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위대한 화가들 : 거장 52인과의 가상 인터뷰
디미트리 조아니데스 / 이숲 / 2017.1.15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여류 화가 젠텔레스키는 자신을 강간한 스승을 단죄하고자 길고 치욕스러운 재판 과정을 견디며 위선적인 남성들의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판단한 보티첼리의 화풍에 은근히 냉소를 보내고, 세잔은 둘도 없는 친구 에밀 졸라가 소설에서 자신을 실패자로 묘사하자 배신감을 견디지 못하고 절교를 선언한다.
이처럼 이 책에는 일반적인 미술사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화가들의 숨겨진 사연과 내밀한 고백이 다수 소개되어 그들의 작품세계와 예술적 경향뿐 아니라 당시 예술의 흐름이나 다른 화가들과 그들이 맺고 있던 관계를 더욱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가상 인터뷰’를 진행한 저자는 다큐멘터리 작가답게 화가의 작품뿐 아니라 그가 놓여 있던 예술적·개인적 상황을 훤히 꿰고 있어 이야기꾼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 목차
서문 6
역자의 말 6
루이 레오폴 부아이 10 / 히에로니무스 보스 14 / 에드워드 번 존스 18 / 안토니오 카날 22 / 메리 카사트 & 에드가 드가 26 / 폴 세잔 30 / 테오도르 샤사리오 34 /쥘 셰레 38 / 귀스타브 쿠르베 42 / 루카스 크라나흐 46 / 앙리 에드몽 크로스 50 / 오노레 도미에 54 / 레오나르도 다빈치 58 / 외젠 들라크루아 62 / 모리스 드니 66 / 귀스타브 도레 70 /알브레히트 뒤러 74 / 앙리 팡탱 라투르 78 / 폴 고갱 82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86 / 후안 그리스 90 / 에드워드 호퍼 94 / 야코프 요르단스 98 / 파울 클레 102 / 구스타프 클림트 106 / 앙리 루소 110 /엘 그레코 114 / 필리피노 리피 118 / 에두아르 마네 122 / 안드레아 만테냐 126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30 / 피트 몬드리안 134/ 클로드 모네 138 / 알폰스 무하 142 / 에밀 놀데 146 / 파블로 피카소 150 / 라파엘로 154 / 오딜롱 르동 158 / 렘브란트 162 / 오귀스트 르누아르 166 / 페테르 파울 루벤스 170 / 폴 시냐크 174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178 / 윌리엄 터너 182 / 펠릭스 발로통 186 / 안톤 반 다이크 190 / 빈센트 반 고흐 194 / 테오 반 리셀베르그 198 / 디에고 벨라스케스 202 / 앙투안 와토 206 / 펠릭스 지엠 210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214
○ 저자소개 : 디미트리 조아니데스
저자 디미트리 조아니데스는 프랑스의 미술사가·기자.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예술품 경매소에서 근·현대 미술 분야 전문가로 경매를 진행하기도 한다. 예술품 경매 전문지 『라 가제트 드루오 (La Gazette Drouot)』에 「위대한 화가들과의 가상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 『얀 반 에이크: 신비스러운 어린 양의 외양간』 『에곤 실레: 추기경과 수녀』 『미켈란젤로』 『20세기 그리스 화가들』 등이 있다.
- 역자: 주일령
역자 주일령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비교문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4대학 박사과정에서 예술사를 전공했다.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 책 속으로
우선 분명하게 말해둘 게 있는데, 난 누구도 언짢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소. 단지 인간에게 ‘평정심’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을 뿐이지. 천국에 간다 해도 우리 내면의 평화를 깨뜨리는 요소가 반드시 있을 거요. 실제로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불안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내 그림에 등장하는 기괴한 동물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속에서 봤음 직한 형상에서 연상된 것들이에요. 그건 우리 생애 마지막 순간에 죽음을 마주하며 만나게 되는 이미지, 우리는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이미지에요. 15-16쪽. 히에로니무스 보스
내가 받은 교육, 가치관, 꿈 등 모든 것이 현실과 부딪치기를 꺼리게 했습니다. 나는 프랑스의 모네, 고갱, 카유보트와는 다릅니다. 내 내면 세계는 그리스·로마 시대, 중세를 향한 꿈의 기억과 상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들의 관심사와는 전혀 다르지요. 이제 환갑이 지난 이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채색 유리와 소묘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련이 만발한 정원 연못 앞에 이젤을 세울 때 어떤 그림을 그릴 것 같습니까? 내 영감의 원천은 근본적으로 문학에 있습니다. (장엄한 어조로) 예술가는 세속의 모든 관심사에 초연하고, 현실과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합니다. 20쪽 에드워드 번 존스
복잡하게 말하지 맙시다. 내가 이론가도 아닌데… 단지 내가 아는 것은 이거요. 들판에 내린 눈에 드리운 그림자를 눈으로 보면 푸른색을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내에서 그 장면을 상상하고 그리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사실을 알 수가 없어요. 회화는 완벽하게 물질적인 매체로 여기서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입니다.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은 회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아요. 44쪽. 귀스타브 쿠르베
