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자연신학
에밀 부르너 · 브루너, 칼 바르트 / 한국장로교출판사 / 1997.5.30
– 에밀 부르너와 칼 바르트가 인간의 전적타락과 계시의 일방성을 사이에 두고, 타락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계시의 수용능력 여부를 집중적으로 논한 저서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유럽 신학계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신학은 1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사상적 터전이 되는 인간 이성의 능력, 낙관주의 및 역사적 진보주의에 대한 신뢰가 전쟁을 통해 허구로 판명된 결과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세기 초에 나타난 새로운 신학 사조가 신정통주의 신학이다. 이것은 ‘위기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 또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라고 불린다. 위기의 신학이란 함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과 명령아래 놓여 있다는 것과 계시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계시와 이성 사이의 모순과 대립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양자 사의 무한한 차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증법적 형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불린다. 하나님과 인간과는 어떤 비슷한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가 인간의 ‘아니오’가 되고 인간의 ‘예’가 하나님의 ‘아니오’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자유주의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 하고 사람의 말을 중시한 데 반해, 이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토대로 삼아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라 불린다. 또한 이 신학은 루터나 칼빈의 정통주의와 또 다른 점을 추구하기에 신정통주의 신학이라 불린다. 이러한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표자가 칼 바르트와 에밀 부룬너이다. 이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분쇄하고 종교개혁 신앙에 기초한 정통주의 신학을 재정립하는 데 뜻을 같이한 동료요 동지였으나, 자연신학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된다.
○ 저자소개 : 에밀 부르너, 칼 바르트

– 저자 : 에밀 브루너 (Emil Brunner, 1889 ~ 1966)
에밀 브루너 (Emil Brunner, 1889 ~ 1966)는 1889년에 태어났고, 취리히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913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24년 취리히대학의 조직신학과 실천신학 교수가 되었으며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총장 등을 역임했다. 1948년 일본 국게기독교대학 (일본신학교 후신) 교환 교수로 지냈으며 1949년 YMCA 초청으로 내한, 한 주간 동안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란 주제로 공개강좌를 했다. 196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77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저서로는 『중보자』,『계명과 질서』,『모순 속에 있는 인간』,『만남으로서의 진리』,『정의』등이 있다.
– 저자 : 칼 바르트 (1886 ~ 1968)
바르트는 1886년 5월 10일 스위스 바젤에서 출생하여 저명한 보수주의 신학자인 아버지 프리츠 바르트 밑에서 성장했다. 바르트의 신학 교육은 주로 독일에서 이루어 졌다. 그의 스승들 대부분은 당대 신학계를 주도하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다. 그는 베른 대학을 거처 베들린 대학에서 가프탄, 궁켈, 하르낙 교수 밑에서 공부했으며 아버지의 권유로 튀빙겐 대학에서 보수 신학자 슈라터에게서 배웠다. 그러나 자유주의 성향의 마르부르그 대학에서 헤르만과 하이트 뮐러의 강의를 청강하는 한편, 자유주의적 개신교 기관지 『기독교 세계』의 편집을 도왔다.
그는 1911년부터 10년 동안 스위스의 작은 공업 도시 자펜빌에서 목회하면서 사회정의, 저임금, 노동자, 근로조건 등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종교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는 한편 노동 조합을 조직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국가를 사회주의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나라와 사회주의는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바르트의 신학적 입장은 급진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했으며 하나님 나라와 사회적 행동을 동일시 하지 않았다. 바르트가 자유주의와 결별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1차 세계 대전과 자펜빌에서의 목회였다. 1914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독일 지성인 93명이 독일 황제 카이젤 빌헬름 2세의 전쟁 정책이 기독교 문명의 방어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여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바르트는 그들이 서명한 ‘지성인의 선언’은 잘못된 신학과 철학에 근거했다고 보고 그들의 정치적 이념과 신학은 장래성이 없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을 더 이상 따를 수 없었다.
한편 그는 목회를 하면서 항상 무엇을 설교할 것인지 고심했다. 그리고 자유주의적 기독교와 역사에 대한 외경이 이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자유주의 신학으로는 청중들의 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온 책이 1919년에 출판된 『로마서 주석』이다. 그의 첫 저서인 『로마서 주석』은 19세기 신학과 20세기 신학의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다’라는 유일한 근거하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 대신 인간, 인간의 신앙, 경건, 감정 및 문화 등에 중심을 두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 초월과 내재의 연속성을 강조하던 초기의 입장을 포기하고 하나님과 인간, 시간과 영원 사이의 질적 차이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 질적 차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증법을 사용했다. 『로마서 주석』은 ‘자유주의 신학 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은 충격을 신학계에 주었다.
