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여왕의 시대: 역사를 움직인 12명의 여왕
바이하이진 / 미래의창 / 2008.7.19
- 12명의 여왕이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세계사
세계사 속에서 남성 못지 않은 권력을 갖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12명의 여왕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여왕의 시대』. 이 책은 지혜와 권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권력을 쟁취했는지, 그들의 업적은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이 되는가를 들려준다.
남성위주의 정치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하게 다지며 남녀 평등의 의미를 실현해내고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그들이 보여준 여왕으로서의 자질을 통해 자국의 안정과 경제 발전에 공헌하였음을 설명한다.
《여왕의 시대》는 화려한 남성편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에서부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1세, 마리 앙뚜와네트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중국을 침입하는 변방의 세력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측천무후 등 12명의 이야기를 수록했다.
○ 목차
- 클레오파트라 – 최고의 권력자를 차례로 정복한 여인
클레오파트라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 소녀여왕의 등극 / 폐위당한 여왕 /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선물 / 면류관을 쓰지 않았던 왕의 몰락 / 제2차 삼두정치 / 두 번째 남자 / 최후의 임무 / 영원한 클레오파트라 / 여섯 명의 클레오파트라 - 아그리피나 – 권력의 불장난을 즐기던 여인
역사란 무엇인가? / 어린 아내에서 과부로 / 타향을 떠돌다 / 권력의 무대에 오르다 / 황후에서 황태후로 / 포악하고 음탕했던 황태후 / 모자(母子)간의 반목 - 측천무후 – 중국 역사상 가장 걸출한 정치가
역사의 한 획을 긋다 / 소녀, 입궁하다 / 고종을 받들다 / 제위에 오르다 / 인재를 등용하다 / 뛰어난 치세(治世) / 이야기 속에 전해지는 측천무후 / 여황의 남자들 / 여인의 잔학함 / 이당(李唐)에게 정권을 돌려주다 / 후대의 평가 - 이사벨 1세 – 스페인 제국의 초석을 놓은 여걸
탑 위의 연가 / 아레발로의 태양 / 역사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다 / 몰래 치른 결혼식 / 카스티야 왕위계승 전쟁 / 이사벨의 시대 / 이교도 박해와 추방 / 스페인 부흥의 길을 연 신대륙 발견 / 후손들과 대제국 - 엘리자베스 1세 – 스페인을 물리친 해적 여왕
런던탑의 그림자 / 운명적 해후 / “내게는 이미 ‘영국’이라는 남편이 있소.” / 가련했던 사랑 / 신교와 천주교의 전쟁 / 제국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강대국 스페인 / 여왕의 해적부대 / 스페인과의 결전 / 광대한 제국, 처량한 말년 - 효장문황후 – 청(淸)의 대평성대를 잉태한 어머니
최후에 웃는 자 / 박이제길특 가문 / 권력폭풍 속에 냉담했던 부군(夫君) / 운명을 가른 효장의 막후교섭 / “태후의 하가(下嫁)” / 새로운 위기 / 순치제의 집정 / 강희(康熙)의 즉위 / 대청성세(大淸盛世) - 크리스티나 여왕 – 스웨덴을 유럽의 문명국으로 만든 여 군주
한편의 영화 같았던 삶 / 북구의 사자 / 왕자인가? 공주인가? / 여섯 살짜리 여왕 / 대법관의 시대 / 친정(親政) / 젊은 여왕의 궁정 / 왕위계승자 / 유럽을 뒤흔든 여왕의 퇴위 / 퇴위 후의 생활 - 마리아 테레지아 – 전쟁의 포화를 이겨낸 합스부르크의 여제
