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잊혀진 소망 : 잊고 있던 예수의 말씀에 대한 심도있는 조명
자끄 엘륄 / 대장간 / 2009.7.25
잊고 있던 예수의 말씀에 대한 심도 있는 조명. 자끄 엘륄은 1912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나 법률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신학자, 환경운동가, 프랑스 개신교 전국위원으로 다양한 활도을 하면서 53권의 저서와 수많은 기고물을 남기고 1994년 82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기술, 선전, 정치, 혁명, 대도시, 돈 등 현대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뿐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벗어난 기독교에 대한 고찰 및 비판과 더불어 기독교 윤리로서 소망과 자유를 제시하면서, 기독교인의 소명과 책무를 강조한다.
○ 목차
추천사 박동열
추천사 빠트릭 트루드 샤스뜨네
서문
제1장 : 현대사에서 소망의 상실
I. 방황
- 닫힌 세상
- 비합리의 폭발
- 슬픈 젊은이들
- 뒤바뀜
- 가치들의 변질
- 말의 죽음
- 환상
II. 징후들 - 불모상태 : 마법사들의 시대
- 불모상태 : 경멸의 시대
- 불모상태 : 의심의 시대
- 불모상태 : 조롱의 시대
- 가식적인 태도
- 부인(否認)
제2장 : ‘하나님과의 단절’ 시대
I. 인간에 대한 진단의 오류
- 신앙 혹은 소망
- 두개의 변증법
- 하나님의 침묵
II. 하나님에 대한 진단의 오류 - 하나님의 죽음
- 하나님의 부재(不在)
- 불가능한 가능성
- 침묵의 오늘
- 쟁점
III.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의 단절’의 징조들 - 교회의 평범함
- 제도
- 메마름
- 추종(追從)
간주곡 : 자기비판
제3장 : ‘하나님과의 단절’ 시대에서 소망
I.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대답
- 서로 이해하기…
- 흔들리지 않는것
- 인간의 능력
II. 절망적인 시대에서 - 소망과 희망
- 소망의 묘미
III. 질문하기 - 소망과 요한 계시록
- 성령을 거스르는 죄
- 인간의 힘
IV. 소망
제4장 : 태초에 소망이 있었다. – 소망의 윤리를 위한 창구
I. 비관주의와 자유
- 논쟁을 넘어서
- 소망과 시간
- 하나님의 영광
- 자유
- 상대성
- 항의
II. 소망의 인간적인 토대 - 기다림
- 기도
- 현실주의(realisme)
- 결단
III. 징표와 잠행(潛行) - 징표들?
- 잠행
- 존재함
- 엄밀함
저자 소개 및 요약문
○ 저자소개 : 자끄 엘륄 (Jacques Ellul, 1912 ~ 1994)
“사고는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라는 지성인의 행동강령을 말한 프랑스 지성으로, 마르크스의 사회경제학적 접근과 기독교의 가치관을 조화시킨 4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이자 실천가이다. 1912년 1월 6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937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연구부장으로 지명되었으나 비시 프랑스 (Vichy France) 정부에 의해 해임되었다. 1936~1939년 사이에 프랑스 정계에 투신하여 활동하였고, 1940~1944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열렬히 가담했다. 1953년부터는 프랑스 개혁교회의 총회 임원으로 일하였다.
법학박사인 그는 다수의 책을 저술하여 사회학자, 신학자,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졌다. 보르도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신앙과 삶’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였다. 사후인 2002년 이스라엘의 얏 바셈 (Yad Vashem)재단에 의해 나치 치하의 유대인 가족들을 위험을 무릎쓰고 도와준 것이 밝혀져 “열방가운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기술 (technique)에 대한 개념으로 현대사회를 설명하였으며, 법과 제도, 자유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였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의 다양한 저서를 집필하였는데, 한국에는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1990), 『뒤틀려진 기독교』(1991), 『하나님이냐 돈이냐』(1992) ,『의심을 거친 믿음』,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등 주로 신학관련 서적이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기술체계, 마르크스와 예수 등 사회와 역사 분야의 서적이 소개되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2009)는 엘륄의 유작으로 영미권보다 한국어로 먼저 번역 소개된 바 있다.