1921년 바르트는 괴팅겐 대학 교수로 초빙되었으며 무명의 목회자에서 20세기 신학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바르트는 1922년 고가르텐, 투르나이젠, 메츠 동과 함께 잡지 『시간들 사이에』를 창간했다. 이것은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고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성경적 신학을 주창하려는 변증법적 신학 운동의 기관지였다. 이 잡지의 창간과 더불어 변증법적 신학 운동이 시작되었다. 1925년 뮌스터 대학 교의학 및 신약 성서 주석학 교수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교의학 개요』를 저술했다. 1930년 본 대학 교수로 부임했으며 『19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 『교회 교의학』을 저술했다.
바르트의 주저 『교회 교의학』은 1932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13권을 출판한 필생의 역작이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바르트는 그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했으며 복음 교회를 장악하려는 나찌의 시도에 반대하여 고백 교회 운동을 전개했다. 바르멘 선언은 바르트의 주도로 나온 것이었다. 이로 인해 바르트는 1935년 본 대학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으며 독일에서 가르치는 것과 저서 출판이 금지되었다. 독일로부터 추방된 바르트는 스위스로 돌아와 1968년 사망할 때까지 바젤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여생을 보냈다.
– 역자 : 김동건
○ 독자의 평 1
바르트는 ‘자연신학’을 부정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에밀 브루너와의 자연신학 논쟁에서 바르트는 ‘아니오 (Nein)’라고 강력하게 거부했다. 자연신학이란 ‘성경 외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자연신학 논쟁은 ‘자연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그런데 바르트가 자연신학을 부정했다면, 바르트는 ‘죽은 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르트는 죽은 개나 러시아의 관현악단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르트는 자연신학을 부정한다고 했다. 브루너는 자연에 계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바르트는 있는 것이 아니라 발생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있음 (ist/to be)’과 ‘발생 (werden/become)’의 차이이다. 항상 자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브루너의 주장을 배격하고, 하나님은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지 자기 계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발생하는 계시는 자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Gottes Wort)이다. 은폐된 것을 드러내고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바르트의 계시 이해이다.
○ 독자의 평 2

이 책은 에밀 부르너와 칼 바르트 부분이 합체된 것이다. 칼 바르트 부분은 ‘아니오!’라는 제목 하에 전개된다. (이 책에서는 75페이지부터다.)
바르트는 부르너를 어느 누구보다 더 ‘위험스럽고 사라져야 될 이단사상’처럼 단정한다.(p78) 그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바르트의 반박 취지는 ‘Ⅱ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문단 안에 다 들어있다. ‘자연신학’이라는 이름의 거짓 계시를 배격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바르트는 부르너에게 분노한다.
그 근거는? 바르트는 단정한다. “일반 계시를 주장하는 모든 시도는 배격되어야 한다. 창조와 보존의 은혜는 없다. 인간이 인식하는 보존의 규례란 것은 없다.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 접촉점은 없다. 새로운 창조는 옛 것의 완성이 아니라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p84)
“자연 신학이라는 것이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을 인정해주어서는 아니 된다. 반박할 가치도 없다”(p 85)
“자연신학은 이성, 자연, 역사에서 가져 온 엉터리 자료들을 마치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지식으로 간주하듯 은혜와 계시의 주체를 다룬다.”(p 87)
“부르너의 주장은 이러하다. 인간이 이 세상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란 것을 ‘어떻게든 인식할 수 있으며’, ‘인간이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p 92)
“우상숭배라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한 단계로서 어느 정도 불완전하고 예비적인 단계라는 것이 부르너의 입장인가?”(p93)
“자연에 계시된 하나님은 인간에게 알려진 하나님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자연신학은 무엇인가? 이제 자연신학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신학적 주장과 가치를 배제한 종교사, 철학사, 문화사를 조직적으로 전개해 보는 일뿐이다.”(p 93)
“(부르너의 주장은) 부정적인 측면에서라도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우리는 로마 가톨릭이 하는 것처럼 인간이 창조 시부터 죄 속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순종의 능력이 있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인간이 물에 빠졌지만 수영은 조금 할 줄 아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p 94)
“부르너는 특별한 ‘보존의 은혜’를 주장한다. 보존의 은례란 하나님께서 타락하고 멀어진 피조물까지도 거부하지 않고 돌보고 도우며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서는 특별한 (오히려 일반적) 계시라고 언급한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어떤 의미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 우리는 때로는 최악의 상태를 완화시켜 주는 여러 조건 속에서 지내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것이 ‘은혜’라고 부를 만한 것인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해도 이것은 차라리 지옥의 대기실과 같은 정도의 저주라고 하는 것은 나은 것이리라”(p94-96)
