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Eichmann in Jerusalem
한나 아렌트 / 한길사 / 2006.10.10
– 유대인 학살의 사건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한 보고를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것을 바탕으로,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고자 했다.
저자는 아이히만의 사례를 통해 악의 평범성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드러내며, 보편적 유대인 개념이 갖는 허상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악의 평범성 개념으로 어떻게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타자중심적 윤리로 돌아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한국어판에는 포스트 모던적 정치사상의 입장에서 이 책이 어떻게 읽혀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중요한 논점들을 제공하는지를 조망한 정화열 교수의 해제를 함께 실었다.
○ 목차
역자 서문/김선욱
악의 평범성과 타자 중심적 윤리/정화열
독자들께 드리는 말
제1장 정의의 집
제2장 피고
제3장 유대인 문제 전문가
제4장 첫 번째 해결책: 추방
제5장 두 번째 해결책: 수용
제6장 최종 해결책: 학살
제7장 반제회의, 혹은 본디오 빌라도
제8장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의무
제9장 제국으로부터의 이송: 독일, 오스트리아 및 보호국
제10장 서유럽으로부터의 이송: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제11장 발칸 지역으로부터의 이송: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제12장 중부 유럽으로부터의 이송: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제13장 동부의 학살센터들
제14장 증거와 증언
제15장 판결, 항소, 처형
에필로그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 저자소개 :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29년 스테른(Gunter Stern, 1936년 이혼)과 결혼하여 베를린에 정착한다. 이후 아렌트는 정치적 억압과 유대인 박해가 첨차 심해지던 독일에서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뒤, 1933년 모든 것을 뒤로하고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망명 후 발터 벤야민 등 많은 지식인을 만나 유대인 운동을 하던 아렌트는 다시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0년에, 아렌트는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1941년에는 아렌트를 포함하여 2500명 정도 되는 유대계 망명자들에게 불법으로 비자를 발행해 준 미국 외교관 하이램 빙엄 4세의 도움으로 남편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아렌트는 1951년에 이르러서야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되는데, 1959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완전한 교수직에 지명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경험한 18년간의 무국적자 경험을 바탕으로 첫 번째 주저인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을 출간하고, 더불어 정치이론가로서 정치현상의 근본적 의미를 밝히는 데 전념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사상가의 길을 걷는다.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1929)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라헬 바른하겐 : 유대인 여성의 삶』(Rahel Varnhagen : The Life of a Jewish Woman, 1958),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 196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 『혁명론』(On Revolution, 1963),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Men in Dark Times, 1968), 『공화국의 위기』(Crises of the Republic: Lying in Politics, 1969), 『시민적 불복종』(Civil Disobedience, 1969), 『폭력의 세기』(On Violence, 1969) 등 중요 저작들을 연이어 출간한다.
이 가운데 『혁명론』에는 아렌트의 최종적인 ‘정치’ 사상이 담겨 있는데, 그가 1956년 헝가리 혁명을 계기로 혁명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프린스턴 대학 세미나에서 「미국과 혁명정신」이란 주제로 강연한 것을 정리해서 완결지은 것이다. 『혁명론』은 ‘새로운 시작’ 과 자유를 기리는 혁명송이자, 정치학도들에게 다양한 정치적 통찰력을 제공하는 귀중한 교과서로서 의미 있는 저작이다.
아렌트는 1973년 에버딘 대학에서 ‘정신의 삶-사유’라는 주제로 기퍼드 강의를 요청받은 후 사유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듬해 ‘정신의 삶―의지’라는 주제로 다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 연구를 진행했다. ‘정신의 삶―판단’이라는 주제로 정신의 삶 3부작의 마지막 연구를 진행하던 중 1975년 12월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쳤으며, 남편이 오랫동안 강의한 뉴욕주 허드슨 강 유역 애넌데일(Annandale-on-Hudson, New York)에 있는 바드 대학에 묻혔다. 그녀의 사후 『정신의 삶―사유』와 『정신의 삶―의지』가 1978년 출간되었으며, 완성되지 않은 3부에 해당하는 「판단」 부분은 유고집으로 『칸트 정치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1982년 출간되었다. 그후 이미 발표된 글들 및 미발표 원고 등을 주제별로 편집하여 『이해에 대한 에세이』(1994), 『책임과 판단』(2003), 『정치의 약속』(2005), 『유대적 저술』(2007), 『문학과 문화에 대한 성찰』(2007) 등이 출간되었다.
