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역사소설 하륜 1•2
김현빈 / 필맥 / 2015.7.7
조선의 개국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의 책사로서 그가 왕이 되도록 도운 하륜( 河崙)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설로 재구성한 책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걸친 보수적 권문세족과 개혁적 신진사류의 갈등, 역성혁명과 이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엇갈린 대응, 새 왕조 개창 직후의 권력다툼,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 대한 이념적 논쟁 등이 흥미진진하게 재연된다.
이성계의 책사였던 정도전과의 인간적 교류와 정치노선 갈등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 하륜 (河崙)
하륜 (河崙)은 여말선초의 관료, 조선의 정승이다.
고려 말에는 권문세족, 조선 초에는 조선의 공신으로 부귀영화를 누렸다.
태종 즉위에 큰 공이 있어 2번 공신에 올랐다.
일흔살까지 천수를 누리며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신하로서 충목왕 대부터 태종 대까지 아홉 왕의 시대를 살았으며 공민왕부터 태종까지 일곱 명의 왕을 섬긴 인물이다.
여담으로 정몽주보다는 10살, 정도전보다는 5살 어리나 이방원보다는 20살 많다.
진주 하씨 11대손이며 고려 현종 때의 문신 및 무장이자 여요전쟁에서 활약했던 하공진의 자손이다.
할아버지는 식목녹사에 추증된 하시원, 할머니는 정균의 딸 증 정경부인 진주 정씨이고 아버지는 순흥부사 증 진양부원군 하윤린, 어머니는 증 진한국대부인 진주 강씨이다.
하륜은 이인임의 조카사위로, 이인미의 딸 진한국대부인 성주 이씨와 결혼했다.
아들 1명, 딸 2명을 얻었는데 장남은 좌군도총제 하구이고 첫째 사위는 홍섭, 둘째 사위는 이승간이다.
○ 목차
- 1권
- 숙명의 갈림길
- 인연의 첫머리
- 젊은 정의
- 괴승과 백여우
- 길을 묻다
- 별리의 징후
- 그릇을 찾다
- 2권
- 정변
- 마수
- 천하, 삼봉의 손에
- 난투의 여명
- 무인정사
- 권세의 서막
- 스스로 지다
작가후기
○ 저자소개 : 김현빈
1992년생으로 2016년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에 대하여 독특한 해석력과 탄탄하고 간결한 문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젊은 ‘스토리텔러’다. 이미 역사소설 <하륜> 2권, <대군으로 산다는 것> 5권을 출간하였으며, 앞으로 ‘무령왕’ 등 백제 왕계를 잇는 역사소설 집필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 책 속으로
형님이라 불린 자의 이름은 정도전 (鄭道傳), 그를 형님이라 부른 자는 하륜 (河崙)이란 이름자를 썼다. 정도전의 허여를 받은 하륜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침묵하며 서로를 쏘아볼 때 방안에 가득했던 긴장감이 그의 웃음으로 다소 녹았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인연이 아니었습니까. 형님과 나 말입니다. 고금에 또 이런 인연이 있을까.”
하륜의 말에 듣는 이도 희미하게 웃음을 흘렸다. 정도전은 하륜의 말을 듣고 그와 연관됐던 수많은 풍파를 떠올렸다. 그 가운데는 함께 겪은 것들도 있었고, 서로 반목하면서 생긴 것들도 있었다. (1권, 7쪽)
“충 (忠). 그것만은 목줄에 칼이 들어올 때까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눈을 감을 때까지 지켜야 할 최후의 것이다.”
“신하가 가장 위하여야 하는 것이 군 (君)입니까, 민 (民)입니까? 스승님께서 최후의 것을 충으로 짚으시니 스승님의 대답은 군일 것입니다. 허나 제자는 생각이 다릅니다. 신하가 최후까지 지녀야 할 것은 애 (愛)입니다. 백성에 대한 사랑이 군주에 대한 충성보다 크고 숭고합니다.”
이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눈을 하고 정도전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도전의 눈에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1권, 54쪽)
“고려는 살기 좋은 나라다. 감투들이 살기에 말이야. 그 중에서도 배알이 없고 쥐새끼 같은 감투들이 살기 좋은 나라다. 더럽고 썩은 내가 나고 제 배 채울 궁리만 하는 감투들이 살기 좋은 나라다!”
하륜은 이렇게 말하곤 멀쩡할 때에는 감히 입에 담을 상상도 하지 못하는 흉한 욕지거리를 마구 입에 담았다. 응어리진 울분의 표출이었다. 신몽인도 한숨을 쉬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쉭! 하고 화살 하나가 날아와 가마 팔걸이에 박혔다. 신몽인은 반사적으로 칼을 빼들었다. (1권, 89쪽)
“관원이 무엇이냐.”
이제 자초는 또 선문답을 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이 질문은 방금 했던 질문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답하기 곤란했다. 하륜은 자초가 무슨 답을 원하는지를 몰라 대충 간단한 정의를 읊었다.