“부르너는 다양한 민족들의 관습 중에서도 일관성 있는 자연의 법칙이 보이고 나름대로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 도대체 누가 그리고 무엇이 이러한 일관성을 계명이나 구속적 권위 있는 요청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신의 규례로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제기하는가? 본능과 이성이 그렇게 하는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 사회학적 창조의 규례를 측정하여 이것이 더 고귀하며 저것은 덜 고귀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p96, p98)
“과연 금언 (金言)이란 무엇인가? 아니면 ‘속속들이 죄인’인 우리들 중에 그 누구가 그것을 정하는 것인가?“(p 98)
“만일 우리가 인간 (물질적으로) ‘속속들이 죄인’이라는 말을 고수하려 한다면 ‘형식적 요소’는 원래의 의의 잔재, 혹은 하나님 향해 열려있고 준비되어 있는 그런 어떤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능력’ 같은 개념은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만남과 교제가 있다면 하나님 스스로 형식적 요소로는 절대로 줄 수 없는 (‘어떤 방법’으로도 ‘어느 정도’라도 줄 수 없다!) 어떤 조건을 만드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부르너가 이와 같은 형식적 요소에서 멈출 용의가 없음을 보았다. 그 이유는 부르너는, 인간은 ‘속속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떠남으로써 이전의 설명과 모순되기 때문이다.”(p100-101)
“부르너가 증명하려는 것은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란 것은 참하나님을 알고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고, 이러한 전제가 인간의 접촉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갈라디아서 2장과 고린도전서 2장 어디에서 부르너가 이런 생각을 찾아냈을까? 도대체 고린도전서 2장의 16개 구절의 어떤 부분에서 바울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2절)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4절), ‘신비한 감추인 지혜’(7절), ‘성령의 계시’(10절)가 있기 이전이나 그것 이외에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별도의 지시일 뿐 아니라, 전제이며 접촉점이라고 주장했다고 인용할 수 있을까? 고린도전서 2장에서 바울은 이런 종류의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추정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부르너처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지혜’(5, 13절), ‘세상의 영’(12절),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 알지 못하기’(14절) 때문에 어리석은 일로 여기는 ‘육체적’(자연적) 인간‘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형식적 인격‘-바울이 부정하지 않는 -가 인간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도대체 바울은 인간에게서 계시의 수용능력이나 접촉점과 같은 관심거리를 발견했는가?”(p103-104)
“(갈라디아서 2:20에서) 비록 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식적 인식’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아는 능력이 남는다고 성서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p 104)
“참하나님을 알게 되는 자유는 기적이며 하나님의 자유이지 인간이 가진 하나의 자유가 아니다”(p 129)
“‘인간 자신’을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일까? 인간 자신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을 자신에게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p 129)
“우리에게서 이 허구와 그 아래 놓인 자유에 대한 허상을 지워버리는 능력은 어느 모로 보나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그것은 말씀 자체의 능력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다.”(p129-130)
“우리가 경험하고 아는 바 우리의 것인 절망이란 것이 어떤 철학에서는 우리 실존의 ‘근본적인 조건’이라고 하고, 또 다른 철학에서는 다른 어떤 것이라고 말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어쨌든 바로 이 절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공조하는 요인도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의 실행을 필수 부가결한 것도 아니다!”(131)
*평가
바르트는 존재에서 출발하는 모든 것이 결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주지 못함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성경에 나오는 개념이 결코 이 신과 인간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 있는 관계를 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속속들이 죄인’인 인간에게 출발하는 모든 관계를 차단하고자 한다. 바르트가 보기에, 에밀 부르너는 이런 바르트를 이해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부르너는 바르트를 볼 때에 ‘조금만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같은 동지가 될 수 있는 양반’이라고 보지만 바르트는 부르너를 그냥 “이단”으로 부르고 싶어 한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바르트가 보기에 부르너는 자기 본색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진짜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르너를 반대하는 것이 곧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인가? 그것은 사도 바울이 성경을 통해서 무엇을 증거하고자 했는가를 보면 된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유일한 ‘구원의 능력’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 ‘십자가 피의 능력’에서 복음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신 사건으로 간주해서 그 사건의 주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으로부터 복음의 출발점을 삼는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실존은 ‘신학화’ (신과 인간의 관계성 논의)가 가능하지만 예수님의 피는 ‘신학화’가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