– 역자 : 김선욱 (金善郁)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가치와윤리연구소 소장과 한국아렌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정치철학, 윤리학, 정치와 종교의 관계 등이다. 지은 책으로는 『행복과 인간적 삶의 조건』 『한나 아렌트의 생각』 『아모르 문디에서 레스 푸블리카로』 『행복의 철학: 공적 행복을 찾아서』 등이 있으며, 아렌트 저작의 번역서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공화국의 위기』 『칸트 정치철학강의』 등이 있다.
– 해제 : 정화열
정화열 교수는 1932년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해온 저명한 재미 정치사상가이며, 현상학을 정치학에 접목하여 정치현상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학자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에 쓴『정치적 이해의 위기』를 통해 학문적 영향력을 높였으며 현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베들레햄에 위치한 모라비언 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술활동과 국제학술대회 논문발표 등으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정화열 교수는 한나 아렌트의 저술을 오랫동안 강의에 활용해왔다. 그러던 가운데 2005년부터 교류를 갖게 된 김선욱 교수가 아렌트의 저술들을 번역해오고 있음을 알고, 특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공화국의 위기』는 오랫동안 세미나 교재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을 담은 해제를 자신이 쓸 것을 제안, 이번 번역서에 그의 해제를 싣게 되었다.
해제를 통해 정화열 교수는 자신의 포스트 모던적 정치사상의 입장에서 이 책이 어떻게 읽혀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중요한 논점들을 제공하는지를 조망해주고 있다.
○ 출판사 서평
– 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1906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난 아이히만은 1932년 비밀 나치당에 입당했고, 같은 해 하인리히 히믈러가 조직한 나치 친위대(SS) 정예부대에 들어갔다. 히믈러가 국가안전국(RSHA)을 창설했을 때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담당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1942년 1월 베를린 근교에서 나치 고위관리들이 모여 유대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에 필요한 계획과 병참업무 준비에 관한 회의를 열었는데, 아이히만은 이 문제의 책임을 맡음으로써 사실상 대량학살을 뜻하는 이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고 집결시켜 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전쟁 뒤 아이히만은 미군에 붙잡혔으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이송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는데, 1961년 4월 11일부터 시작된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 아이히만은 뜻밖에 평범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졌을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나 아렌트도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믿지 못했지만 결국 그 소식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렌트는 예정되었던 대학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이로써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을 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또 그에 앞서 있었던 경찰심문에서 보인 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서 사람들이 탐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흥미로운,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그는 한때 자기가 의무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범죄로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새로운 판단의 규칙을 마치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언어규칙에 불과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 독자의 평
이 책은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이란 표현을 제기한 내용으로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히틀러 치하에서, 그의 정책을 수행한 아이히만이 전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현장을 참관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글로 채워져 있다. 한나 아렌트가 보기에 재판 현장의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관료로서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책의 내용이 무엇이든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동기이며, 정의감이 없이 단지 자신의 직분만을 충실하게 한다면 누구라도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대중들은 히틀러를 추종했던 인물들의 본성이 ‘악마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아렌트가 지켜본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때문에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란 표현을 사용하자, 대중들은 아이히만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결국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은 오랫동안 논쟁을 거쳐 이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디양한 자료와 재판 과정을 통해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아이히만은 관료로서의 출세욕 이외의 학살에 대한 동기나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지닌 인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정신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평가되었고, 관리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단지 그것이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 정권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아이히만은 위로부터 하달된 명령과 법을 따랐을 뿐이며, 히틀러 치하에서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그의 문제는 모든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여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며, 재판 과정 내내 아이히만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자신은 중간 관리로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처리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여러 곳에 설치된 가스실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된 현실을 알면서도, 자신은 명령에 복종할 뿐이라는 변명과 함께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렌트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방대한 양의 소송 서류를 읽고 분석했으며, 다양한 기사와 인터뷰 등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단지 재판 참관기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와 정치적 상황까지를 포괄하여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렌트는 재판을 참관하면서 법정에서 느꼈던 생각들, 피고인 아이히만의 성장 과정과 삶의 내력, 그리고 히틀러 정권의 대 유대인 정책 등이 갖는 의미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아이히만의 범죄 행위만이 아니라, 전 유럽에 걸쳐 발생했던 유대인 정책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논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비로소 왜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제시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면밀히게 검토하여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아이히만처럼 상황 속에 휩쓸려 다른 사람의 인생이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1980년의 광주항쟁에 투입되었던 계엄군의 행위라든지, 최근의 ‘정권 농단’에 개입했던 인물들의 행위도 결국 ‘악의 평범성’이란 측면에서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의 표지에 있는 다음의 문구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유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악이다.”(차니)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