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악마의 시 (상•하)
살만 루시디 / 문학세계사 / 2009 ~ 2010
1988년 출간되고 1년 후 이란의 정치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시디에게 이슬람교 모독죄를 적용하고 이슬람교도들에게 루시디의 처형을 명령한다. 그 이후 작가 루시디 뿐 아니라 관련 출판사, 신문사, 번역자들에게 수많은 테러를 일으키며 아직까지도 도피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작 『악마의 시』의 국내 첫 완역판이다.
봄베이발 여객기가 런던 상공에서 폭발하고 두 남자가 살아남는다. 두 주인공이 각각 천사와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악마의 시』는 성서의 ‘욥기’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처럼 신의 묵인 아래 인간을 제물로 삼는 악마의 ‘실험’을 다루고 있다. 현재와 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작품 속에서 작가는 선과 악, 남과 여, 식민자와 피식민자, 강자와 약자 등 인간세계의 현실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립과 갈등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 선과 악의 틈바구니 속에서의 아찔한 독서체험
성서에 버금갈 ‘찬란한 생명의 책’이라는 격찬을 받고 있는『악마의 시』. 모두 아홉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홀수장에서 현실이, 짝수장에서 천사로 변신한 지브릴 파리슈타의 꿈이 교대로 진행된다. 물론 그 ‘현실’ 속에서는 사람이 초자연적 존재로 둔갑하는 초현실적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또 종종 꿈과 현실이 겹쳐지기도 한다. 이 작품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까닭이 그것이다.
이 책은 신의 묵인 아래 인간을 제물로 삼은 악마의 ‘실험’을 다루고 있다. 현재와는 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의 반응을 다루는 이 주제는 일찍이 세계 각지의 신화와 전설, 동화 등에서 자주 변주되었던 것이다.
선과 악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만찮은 분량의『악마의 시』는 수많은 삽입구와 삽입절로 때로는 미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종 경쾌하고 해학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작가의 현란한 말재간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무수한 상징과 은유들 때문이다.
○ 목차
- 상권
- 천사 지브릴
- 마훈드
- 엘오엔 디오엔
- 아예샤
- 보이지만 안 보이는 도시
- 하권
- 자힐리아로 돌아오다
- 천사 아즈라일
- 아라비아해 갈라지다
- 신기한 램프
- 옮긴이의 말 : 20세기 최고의 문제작

○ 저자소개 : 살만 루시디 (Salman Rushdie)
1947년 6월 19일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온갖 신기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덕분에 종교에 관한 금기 없는 상상력을 키웠다. 열세 살에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고, 삶의 터전이 바뀐 이 경험은 이후 작품활동의 큰 뿌리가 되었다. 196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입학해 역사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광고 카피라이터를 거쳐 1975년 장편소설 『그리머스』로 데뷔했다. 1981년 두번째 작품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 등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 작가의 명성을 얻었다. 1988년 오 년 동안 공들여 쓴 『악마의 시』 발표 후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에 대한 묘사 때문에 큰 논란에 휩싸였고, 이듬해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 작품이 이슬람교와 무함마드를 모독했다며 작가를 처단하라는 종교 법령 ‘파트와’를 선포해 긴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고국 인도는 그의 입국을 금지했고 『악마의 시』와 관련된 전 세계의 출판인과 번역가, 서점이 테러를 당했다. 이후 파트와 선포 구 년 만인 1998년 이란 정부는 파트와를 집행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영국 경찰이 루슈디 경호팀을 완전히 해산하기까지는 사 년이 더 걸렸다. 루슈디는 살해 위협 속에서도 종교적 관용,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역설하며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애썼고, 『하룬과 이야기 바다』 『이스트, 웨스트』 『무어의 마지막 한숨』 등 도피생활중에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휫브레드 최우수 소설상, 오스트리아 정부가 수여하는 유럽문학상, 독일 올해의 작가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한밤의 아이들』은 1993년에 부커상 25주년 기념 역대 최고 작품을 뽑는 ‘부커 오브 부커스’를 수상하기도 했다. 2000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래 『분노』를 비롯해 『광대 샬리마르』 『피렌체의 여마법사』 『2년 8개월 28일 밤』 『키호테』 등을 출간했으며, 2007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2008년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 수상 40주년을 기념해 일반 독자들이 선정한 ‘베스트 오브 더 부커’의 영예를 안았다. 2014년에는 “뛰어난 문학적 성취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펜/핀터상을 수상했고, 2019년 『키호테』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 역자: 김진준
1964년에 태어났다. 연세대 사회학과 및 영문학과를 거쳐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스플릿 스커트』, 『브루스터 플레이스의 여인들』, 『도둑신부』, 『강한 딸 만들기』, 『서른 개의 슬픈 내 얼굴』, 『푸른 꽃』, 『유혹하는 글쓰기』, 『총, 균, 쇠』, 『페넬로피아드』, 『해상시계』, 『분노』, 『시라노』,『한밤의 아이들』, 『롤리타』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 상권
하늘에서 곤두발질치며 지브릴 파리슈타가 노래했다.