신학화란 신(A)과 인간(B)의 관계 정립을 의미한다. 이런 논리에서 불교의 중관불교는 논리를 다음 네 가지로 성립한다고 보았다. A와 B가 있다면 논리는 기껏 다음 네 중의 하나인데 이것마저 부정하는 것이 불교의 진리라는 것이다. (4구부정)
1. A거나 아니면 동시에 B 거나
2. A거나 아니면 동시에 B 아니거나
3. A 아니거나 아니면 동시에 B 거나
4. A 아니거나 동시에 B 아니거나
이것이 인간의 한계다.
따라서 바르트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예수님의 실존 내부에서 규명해서는 아니 되고 사도 바울처럼 ‘피’ 그 자체의 능력이 어떻게 성경의 모든 개념을 계시로 비밀로 나타내는 가를 규명했어야 했다.
○ 에밀 브루너와 칼 바르트의 자연신학논쟁
– 서론

18세기와 20세기의 초에 이르기까지 신학계를 지배하던 자유주의 신학은 1차 대전을 통해서 인간 이성의 능력과 낙관주의가 허구로 판명되는 것을 계기로 쇠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신학 사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바로 신정통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와는 다르게 정통주의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바르트와 부르너는 이 신 정통주의자들의 대표격인 사람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들은 신학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공통적인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들의 신학을 하나님 말씀의 신학, 하나님과의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변증법적 신학, 그리고 위기의 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위치를 인간으로 대치한 자유주의와 싸워 자유주의 신학의 방법론을 바꾸어 놓았다. 인간의 경험과 이성에 의해서 판단되어지는 하나님에 관한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오히려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바르트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다. 부르너의 신학도 하나님은 오직 계시에 의해 알려지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강조 하였다.
그러나 부르너는 1920년 무렵에 자연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일반 계시를 인정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힌 Nature and Grace라는 책을 발간함으로 정통주의의 동료와 동지였던 이들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절대 그리스도 중심의 계시에 대한 거부의 내용으로 쓰여진 책의 내용은 이를 반박하는 바르트의 Nein이라는 책을 나오게 한다. 여기서는 바르트와 부르너의 계시관을 약술하여, 특징들을 알아보고 그들 사상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본다.
– 바르트의 계시관
슐라이에르마허 이래로 하나님을 주변으로 밀어내고 신학의 중심에 인간을 위치하게 하는 경향들이 있어 왔다면 바르트는 그 중심에 계시를 확고히 갖다 놓았다. 바르트는 우리가 계시에 대해서 우리의 존재에 대한 여하간의 철학적인 성찰의 결과에 대해서 말하듯이 또는 자연이나 역사의 영역에 있어서의 의견에 대해서 말하듯이 말할수 없다고 한다. 오직 우리는 계시를 받아들이고 수용할수 있을 뿐이다 라고 주장한다.
계시는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오는것과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는 다른 진실의 기준에 따라 측정될수 없는 절대적인 권리를 가진다고 바르트는 보았다. 아울러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비추어서 생각하여 볼때에 교회들은 세속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러한 세속화의 현상은 인간만을 알고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하여서 알려고 하지 않으며 인간들은 계시가 인간의 변화, 개선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사람들이 계시의 비밀과 권위 그리고 확실성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계시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리스도가 존재하는곳에, 성령이 존재하는 곳에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바르트는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바르트가 다음에 말하려고 하는 부루너의 계시관 사이의 상이점을 발견할수 있다. 그리스도의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를 말하고 하나님의 존재는 곧 계시이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가 되는것이고 그러한 측면에서 보았을때에 우리는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계시를 가지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바르트의 신학과 계시관의 본질은 절대적인 그리스도 중심주의이다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 부르너의 계시관
부르너의 계시관의 시작은 바르트와 동일하다고 볼수 있을것이다. 브루너 역시 계시의 중요성과 특징을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 사건에서 발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단 한곳에서 그리고 한 사건안에서 자신을 참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계시하였다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또 부르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충분히 계시할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곧 계시 자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계시는 모든 신학의 기초이며 사도들의 가르침의 내용이라고 말한다.