어린 공주 / 사랑이 꽃피다 / 결혼식의 어두운 그림자, 오스트리아의 실리(失利)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 계속되는 혼란의 시기 / 여왕에서 황후로, 다시 제국을 장악하다 / 개혁정치 / 7년 전쟁 / 말년의 테레지아 - 예카테리나 2세 – 대 러시아제국을 치마폭에 넣은 여인
프로이센의 여인 / 정략결혼 / 욕망과 권력의 화신 / 제국의 지도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다 / 진보(進步)와 전제(專制) 간의 균형예술 / 여황의 애인수첩 / 러시아 근대화의 기틀을 다지다 - 빅토리아 여왕 – 해가지지 않는 나라를 다스리다
빅토리아 시대 / 왕위계승 프로젝트 / 유년시절의 일기 / 소녀 시절 / 두 번째 아버지 /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다 / 멜번 부인 / 좋은 남편 / 해가 지지 않는 제국 / 알버트의 죽음 / 우울한 시기 / 유럽의 할머니 / 대영제국 최고의 번영기를 구가한 여 군주 - 서태후 – 쇠락한 대청제국의 선장
엽혁나랍씨(葉赫那拉氏) / 행운의 난아(蘭兒) / 동요하는 제국 / 신유정변(辛酉政變) / 동치중흥(同治中興) / 서태후의 연인들 / 동태후의 사망 / 백일유신(百日維新) / 생전의 존엄(尊嚴), 사후의 영예(榮譽) - 엘리자베스 2세 – 제국의 수호신
전 세계에 중계된 대관식 / 사랑스러웠던 유년시절 / 전쟁의 시대 / 여왕의 남편이 되다 /
대영제국의 수호신 / 노여왕의 남편이 되다 / 대영제국의 수호신 / 노쇠해가는 여왕, 저물어가는 제국
○ 저자소개 : 바이하이진 (白海軍)
중국 북방민족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년간 잡지사 기자로 일하면서 중.외 역사비교 분야를 심층 연구해왔다. 잡지 및 신문에 역사칼럼을 기재하면서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들을 받았으며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2049,중국을 믿는다〉, 〈12여황제〉, 〈해상각축(角逐)전〉, 〈해적제왕〉, 〈누구의 사냥감인가〉 등이 있다.
– 역자: 김문주
상하이 복단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수학하였고, 고려대학교 일문과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부자친구에게 배우는 45가지 인생공부〉, 〈싸우지 않고 승리하라〉, 〈강대국의 조건- 영국〉, 〈와신상담 5부〉, 〈음식 요법 : 50가지 질병 치료〉 등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보통 정치는 남자들만의 소유물이라는 편견을 갖기 쉽다. 그래서 동양이든 서양이든 ‘여성과 정치’라는 수식어는 조금 부자연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편견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탁월한 재능과 뛰어난 지혜로 남성권위사회의 ‘격식’을 파괴하고 ‘남녀평등’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해냈다. 남성이 할 수 있다면 여성도 할 수 있다. 아니, 때로는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부터 오늘날의 엘리자베스 2세까지, 생동감 넘치는 활기로 세계정치무대를 휘젓고 다녔던 위풍당당한 그녀들이 있다. 당대의 백성들은 자국에 이토록 걸출한 여걸이 있었음을 분명 자랑스러워했으리라.
.탁월한 지혜, 비상한 두뇌로 남성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비범한 담력,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력으로 거칠 것이 없었다.
.불굴의 의지, 그 어떤 시련과 좌절도 성공을 위한 계단에 지나지 않았다.
.명철한 수단, 내정과 외교에 있어서의 처세는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12인의 여왕 가운데 효장과 자희는 정식 제후에 오르지 못했지만 역사에 끼친 영향력을 고려하여 여왕의 반열에 올려두었다.
