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일본 무뢰파 단편소설선
사카구치 안고, 다카미 준, 다자이 오사무, 다나카 히데미쓰, 오다 사쿠노스케 / 현인 / 2021.5.17
– 기존 권위에 맞섰던 무뢰파 작가들의 치열한 삶과 문학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이후, 혼란한 사회 속에서 기존의 모든 권위에 맞서는 언동으로 사회의 주목을 끌었던 일본 무뢰파 작가들의 작품을 엄선하여 수록했다. 이 책을 통해서 우울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작가들의 정신을 맛보시기 바란다.
○ 목차
*사카구치 안고
요나가 아씨와 미미오 / 전쟁과 한 여자
*다카미 준
신경 / 인간
*다자이 오사무
후지 백경 / 비용의 아내
*다나카 히데미쓰
사요나라 / 여우
*오다 사쿠노스케
비 / 속취
○ 저자소개 : 사카구치 안고, 다카미 준, 다자이 오사무, 다나카 히데미쓰, 오다 사쿠노스케
– 저자: 사카구치 안고
니가타 (新潟) 현 출신으로 본명은 헤이고 (炳五). 어렸을 때부터 유치원도 제대로 가지 않고 골목대장으로 온갖 장난을 쳤다. 1926년에 도요(東洋) 대학 인도철학과에 입학했으나 가혹한 수행 때문에 깨달음 얻기를 포기했다. 1930년에 친구들과 동인지 『말』을 창간했으며 이듬해에 발표한 「바람 박사」가 마키노 신이치 (牧野信一)의 절찬을 얻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여러 편의 가작을 발표하지만 세평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1946년에 전후 일본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악, 통찰한 「타락론」, 「백치」의 발표로 일약 인기 작가가 되었다. 전후 세상을 반영한 소설과 수필, 탐정소설, 역사연구 등 다채로운 집필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국세청과 싸우기도 하고 경륜의 부정사건을 고발하기도 하는 등 실생활에서도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에 뇌익혈로 급사했다.
– 저자: 다카미 준 (1907~1965)
1907년에 후쿠이 (福井) 현의 지사인 사카모토 산노스케 (阪本?之助)의 서자로 후쿠이 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다카마 요시오(高間芳雄).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30년에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노동운동에 참가했다가 1933년에 검거되어 전향했다. 유치 중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달아나 이혼했다. 전향과 가정붕괴의 이중고 속에서 쓴 「잊지 못할 옛 친구」가 제1회 아쿠타가와(芥川) 상 후보작이 되어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요설적 설화형식을 주장하여 기성 리얼리즘의 극복을 추구했으며 장편 「어느 별 아래서」와 평론 「문학 무력설」로 인텔리 작가로서의 독자적 지위를 구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현대사의 동란 속에서 자신을 상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쟁 전후에 쓴 일기가 귀중한 기록으로 남았다. 일본근대문학관 창설과 자료수집에 진력했다.
– 저자: 다자이 오사무 (1909~1948)
일본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다. 아오모리(?森) 현 쓰가루(津?)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신흥지주였다. 도쿄 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문학적으로는 아쿠타가와의 영향을 받아 출발했으며 고교 시절에는 좌익문학에도 관심을 보였다. 1933년, 동인지 『해표(海豹)』에 「어복기(魚服記)」, 「추억(思ひ出)」을 발표하여 주목받기 시작했다. 1935년에 대학 졸업에 대한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신문사 입사시험에 응시했으나 떨어져 두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이후 복막염에 걸려 중태에 빠졌는데 그 치료과정에서 진통제인 파비날 중독에 걸린다. 그러는 동안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르나 낙선하고 말았다. 첫 번째 작품집인 『만년』에 수록된 이 시기의 작품들은 여러 소설 작법을 시험한 다채로운 것들이었다. 단편집 『여생도(女生徒)』로 기타무라 도코쿠 (北村透谷)상을 받았으며 전쟁 중에는 고전 및 그 외의 것에서 재료를 얻은 것이 많았고 순문학을 고독하게 지켰다. 고향에서 패전을 맞았으며 「판도라의 상자」 등의 작품에서 시국에 편승하는 자유사상에 반발, 참된 인간혁명을 기원했다. 상경 후 저널리즘의 각광을 받았으며 「비용의 아내」, 「사양」, 「인간실격」을 써서 무뢰파라 불렸다. 1948년에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山崎富?)와 강물로 뛰어들어 세상을 떠났다.
– 저자: 다나카 히데미쓰 (1913~1949)
도쿄에서 출생하여 어머니의 집안인 다나카 가에 호적을 올렸다. 가마쿠라에서 성장했으며 와세다(早?田) 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 대학 재학 중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조정선수로 출장했다.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올림포스의 과실」을 썼다. 주재원으로 있던 당시 경성(현, 서울)에서의 체험, 형님의 영향으로 입당한 공산당에서의 체험, 애인과의 신주쿠에서의 생활이 문학의 배경에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수면제 중독에 걸렸으며 1949년 11월 3일에 다자이의 무덤 앞에서 자살했다.