– 논쟁의 시작
바르트와 부르너의 논쟁의 시작은 자연 신학의 문제에서 시작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이외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접근할수 있는 길이 있느냐에 대한 것이 논쟁점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부르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충분하지만 우리는 다른것으로도 하나님의 계시를 알수 있다는 긍정적인 입장이었고 여기에 비해 바르트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자연 신학은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수 있다는 자질이 주어졌으며 이 자질로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구속의 주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창조주로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인식을 하며 이러한 능력으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을 알수 있으며 이는 좀더 완전하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아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부르너의 입장에서 바르트를 보았을 때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파괴하여서 우리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수 있다는 바르트의 견해는 부르너와는 상충될 수 밖에 없었다. 부르너는 인간 그 자체는 죄인이건 아니건 간에 합리성과 책임성을 가진 존재이며 우리 안에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 바르트는 그의 Nein이란 책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실질적인 형상이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형상으로 하나님을 알수 있다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바르트는 20세기의 자연신학을 과격하게 공격하는데 그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봉사라는 그의 책에서 “나는 모든 자연 신학자의 적이다” 라고 말했다. 즉 일반 계시를 완전히 부인하면서 오직 하나의 계시 즉 그리스도의 계시만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부르너는 하나님의 창조는 동시에 계시이며, 인간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므로 하나님의 계시이고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죄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완전히 파괴되어지지는 않으며, 자연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완전히 하나님을 알 수는 없지만 초보적인 단계의 인식의 가능성은 있다고 주장하였다.즉 부르너는 세계가 하나님의 창조로서 인간에게 알려진다고 말하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계시 없이도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은 계시없이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다시 반박하였다.
부르너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구속 은총에 대한 접촉점이 있으며 그것은 계시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죄인도 실질적 형상은 파괴되었지만 형식적 형상은 파괴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능력은 상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바르트는 형식적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접촉이 가능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접촉의 가능성을 준비하여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접촉할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르트는 형식적 형상과 실질적 형상은 구별될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 논쟁의 결과
*바르트 / 부르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인간의 죄가 파괴한것이다. / 인간안의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히 파괴되지 아니하였다.
.일반 계시가 있다는 주장은 거부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의 완벽한 계시 예수 그리스도가 있을뿐이다. / 세계는 창조인 동시에 계시이며 하나님의 자기 전달이다. 그러므로 자연을 통해서 우리는 어느정도 하나님을 알수 있다.
.창조와 보존의 은총은 없으며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은총이다. / 타락하여진 피조물안에도 지켜주고 도와주시는 은총이 있다.
.인간 삶의 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제도나 법령은 없다. / 보존을 위한제도는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생활과 사회적 생활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알수 있수 있는 접촉점이 인간에게는 없다. / 계시를 인식할수 있는 능력이 구원의 역사를 아는 접촉점이다. 형식적인 하나님의 형상이 그것이다.
부르너는 일반 계시가 있다는 것을 칼빈의 교리 그리고 성경에 근거하여 주장하였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이 그를 계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 이 전의 인간에도 하나님의 진리가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한편 바르트는 부르너가 하나님의 구원하는 진리의 계시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단일성에 대한 신앙을 버렸으며 그로 인해 그들이 같이 맞서서 싸웠던 자유주의에 길을 열어주었다고 비난하였으며 그를 타협의 선구자로 생각하였다.