‘다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네. 이야호! 야호! 젖가슴같은 대지에 내리려면 먼저 날아야 한다네. 파닥! 파다닥! 먼저 울지 않는다면 어찌 다시 웃을 수 있으랴? 한숨없이 어찌 연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랴? 바바, 그대 다시 태어나고 싶다면……’
새해 첫날 무렵이나 그 무렵의 어느 겨울날 아침, 동트기 직전의 쾌청한 하늘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두 명의 성인 남자가 자그마치 이만구천이 피트라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낙하산도 날개도 없이 영국 해협을 향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나 그대에게 말하건대 죽어야 한다네, 말하건대, 말하건대.’ — p.15
그들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파괴된 보스탄 호에서 떨어져 뮤사히 살아남은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두 사람은 어느 해변으로 밀려가서 발견되었다. 둘 중에서 말이 더 많은 쪽, 그러니까 자줏빛 셔츠를 입은 자는 정신없이 횡설수설하는 과정에서 자기들이 물 위를 걸었으며 파도가 자기들을 태워 가만히 해변까지 데려다주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무슨 마술처럼 여전히 젖은 중산모를 쓰고 있던 또 한 사람은 그 말을 부인했다.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이렇게 운이 좋을 수도 있습니까?”
물론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으니까. 지금으로서는 무소부재니 무소부지니 하는 것들을 주장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 일은 참차가 의지력으로 원했고 그 의지에 따라 파리슈타가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어느 쪽인가? 파리슈타의 노래는 어떤 것이었나, 천사의 노래, 악마의 노래? 나는 누구냐고? — p.25
“날아, 노래해.”
참차는 지브릴를 붙잡고 늘어졌고, 지브릴은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차츰 속도와 힘을 증가시켜 두 팔을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더 힘껏, 더 힘껏 파닥거렸고, 그렇게 파닥거리는 동안에 입에서는 노래가 터져나왔는데, 레카 메르찬트의 유령이 불렀던 노래처럼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언어였고 들어본 적도 없는 곡조였다. 지브릴은 이 기적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성을 통해 그것을 무화하려 한 참차와는 달리 지브릴은 나중에도 이 노래가 정말 아름다웠으며 노래가 없었다면 퍼덕임도 쓸모가 없었을 것이며 그 퍼덕임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틀림없이 돌멩이나 그 무엇처럼 곧장 떨어져 파도에 부딪쳤을 것이고 저 팽팽한 북 같은 바다에 닿는 순간 산산이 박살나고 말았을 것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게 될 터였다.
그런데 그들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지브릴이 점점 더 힘껏 퍼덕이며 노래할수록, 노래하며 퍼덕일수록 추락 속도는 더욱 뚜렷하게 줄어들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산들바람에 날린 종잇장처럼 해협 위로 사뿐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들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파괴된 보스탄 호에서 떨어져 뮤사히 살아남은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두 사람은 어느 해변으로 밀려가서 발견되었다. 둘 중에서 말이 더 많은 쪽, 그러니까 자줏빛 셔츠를 입은 자는 정신없이 횡설수설하는 과정에서 자기들이 물 위를 걸었으며 파도가 자기들을 태워 가만히 해변까지 데려다주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무슨 마술처럼 여전히 젖은 중산모를 쓰고 있던 또 한 사람은 그 말을 부인했다.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이렇게 운이 좋을 수도 있습니까?”