○ 출판사 서평
-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자끄 엘륄은 1912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나 법률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신학자, 환경운동가, 프랑스 개신교 전국위원으로 다양한 활도을 하면서 53권의 저서와 수많은 기고물을 남기고 1994년 82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기술, 선전, 정치, 혁명, 대도시, 돈 등 현대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뿐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벗어난 기독교에 대한 고찰 및 비판과 더불어 기독교 윤리로서 소망과 자유를 제시하면서, 기독교인의 소명과 책무를 강조한다.
○ 추천사
하나님 나로 복음은, 자끄 엘륄이 말한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신심croyance을 의지 하여 절대자에게 나아가는 종교religion가 아니다. 그것은 계시와 참된 믿음 foi을 통한 생명의 흐름이며, 내적 운동력이며, 자연스런 충만함이다. 이 참된 생명운동은 우리로 하여금 무의미한 각종 희망espoir을 추구하면서 사는 삶을 중단하고, 분명한 그리스도의 재림이란 참된 소망 esperance을 갈망하면서 그 소망이 주는 긴장과 편안속에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_박동열
그리스도인은 소망하기 때문에 자유롭다. 즉 “소망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인간의 대답이다.” 인간은 소망하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에게 자신의 소망을 강요할 때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항하여 하나님에게 하는 호소이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침묵을 깨고 약속을 지키라고 강요하기 위한 인간의 투쟁이다. 그래서 소망은 하나님의 말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고발하는 것으로 울려 퍼진다. – 보르도 Bordeaux 4대학 교수 _「세계자끄엘륄협회」회장 빠트릭 트루드 샤스뜨네
○ 독자의 평 1
어느 시대에나 좌파와 우파가 있다. 좌파는 일반적으로 위험하게 여겨진다. 좌파는 이상만을 이야기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고발하기에 좌파는 늘 위험한 대상으로 인식된다. 엘륄은 말하자면 좌파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잊혀진 소망”은 엘륄의 신학의 색깔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소위 좌파신학자로서)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아주 불온한 서적으로 비쳐줄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항한다든지, 이 세상은 하나님과 단절되었다는 표현은 ‘존재함의 신학’에 익숙한, 익숙하다못해 푹빠져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단적인 표현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륄의 외치는 소망의 신학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맹렬한 외침이다. 사실은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없이 너무나 잘 살고 있다. 이것은 처절한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냥 무시해 버리는 성경의 선언과 실제 삶의 괴리에서 오는 극단적인 딜레마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부르짖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응당 주셔야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것의 부재이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대해 소망한다. 엘륄은 이것이 바로 우상 숭배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을 원하기를 소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 뼈저린 단절이 우리를 소망으로 이끈다. 엘륄이 말하는 소망은 바로 ‘맹렬하게 하나님만을 추구함’이다. ‘약속의 신학’이 위험성은 ‘약속’이 ‘실현’될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륄은 약속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엘륄의 소망을 보면서 요나의 기도가 생각났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만을 소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살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의 풍요로움 속에 안주하길 원하시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내버려 두신다면 그것은 가장 큰 하나님의 심판이요 저주이다. 우리는 현실의 풍요로움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번역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역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엘륄의 원의를 전달하고자 했을 법하지만, 지나친 문자적인 번역으로 인해 의미 전달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엘륄의 의도를 파악해, 문자에 얽매이기 보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과감한 번역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독자의 평 2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이 세상은 아름다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의 모습으로 창조하신 이 세계는 완벽했지만, 하나님이 원치 않았던 죄된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모습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시대를 자끄 엘륄은 하나님이 뒤돌아 서버린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끄 엘륄의 잊혀진 소망은 하나님과의 단절한 현 시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하나님과 단절된 시대의 현상들을 이야기 할 때 저는 솔직히 제가 모르고 또는 느끼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상세히 진단하는 것을 놀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상실하고 하나님과 단절한 상태인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이 있다고 느낄 때 이 문제가 나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이 시대의 문제라는 것이 가슴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단절이 개인의 단절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끄 엘륄은 프랑스의 법률학, 신학, 철학, 사회학자여서 그런지 이 책은 그렇게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이해력을 많이 요구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수 있었습니다. 