– 저자: 오다 사쿠노스케 (1913~1947)
오오사카 출생. 제3고등학교에 5년 재학하다 중퇴했다. 「비」로 다케다 린타로 (武田麟太?)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결혼 후 「부부 단팥죽」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권선징악」 등 역작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장편 「청춘의 역설」이 반군국주의 작품으로 발금처분을 받았다. 1946년에 패전 직후의 혼란스러운 세상을 묘사한 단편을 발표했으며, 사소설의 전통에 결별을 선언한 평론 「가능성의 문학」을 집필, 그 실험적 작품이라 여겨지는 장편 「토요부인」을 『요미우리신문』에 8월부터 연재했으나 연말에 객혈,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모든 사상이나 체계에 대한 불신, 옛 전통에 대한 반역을 목표로 삼았으며 고유의 감각과 직관에 바탕을 둔 스탕달풍의 템포가 빠른 작풍을 보여줬다.
– 역자: 박현석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 및 직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출판을 시작했다. 번역서로는 『붉은 수염 진료담』, 『계절이 없는 거리』, 『사부』, 『그럼, 이만…… 다자이 오사무였습니다.』, 『그럼, 안녕히…… 야마자키 도미에였습니다.』, 『신주로 사건수첩』,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나쓰메 소세키 수상집』 외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여자는 유곽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기에 육체에 정상적인 애정의 기쁨, 이 없었다. 따라서 이 여자와의 동거에 남자로서는 거기에 가장 큰 불만, 이 있을 테지만, 정조관념이 없다는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신선한 것으로, 가정적인 어두움이 없다는 점이 노무라는 마음에 들었다. 유희의 상대로 그 유희에는 마지막 만족이 결여되어 있지만, 어쨌든 늘 유희적인 관계에 있는 것만으로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노무라는 생각했다. 전쟁 중이 아니었다면 같이 살 마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다. 살아남아도 노예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가정을 건설하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사카구치 안고 「전쟁과 한 여자」 중에서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나도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얼마 전까지 아유코의 정부였던 고로와 실실 웃으며 오토리사마 구경을 가다니, 나의 신경도 평범한 사람과 조금 다른 구석이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아유코도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 고로와 만날 약속이 있었다면 S군이 함께 가자고 했을 때 거절하면 됐을 텐데, -아무래도 아유코의 신경 역시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듯했다. / 나는 조금 전에 아유코의 오빠를 평범한 사람과 신경이 다른 구석이 있는 사내인 것처럼 이야기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는 모두가 그런 듯했다. -다카미 준「신경」 중에서
인간의 일생은 지옥이어서, 촌선척마(寸善尺魔), 라는 건,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1치의 행복에는 1자의 요사스러운 일이 따라옵니다. 인간 365일, 아무런 걱정도 없는 날이, 하루, 아니, 한나절 있다면, 그건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비용의 아내」 중에서
오카다는 병기를 전부 버림으로 해서 온몸으로 전쟁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유도 없이 방화, 살인, 상해, 강도, 강간을 행하는 전쟁이야말로 일반 사람의 신경으로는 견딜 수 없는 광적인 행동으로, 그것을 거부하여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오카다와, 그것을 견디며 혹은 그것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거부한 오카다에게 잔인한 린치를 가한 분대장 들, 그리고 그것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본 우리들 중 누가 진짜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일까? 나는 전쟁이라는 광기를 견디지 못한 오카다의 신경에서,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건강함을 느낀다. -다나카 히데미쓰 「사요나라」 중에서
스스로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테지만 그는 자존심의 작용으로 생겨난, 무엇인가에 대한 적대의식에 끊임없이 탄력을 붙여가고 있는 소년이었다. 상처받기 쉬운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승리감에 굶주려 있었다. -오다 사쿠노스케 「비」 중에서
○ 출판사 서평
무뢰파 작가란,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의 혼란기에 반속(反俗), 반권위, 반도덕적 언동으로 시대를 상징한 일련의 작가들(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다카미 준, 오다 사쿠노스케, 다나카 히데미쓰)을 말한다. ‘파’라고는 하지만 동인지나 결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시 중의 억압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공감을 담아 명명한 이름이다. 그들은 1930년대 중후반부터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보했으며, 반속 · 반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무뢰적 자세도 그 시기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으며, 전후 그것이 단번에 분출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크게 나누면 2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강적인 자세로 파멸을 향한 생활의 무뢰에 무게를 두었던 작가와, 기존 리얼리즘에 대한 부정에서 새로운 방법의 추구에 무게를 두었던 작가가 있다. 전자로는 다자이, 사카구치, 오다, 다나카 등이 있으며, 후자로는 다카미, 이시카와 준, 이토 세이 등이 있으나 무뢰파로서의 주류적 존재는 전자들이었다. 그 이름의 유래는 다자이의 ‘나는 리베르탱입니다. 무뢰파입니다. 속박에 반항합니다. 때를 얻은 듯한 얼굴을 하는 자들을 조소합니다.’(판도라의 상자)에 있다고 한다. 생활과 표현, 양면에서 반속을 관철시키려 했던 그 자세를 문학적 성실함으로 보아 지금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이 책에는 그처럼 치열한 삶을 살았던 무뢰파 작가들의 단편소설 가운데 대한민국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중심으로 수록 작가마다 2편씩 선별하여 실었다. 단, 다자이 오사무는 우리나라에도 이미 전집이 나와 있기에 2작품 모두 처음 소개하는 작품은 아니며, 다나카 히데미쓰의 「여우」도 예전에 소개된 적이 있으나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기에 다시 실었다.
일본의 혼란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무뢰파 작가들의 삶과 문학은 단순히 기존 권위에 대한 부정과 도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혼란기 일본에서의 인간적 고뇌를 상징하는 것이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순수한 인간의 몸부림이었다. 순수한 인간이었기에 혼란 속에서 그 고뇌는 더욱 컸던 것이리라. 그들의 고뇌를 함께 경험하시기 바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