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예수의 생애 연구사
알베르트 슈바이처 / 대한기독교서회 / 1995.3.30
A. 쉬바이처의 예수의 생애 연구사는 1778-1901년 사이에 출판된 예수생애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인 600여권을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다. 쉬바이처의 전기에 의하면, 이를 위해 자신의 기숙사 방에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책들을 분류하여 쌓아놓고 연구했다고 한다. 쉬바이처는 이 책에서 역사적 예수를 연구한 사람들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결론은 “과거의 예수 전은 각 역사의 시대적 정신을 반영한 현대의 예수다”는 것이다. 쉬바이처는 “예수 생애의 역사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예수가 후기 유대교의 종말론적 메시아 표상 세계에 살았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예수의 결심과 행동을 통상적인 심리학이 아니라 그의 종말론적 대망 속에 내포되어 있는 동기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처럼 예수를 유대교적 종말론적 빛에 의해, 메사야 의식을 지닌 자로 이해했다. 자신의 이런 연구의 결과를 만족해하면서, “예수 생애 문제의 이와 같은 일관성 있는 종말론적 해결이 예수의 사상과 언행에 있어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며, 사실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들이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밝혔으며, 이런 예수의 종말론적인 해석이 마가복음서와 마태복음서의 신빙성에 대한 모든 의혹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쉬바이처의 예수 생애 연구사로 인해 그후 50년 동안은 거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광대한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쉬바이처의 학문적인 열성과 사랑에 깊이 감동하였다. 자기 시대까지 연구된 무수한 학자들 그 중에는 학자라고 볼 수 없는 문예가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일일이 그들의 글을 읽고 평가하고 그들의 자리를 메김하는 능력에 감탄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발견한 중요한 결과는 각각의 학자들은 자기만의 예수 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학자들의 생애와 밀접한 관심이 있었다. 즉 그들은 성서의 메시지로부터 어떤 예수상을 도전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모습이나 사회의 요구나 당시 철학의 흐름에 의해서 강요된 예수상을 성서에 투사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즉 그들이 말하는 예수는 자기 자신들의 투영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이런 평가가 그들의 학문적인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으로 객관적 자료를 논리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자료의 문제는 해석의 문제에 따라 얼마든지 독이 될 수 있고 약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학자의 양심의 문제이며, 교양과 가치관의 문제이다. 결국 신학을 한다는 것는 자신의 모든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보게 되었다.
역사적 예수의 연구는 단순히 예수의 역사성을 묻는 질문에 한정되지 않고 신학 전반의 기본적인 질문들을 거쳐야 가능한 해답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 생애를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어떤 자료를 선택하느냐의 문제 즉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 그리고 마가복음서의 위치 등 이 모든 신학의 발전이 역사적 예수 연구의 논쟁에서 발생하고 정리되고 해결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특히 이런 쉬바이처의 대 작업을 거쳐서 불트만의 글들이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 자료의 문제만이 아니라 성서 언어의 진정성의 문제, 인자에 대한 연구 등 신학 기초에서 중심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살펴 볼 수있었다.
한가지 주제의 종합적인 고찰을 통해서 학자들의 우열이 가려지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쉬바이처의 입장에서 예수의 연구에 있어서 거대한 산맥과 같은 일군의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 산맥밑에 간신히 연결된 작은 봉우리 같은 학자들도 있었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그들은 일생을 바쳐서 학문에 헌신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혹독한 비난과 욕만먹고 모든 수고를 끝내는 경우도 있었다. 신학이라는 역사에 기여한 사람의 수는 지극히 소수였다. 쉬바이처가 그의 탁월한 학자적 기질과 업적을 뒤로하고 아프리카 밀립 속으로 들어가 이유도 이런 연구의 결과로 얻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는 어떤 것을 하든지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가장 의미있게 자신의 생애를 채색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학문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으나, 그의 삶으로 그의 존재를 웅변적으로 역사 위에 보여주고 갔던 것이다.
○ 목차
과제
라이마루스
옛 이성론의 예수의 생애
초기 소설적 예수의 생애 연구
성숙한 합리주의: 파울루스
합리주의의 대단원: 하제와 쉴라이에르마허
쉬트라우스: 그의 생애와 운명
쉬트라우스의 첫 예수의 생애
쉬트라우스의 동조자들과 반대자들
마가복음서의 가설
브루노 바워: 예수의 생애에 대한 첫 회의
신소설적 예수의 생애
르낭
자유주의의 예수의 생애
종말론 문제
반종말론
아람적인 것, 랍비적인 것, 불교적인 것
세기 전환기의 예수의 생애 연구
근대 역사관에 대한 비판: 브레데와 철저종말론
브레데 저서의 창조 구조 소개와 비판
철저종말론의 해결책
예수의 역사성에 관한 최근의 논쟁
예수의 역사성에 관한 토론
1907~1912년
마지막 관찰
○ 저자소개 : 알베르트 슈바이처 (1875-1965)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는 교회 오르가니스트인 할아버지와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음악과 신앙의 영향 속에서 자랐다.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1899년 칸트의 종교철학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 1900년 성만찬 연구로 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신학부 강사로 활동하다 1904년 의료 선교에 대한 뜻을 정하고 1905년부터 의박 공부를 시작, 1913년 예수의 정신질환 이론에 대한 비판 논문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곧바로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로 떠나 의료 선교를 시작했다.
