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우치무라 간조의 인물 일본사
우치무라 간조 / 아침바다 / 2003.12.5
- 일본 기독교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우치무라 간조의 저서
사이고 다카모리, 우에스기 요잔, 니노미야 손토쿠, 나카에 도쥬, 니치렌 등 일본 근대화에 앞장 섰던 다섯 명의 평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이지 유신으로 새로운 나라 일으키기에 나섰던 일본, 그 일본의 기독교 선각자가 서양인에게 자랑했던 다섯명의 ‘대표적 일본인’, 그들의 면면을 통해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를 엿볼 수 있다.

○ 목차
- 사이고 다카모리
메이지유신
탄생, 교육, 계시
유신혁명에서의 역할
한반도 문제
모반자로서의 사이고
생활과 인생관 - 우에스기 요잔
봉건제
사람과 사업
행정개혁
산업개혁
사회와 도덕의 개혁
인간성 - 니노미야 손토쿠
20세기 초의 일본 농업
소년시절
능력의 시련
개인적인 원조
공공사업 일반 - 나카에 도쥬
일본의 옛 교육
소년시절과 자각
어머니 숭배
오우미의 성인
내면의 사람 - 니치렌
일본의 불교
생애와 출가
안팍의 암흑
선언
홀로 세상에 맞서다
유죄
최후의 날들
인물평

○ 저자소개 : 우치무라 간조 (Kanzo Uchimura ,うちむら かんぞう, 內村 鑑三; 1861 ~ 1930)
우치무라 간조 (Kanzo Uchimura ,うちむら かんぞう, 內村 鑑三; 1861 ~ 1930)는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이자 사회 사상가로 메이지유신 100주년을 맞아 ‘일본 근대화의 발전에 기여한 2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1877년 삿포로 농학교에 들어가 1881년 수석으로 졸업했고,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립 지적장애인 시설의 간호부로 근무하다 이듬해 애머스트 대학교와 하트퍼드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888년에 귀국하여 도쿄 제일고등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던 중 1891년 [교육칙어]에 대한 불경죄로 해직되었고,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897년에는 일본 최대 일간지 [만조보 : 万朝報]의 영문판 주필을 맡았으나,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언론사가 정부의 기관지로 전락하자 사직하고 만다. 이후 [동경독립잡지]와 [성서 연구] 등을 통해 반전운동과 성서 연구에 매진하다 1930년에 세상을 떠났다.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성서일 뿐이며, 교회와 그 관습은 기독교를 담아내는 껍데기”라고 보았던 그는 무교회주의 기독교 사상가를 많이 길러내어 현대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최태용 등에게도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저서로 『구안록 : 求安錄』(1893), 영 문으로 쓴 『회심기 : How I Became Christian』(1895) 외 다수가 있다.
– 역자 : 조양욱 (曺良旭)
한국외국어대학 일본어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교도통신> 기자,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국민일보> 도쿄 (東京)특파원과 편집국 문화부장 및 일본문화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일본 라디오단파방송 주최 제8회 아시아상, (財)일한문화교류기금 주최 제2회 문화교류기금상 수상.
『상징어와 떠나는 일본 역사문화기행』(엔북), 『일본상식문답』(기파랑), 『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마음산책) 등의 저서와 『조선왕실의궤의 비밀』(기파랑), 『천황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다락원) 등의 번역서가 있다.

○ 출판사 서평
당대 일본 기독교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우치무라 간조가 일본사에서 선정한 5인의 위인들을 통해 일본 역사를 돌아보는 책.
위인을 고르는 기독교 선각자의 안목이 흥미를 자아낸다.
정한론 (征韓論)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 (西鄕隆盛)를 가장 첫 번째로 올려놓는 등 내셔널리즘적 시각이 드러나기도 한다.
○ 독자의 평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바쿠후(幕府) 체제를 무너뜨리고 통일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이 무렵 서양 여러 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며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히 자신들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다.
일본 기독교의 대표적 지도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가 영어로 쓴 [인물 일본사]도 일본을 서양에 알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우치무라는 퀘이크 교도로 잘 알려진 유명한 사상가 함석헌 선생과 종교인이자 교육자였던 김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우치무라는 이 책에서 일본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명의 인물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영웅전이라고 보기에는 역사적인 사실과 현실을 바탕으로 인물을 탐구하고 있으며,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나 자료가 턱 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영웅전과 평전의 중간쯤 자리잡은 형식으로 쓰여졌다.
다섯 인물은 부패한 기성불교를 파절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부르며 말법의 민중을 구제하는 길을 연 니치렌(日蓮) 대성인, 메이지유신의 일등공신이자 마지막 사무라이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최고의 개혁주의자로 꼽히는 에도시대 말기의 다이묘 우에스기 요잔(上杉鷹山), 에도시대 말기의 탁월한 농정가(農政家)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 일본 양명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최고의 유학자 나카에 도쥬(中江藤樹)다.
먼저 니치렌 대성인.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우치무라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니치렌 대성인의 삶과 사상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존경의 마음도 감추지 않고 있는 점이다. 우치무라는 불교 역사에서 말법시대에 접어들어 일본 불교의 온갖 부패 속에서 석존의 예언대로 니치렌 대성인이 탄생해 생명을 걸고 홀로 권력과 싸우며 민중을 위해 일어선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우치무라는 수차례에 걸친 대난을 겪으면서도 민중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대성인의 삶을 이야기하며 {대한 사업이란 항상 이런 식으로 탄생하는 법이다. 불굴의 정신과 그것을 탄압하는 세상, 그 사이에 영원히 위대해질 무엇인가가 탄생하게 된다. 20세기 사람들은 이 인물의 가르침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신앙과 용기를 먼저 배워야 하리라}라며 힘주어 말한다.
사이고 다카모리. 젊은 시절부터 양명학의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가르침에 심취한 그는 세계적인 시야를 가지고 일본을 유럽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은 통일국가의 기반을 닦았다. 치명적인 과오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 한반도 정복을 주장한 것을 비롯해 일본의 침략과 팽창을 부추긴 점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욕망이 없고 인재의 중요성을 꿰뚫어 본 점 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우에스기 요잔.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사제(師弟)의 길을 지킨 우에스기 요잔은 에도시대 말기에 쇠락해가는 우에스기 가문을 개혁을 통해 다시 부흥시켰다. 백성의 행복을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그는 스스로 검약을 실천했으며 봉건제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민주적인 사고방식과 행정으로 백성들에게 풍요로운 삶과 행복을 되돌려 주었다. 더욱이 지도자로서 조금도 흠잡을 데 없는 인간성으로 평생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죽음의 순간에도 수만 명의 애도 행렬이 거리에 넘쳐흘렀다고 한다.
나카야마 손토쿠.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오직 지극 정성으로 황무지를 개간하며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웠으며, 해박한 농업지식을 바탕으로 일본 농촌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나카에 도쥬. 일본 양명학의 시조인 그는 스승과 부모, 주군을 깊이 존경해야 할 삼위일체로 삼았다. 신분 차이를 넘어선 인간의 내면적 평등성을 강조함으로써 농민들로부터 성인으로 추앙 받았다. 일곱 살 때부터 ‘四書’를 공부한 그는 많은 저술과 강의로 민중에게 인간의 길을 가르쳤으며, 학자는 이름이나 학문이 의해서가 아니라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