– 결론
위에서 보듯이 바르트의 극단적인 그리스도 중심의 계시론은 그가 처했던 상황을 살펴볼 때에 이해가 빠를 수 있다. 1930년대 초반에 히틀러와 나찌당은 독일의 정권을 장악하였고 그들의 부상은 독일의 개신교내에 [독일 크리스챤]이라는 단체의 출현을 가져오게 하고 그들의 단체는 독일의 민족주의와 기독교를 혼합하려 했으며, 나찌의 정책은 교회를 나찌 철학의 한 기관으로 삼으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로 인해 나찌즘은 독일 교회내에 침투하게 되었고 이에 대항하여 이미 자연신학에 반대한 바르트의 신학 기초론은 나찌 이념이 교회로 유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확고한 이념적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나찌즘에 대한 투쟁이 고조되었을때에 부르너는 Nature and Grace 라는 책으로 투쟁의 대열을 흐뜨러 뜨린다. 또 바르트는 이전까지는 같은 신 정통주의자의 입장에서 부르너와 같이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그의 자연 신학의 주장은 다시금 자유주의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교회안에서 나찌 세력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했다. 게다가 그는 19세기 자유주의가 인간의 진보와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나 1차 대전후의 전쟁이라는 공포를 알게 되면서 창조와 보존의 은총은 그리스도외에는 없으며 보전을 위한 하나님의 제도나 법령도 없으며 그리스도이외에는 아무것도 하나님과 접촉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르트는 극단적이 될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며다. 이에 비해 부르너의 자연신학적 견해는 바르트의 견해 보다 온건하고 어떤 면에서는 종교 개혁적이며 성서적이라고 평가된다.
이 논쟁을 통하여 볼때 바르트에게서 문제점은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그리스도의 계시를 극단적으로 강조한 나머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일반 계시를 부정하였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하여서 성경의 본문을 임의적으로 해석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러나 부르너가 자연신학을 인정한 점이나 하나님의 형상을 형식적 형상, 실질적 형상으로 나눈 것은 문제가 된다고 한다.
이 논쟁은 우리에게 우리가 신학함에 있어서 바르트처럼 확고한 하나님 중심 주의로 시작해야 하고 거기에는 타협이 없어야 하지만 이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솜씨와 능력은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 접근할 수있는 접촉점을 마련해 주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
서론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유럽 신학계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신학은 1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사상적 터전이 되는 인간 이성의 능력, 낙관주의 및 역사적 진보주의에 대한 신뢰가 전쟁을 통해 허구로 판명된 결과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세기 초에 나타난 새로운 신학 사조가 신정통주의 신학이다. 이것은 ‘위기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 또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라고 불린다. 위기의 신학이란 함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과 명령아래 놓여 있다는 것과 계시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계시와 이성 사이의 모순과 대립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양자 사의 무한한 차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증법적 형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불린다. 하나님과 인간과는 어떤 비슷한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가 인간의 ‘아니오’가 되고 인간의 ‘예’가 하나님의 ‘아니오’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자유주의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 하고 사람의 말을 중시한 데 반해, 이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토대로 삼아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라 불린다. 또한 이 신학은 루터나 칼빈의 정통주의와 또 다른 점을 추구하기에 신정통주의 신학이라 불린다. 이러한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표자가 칼 바르트와 에밀 부룬너이다. 이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분쇄하고 종교개혁 신앙에 기초한 정통주의 신학을 재정립하는 데 뜻을 같이한 동료요 동지였으나, 자연신학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된다.
Ⅰ. 바르트와 브룬너
바르트와 브룬너는 많은 공통점과 유사점을 지닌 신학자들이다.
첫째, 이들은 모두 스위스 출신 개신교 신학자들이다. 바르트는 1886년 5월 10일 바젤에서 출생했으며, 브룬너는 1889년 12월 23일 츄리히에서 출생했다.
둘째, 바르트와 브룬너는 그들의 학력과 경력에 있어서도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르트는 스위스 베른에서 대학 교육까지 받고 독일로 유학가서 베를린 대학과 튀빙겐 대학, 마르부르그 대학에서 공부하다 『로마서 주석』 출판을 계기로 괴팅겐 대학 교수로 초빙 받게 되고 그 후 본 대학을 거쳐 고국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한편 브룬너는 츄리히 대학을 거쳐 독일의 베를린 대학과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고향 스위스 츄리히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셋째, 바르트와 브룬너는 공통적인 학문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신학적으로는 칼빈주의의 후예들이며, 철학적으로는 칸트 철학과 키에르케고르 및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의 추종자들이었다. 특히 바르트와 브룬너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하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는 오직 변증법적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키에르케고르의 사사에 힘입은 바 크다.