의학 공부 증 1906년에는 『예수 생애 연구사』를 출판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학 연구에 위대한 공헌을 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인이었던 슈바이처는 1917년 프랑스령이었던 랑바레네에서 포로로 잡혀 프랑스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나 의사로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18년에 석방되어 연주, 강연 등으로 모금활동을 하고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가 생을 다할 때까지 의료 선교에 힘썼다.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1965년 91세에 랑바레네에서 딸의 바흐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의사로서 유명하지만 본업은 신학박사로서 강단에 선 학자였고 동시에 프로 음악가이자 파이프오르간 전문가였다. 각각의 분야에 책을 냈다.
“아프리카 봉사에 한정한” 대표 저서로는 ‘나의 생애와 사상'(판본에 따라 노벨상 수상때의 연설문이 번역돼 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람바레네 통신’ 등이 있다.
성장기와 병원 운영과 수술 이야기만 있지는 않고 다양한 주제로 쓴 단편이 때로는 몇 쪽, 때로는 한 챕터를 할애해 들어 있다.
책에 따라 신학적인 주제, 음악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현지에 와서 다양한 백인과 흑인을 만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적도 아프리카에서 지성인으로서 살아남기, 이상적인 선교 사업, 재정 문제, 아프리카 의료의 현실, 열강의 식민지 정부 운영 문제, 식민지의 수출과 수입, 목재 산업, 강제 노동, 흑인 사회 비평, 아프리카의 자연, 병원 반경 약 2백 km 지역에 사는 부족들과 그들의 관계 등.. 약 100년 전 서아프리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그 외 사후 서한집이 국문으로 출판됐고, 철학서로는 “문화와 윤리”도 번역된 적 있다.
– 역자 : 허혁
허혁 (許赫, 1919년 – 1997년 1월 7일)은 신학자이자 이화여자 대학교의 교수였다. 1919년 황해도 해주 출신인 허혁 박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목원대학교를 거쳐 85년 퇴직한 이화여대 교수 시절 15년간 2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그의 주도적인 공헌은 루돌프 불트만, 게르하르트 폰 라트, 그리고 귄터 보른캄을 비롯한 신약신학과 구약신학의 권위있는 전문서적들을 번역하여 독일의 신학을 소개한 것이다. 그는 성서 해석학을 학문적으로 정립시킨 신학자로서 한국의 성서 해석학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고 평가한다
○ 독자의 평
슈바이처의 『예수의 생애연구사』를 독파했다. 독일에서는 1907년에 1판을 출간했고 한국에서는 1987년에 간행하였다. 1700년 중간부터 1910년까지의 공관복음서와 예수 생애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촘촘한 글씨와 자간으로 무려 600쪽. 목차가 25장이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번역은 허혁교수, 자기 글의 책을 써서 사기 행각을 하기 보다는 적합하고 유능한 사람의 양심적인 책을 골라 번역하는 게 후배들에게 훨씬 더 유익하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번역했다고 한다.
슈바이처는 이 책을 남기고 홀연히 의사로서 아프리카 밀림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가져도 되는 건지! 하여튼 슈바이처는 신학자로서도 독보적 자리를 남겼다. 그의 학문성이 놀라울 뿐이다. 예수생애연구를 한 6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책을 읽고 성향을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어떻게 이 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물을 다 파악했는지… 하지만 읽는 나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백 년 전 예수생애 연구에 관한 독일신학계의 흐름을 요약, 압축한 까닭에 그 전후배경을 모르는 독자로서는 이해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단 한 순간도 집중하지 않으면 한 줄도 읽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번역은 초벌수준을 그대로 인쇄했다는 느낌이다. 비문, 난해한 문장,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 수두룩했다. 무슨 적(的)이 그렇게 많은지… 지금 같으면 다 걸러질 표현들이 그냥 활자화됐다. 이에 비하면 지금 나오는 역사예수 책들은 정말 가독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이 어려운 책을 읽었으므로 이제는 그 어떤 책도 소화할 수 있겠다는 소박한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불트만을 넘어서 현대 역사예수 책들을 만날 예정이다. 기다려라.
슈바이처의 <예수생애연구사>를 악전고투하며 읽은 끝에 건진 가장 알짜배기 말이다. 처음엔 몰랐는데, 다 읽고 다시 서문을 읽으니 이 글이 눈에 들어왔다. 1950년에 쓴 제 6판 서문의 끝내용이다.
그런데 예수의 복음을 단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정신적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성서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본래적인 것은 예수의 정신이다. 그것은 처음 믿는 자들 중 예수에게 감복된 자들 중에서 알려진 바와 같다. 모든 신앙신념은 예수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가장 높은 의미에서의 진리는 예수의 정신에 있는 것과 동일하다.
프로테스탄트의 본질에 속하는 것은 그것이 교회를 신봉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신봉한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그 본질에는 철두철미 참되다는 것이 제시되었다. 진실의 욕구를 소유하는 것을 중지하면 예수는 그 자체의 그늘에 묻혀 있을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교와 세상에 대해 무능하게 될 것이고 그 사명을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의 생애연구는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교의 진실 행위이다. 그 연구과정에서 나는 전 세대의 학문적인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한 시기를 오는 세대들 앞에 다시 생동하게 했다. 앞 세대들이 열중한 진실을 위한 의지를 후 세대가 함께 체험해 주기 바라며, 그것으로써 참된 진실성이 순수한 종교성의 본질에 속한다는 인식을 고수하기 바란다.
역사 인식이 신앙에 제공하는 모든 어려움들에서 우리는 바울의 말로 용기를 얻을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진리를 위할 뿐이다.”(고후 13:8)
요인즉, 진실이 종교성의 본질이고 예수생애 연구를 통해 밝혀낸 예수정신이야말로 프로테스탄트교가 추구해야 할 진실이라는 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