은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파울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뮌헨에 전기공장을 세우고 일을 시작하자 그곳으로 이주해 학업을 시작했으나 19세기 독일의 엄격하고 현학적인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성적 부진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가족들이 밀라노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독학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수학 성적에 주목한 학장의 배려로 아라우에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등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후 마침내 연방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1900년 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스위스 시민이 되었고, 2개월간 수학 가정교사로 일하다 베른에 있는 특허사무소 심사관으로 채용되었다. 5년간 특허사무소에 일하던 아인슈타인은 1905년 독일의 『물리학연보Annalen der Physik』에 5개의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이라는 논문으로 연방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다른 논문들에서는 유명한 광전효과, 브라운운동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제시했다. 특히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모든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모든 자연 법칙이 똑같다면, 시간과 물체의 운동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이론을 제기하면서 그때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던 우주관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또한 그는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를 확립했는데, 이에 따르면 ‘물질이 갖는 에너지는 그 물질의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과 같다’고 한다. 이것이 유명한 공식 E=mc2이다.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14년 독일 프로이센과학아카데미에 자리를 얻어 그곳에서 연구하면서 때때로 베를린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1916년 마침내 『물리학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를 발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뉴턴이 말한 힘이 아니라 ‘시공연속체 속에 있는 존재에 의해 생긴 굽어진 장(場)’이다. 그의 이론으로 시공간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바뀌었으며, 그때까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우주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19년 런던 왕립학회가 프린시페 섬에서 행한 과학탐사에서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예측한 계산값을 증명하는 일식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21년, 아인슈타인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1905년에 발표한 ‘광전효과’에 대한 공로 때문이었다. 이 이론을 설명하는 광양자 가설은 훗날 양자역학을 낳는 시금석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양자역학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고 거리를 두며 말년에는 주로 통일장이론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시민권을 포기하고 독일을 떠난 그는 이후 20여 년 동안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거의 변화 없는 생활을 유지했다. 1939년,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핵무기 연구에 관한 유명한 서한에 서명함으로써 ‘맨해튼 계획’ 수립에 영향을 끼쳤지만,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충격을 받아 핵무기 폐기를 위한 운동에 동참했으며, 비무장 세계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한편 1940년,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을 유럽인으로 생각했다. 1952년 이스라엘의 2대 대통령을 제안받기도 했던 그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1955년 대동맥류 파열로 프린스턴 병원에 입원한 뒤 그해 4월 18일 그곳에서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시기별 연구들을 살펴보면, 유년기 숙부의 영향으로 수학과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취리히의 연방공과대학에서 4년간 물리학과 수학에 몰두하게 된다.
1900년 아인슈타인은 베른에 있는 스위스 특허 사무소에서 심사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유명한 월간 학술지 「물리학 연보 (Annalen der Physik)」에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 (A New Determination of Molecular Dimension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나중에 취리히 대학교에서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연보」에 중요한 논문 4개를 더 발표했다. 브라운 운동 이론에 관한 「정지 액체 속에 떠 있는 작은 입자들의 운동에 대하여 (On the Movement of Small Particles Suspended in Stationary Liquids Required by the Molecular-Kinetic Theory of Hea)」, 빛을 파동으로서뿐 아니라 입자 성질을 갖는 광자로 가정해 광전 효과를 설명한 「빛의 발생과 변화에 관련된 발견에 도움이 되는 견해에 대하여 (Über einen die Erzeugung und Verwandlung des Lichtes betreffenden heuristischen Ge- sichtspunkt)」, 특수 상대성 이론을 소개한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 (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 영: 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 질량과 에너지가 같다는 사실을 확립한 「물체의 관성은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 (Ist die Tragheit eines Korpers von seinem Energieinhalt abhangig)」.
1916년에는 「물리학 연보」에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초 (Die Grundlagen de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를 발표한다. 이로 인해 아인슈타인은 천재적인 과학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고, 1921년 상하이에서 “당신의 광전법칙과 이론물리학 분야에서의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국제전보를 받는다.
아인슈타인은 전자로부터 행성까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작용을 지배하는 일반 법칙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단일한 방정식이나 공식들을 물질과 에너지의 보편적 속성들과 연관시키려고 했는데 이는 나중에 통일장 이론으로 불리게 된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자 아인슈타인은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떠났으며, 1955년 4월 18일 프린스턴 병원에서 잠을 자다가 숨을 거두었다.
– 편집 : 이영일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의 원작 에세이를 펴낸 글작가다.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글작가의 존재감을 처음으로 각인시킨 작가다. 소설 〈외갓집은 언제나 부잣집〉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애니메이션 《두치와 뿌꾸》, 《요리조리 마술사》 등이 있다.
