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원함과 행함 : 기독교윤리에 대한 신학적 비판
자끄 엘륄 / 대장간 / 2018.10.23
- 기독교 윤리가 수립될수 있는 가능성, 기독교 윤리가 수립되어야 할 필요성, 기독교 윤리가 수립되어서는 안 되는 불가능성을 치밀하고도 일관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기술한 책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현재적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은 너무 쉬운 말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이 침묵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가 없고 하나님은 너무나 멀리 있는 것 같은 그 냉담하고 메마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하늘에 있고 나는 땅위에 있다는 진리의 한 측면만을 절감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이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멈춰야 하는가? 아예 살아가는 것 자체를 멈춰야 하는가?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웃과 교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를 증언하는 이웃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동일한 진리를 증언하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 영적인 조력과 신앙의 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또한 하나님이 개입하여 역사할 것이다. 그러나 삶의 방식에 관해서, 내려야 할 결정들에 관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그 결정들이 신앙적으로 결정해야 될 사항들일지라도 말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교회가 제시하는 윤리가 담당할 몫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실천하는 도덕이 도움을 주고, 하나의 본보기이자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부재와 신앙적인 회의가 감도는 시기에는 그 도덕을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는 일종의 보완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결코 그 역할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전하는 진리가 다시 신자에게 임했을 때, 결코 간섭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살아있는 말씀과 경쟁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제1부 기 원
1장 선에 관한 지식
타락 이후 아담의 상황/하나님의 심판과 인간의 선악에 관한 지식
2장 선
성서에서 말하는 선/이스라엘과 이방인/인간본성과 선
3장 도덕과 타락의 질서
타락과 관계의 단절/도덕의 기원과 죄/도덕과 인간 본성
자연 도덕과 인간의 철학/도덕적 양심
4장 도덕과 필연성의 질서
타락의 결과/필연성의 질서와 도덕/
도덕과 필연성의 질서와 결정론적 질서/도덕과 필연성의 관계
5장 이중의 도덕
- 도덕과 선과 하나님의 뜻
- 세상의 도덕에 따를 필요성
두 가지의 도덕들/두 가지 도덕들의 관계와 결과
제2부 세상의 도덕
도덕에 관한 현실주의적 기준/객관적인 도덕과 주관적인 도덕
1장 도덕의 다양성
2장 이론적 도덕
이론적 도덕의 세 가지 교훈/이론적 도덕들이 실천된 사례
3장 가치들
가치 철학의 한계/인간의 결정과 역사적 상황에 따른 가치의 변화
윤리와 가치/가치와 신성한 것의 관계
4장 실천적 도덕
도덕과 사회의 관계/개인의 선택과 결정
5장 도덕에 대한 인간의 태도
- 도덕주의
- 비도덕주의
6장 기술적 도덕
기술적 도덕의 두 가지 중요한 특징 /가치로 변환되는 기술
기술적 도덕과 미덕
제3부 기독교 윤리
1장 기독교 윤리의 불가능성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과 윤리의 관계/윤리의 정지/결의론의 문제
선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무능력/성령의 역사와 기독교 윤리의 관계
기독교 윤리의 무익성/기독교 윤리 체계 확립의 불가능성1
기독교 윤리의 위험성
2장 기독교 도덕의 역사
기독교 초기에 형성된 기독교 도덕의 문제
기독교 도덕이 확대된 세 가지 이유/기독교 윤리의 확립이 초래한 결과
3장 기독교 윤리의 필요성9
기독교 윤리의 진정한 역할/기독교 윤리의 필요성과 불가능성
기독교 윤리의 실천 가능성과 불가능성/기독교 윤리의 절박한 필요성
엘륄의 저서(연대기순) 및 연구서
○ 저자소개 : 자끄 엘륄 (Jacques Ellul, 1912 ~ 1994)
“사고는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라는 지성인의 행동강령을 말한 프랑스 지성으로, 마르크스의 사회경제학적 접근과 기독교의 가치관을 조화시킨 4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이자 실천가이다. 1912년 1월 6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937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연구부장으로 지명되었으나 비시 프랑스 (Vichy France) 정부에 의해 해임되었다. 1936~1939년 사이에 프랑스 정계에 투신하여 활동하였고, 1940~1944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열렬히 가담했다. 1953년부터는 프랑스 개혁교회의 총회 임원으로 일하였다.
