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양명 선생 유언록
왕양명 / 소나무 / 2009.10.10
‘유언록’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왕양명의 유언을 모아 놓은 어록이다. 제자들과의 학문적 문답을 정리한 것으로, 서간이나 문록에 비해 다음어지지 않은 감이 있지만 왕양명의 사상을 보다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과의 질의응답 형태를 띠므로, 한 학파의 논점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자료다.
이 책이 다루는 ‘양명선생유언록’은 양명전집의 판본에 수록되어 있고 단행본으로도 남아 있지만 학문적으로 거의 잊혀진 자료라고 한다. 최근 일본 학자들에 의해 간간이 언급되고 있는 정도라고 한다. ‘유언록’은 왕양명이 강조한 지행합일이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또한 그가 불교에게 가졌던 견해도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왕양명은 유학자였지만 불교에 대해 관대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책의 역자가 양명학에 대해 논한 글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 목차
권두논문|『양명선생유언록』에 대하여
- 「유언록」과 『전습록』
- 「유언록」의 특징
- 「유언록」에 대한 기존의 연구
양명선생유언록 卷上
양명선생유언록 卷下
부록|양명학, 인간을 향한 무한한 사랑, 그리고 실천
- 구도의 열정
- 확신과 실천
- 수양과 철학함
○ 저자소개 : 양명 왕수인 (王守仁, 1472 ~ 1528)
양명 왕수인 (王守仁, 1472년 10월 31일, 중국 닝보시 위야오시 ~ 1528년 1월 9일)은 중국 명나라 중기의 사상가이자 정치가로 양명학 (陽明學)의 창시자이다. 자는 백안 (伯安). 호는 양명 (陽明)이며, 원래 이름인 왕수인 대신 호를 사용하여 왕양명 (王陽明)이라고 곧잘 불린다.
대표적 업적은 양명학을 창시한 것이다. 양명학은 당시 과거시험 합격에 치우쳐 있던 주자학 (朱子學)을 비판하며 창시되었으며, 당대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양명학을 창시함으로써 이지 (李贄), 하심은 (何心隱), 나여방 (羅汝芳) 등 제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의 나카에 토주 (中江藤樹)가 일본에 양명학파를 설립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책에는 ‘대학문’과 ‘전습록’, ‘유언록’ 등이 있다.
사상 분야에서의 업적과 명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군사지휘관이었다.
소년 시절에는 무관을 동경하여 병법 연구에 몰두했고, 북방을 유람하며 오랑캐 소년들과 말타고 활을 쏘며 어울리기도 했다. 이 때의 경험은 후에 지방행정관으로서 일하면서 도적떼나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가장 큰 군사적 성공은 1519년 영왕 (寧王) 주신호 (朱宸濠)의 반란을 평정한 것이다. 정덕제가 친정을 결정할 정도로 큰 반란이었는데 당시 병주부사였던 왕수인은 뛰어난 책략으로 정덕제가 도착하기 전에 1만의 병사로 10만의 영왕군을 괴멸시키고 주신호를 사로잡았다. 이 과정에서 후장 장전식 포 불랑기포를 동양의 전장에서 처음 도입하기도 하였다.
이 후 벼슬을 떠나 있었으나 1528년 광서성에서 일어난 반란 토벌을 명 받고 성공적으로 진압한 후 귀환하던 중 병을 얻어 사망한다.
주요저서로 ‘전습록’ (한정길, 정인재 역, 청계 / 김동휘 역, 신원 / 정차근 역, 평민사), ‘대학문’ (전습록 부록), ‘유언록 : 양명선생유언록’ (소나무출판, 정지욱 역) 등이 있다.
- 역자 : 정지욱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큐슈대학교에서 송명철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경대학교 연구교수다. 저서로 『일본양명학』, 『’나’뛰어넘을 것인가, 깨어있을 것인가-좌선과 정좌』가 있다.
○ 출판사 서평
- 양명학 연구의 신지평을 열어줄 새로운 자료의 발굴
‘양명선생유언록’은 명대 최고의 학자로 칭해지는 왕양명이 평소 남긴 말들을 모아놓은 어록이다. ‘어록’이란 제자들을 비롯한 타인들과의 학문적 문답을 수집 편찬한 것으로, 서간이나 문록(文錄)에 비해 다듬어지지 않은 감이 있으나 가식되지 않은 생생한 사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기본 자료라 할 수 있다. 현재 왕양명의 어록 가운데 가장 빈번하고 중요하게 활용되는 자료로는 『전습록』을 들 수 있다. 『전습록』은 왕양명의 고제(高弟) 전서산의 주도하에 편집된 것으로, 그의 역량이나 왕문(王門) 내에서의 위상을 고려할 때 『전습록』이 왕양명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필수 서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어느 편저이든 편집자의 의도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습록』에도 스승 양명에 대한 전서산의 이해와 관점이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 가장 대표적 예가 바로 ‘사구교(四句敎)’이다. 따라서 명대 당시 이미 몇몇 학자들은 그것의 신빙성을 일부 의심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볼 때 만일 다른 어록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들과 함께 보는 것이 양명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 『양명선생유언록』은 중요한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양명선생유언록』은 증재한이 왕문의 일부 학자들이 기록해 놓은 왕양명의 어록을 모아 편집한 서적이다. 전서산도 『전습록』을 간행할 당시 이 서적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으며 여기에서 일정 부분을 발췌하여 『전습록』에 수록해 놓았다.
본서는 한 때 강서성(江西省)을 중심으로 꽤 널리 유포되었던 듯하나, 이후 『전습록』의 위세에 눌려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리고 지금 현존하는 『양명전집』에도 거의 수록되어 있지 않아 점차 학계에서 잊혀져왔다. 그러나 다행히 여동본(閭東本) 『양명문집』에 채록되어 있으며, 이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유언록』1권과 합본되어 단행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거의 잊혀진 자료의 상태에 놓여 있다. 국내에서는 양명학 연구자조차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상황이다. 다만 기본 도서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이미 에도 시기부터 본서에 관한 언급이 간간이 있어 왔으며, 최근 한 학자에 의해 일역되기도 하여 연구에 활용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잊혀진 자료를 발굴하여 번역된 형태로 소개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명대 최대의 학자로 중국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사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왕양명의 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배가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본서에는 불교에 대한 양명의 관용적 태도나 그의 지행합일 사상을 좀 더 상세히 엿볼 수 있는 어록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입지(立志)’를 중시했던 왕양명의 문장도 다수 수록되어 있어, 이 분야에 관한 연구자의 손을 거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전습록』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전습록』의 출판 경위를 추적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