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오뇌의 무도 : 김억 시인 (한국 최초 번역시집)
김억 / u-paper (유페이퍼) / 2016.6.21
한국 최초의 번역시집으로, 주로 프랑스 상징파의 시를 수록하였다. 김억 (金億, 1896 ~ ?)이 1921년 3월 20일 광익서관에서 펴낸 번역시집이다.
한국 최초의 서구시 번역시집으로 창작, 번역을 통하여 최초의 시집이라는데 문헌적 의의가 있다. 총 167쪽.
김찬영 (金瓚永)의 축시 「오뇌의 무도」와 장도빈 (張道斌)의 서 (序), 염상섭 (廉想涉)의 「오뇌의 무도를 위하여」, 변영로 (卞榮魯)의 「오뇌의 무도의 머리에」 등 축사와 역자의 「인사 한 마디」 등이 실려 있다.
베를렌 (Verlaine)의 시 21편, 구르몽 (Gourmont)의 시 10편, 싸맹 (Samain)의 시 8편, 보들레르 (Baudelaire)의 시 7편, 예이츠 (Yeats)의 시 6편, 그 밖에 레니에 (Regnier), 폴 포르 (P. Fore) 등의 시 33편 등, 도합 8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한국 최초의 번역시집으로, 주로 프랑스 상징파의 시를 수록하였다.
○ 목차
1장. 서문
2장. 베를렌의 시
3장. 구르몽의 시
4장. 싸멘의 시
5장. 보를레르의 시
6장. 예이츠의 시
7장. 포르의 시
8장. 오뇌의 무도
9장. 소곡
○ 편•역자 : 김억 (金億)
김억 (金億,1896년 11월 30일 ~ ?)은 한국의 시인이다. 현대시인, 평론가로 본관은 경주이다. 호는 안서 (岸曙), 본관은 경주, 본명은 김희권 (金熙權)이며, 호를 따라 김안서 (金岸曙)로도 종종 불린다.
오산학교 (五山學校)를 거쳐 1913년 일본 게이오의숙 (慶應義塾) 영문과 중퇴. 그 뒤 오산학교 (1916)와 숭덕학교 (崇德學校) 교원을 역임하였고, 동아일보사 (1924)와 매일신보사 기자를 지냈으며, 한동안 《가면 (假面)》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6 · 25남침 당시 피난하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그의 계동 집에서 납북되었고, 그 뒤의 행적은 알 수가 없다.
○ ‘오뇌의 무도’ 개관
김억이 외국의 시 85편을 번역하여 1921년에 간행한 시집으로 총 168면이다. 광익서관 (廣益書錧) 발행으로 초판은 1921년 3월 20일, 재판은 1923년 8월에 나왔다. 대한민국 최초의 번역시집인 동시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 시집이기도 하다. 김유방 (金惟邦)의 장정에 장도빈 (張道斌)· 염상섭 (廉想涉)· 변영로 (卞榮魯)의 서문과 역자 자신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글, 그리고 김유방의 서시가 그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 내용
1918년부터 1920년 사이에 김억이 『태서문예신보』·『창조』·『폐허』 등의 지면을 통하여 발표하였던 역시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번역의 대본은 세계어 (에스페란토) 역본이며 이밖에도 영어와 일어를 주로 참고하고 불어도 힘 있는 한 참고하였다고 역자 자신이 밝히고 있다.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 등 21편, 구르몽의 「가을의 따님」 등 10편, 사맹의 「반주 (伴奏)」 등 8편, 보들레르의 「죽음의 즐거움」 등 7편, 예이츠의 「꿈」 등 6편, 기타 시인의 작품으로 「오뇌의 무도곡」 속에 23편, 「소곡 (小曲)」에 10편 등 총 8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재판본에서는 일부 시인의 작품이 삭제되거나 추가되어 초판보다 약 10편이 더 많은 9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같은 작품의 경우에도 끊임없는 퇴고 과정을 통하여 적지 않게 변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모두 김억의 철저한 리듬 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김억은 역시에서 원시가 지니고 있는 리듬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가능한 한계까지 한국어의 리듬을 살려보려고 섬세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 의의와 평가
『오뇌의 무도』가 우리 근대시에 미친 영향은 획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남선 (崔南善)으로부터 끊임없이 모색되어온 한국 자유시의 형태가 이들 김억의 번역시를 통하여 자리 잡혀진 것을 우선 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베를렌의 「작시론 (Art poetique)」의 번역은 당시로서는 하나의 새로운 시의 경전 (經典)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가늘고 여리고, 애달프고 서러운 감각은 권태·절망·고뇌를 거쳐 나타내는 병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1920년대 전기의 우리 시의 체질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