법학박사인 그는 다수의 책을 저술하여 사회학자, 신학자,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졌다. 보르도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신앙과 삶’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였다. 사후인 2002년 이스라엘의 얏 바셈(Yad Vashem)재단에 의해 나치 치하의 유대인 가족들을 위험을 무릎쓰고 도와준 것이 밝혀져 “열방가운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기술(technique)에 대한 개념으로 현대사회를 설명하였으며, 법과 제도, 자유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였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의 다양한 저서를 집필하였는데, 한국에는 『세상속의 그리스도인』(1990), 『뒤틀려진 기독교』(1991), 『하나님이냐 돈이냐』(1992) ,『의심을 거친 믿음』,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등 주로 신학관련 서적이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기술체계, 마르크스와 예수 등 사회와 역사 분야의 서적이 소개되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2009)는 엘륄의 유작으로 영미권보다 한국어로 먼저 번역 소개된 바 있다.
– 역자 : 김치수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국제관계사를 연구하였다. 뒤늦게 회심하면서, 보이는 세계의 역사가 아닌,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역사에 몰두하게 되었다. 귀국하여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하고 신학 수업을 받았다. 현재 한 작은 가정교회를 섬기며 그리스도 안에서 내적 여정을 돕는 교회를 모색하고 있다.
자끄 엘륄의 『우리의 기도』를 우리말로 옮겼다.
○ 책 속으로
패를 숨김없이 다 내보여야 한다. 도덕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지적으로나인격적으로나 겸허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약간의 기만이라도 있으면 글의 신뢰성은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의미를 찾는 연구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연구하는것이기에 단순히 지적인 이론을 수립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전제 설정이 없이 도덕을 연구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우리는 전제의 설정이 없는 연구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전제 설정이 없다며 무지나 거짓에 불과한 주장을 펼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명확하게 전제를 설정하고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이 더 낫다.
스탕달은 “나는 여기서 가면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삶을 엮는 아주 은밀한 실타래와 같은 삶의 행적에 관해 사실대로 진실하게 쓰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동일한 말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면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원에 그쳐야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맨얼굴로 솔직하게 기술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고백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내 사상의 기준과 내용은 성서 계시이다. 그 출발점은 성서의 계시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방법은 변증법으로서 성서 계시는 이변증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윤리에 관해서 성서의 계시가 전하는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명확한 전제가 있다고 해서 이 책이 오로지 그리스도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나는 이 책의 아주 중요한 가치는 상반된시각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데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책은그리스도인의 고유한 관심사와도 관계가 없다. 퇴폐적인 서구 문명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삶의 규범에 관해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더구나 성서 계시는 좁은 범위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한정되는것이 아니다. 성서 계시는 먼저 타인들에 관해 얘기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삶과 도덕에 관해 얘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가진 애초의 선입견을 분명히 밝혔고, 어떤 오해도 있을 수 없도록 내가취한 입장도 정확하게 규명하였다. 그런데 아직 내게 할 말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쓸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전문적인 신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철학이 우리 시대에는 하나의 전문기술이 된 탓에, 나는 전문가로서 하등의 자격도 없다. 대학 과정에서 체계적인 단계를 밟지 않았다면,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사람답게 되려고 노력하면서, 이 시대에 충실히 살아가려고 한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불안을 느낀다. 체계도 규범도 없는 사회 속에서 나는 우리의 공통된 방임적 태도를 인지하고 있다. 나의 일은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나는 다만 한 인간으로서 내가 맡은 일을 하고자 했다. 나는 전문가들이 수없이 연구한 수많은 문제와 마주칠 것이다. 그 문제들에 대해 나는 무자격자의 독창적인 시각과 순수함으로 접근할 것이다. 나는 윤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을 삼갈 것이다. 독자들은 현존하는 수천 가지 정의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정의는 각기 타당한 측면이 부분적으로 있다. 그러나 단지 부분적으로만 타당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한번 어깨를 으쓱하며 내 말을 무시하고 말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한사람쯤은 귀를 기울이리라. — 저자의 말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기독교윤리에 대한 신학적 비판