“관원이란 관에 종사하여 국사 (國事)를 돌보는 자들이지요.”
하지만 자초는 절대적 진리와도 같은 이 정의를 부정했다.
“아니다. 틀렸다. 관원은 관에 종사하지만 국사를 돌보진 않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관원이 관에서 국사를 돌보지 않으면 뭘 돌본단 말입니까?”
“국사가 아니라 민사 (民事)다, 민사.”
하륜의 표정이 구겨졌다.
“국사가 곧 민사가 아닙니까.”
이 말엔 자초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런 멍청한 인사를 보았나! 이런 놈을 두고 누가 재상감이래?” (1권, 169-170쪽)
이방원도 자주 하륜을 찾아왔다. 애당초 이방원이 교류할 만한 인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모두들 이성계에 줄을 대었으면 대었지 그의 장남도 아닌 오남에게 접근하는 인사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인사가 소수나마 있긴 했지만 이방원의 성에 찰 리가 없었다. 새삼 이방원에게 다가온 자들은 이성계와 직접 연을 맺을 수가 없다보니 이방원이라도 어떻게 구워삶아 권세의 콩고물을 얻어 먹고자 하는 어중이떠중이였다.
이방원과 마주앉아 그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은 오직 하륜뿐이었다. 이방원에게 패왕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의 영향도 있었다. (2권, 46쪽)
“권력이란 오만한 계집과 같습니다. 사내 하나에게만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권력이란 계집은 강한 사내를 원합니다. 강한 사내를 얻기 위해 복수 (複數)의 사내들이 저를 두고 칼부림하길 바라지요. 천하절색인 그 계집의 유혹을 받은 자는 반드시 싸움에 뛰어들게 되어있습니다. 설사 유혹을 견뎌냈다 하더라도 강함을 뽐내려는 다른 사내들의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아도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면 저를 도울 겁니까?”
이는 분명 하륜이 여러 차례 밝혔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방원은 불안한 마음에 재차 하륜의 충심을 확인하고 싶었다. (2권, 49-50쪽)
○ 출판사 서평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걸쳐 역성혁명과 개혁정치를 주도한 인물로 흔히 정도전 (鄭道傳, 1342∼1398)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그는 성리학적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한 이상국가의 실현을 꿈꾸었다. 이를 위해 그는 변방의 무장인 이성계의 책사가 되어 그로 하여금 고려를 멸하고 새 왕조 조선을 열도록 유도했고, 개국 초기에는 이성계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재상 중심의 정치체제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정비에 힘썼다. 이런 점에서 정도전은 ‘조선 왕조의 설계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소설 하륜>의 작가는 정도전의 맞수였던 하륜 (河崙, 1347∼1416)에 주목했다. 정도전보다 다섯 살 연하인 하륜도 성리학의 가르침에 따른 민본국가를 꿈꾸었다는 점에서는 정도전과 같았으나, 그 실현은 재상 위에 군림하는 강력한 군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정도전의 대척점에 있었다. 실제의 정치적 선택에서도 하륜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인 이방원 (태종)의 책사가 되어 그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뒤 군주 중심의 정치체제를 굳히도록 도왔다.
작가는 하륜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그와 정도전 사이의 대립을 주축으로 하여 여말선초의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이 작품에 드라마틱하게 재현했다. 같은 목표를 지향하면서도 상이한 길을 택한 탓에 서로 정적이 돼야 했던 정도전과 하륜, 두 인물 상호간의 갈등과 운명의 엇갈림, 그리고 그에 따른 각각의 인간적 고뇌가 주인공 하륜의 관점에서 잘 표현됐다. 그동안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많이 나왔지만, 하륜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전무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여말선초의 개혁정치에 대한 우리의 치우친 역사적 인식에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적어도 조선 건국 이후에는 하륜이 개혁파 내지 진보파라기보다는 보수파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군권 (君權)이 신권 (臣權)에 앞선다는 그의 일관된 신념과 그런 방향의 정치활동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하륜이 신문고 제도 도입, 저화(일종의 화폐) 발행 등을 주도하는 등 백성과 민생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에 급급했던 당대의 일반적 보수파와는 달랐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후기에서 “하륜의 보수는 … 어쩌면 보수의 원론적 정의에 합당한 보수였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런 그의 면모는 스스로 보수를 내세우는 우리 시대의 다수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고 지적했다.
전해 내려오는 역사 기록물을 보면, 하륜은 태종 치세에 영상을 비롯한 고관대작을 지내면서 사사로운 청탁을 받아주고 뇌물을 챙기는 등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왕조 시대에 작성된 역사 기록물은 누군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실이 위조됐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작가는 하륜이 부정부패로 탄핵을 받은 것도 태종의 왕권을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연출한 자기희생의 연극이었던 것으로 그렸다. 작가는 “작가의 상상으로 윤색하여 이 소설에 등장시킨 하륜은 보수의 롤 모델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지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