이 여왕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녀들은 역사 속 대다수의 남성 황제들보다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자국의 사회진보, 국가안정, 경제발전 등에 탁월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영원히 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또한 역사는 그녀들에게 가장 공평한 평가를 내려줄 것이다. – P5~6
- 최고의 권력자를 차례로 정복한 여인 – 클레오파트라
“사춘기 소녀처럼 몸매가 호리호리한 클레오파트라는 새카맣게 빛나는 커다란 눈을 갖고 있었다. 보통 여자들보다 훨씬 높게 오뚝 솟은 콧날은 무척이나 우아해 보였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칼에는 윤기가 흘렀고 유난히 새하얗고 보드라운 피부는 백옥처럼 고왔다. 약간 들린 입술 때문에 때로는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그 속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매력을 풍겼다. 클레오파트라는 동양여인의 우아함과 서양여인의 매혹적인 자태를 겸비하고 있어 가히 절세가인이라 할만 했다.” – P13 - 권력의 불장난을 즐기던 여인 – 아그리피나
사학자들이 기록한 아그리피나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그토록 치열한 권력투쟁 속에 홀로 최고의 지위에까지 오른 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다. 물론 이 묘사와 기록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어느 누구도 몇 천 년 전의 역사적 상황을 정확히 추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남겨진 역사기록들 속에서 그녀의 흔적들을 찾아내는 것뿐이다. – P65 - 중국 역사상 가장 걸출한 정치가 – 측천무후
측천무후라는 이름은 역사 속 가장 매력적인 이름 중 하나이며 시공을 가르는 여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신비의 베일에 쌓여있는 측천무후는 당(唐) 개국공신 무사확(武士攫)의 차녀이자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어린 첩이었고 당고종(唐高宗) 이치(李治)의 황후이기도 했다. 그녀는 삼십여 년 간 고종을 도와 국가 대소사를 처리하며 조정을 관리했다. 그 후, 여인의 몸으로 친히 제위에 올라 스스로를 성신황제(聖神皇帝)라 칭했다. 그녀는 당의 이름을 주(周)로 개명한 뒤,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유일한 여황제로 등극했던 것이다. – P107 - 스페인 제국의 초석을 놓은 여걸 – 이사벨 1세
이사벨은 스페인을 건설한 건축가임에 틀림없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스페인의 통일이 언제쯤 완성되었을지 심지어는 오늘날의 스페인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지조차 알 수 없다. 물론 끔찍한 종교재판의 악몽은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지만, 이는 또 한편으로는 스페인의 분열을 막아준 방패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이사벨이 콜럼버스에게 건 과감한 도박으로 스페인은 이후 약 오백 년 동안 역사를 지배하며 스페인 식민제국 시대의 부흥을 이끌었다. – P167 - 스페인을 물리친 해적 여왕 – 엘리자베스 1세
온갖 시련 속에 초년기를 보낸 엘리자베스는 감금을 당하기도 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영국제국을 위해 스스로의 행복을 포기한 채 평생 독신으로 살아갔다. 그녀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빛을 발했던 보기 드문 여인으로서 마치 샛별처럼 지혜롭게 후대를 이끌어주었다. 엘리자베스의 일생은 마치 삼부곡(三部曲)처럼 펼쳐졌다. 서곡은 낮고 침울했으며 중간은 슬픈 단조와 탄식이 이어졌다. 하지만 말미에는 웅장하고 고아한 소리가 무척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 P211 - 청(淸)의 태평성대를 잉태한 어머니 – 효장문황후
‘만주족 최고의 미녀’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여인이자 훌륭한 아들을 둔 어머니였던 효장문황후는 제국의 권력이 빛
○ 출판사 서평
- 요부의 대명사 클레오파트라, 권력의 화신인 측천무후와 예카테리나 2세, 남자를 능가하는 용기와 지혜를 지녔던 엘리자베스 1세와 이사벨 1세, 그리고 서태후와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12명의 여왕이 펼치는 흥미진진 세계사
남성 못지않은 담력과 의지, 탁월한 지혜와 과감한 결단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12명의 여왕들. 오늘날까지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권력을 쟁취하였는가? 그리고 그들의 치세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12여왕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보다 입체적이고도 흥미로운 세계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남녀평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늘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되었다. 최근에는 ‘알파걸’의 등장으로 주눅 든 남성들을 위한 각종 정보와 조언이 쏟아질 정도로 여성의 세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최고의 지위에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한 국가의 수장이 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영국의 대처 수상, 독일의 메르켈 총리, 인도의 간디 수상과 최근 피살당한 파키스탄의 부토 전 총리 등이 정치계의 여걸로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으나 이 또한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꿈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도 결국 치열한 접전 끝에 오바마에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녀가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오바마와의 대결을 ‘흑백’으로 보기보다는 ‘남녀’로 보는 시각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조차도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은 덜 된 것일까?
그런데 여성에게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했던 그 옛날에 권력의 최고 자리에 오른 여인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들이 이 책의 주인공인 12명의 여왕들이다. 이 가운데 마리아 테레지아와 예카테리나 2세, 그리고 측천무후는 여왕도 모자라 ‘황제’의 칭호를 받았다. 비록 황제는 아니었으나 황제를 좌지우지한 여인들 또한 많았다. 네로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 동치제의 어머니였던 서태후, 순치제와 강희제를 제위에 앉힌 청의 효장문황후가 그들이다.