나는 루이 필립 왕의 7월 왕정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제2공화국의 열렬한 지지자였는데, 이 코르시카 꼬마의 대용품이 나타나 대중을 현혹하는 꼴을 보니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지요. 1852년 루이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모든 게 이전과 똑같이 되풀이되더군요. 내 머리 위로 또다시 검열의 칼날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난 다시 사회 풍자로 방향을 틀었죠. (…) 코로 씨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요? 고마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년 전부터 국가가 주는 쥐꼬리만 한 연금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지금 끼니 걱정까지 해야 할 처지가 됐을 겁니다. 다행히도 친구들이 여러모로 날 도와주는데, 작년에는 뒤랑 뤼엘 화랑에서 대대적으로 내 회고전도 열어줬습니다! 언론에서도 하나같이 호의적으로 보도해줬고, 빅토르 위고 선생이 준비위원장까지 맡아주셨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시회가 성공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군요…. 그래요, 돌아보면 성공이란 깨지기 쉬운 그릇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죠. 56쪽. 오노레 도미에
궁극적으로 빛 자체는 내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빛은 단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정신적 차원의 강렬함을 암시하고 강조하는 수단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항상 통일성을 추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이렇게 강조하는 통일성이 제리코에게는 부족합니다. 통일성은 내 회화 철학의 근간을 이룹니다. 요즘은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 신경을 씁니다. 그림에서 음악이 들리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지요. 조르주 상드는 내가 화가도 시인도 아닌 음악가라고 합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쇼팽이 내 그림을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귀로 들었다고 했다는 말도 합니다. (갑자기 침울해지며)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요? 내가 삶에서 받은 가장 깊고 큰 상처는 고독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고독 말입니다. 그것은 내게 부과된 천형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세상 누구도 이런 끔찍한 형벌에 희생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65쪽. 외젠 들라크루아
나는 항상 그림의 장식적인 측면과 철학적 원칙이 조화를 이루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회화에서 요구하는 것은 (나비파의 주요 이념인) 원근법에 개의치 않는 이차원적인 평면성, 순수하고 선명한 색채, 단순화한 구성입니다. 이런 원칙에 바탕을 두고 나는 현대 생활을 묘사한 작품에서부터 종교적 감성이 충만한 작품,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까지 자유롭게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거칠고 차가운 사실주의 화풍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독일 화가 오토 딕스가 그린 예쁘장한 꽃다발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어떤 소재도 다룰 수 있습니다. 왜냐면 내 회화 언어는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르누아르도 나와 같은 경우입니다. 르누아르는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어떤 색채라도 노래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면에서 프라고나르나 들라크루아도 그렇지요. (콧수염을 꼬면서) 그 옆에 있으면 고갱은 정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병아리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진정으로 미미한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절대적 존재로 남는 것은 죽음뿐이니까요. 69쪽. 모리스 드니
나도 루벤스처럼 신속하게 작업하고, 루벤스처럼 각 재료의 특성을 잘 살릴 줄 알지요. 그러나 루벤스의 그림은 너무 장황스럽습니다. 쓸데없이 심각하게 굴고, 사소한 묘사에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내려고 하니… 보는 사람이 짜증 납니다, 안 그렇소? 루벤스 작품을 잘 보면 인물들이 사방으로 들썩이고 있잖소. 하지만 나는 정지된 운동, 정중동(靜中動)을 추구하지요. 아, 우리 루벤스 선생! 술에 취한 듯이 벌게진 얼굴, 매일 똑같은 진수성찬을 집어삼켜 터질 듯한 볼을 그리는 데는 당할 사람이 없지!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금빛이 너무 많고, 그림자는 너무 희미하고, 인물의 눈빛에는 진지함이 부족해. 루벤스 선생이 어떤 사람이냐면, 선술집 같은 데서 우연히 마주치면 반드시 깍듯하게 인사를 드려야 하는 사람이오. 안 그러면 다음날 한바탕 난리가 나니까! 하지만 나는 훨씬 단순한 화풍을 추구합니다. 내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것은 차분함이오. 100쪽. 야코프 요르단스