단절한 시대인 만큼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욱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느낄수록 더욱 소망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양심과는 타협할려는 교회와 은혜가 메말라 있는 말씀선포 속에서도 잃어버린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등 돌린 듯 하지만 우리는 더욱 흔들리지않는 소망을 붙잡고 하나님께 나아가 요구를 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너무 절망적입니다. 현대사회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타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흐름에 아무런 징조도 느끼지 못한 채 그리스도인들도 동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과 종말론적 신앙관은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기독교는 본래의 모습과 힘을 잃어버리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자Rm 엘륄을 통해 현 시대의 타락의 징후를 읽는 것은 넓은 시야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에 계속 안주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욱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요구해야 합니다. 더 이상은 방광하는 자세로 이 시대를 향해 무관심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 나와는 상관없다는 방식으로 일관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요구해야만 합니다.
자끄 엘륄의 책은 쉽지 않지만 이 책을 통해 현시대의 죄악상과 하나님의 부재가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하나님과 회복해야 함을 다시한번 깨닫고 우리가 붙잡아야 할 소망을 현 시대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독자의 평 3
태초에 인간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 뿐이었다. 인간은 그분 한분만으로 만족하였고, 더 필요한 것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친히 책임져 주셨기에 인간은 다른 아무 것도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만이 소망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자 소망이 변하게 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게 되었다. 이제 인간의 소망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입을 것, 먹을 것, 할 것이 되었다.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할까라는 자기 자신에 소망이 집중 되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이루어졌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과의 막힌 담을 허물고,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신다. 다시 모든 것을 당신이 책임져 주실테니 그 앞으로 나올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의 소망은 인간과의 소통과 접촉, 화해와 교제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소망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유이다. 스스로를 책임지게 된 인간은, 자유를 맛본 인간은 하나님과의 접촉을 성가시게 여겼다. 그분과의 하나됨은 제한과 구속으로 여기게 되었다. 서로 간에 어긋난 소망이 둘 사이에 허물 수 없는 담을 만들었다.
자끄 엘룰은 1912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법률학자, 신학자, 환경운동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정력가이다. 그는 많은 저서와 기고물을 남겼고, 특히나 신학자로서 기독교인의 소명과 책무를 강조 했다.
잊혀진 소망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인간이 왜 소망을 상실했고, 그것의 회복 가능성 등을 다룬다. 이렇게 보면 내용이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회적, 종교적, 철학적으로 소망을 다루고 있기에 소망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 기독교인이라면 분명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에게서 돌아서지 않으신다. 오히려 인간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마주보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꾸만 돌아선다. 자신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면서도 하나님에게 왜 나를 향해 돌아서냐고 따진다. 소망을 다른데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최후의 보루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다리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다리를 놓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없애는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줄어들고 있다. 교회마저 인간의 입을 것, 먹을 것, 할 것에 집중하고 있다. 나의(우리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의 하나님, 아니 단지 내가 이용해야 할 이로 전락시키고 있다. 하나님과의 단절에 앞장서고 있다. 교회마저 하나님과의 단절로 나아간다면 인간에게 더 이상 소망은 없다. 희망은 없다. 남은 것은 멸망이요. 무(無)일 뿐이다.
하나님이 돌아섰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돌아선 나를 봐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다시 향해야 한다. 하나님께 왜 침묵하시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귀를 열어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곧 소망이고, 교통이다. 문제의 원인을 타자에게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찾을 때 소망은 금세 회복하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