– 역자 : 김광음
영어를 수려한 우리말로 옮겨서 독자와 만나고 있는 번역가이자 평화옹호론자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다년간 출판사와 번역회사에서 근무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아인슈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책을 번역했다. 미국 언론매체의 아인슈타인 관련 인터뷰 기사를 발췌하고 번역하면서 그는 위대한 과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가진 아인슈타인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Second Curve》, 《Eight Inaugural Addresses of 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Dianetics》 등을 번역했다.

○ 책 속으로
“천재성과 근면성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근면성을 선택할 것입니다.”
˝불행은 행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인간에게 유익합니다.“
“당신이 빨리 가려고 하면 할수록, 결과적으로 당신은 더 짧은 시간밖에 누리지 못합니다.”
“잡고 있던 낡은 밧줄을 놓아야 새 밧줄을 잡을 수 있습니다.”
˝노력만이 우리를 자기 자신이라는 속박에서 해방시켜 우리를 가장 위대한 사람들의 일원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진리와 지식의 영역에서 재판관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들의 웃음 속에서 난파되고 말 것입니다.”
“배움과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 있다.”
“책은 많이 읽으면서 생각은 적게 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상에 묻혀 버린다.”
“인생의 폭풍우를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맑은 날 저에게는 저 자신이, 위험한 것이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사막의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처럼 생각됩니다. 사람은 자신을 위해 작은 세계를 창조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지속하는 진정한 존재의 위대함과 비교하면 애처로울 정도로 무의미한데도 자신을 대단히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이 판 구멍 속에 처박힌 두더지처럼.”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단지,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몰두할 뿐입니다.”

○ 출판사 서평
–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단지,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몰두할 뿐입니다.” _ 아인슈타인의 ‘별 같은 말들’을 SF로 재구성
1955년, 아인슈타인은 복부대동맥류로 입원했다가 수술을 거부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가야할 시간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남긴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인슈타인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 저 별 어딘가에 인류가 살 만한 환경이 있을 거야
2055년, 그동안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전쟁으로 지구는 황폐화되어, 급기야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으로 변했다. 절체절명! 인류 멸망의 위기 상황이다. 이때 한 과학자 집단이 인터스텔라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무인 우주선 ‘오리온’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오리온 1호를 100년 전으로 보내 아인슈타인을 데리고 왔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인류가 이주해 살 만한 환경을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 그때 화성 근처에서 웜홀이 발견되었다. 연구진은 아인슈타인이 웜홀을 통과해 다른 우주공간으로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제게 특별한 재능은 없어요. 그저 유별나게 호기심이 많을 뿐이죠.” 아인슈타인은 이 말을 남기고 우주로 날아가 인류가 이주할 별을 찾아 종횡무진하게 된다.
– 인류의 석학들과 함께 한 아인슈타인의 별 같은 말들
그 동안 연구진은 오리온 2호에서 7호를 차례로 만들었다. 거기에 각각 버나드 쇼와 찰리 채플린, 퀴리 부인과 프로이트, 간디와 네루, 괴테와 슈바이처, 러셀과 아인슈타인의 장남 한스, 생텍쥐페리와 루스벨트 대통령을 실어 아인슈타인에게로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공간에서 만난 그들과 인생과 과학연구, 도덕과 종교, 철학과 인성, 가르침과 배움, 평화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오리온 1호에 오른 뉴욕 타임스 기자가 이 말들을 기록했다.
“진리가 우리의 정신 속에 깃들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종소리처럼 힘차고 자비롭게 공기 속에 울리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 괴테
“독일 속담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 신발 사이즈로 사물을 판단한다.’” – 아인슈타인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안에 빛이 있으면 밖은 저절로 빛나게 됩니다.” – 슈바이처
–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인류를 x7 행성으로 이주시키는 일에 전념했다
아인슈타인 일행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그곳에서 아인슈타인 일행은 x7 행성을 보았다. x7 행성이 탄생하고 난 뒤 1억 수천만 년이 흘렀다. x7 행성에 육지와 바다가 만들어지고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지구와 같은 환경이다. 아인슈타인 일행은 이 사실을 지구에 알린다. 지구에서는 대형 수송선 오리온 8호를 만들어 1차로 888,888명의 지구인을 x7행성으로 보낸다. 이후 이주 승객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적이란 없다고 믿고 사는 것과 어디에나 기적이 존재한다고 믿고 사는 것. 저는 후자의 삶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아인슈타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