물론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으니까. 지금으로서는 무소부재니 무소부지니 하는 것들을 주장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 일은 참차가 의지력으로 원했고 그 의지에 따라 파리슈타가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어느 쪽인가?
파리슈타의 노래는 어떤 것이었나, 천사의 노래, 악마의 노래?
나는 누구냐고? —pp.24-25
“날아, 노래해.”
참차는 지브릴를 붙잡고 늘어졌고, 지브릴은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차츰 속도와 힘을 증가시켜 두 팔을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더 힘껏, 더 힘껏 파닥거렸고, 그렇게 파닥거리는 동안에 입에서는 노래가 터져나왔는데, 레카 메르찬트의 유령이 불렀던 노래처럼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언어였고 들어본 적도 없는 곡조였다. 지브릴은 이 기적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성을 통해 그것을 무화하려 한 참차와는 달리 지브릴은 나중에도 이 노래가 정말 아름다웠으며 노래가 없었다면 퍼덕임도 쓸모가 없었을 것이며 그 퍼덕임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틀림없이 돌멩이나 그 무엇처럼 곧장 떨어져 파도에 부딪쳤을 것이고 저 팽팽한 북 같은 바다에 닿는 순간 산산이 박살나고 말았을 것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게 될 터였다.
그런데 그들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지브릴이 점점 더 힘껏 퍼덕이며 노래할수록, 노래하며 퍼덕일수록 추락 속도는 더욱 뚜렷하게 줄어들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산들바람에 날린 종잇장처럼 해협 위로 사뿐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들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파괴된 보스탄 호에서 떨어져 뮤사히 살아남은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두 사람은 어느 해변으로 밀려가서 발견되었다. 둘 중에서 말이 더 많은 쪽, 그러니까 자줏빛 셔츠를 입은 자는 정신없이 횡설수설하는 과정에서 자기들이 물 위를 걸었으며 파도가 자기들을 태워 가만히 해변까지 데려다주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무슨 마술처럼 여전히 젖은 중산모를 쓰고 있던 또 한 사람은 그 말을 부인했다.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이렇게 운이 좋을 수도 있습니까?”
물론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으니까. 지금으로서는 무소부재니 무소부지니 하는 것들을 주장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 일은 참차가 의지력으로 원했고 그 의지에 따라 파리슈타가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어느 쪽인가?
파리슈타의 노래는 어떤 것이었나, 천사의 노래, 악마의 노래?
나는 누구냐고? —pp.24-25
- 하권
새 출발과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대체로 ‘연속적인’존재로 남고 싶어했다고, 즉 과거와 이어진 존재, 과거로부터 생겨난 존재이기를 바랐다고, 그는 죽음 직전에 이르는 질병도 원하지 않았고 변형을 야기하는 추락도 원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사실 그가 무엇보다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상황의 변화, 즉 꿈 속에서 생시로 새어나와 현실의 자아를 압도하고 자신을 스스로 원하지도 않는 천사 지브릴로 바꿔버리는 그런 변화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 그렇다면, 적어도 이문제에 관한 한 그의 자아는 여전히 ‘진짜’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반면에 살라딘 참차는 ‘스스로 선택한’ 불 연속성의 산물이고, ‘자의적으로’ 역사를 거역한 그를 가리켜 ‘가짜’라고 부를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처럼 자아가 가짜이기 때문에 참차는 더욱 지독하고 심각한 허위를 – ‘악’이라고 해도 좋겠다 – 자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바로 그것이 진실이라고. 그것이야말로 추락과 더불어 그의 내부에서 활짝 열린 하나의 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한 용어들의 논리에 비추어보건데, 그동안의 온갖 변천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불변의 인간으로 ‘남고 싶어한다’ 는 점에서 지브릴은 가히 ‘선하다’고 볼 수 있겠다. — p.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일이 끝나고 여자들이 내시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그렇게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는데, 바알은 제일 어린 아가씨가 자기 손님인 식료품 장수 무사에 대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인간! 예언자의 마누라들에게 푹 빠져 있다니까ㅇ. 그 여자들을 너무 미워해서 일므만 꺼내도 흥분할정도예요. 그 사람 말로는 내가 아예샤를 쏙 빼닮았대요. 다들 알다시피 그 여자는 거물 나으리의 애첩이잖아요. 나참.”