내가 일찍이 깨달은 사실은 주제나 소재가 사라져야 대상을 통합적, 추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조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추상미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뮌헨의 청기사파를 알게 됐고, 내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지요. 나는 1911년에 이 모임에 합류해 칸딘스키, 아우구스트 마케, 야블렌스키 등과 활동했고, 다음해에는 프랑스 추상화가인 로베르 들로네를 만났습니다. 피카소, 브라크 등 입체파 화가들의 작품도 접했지요. 바야흐로 추상파가 그 첫울음을 내지르고 입체파가 성숙의 단계에 들어서면서 회화의 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사방에서 이런 놀라운 변혁이 시도되고 있는데, 대체 누가 깊은 성찰 없이 예쁘장하기만 한 그림을 그리면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악의 폴리포니 구조를 화폭에 풀어내며 다성의 회화 세계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활동입니다. 104쪽. 파울 클레
(흥분해서) ‘세기말적’ 이라고? 이니, 대체 어디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었소? 내가 풍경화도 그렸고, 앵티미스트intimiste(일상생활을 소재로 실내 풍경을 그리는 화풍) 그림도 그렸다는 사실을 아시오? 물론 모르시겠지. 실제로 나는 쇠라나 보나르 같은 화가들을 좋아하지만, 이들은 나에 관해 말할 때 쉽게 연상하기 어려운 사람들일 거요. (주먹으로 탁자를 탕! 하고 내리치며) 그래요, 내 삶의 키워드는 바로 결별입니다. 나는 지난 세대의 모든 구태의연한 형식과 결별했소. 나의 갈망, 내가 존중하는 가치, 내가 추구하는 상징은 바로 결별에서 시작됐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기존 체제를 따르는 순응주의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나는 단 하나의 원칙만을 따르게 됐습니다. 그 원칙이란 바로 어떤 권위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09쪽. 구스타프 클림트
내 표현방식은 매우 정밀하지만, 너무 단순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색채만큼은 자신 있는데… (웃음) 나는 화면에서 일률적으로 색채를 분배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물들을 서로 선명하게 분리하고 외곽선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낼 수 있지요. 내가 이런 독창적인 발상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사람들은 내 그림에 사실성이 부족하고 아이 그림처럼 유치하다고 비난하지요. 하지만 내가 현실성 없이 달나라에서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원근법도 없이 ‘미개하게’ 그린다고 칩시다. 그래서 뭐가 문제죠? 사람들은 원근법을 사용하기 이전에 그려진 그림들이 ‘원시적’이라고 합니다. 내 그림의 인물들은 배경 요소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둔중하고 거대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근법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수많은 세부묘사로 가득 찬 배경이 대상과 같은 평면에 있어서 발생한 효과입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세상을 보여주는 거예요. 내 구차한 현실, 불행한 가족사, 온갖 좌절에서 벗어난 꿈같은 세상을 보여주는 겁니다. 113쪽. 앙리 루소
점묘법이든, 분할주의든, 신인상주의든, 이름은 좋을 대로 부르세요, 사람들이 다 알아듣습니다. 나는 스물세 살 때 들라크루아와 나 사이에 명백한 공통점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작의 즉흥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대가들의 그림을 연구하면서 그들에게서 배울 점은 오로지 순수한 색뿐이라는 확신도 생겼습니다. 한 점 한 점 색을 배치해가면 형태가 생기고, 결국 전모가 드러납니다. 수많은 점이 모여 마치 마술처럼 구체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샤를 앙리가 쓴 과학적 미학 개론을 읽어보세요. 색의 상호 보완 원리가 완벽하게 설명돼 있습니다. 미술과 과학을 통합한 그의 연구는 상징주의 화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의 이론 덕분에 내가 추구하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았습니다. 176쪽. 폴 시냐크
1802년 영국이 나폴레옹과 강화조약(아미앵조약)을 체결하자, 많은 영국인이 대륙으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나도 파리에 갔고, 루브르에서 프랑스가 약탈해 온 보물들을 감상했지요. 티치아노, 르 로랭, 푸생의 작품을 꼼꼼히 살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작품 감상 여행을 떠난 것은 그보다 12년 전이었습니다. 그 후에 모두 50회 정도 스위스 산악 지방,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지를 여행했습니다. 초년에 내게 영감을 준 화가가 많았는데, 특히 토머스 게인즈버러, 헨리 푸젤리 등을 꼽을 수 있지요. 그러나 내게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한 화가는 조슈아 레이놀즈 경입니다. 그분에게 배울 때 특히 ‘회화와 조각은 시와 같은 맥락에 있는 분야’라는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184쪽. 윌리엄 터너