넷째, 바르트와 브룬너의 신학은 공통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신학을 신정통주의 신학,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 위기의 신학, 또는 스위스학파로 부르는 것이 좋은 예라 하겠다. 그리고 이들의 신학 사상이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주의라는 것도 또 다른 중요한 공통점이다. 이것은 변증법적 신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들이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신학을 두고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느냐는 것이 바르트와 브룬너의 논쟁점이었다. 이 논쟁은 접촉점의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브룬너는 긍정적인 입장이었고, 바르트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브룬너가 1934년 자신의 입장을 제시한 『자연과 은총』을 출판하자 바르트가 즉각적으로 이 책에 대한 비판으로 『아니오』란 책을 출판하면서 둘 사이는 등을 돌리고 말았다. 바르트는 자신과 브룬너의 관계를 코끼리와 고래의 관계로 비유했다. 양자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서로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Ⅱ. 일반계시와 자연신학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정통주의는 일반적으로 계시를 두 종류로 분류한다. 일반적인 계시 혹은 자연적인 계시, 특별계시 혹은 초자연적인 계시가 그것이다. 전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통한 계시를 말하며 후자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의미한다. 일반 계시는 자연, 역사 및 인간 존재를 통해 나타난다. 일반 계시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성서적 근거는 창세기 1:16, 욥기 12:7-15, 시편 19, 사도행전 17:27, 로마서 1:19-20 등이다. 이런 구절들은 하나님은 그가 창조한 자연 세계에 그 자신에 대한 증거들을 남겼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일반 계시만으로는 하나님을 명확히 알 수 없다. 인간의 죄가 일반 계시의 증거를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계시는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 없게 하는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별계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를 의미한다. 일반계시의 본질, 범위 및 효력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그 중의 하나가 자연신학이다. 자연신학은 자연, 역사 그리고 인간의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며 그것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단지 이성에 기초하여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자연 신학의 핵심이다. 자연 신학은 몇 가지 중요한 신념 위에 기초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보편 타당한 일반적인 계시가 있다는 것, 인간은 자연 세계로부터 지각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 정신과 하나님의 창조물 사이에는 일치점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 자신을 알리며, 인간은 자연적인 제한과 죄와 타락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물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고, 인간 정신의 질서는 기본적으로 우주의 질서와 동일하다는 것이 자연 신학의 전제이다.
자연 신학은 기독교인들에게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자연 신학과 계시 신학의 관계성과 인간의 책임성이 그것이다. 자연 신학이 특별 계시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가, 자연 신학에 대한 부정이 하나님을 모른 것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 부정은 아닌가 하는 문제였다. 중세 기독교는 자연 신학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으며, 신학의 중요한 분야로 취급했다. 인간은 이성적 추론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 신학의 대표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존재 증명이었다. 안셀름은 순수 사유에 의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존재론적 증명이 그것이다. 존재론적 증명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 하나님은 더 이상 위대한 분을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인간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고 실재하지 않는다면,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위대한 존재자는 인간의 관념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순수 이성에 의해 하나님의 존재나 인간 영혼의 불멸에 대한 신념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논증 가운데 하나가 우주론적 논증이다. 이는 자연 세계에 대한 관찰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운동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최초의 운동자로서의 하나님, 그리고 인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제일 원인으로서의 하나님을 논증한 것이다. 중세의 안셀름, 아퀴나스 이외에도 현대의 데카르트, 헤겔,하트숀 등이 자연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자연 신학은 많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았다.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흄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성을 부정함으로써 우주론적 증명을 비판했다. 그는 자연 신학을 단순한 사변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또 다른 논증인 목적론적 논증 역시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비판을 받게 되었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순수 이성으로 하나님의 존재, 인간 영혼의 불멸, 자유를 증명하거나 인식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인 증명을 비판했다. 하나님의 존재나 영혼 불멸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자연 신학에 대한 반대는 철학뿐만 아니라 신학에서도 재개되었다. 그 대표자가 바르트이다. 바르트는 일반 계시와 자연 신학을 모두 거부했다.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바르트의 주장에 반기를 들고 자연 신학을 변호하려 한 사람이 다름아닌 친구 브룬너이었다.