그러자 오십대 창녀가 불쑥 기어들었다.
“이봐, 그 하렘의 여자들 말인데, 요즘은 사내들이 온통 그 얘기뿐이란 말씀이야. 마훈드가 그 여자들을 가둬놓은 것도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그것 때문에 사태가 더 심각해졌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온갖 상상을 하게 마련이니까.”
특히 이 도시에서는 더 그렇지, 하고 바알은 생각했다. 우리의 자할리아, 자유 분방한 도시, 마훈드가 그 규정집을 들이대기 전에는 여자들이 늘 화려한 옷차림을 하던 도시, 화제가 온통 성교와 돈, 돈과 섹스에 집중되어 있었고 또한 말만으로 그치지도 않았던 도시.
그는 제일 어린 창녀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자를 위해 흉내를 내주지 그래?”
“누구 말예요?”
“무사. 아예사가 그렇게 짜릿한 쾌감을 준다면 그의 아예샤가 되어주는 것도 좋지 않겠어?” —p.134

○ 출판사 서평
- 선과 악의 영원한 대결을 펼쳐보이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
이슬람교 모독죄로 이란의 정치,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종교 법령 ‘파트와’에 의해 처형 명령을 받은 살만 루시디의『악마의 시』는 서구와 회교국간의 정치, 종교적 갈등을 불러일으키키도 하였지만, 이미 그 작품은 현 세대가 영어권에서 내놓은 20세기 최고의 소설이 되었다. 그러나 1988년도에 출간된 이 작품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여태까지 완역되어 출간되지 못하였다.『악마의 시』출간 당시 그의 책을 번역한 일본인 번역가가 살해당하고, 터키, 이탈리아인 번역가와 노르웨이의 출판인이 부상을 당하였고, 파키스탄에서는 루시디를 옹호한 사람에 대해 사형이 언도되었다. 이러한 정황은 국내에서의 출간을 지연시킨 한 요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란 대통령에 의해 루시디에게 내려진 사형선고가 공식적으로 철회된 지금, 루시디에 대한 가십거리나 비극적 뉴스의 한 토막으로만 전해졌던『악마의 시』를 직접 뛰어난 문학작품으로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 책은 우리의 종교적 편견을 벗기고, 무수한 상징과 비범한 상상의 입구를 열어 놓고 있다.
성서에 버금갈 ‘찬란한 생명의 책’이라는 격찬을 받고 있는『악마의 시』는 온갖 언어와 신화와 상징들을 현란하게 구사하며 강렬한 희극 정신과 폭넓은 지식을 선보였던 루시디의 이전 작품에서보다 더 크고 빠른 상상의 회전문을 돌리고 있다. 이 소설은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교대로 진행되며 때로는 겹쳐지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는 기존의 언어와 사상에 연금술을 가한다. 루시디는 마치 언어의 새로운 창조자처럼 띄어쓰기를 무시하거나 문장부호를 생략하기도 하며, 낱말을 중간에서 뚝 잘라버리거나 몇 개를 합쳐 아예 신조어를 만들기도 하고, 문장구조를 비틀거나 같은 품사 여러 개를 병렬시키기도 한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루시디의 몽환적이면서도 요새처럼 견고하기 그지없는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때로는 거대한 흡인력을 내뿜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서운 묘사력으로 독자를 압도하기도 한다. ‘신의 시’와 ‘악마의 시’가 뒤섞인 계시를 받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 선과 악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찔한 독서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모두 아홉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홀수장에서 현실이, 짝수장에서 천사로 변신한 지브릴 파리슈타의 꿈이 교대로 진행된다. 물론 그 ‘현실’ 속에서는 사람이 초자연적 존재로 둔갑하는 초현실적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또 종종 꿈과 현실이 겹쳐지기도 한다. 이 작품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까닭이 그것이다. 간단히 말해서『악마의 시』는 신의 묵인 아래 인간을 제물로 삼은 악마의 ‘실험’을 다루고 있다. 현재와는 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의 반응을 다루는 이 주제는 일찍이 세계 각지의 신화와 전설, 동화 등에서 자주 변주되었던 것인데, 이는 성서의 ‘욥기’와『파우스트』를 통해 비교해 볼 수 있다. 선과 악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만찮은 분량의『악마의 시』는 수많은 삽입구와 삽입절로 때로는 미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종 경쾌하고 해학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작가의 현란한 말재간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무수한 상징과 은유들 때문이다.