기독교 윤리가 수립될수 있는 가능성, 기독교 윤리가 수립되어야 할 필요성, 기독교 윤리가 수립되어서는 안 되는 불가능성을 치밀하고도 일관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기술한 책 – 프레데릭 호뇽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현재적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은 너무 쉬운 말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이 침묵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가 없고 하나님은 너무나 멀리 있는 것 같은 그 냉담하고 메마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하늘에 있고 나는 땅위에 있다는 진리의 한 측면만을 절감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이기를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멈춰야 하는가? 아예 살아가는 것 자체를 멈춰야 하는가?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웃과 교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를 증언하는 이웃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동일한 진리를 증언하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 영적인 조력과 신앙의 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또한 하나님이 개입하여 역사할 것이다. 그러나 삶의 방식에 관해서, 내려야 할 결정들에 관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그 결정들이 신앙적으로 결정해야 될 사항들일지라도 말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교회가 제시하는 윤리가 담당할 몫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실천하는 도덕이 도움을 주고, 하나의 본보기이자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부재와 신앙적인 회의가 감도는 시기에는 그 도덕을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는 일종의 보완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결코 그 역할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전하는 진리가 다시 신자에게 임했을 때, 결코 간섭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살아있는 말씀과 경쟁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 저자 서문
패를 숨김없이 다 내보여야 한다. 도덕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지적으로나인격적으로나 겸허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약간의 기만이라도 있으면 글의 신뢰성은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의미를 찾는 연구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연구하는것이기에 단순히 지적인 이론을 수립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전제 설정이 없이 도덕을 연구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우리는 전제의 설정이 없는 연구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전제 설정이 없다며 무지나 거짓에 불과한 주장을 펼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명확하게 전제를 설정하고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이 더 낫다.
스탕달은 “나는 여기서 가면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삶을 엮는 아주 은밀한 실타래와 같은 삶의 행적에 관해 사실대로 진실하게 쓰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동일한 말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면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원에 그쳐야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맨얼굴로 솔직하게 기술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고백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내 사상의 기준과 내용은 성서 계시이다. 그 출발점은 성서의 계시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방법은 변증법으로서 성서 계시는 이변증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윤리에 관해서 성서의 계시가 전하는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명확한 전제가 있다고 해서 이 책이 오로지 그리스도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나는 이 책의 아주 중요한 가치는 상반된시각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데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책은그리스도인의 고유한 관심사와도 관계가 없다. 퇴폐적인 서구 문명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삶의 규범에 관해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더구나 성서 계시는 좁은 범위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한정되는것이 아니다. 성서 계시는 먼저 타인들에 관해 얘기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삶과 도덕에 관해 얘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가진 애초의 선입견을 분명히 밝혔고, 어떤 오해도 있을 수 없도록 내가취한 입장도 정확하게 규명하였다. 그런데 아직 내게 할 말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쓸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전문적인 신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철학이 우리 시대에는 하나의 전문기술이 된 탓에, 나는 전문가로서 하등의 자격도 없다. 대학 과정에서 체계적인 단계를 밟지 않았다면,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사람답게 되려고 노력하면서, 이 시대에 충실히 살아가려고 한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불안을 느낀다. 체계도 규범도 없는 사회 속에서 나는 우리의 공통된 방임적 태도를 인지하고 있다. 나의 일은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나는 다만 한 인간으로서 내가 맡은 일을 하고자 했다. 나는 전문가들이 수없이 연구한 수많은 문제와 마주칠 것이다. 그 문제들에 대해 나는 무자격자의 독창적인 시각과 순수함으로 접근할 것이다. 나는 윤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을 삼갈 것이다. 독자들은 현존하는 수천 가지 정의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정의는 각기 타당한 측면이 부분적으로 있다. 그러나 단지 부분적으로만 타당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한번 어깨를 으쓱하며 내 말을 무시하고 말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한사람쯤은 귀를 기울이리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