Ⅲ. 자연 신학 논쟁
브룬너는 『자연과 은총』에서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바르트의 부정적인 자연신학을 요약하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자연신학의 변호를 한다. 브룬너가 이해한 바르트의 견해는 여섯 개의 명제로 요약된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했다. 인간의 죄가 그것을 완전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둘째, 일반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시도는 철저히 거부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의 계시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그것이다. 셋째, 창조와 보존의 은총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은총이다. 넷째, 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제도나 법령은 없다. 다섯째,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접촉점은 없다. 접촉점은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의 역사에 모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새로운 창조는 결코 옛 창조의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옛 것의 철저한 파괴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새사람이 옛사람을 대치하는 것이다. 브룬너는 바르트의 반대되는 여섯 개의 명제로 자신의 입장을 제시했다. 첫째,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형식적 형상과 실질적 형상으로 구분된다. 실질적 형상은 죄로 인해 완전히 상실되었으나. 형식적 형상은 소멸되지 않았다. 형식적 형상은 인간이란 개념을 의미한다.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다. 인간은 죄인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의 주체자요, 합리성과 책임성을 지닌 존재이다. 형식적 형상은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제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세계의 창조는 동시에 계시요 하나님의 자기 전달이다. 인간이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죄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파괴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창조 안에 나타난 계시를 통해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는 없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의 보존 은총이 있다. 이것은 지켜주고 도와주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타락하여 그와 소원해진 피조물 안에도 하나님은 임재하신다. 넷째, 보존을 위한 제도가 존재한다. 그것은 역사적 생활과 사회적 생활의 기본적 요소이다. 그것이 없다면, 공동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다. 결혼제도는 창조의 질서라면 국가는 보존의 질서이다. 다섯째, 인간에게는 구속 은총에 대한 접촉점이 있다. 그것은 계시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형식적인 하나님의 형상이 그것이다. 죄인도 그것을 상실하지 않았다. 여섯째, 새 창조는 옛 창조의 완성이다. 옛 아담의 죽음이 새 아담의 생명의 조건이다. 옛 아담의 죽음은 결코 인간 본성의 형식적인 면이 아닌 실질적인 면을 항상 의미한다.
브룬너의 이러한 자연 신학을 옹호한 『자연과 은총』의 책을 출판되자 바르트는 1934년 10월 30일, 종교 개혁 기념일에 출판된 『아니오!: 에밀 브룬너에 대한 응답』에서 브룬너의 반 명제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여섯 가지 명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제시했다.
첫째, 브룬너는 하나님의 형식적 형상은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브룬너가 하나님의 실질적인 형상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에게 계시를 위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보았다. 둘째, 브룬너는 세계가 하나님의 창조로서 인간에게 알려진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계시 없이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은 계시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셋째, 브룬너는 보존 은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어떤 의미와 어떤 권리로 그리스도의 은총에 선행하는 또 다른 특별 은총이 있다고 말하느냐고 브룬너에게 반문했다. 넷째, 브룬너는 창조의 질서와 제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인간이 그리스도 없이 이런 질서와 제도를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다면 계시에 대한 능력이 단지 인간의 형식적 요소만 의미하냐고 반문했다. 바르트는 형식적 형상과 실질적 형상은 구별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섯째, 브룬너는 구속의 은총을 위한 접촉점, 즉 계시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식적 형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형식적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의 접촉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접촉의 가능성을 준비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바르트는 브룬너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만으로’라는 말로 대변되는 종교 개혁 신앙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했다. 여섯째, 브룬너는 계시가 없이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알고 어느 정도 그의 뜻을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20절과 고린도 전서 2:10절을 토대로 그것을 증명하려 했다. 또한 옛 아담의 죽음이 인간 본성의 형식적인 면이 아닌 실질적인 면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본문을 사용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그것을 성경 본문에 대한 임의적인 사용으로 취급하고 바울 서신에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1934년부터 시작된 바르트와 브룬너의 자연 신학 논쟁은 근 20년 동안 계속되었다. 바르트는 브룬너의 입장을 토마스주의적이며 신개신교주의적이라고 신랄히 비판했다. 반대로 브룬너는 바르트의 입장이 비성서적이며 비종교 개혁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논쟁 과정을 통해 바르트와 브룬너는 자신들의 초기 입장을 다소 수정하기도 했다. 특히 바르트는 『교회학』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고 참된 말씀이며 생명의 빛이지만, 창조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수많은 작은 빛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따라서 만년에 이르러 바르트가 브룬너의 입장에 보다 가까이 접근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바르트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양자 사이의 완전한 화해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