유럽 최후의 이슬람 국가였던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스페인의 통일을 앞당긴 이사벨 1세와 합스부르크 왕가를 지키기 위해 수십 년의 전쟁을 이끌었던 마리아 테레지아,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친 엘리자베스 1세, 최강 군사력을 키운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그리고 중국을 침입하는 변방의 무수한 세력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측천무후 등은 여느 남자 황제 못지않은 담력과 리더십을 발휘하여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여걸들이었다.
이들은 사랑을 쟁취하는 데 있어도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엘리자베스 1세와 크리스티나 여왕을 제외하곤 모두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얻었다. 왕위 계승자였던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2세, 이사벨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배필을 스스로 고를 수 있었다. 물론 이들과 결혼한 남자들은 여왕의 남편이라는 지위를 택하는 대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애초에 왕위 계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여인들은 자신의 힘으로 오히려 더 큰 권력을 차지했기에 이들은 말 그대로 남자를 마음대로 요리했다. 화려한 남성편력으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여왕으로는 로마의 두 최고 권력자를 연달아 연인으로 삼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80이 넘어서도 미모를 유지했던 측천무후는 아예 젊은 미소년을 차출하는 일을 관장하는 기관을 설치하였다. 예카테리나 2세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주변에 늘 남자 애인들을 거느리고 살았다. 통이 컸던 그녀는 애인들에게 큰 재산과 벼슬을 하사했기에 여황의 사랑을 얻으려는 경쟁도 치열했다고 한다. 희대의 악녀로 역사에 기록된 아그리피나의 남성편력은 모두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며 중국의 서태후도 권력을 잡는 데 남자의 힘을 교묘히 이용하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여왕의 자리에 올랐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 12여왕과의 인터뷰
클레오파트라 – 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딸로 태어났죠. 왕실의 내부 분열 때문에 형제끼리도 권력다툼이 심했답니다. 저보다 어린 남동생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했는가 하면 권력싸움에 밀려 궁궐에서 쫓겨나기도 했지요. 내가 여왕의 자리의 오를 수 있었던 건 카이사르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로마의 힘이 없었더라면 아마 여왕이 되기 힘들었을 거에요.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저의 운명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지요.
아그리피나 – 나는 로마의 황후. 숙부인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결혼했지요. 그가 나의 숙부이긴 했지만 권력을 위해서는 결혼이 뭐 대수인가요. 그 덕분에 이전 결혼에서 낳은 아들인 네로를 황제로 만들 수 있었답니다. 나는 권력의 맛을 즐겼어요. 장애물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제거되었죠. 황제인 남편까지도 말이에요. 하지만 아들 네로의 미움을 받아 결국 비극적으로 생을 마치고 말았답니다.
측천무후 – 당태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갔을 때 나는 지극히 낮은 신분이었죠. 하지만 나는 권력 게임의 룰을 일찌감치 깨달아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갔죠. 결국 당태종은 나를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 아들인 당고종은 나를 아내로 삼지 못해 안달이었답니다. 나는 그를 도와 정사에 관여하게 되었고 곧 정치가 나의 적성에 딱 들어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병약한 남편이 죽은 이후, 내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내 몸으로 낳은 아들의 목숨과 황제의 자리를 바꾸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죠. 어쨌든 난 황제가 될 운명이었으니까요!
이사벨 1세 – 내가 태어났을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카스티유와 아라곤, 포르투갈 그리고 그라나다로 나뉘어져 있었죠. 비록 왕의 딸로 태어났으나 저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왕권도 약했고 이복오빠인 엔리케가 왕이 되자 저는 궁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어요.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와의 결혼도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을 등에 업은 엔리케 측과 전투 끝에 저는 카스티유의 여왕 자리에 오르게 되었죠. 후대인들은 저를 통일 스페인의 어머니라고 부르죠. 제가 신대륙 발견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도 모두 아시죠?