타지 사람들은 세비야를 안달루시아 지방 깊은 곳에 있는 시골 마을 정도로 여기지만, 사실 세비야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이던 국제 도시였습니다. 그곳의 미술 애호가들은 개방적이었고 상인들은 부유했습니다. 내 초년 시절, 세비야의 화가들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도 자유롭게 세속적 주제들을 다룰 수 있었습니다. 나는 싸구려 식당이나 부엌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장면들을 다룬 보데곤(bodegone, 스페인 정물화)을 그렸는데, 이런 그림들 덕분에 꽤 성공했지요. 수르바란이나 무리요도 나처럼 세비야 출신입니다. 나는 세비야에서 성 루가 화가조합 회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 내 화실을 열었고, 스물네 살에 마드리드 궁정에 입성한 겁니다. 내 야심은 최고의 후원자를 만나는 것이었는데, 재능에 운도 도와서 상경하자마자 전하를 모시게 된 겁니다. 204쪽. 벨라스케스
○ 출판사 서평
- 서양미술의 대표적 대가들을 인터뷰하다
미술사학자이자 작가인 저자가 중세부터 현대까지 서양미술의 대가 52인을 가상 인터뷰했다. 미술사의 흐름이나 화가의 생애와 작품을 기술한 기존 저서들과 달리 이 책은 ‘인터뷰’라는 자유로운 대화 형식을 통해 대가들의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새로운 기법, 과거와 동시대 화가들에 대한 평가, 당시의 시대상 등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한다. 또한, 사랑, 금전, 건강, 성공 욕구,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현실에 대한 울분, 거주지와 여행지에 얽힌 사연 등 화가의 애틋한 개인사도 감성적으로 펼쳐진다. 이처럼 때로 격정적이고 때로 은밀한 거장들이 고백을 듣다 보면, 마치 같은 시리즈의 여러 편 드라마를 보듯이 서양미술사의 긴 흐름을 대가들의 극적인 생애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 특히, 백여 컷에 이르는 고화질 작품 사진들은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 드라마 같은 대가들의 실화를 통해 이해하는 서양미술사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여류 화가 젠텔레스키는 자신을 강간한 스승을 단죄하고자 길고 치욕스러운 재판 과정을 견디며 위선적인 남성들의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판단한 보티첼리의 화풍에 은근히 냉소를 보내고, 세잔은 둘도 없는 친구 에밀 졸라가 소설에서 자신을 실패자로 묘사하자 배신감을 견디지 못하고 절교를 선언한다. 입체파 화가 후안 그리스는 피카소가 질투심 때문에 자신을 멀리한다고 확신하고, 피카소는 후배 입체파 화가들이 자기 작품을 표절했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차가운 북해 풍경을 인상적인 색채로 그려낸 일 표현주의 선구자 에밀 놀데는 프랑스 인상주의가 ‘말랑말랑하고 달달해서’ 싫다고 고백하고, 추상화가 몬드리안은 자기 작품이 피카소의 작품만큼 높은 가격에 팔리지 않자 섭섭함을 토로한다. 대도시 고독한 인간 군상을 특유의 미국적 시선으로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는 자신도 빛을 그리는 인상파 화가이며, 다른 점이 있다면 단지 자연 속 햇빛이 아니라 밤거리 네온 빛을 보여준다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이 책에는 일반적인 미술사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화가들의 숨겨진 사연과 내밀한 고백이 다수 소개되어 그들의 작품세계와 예술적 경향뿐 아니라 당시 예술의 흐름이나 다른 화가들과 그들이 맺고 있던 관계를 더욱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가상 인터뷰’를 진행한 저자는 다큐멘터리 작가답게 화가의 작품뿐 아니라 그가 놓여 있던 예술적·개인적 상황을 훤히 꿰고 있어 이야기꾼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 드루오 경매소와 『라 가제트 드루오』
저자가 이 책의 원고를 연재했던 전문지 『라 가제트 드루오 (La Gazette Drouot)』는 프랑스 최대 예술품 경매소인 드루오에서 발간하는 소식지다. 이 책에서 저자가 화가들을 인터뷰할 때 드루오 경매소가 자주 언급되는데, 실제로 인상주의 회화사에서 1850년 설립된 드루오 경매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경매소는 살롱전에서 외면당한 인상파 화가들이 직접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으며 기존 화단의 냉대를 받으며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그들이 직접 경매에 작품을 내놓아 경제적 난관을 타개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처럼 이 드루오 경매소를 통해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고갱 등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화풍을 선보이던 화가들이 작품을 팔았다. 이 유서 깊은 경매소에서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 경매를 직접 진행하기도 하는 저자는 이 기관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라 가제트 드루오』에 2009년부터 대가들을 가상으로 인터뷰한 기사를 연재했다. 기사는 저자가 대가들이 사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 때로는 젊은 시절의 화가를, 때로는 죽음을 앞둔 노년의 화가를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예술관, 작품 제작의 뒷얘기, 동료 화가들과의 관계, 사생활에 얽힌 일화 등을 묻고 기록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바로 그 기사들을 한데 엮어 출간한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