1989년에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루시디의 작품『악마의 시』는 신성모독이라며 이슬람교 신자들에게 루시디를 추적해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세인의 관심은 그 작품 자체에보다는『악마의 시』에 연관된 여러 사건들에 집중되었다. 영국 정부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지출하고, 회교국가에서는 루시디 살해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신장매각 각서를 작성하고, 작가는 멀쩡히 살아 뉴욕에서 인도 출신 미모의 전직 모델과 생명을 건 열애에 빠졌다는 등…… 사실『악마의 시』에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그의 예언에 대한 불신)와 그의 열두 명의 아내에 대한 불경한 비유(창녀들에 대비한 내용) 등이 묘사되어 있어 이슬람교인들의 분노를 살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코란의 일부를 ‘악마의 시’로 언급한 것은 알라신에 대한 신성 모독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는 이슬람교에 대한 모독적 풍자보다는 영국과 영국인들에 대한 매몰찬 비판이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의 문학작품에 대한 誤讀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되는가는 ‘루시디 사건일지’를 통해 확인된다.『악마의 시』를 읽고 종교적 모독을 느끼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속성인 허구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악마의 시』를 종교의 엄숙함으로서가 아니라, 허구와 유머로 얽혀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 살만 루슈디의 소설 ‘악마의 시’ (The Satanic Verses) 개관
악마의 시 (The Satanic Verses)는 1988년 9월 26일 영국에서 출판된 살만 루슈디의 소설이다. 무함마드의 생애를 다룬 이 소설은 대한민국에서는 연세대 교수인 김진준에 의해 번역 (악마의 시 상·하, 문학세계사, 2001년)되었다.
- 이슬람교에 대한 모독
이슬람 법학자의 타바리에 의하면, 예언자 무함마드는 일찍이 메카의 다신교의 신을 인정하는 장귀를 읽어 내렸다고 하는 내용의 일이 기록되고 있다. 후에 무함마드는, 그 장귀를 신의 예언에 의하는 것은 아니고 악마에 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이 책 원제의 의미이다. 그 밖에도 이슬람교에 대한 야유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이슬람교에 대한 도발로 받아들여졌다.
- 사형 선고와 그 영향
1989년 2월 14일이란의 이슬람교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궐석 재판에서 저자인 루슈디와 책 발행에 관련된 사람 등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루슈디는 영국 경찰에 의해 엄중하게 보호되었다. 사형 선고는 이슬람법의 해석인 파트와 (fatwa)로써 선고되었다.1989년 2월 15일이란의 한 재단에서 파트와의 실행자에 대한 고액의 현상금이 제시된다.1989년 6월 3일루홀라 호메이니가 심장 발작으로 사망하였으나, 파트와의 철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트와는 이를 발한 본인 이외는 철회할 수 없기 때문에, 이후에 철회할 수 없게 되었다.1991년 7월 12일일본어 번역을 출판한 이가라시 히토시 (츠쿠바 대학 조교수)가 연구실에서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목을 반복해 잘려 참살되었고 각국의 번역자도 위협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노르웨이에서도 역자가 누군가에게 습격당하고 중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났다.1993년터키어 번역자가 참가한 집회에서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37명이 사망했다.1998년이란 정부는 파트와를 철회할 수 없지만 향후 일절 관여하지 않고 현상금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추천평
엄청난 작품이다. 눈부실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매혹적인 말솜씨와 놀라운 인물 묘사를 자랑하는 『악마의 시』는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재미와 철학을 함께 담고 있다. 루시디는 마치 천 개의 눈을 가진 듯 우리들 마음 속의고뇌와 우리의 욕망에 깃든 허영을 꿰뚫어보지만 그 속에는 위트와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다. – 나딘 고디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