엘리자베스 1세 – 나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바람둥이 왕인 헨리 8세. 엄마는 비운의 여인인 앤 볼린이죠. 어린 시절, 풍전등화 같은 삶을 살았던 저의 이야기는 이미 너무 유명하지 않나요? 이복언니인 메리가 후사 없이 죽고 나서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나는 끊임없이 나를 몰아내려는 세력과 싸워야 했죠. 하지만 사촌인 스코틀랜드의 메리를 처형한 후 스페인과 한판 결전을 치르고 나서는 아무도 나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답니다. 저는 영국을 위해 끝가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 주위에 남자가 없었다고는 생각지 않으시겠죠? 영국 역사상 ‘엘리자베스 1세의 시대’는 가장 화려하고 강건한 전성기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효장문황후 – 나는 황제의 아내, 황제의 어머니, 황제의 할머니였습니다. 나의 조상은 징키스칸. 나는 몽골 여인입니다. 대대로 청나라 황실은 몽골 여인을 황후로 맞이하였죠. 나는 황제의 네 번째 비로 들어가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비록 아홉 번째 아들이었으나 나는 기어이 그 아들을 황제로 만들었죠. 아들 순치제의 뒤를 이어 손자인 강희제가 황제에 오르면서 청의 태평성대가 시작되었답니다. 강희제는 어려서부터 제가 철저히 교육시킨 덕에 훌륭한 황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크리스티나 여왕 – 나의 아버지는 ‘북구의 사자’라는 별명을 가진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입니다. 외동딸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사망하고 어머니가 우울증에 걸려 지내는 바람에 어린 시절은 참으로 험난했지요. 하지만 아버님이 일찍 제왕교육을 시작하셨고 저 또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순탄히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왕위를 계승할 후사가 없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안 했거든요. 저는 사촌인 카를과 결혼하는 대신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마리아 테레지아 – 저에게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물려주시고자 했던 아버지 카를 6세의 바람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죠. 그 유명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도 저 때문에 일어난 거랍니다. 하지만 비록 황제라는 공식 직함은 없었지만 저는 황제나 마찬가지였죠. 남편인 프란츠가 통 정치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저의 재위 기간 동안, 유럽에는 전장의 포화가 그칠 날이 없었답니다. 저는 10명이 넘는 자녀를 두어 모두 유럽의 왕실로 시집 장가를 보냈답니다.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넷은 내가 가장 아끼는 막내딸이었죠.
예카테리나 2세 – 나는 독일에서 러시아로 시집 온 여자입니다. 남편 표트르 3세가 조금만 내게 애정을 가지고 대했거나 그가 조금만 유능했더라도 내가 굳이 황제의 자리를 탐내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해도 해도 너무했어요. 정말 안됐지만 저는 그를 죽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제의 자리는 정말 제게 딱이었던 것 같아요. 후세 사람들도 저를 ‘대제(Great)’라고 부르는 걸 보면 맞는 말 아닌가요.
빅토리아 여왕 – 저는 왕위를 잇기 위해 태어난 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왕위계승자가 없다는 소리에 저의 아버지가 50이 다 되어 일부러 장가를 들어 저를 낳았답니다. 그래서 18살에 왕위를 물려받고 영국 여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수상의 몫이었죠. 그래도 제가 왕위에 있을 때 대영제국은 한창 잘 나갈 때여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풀렸습니다. 만국박람회도 개최했고 저는 인도 황제로까지 즉위했답니다.
서태후 – 내가 함풍제의 후궁으로 들어갔을 때 청나라는 이미 국운이 기울어져 있었지요. 외세에 쫓겨 다니던 남편이 숨을 거두자 나의 아들 재순이 황위를 물려받았고 나는 섭정왕후가 되었답니다. 이후 나는 죽는 날까지 어린 황제들을 대신하여 청나라를 이끌어 갔습니다. 이를 두고 후대의 사람들은 쑥덕거리곤 하지만 제가 없었다면 어쩌면 청의 역사는 더 짧아졌을지도 모르죠.
엘리자베스 2세 – 저의 아버지가 왕이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에드워드 8세가 사랑을 택해 왕위를 버렸을 때 저의 운명도 결정되었답니다. 왕실의 권위가 예전같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저는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오늘날에도 왕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요. 여왕이 없는 영국. 상상이 가시나요?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