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이이 동호문답 : 해제, 선조에게 올리는 청년 이이의 수기치인의 정치개혁 보고서
율곡 이이 / 책세상 / 2005.5.30
‘동호 (東湖)에서 묻고 대답함’이란 의미를 가진 『동호문답』은 율곡이 선조 2년, 그의 나이 34세 때 지은 책으로서 왕위에 오른 지 만 2년여 밖에 안 된 새 군주 선조에게 새 정치에 대한 열망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담아 제출한 정치 개혁서다.
율곡은 이 책에서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유교의 보편 명제에 대한 확신 아래 왕도정치에 대한 선조의 입지 (立志)를 촉구하고, 각종 제도와 정책의 개혁과 관리의 부정부패 근절, 곧 무실 (務實)을 역설한다. 자신을 닦는 일과 백성을 다스리는 일의 조화를 추구 했던 율곡의 가르침은 유교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해준다.
○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군주의 길을 논하다
제2장 신하의 길을 논하다
제3장 좋은 군주와 좋은 신하가 만나기 어려움에 대해 논하다
제4장 우리나라에서 도학이 행해지지 않음에 대해 논하다
제5장 우리 조정이 옛 도를 회복하지 못함에 대해 논하다
제6장 금일의 시대 정세를 논하다
제7장 무실이 수기의 요체임을 논하다
제8장 간인의 판별이 용현의 요체임을 논하다
제9장 안민정책을 논하다
제10장 교육정책을 논하다
제11장 정명이 정치의 근본임을 논하다
해제 – 선조에게 올리는 청년 이이의 수기치인의 정치개혁 보고서
- 인간 율곡과 생애
(1) 생과 사
(2) 성장기
(3) 관직 생활
(4) 저술 세계 - <동호문답>의 내용과 구성
- 조선 전기 수기치인의 정치학
(1) 왕도정치의 관건 : 정치 주체의 입지와 무실
(2) 수기치인과 무실
ㄱ. 수기와 무실
ㄴ. 치인과 무실 - 선조 대 율곡
- 율곡과 한국 지성사 : 도덕과 정치, 사람과 제도의 조화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 저자소개 : 율곡 이이
‘수기치인 (修己治人)의 조선적 주자학’의 확립에 성공한 사상가이자 안민(安民)을 위한 현실 개혁을 주장했던 정치가였다.
이원수 (李元秀)와 신사임당 (申師任堂)의 4남 3녀 중 3남으로 태어나 저술과 관직 활동이라는 두 세계 속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 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은거와 출사, 사직을 반복하다 38세에 홍문관 직제학으로 다시 중앙 정치에 복귀한다. 이듬해 정3품 우부승지가 된 율곡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당황한 선조가 신하들에게 제언을 구하자,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만언봉사 萬言封事]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 밖에도 평생 학문과 저술에 힘써 제왕의 지침서인 『성학집요 聖學輯要』, 선비들의 기본 교육서인 『격몽요결 擊蒙要訣』 등 많은 저술을 남긴다.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쳤고 『김시습전』을 지었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다.
선조의 신임을 받아 고위직을 두루 거친 율곡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 (선조 16),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군정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이유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개혁안들은 당시 거의 채용되지 못했으나 그의 학문과 경세 사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인들에게 계승되었다.
주요저서로『동호문답』, 〈만언봉사〉,〈천도책〉, 『성학집요』,『경연일기』 등을 남겼다.
- 역자 : 안외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맹자』,『근역서화징』(공역),『김택영의 조선시대사 한사경』(공역) 등을 옮겼다. 현재 이화여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전통시대 한국정치사, 한국정치사상의 체계 수립에 매진하고 있다.
○ 출판사 서평
-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
과연 유교는 폐기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일 뿐인가. 조선 왕조 500년 동안 구성원들의 삶의 근간으로 기능했음에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연고주의, 수직적 위계질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잉태한 주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율곡 이이의『동호문답』(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 050)에 담긴 민(民) 중심의 현실 개혁 논의는 유교에 대한 이러한 세간의 편견에 이의를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동호 (東湖)에서 묻고 대답함’이란 의미를 가진『동호문답』은 율곡이 선조 2년, 그의 나이 34세 때 지은 책으로서 왕위에 오른 지 만 2년여 밖에 안 된 새 군주 선조에게 새 정치에 대한 열망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담아 제출한 정치 개혁서다. 율곡은 이 책에서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유교의 보편 명제에 대한 확신 아래 왕도정치에 대한 선조의 입지(立志)를 촉구하고, 각종 제도와 정책의 개혁과 관리의 부정부패 근절, 곧 무실(務實)을 역설한다. 백성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토대로서 자신을 닦는 일〔수기 (修己)〕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치인 (治人)〕의 조화를 제시하고, 이를 이루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이러한 율곡의 사상은 오늘날의 극단적 유교 폄하를 넘어 유교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수기와 치인의 유가 사상을 말하다
손님과 주인이 서로 문답을 주고받는 대화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율곡 주자학의 초기적 전모, 곧 성학론 (군주론 혹은 성인론) · 수기학 (윤리학) · 경세학 (사회경제론)의 기본적인 성격을 모두 담고 있다.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에서 ① 군주의 길, ② 신하의 길, ③ 좋은 군주와 좋은 신하가 만나기 어려움, ④ 고려 때까지 도학이 행해지지 못한 이유, ⑤ 조선과 왕도정치 회복의 관계, ⑥ 금일의 시대 정세, ⑦ 무실 (務實)이 수기 (修己)의 요체, ⑧ 간인 (姦人)의 판별이 용현(用賢)의 요체, ⑨ 안민정책, ⑩ 교육정책, ⑪ 정명 (正名)을 실천할 것이라는 총 11개의 주제에 대한 율곡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11개 장은 크게 3부로 재배치할 수 있는데, 먼저 1부 (1~3장)는 선조가 성군이 되어 진정한 치세를 이루겠다는 의욕을 갖도록 북돋우면서 그에 필요한 군주의 자세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부 (4~6장)에서는 조선의 역대 정권의 성격과 현재의 정치 현실에 대해 점검하면서 선조로 하여금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성찰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3부 (7~11장)는 당시 선조가 군주로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과 그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유교, 구시대의 폐물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유교는 어떤 존재로 남아 있는가.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구시대 지식인들만의 사유, 과학 기술을 등한시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저해한 관념, 격변하는 정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 결국 나라를 빼앗기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사상 정도로 치부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을 가득 메운 율곡의 시대 인식과 구체적인 현실 개혁 논의는 유교가 박물관에나 어울리는 고리타분한 사상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통치자의 자기 성찰과 각성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 고위공직자들의 끊임없는 부정부패에 일침을 가하고 있으며, 을사사화 주역들의 엄단을 촉구하는 모습은 광복 60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 과거사 청산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런 율곡의 모습은 우리에게 왜 유교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의 사유세계를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식의 유교 폄하가 아니라 유교가 현 시대에도 유효한 가르침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