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장미의 이름 : The Name of the Rose (상, 하)
움베르토 에코 / 열린책들 / 2006.3.30
– 중세 수도원 생활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로 알려져 있고 이미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필생의 역작
‘장미의 이름'(이: Il nome della rosa 일 노메 델라 로사)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로 1327년 11월의 이탈리아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 사건을 다룬다. 이 소설은 당시 교황과 황제 사이의 세속권을 둘러싼 다툼, 교황과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이의 청빈 논쟁, 제국과 교황에 양다리를 걸치려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입장, 수도원과 도시 사이에 흐르는 갈등 등도 다룬다.
이 소설은 1980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이윤기가 영문판을 중역한 한국어판은 1986년 5월 15일에 초판이, 1992년 6월 25일 개역판이, 2000년 7월 10일 3판이, 2006년 4월 15일 4판이 발행되었다. 1986년에는 장 자크 아노 감독, 숀 코너리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스인 조르바』, 『변신 이야기』 , 『신화의 힘』, 『세계 풍속사』등 20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윤기는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전 5권)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신화 열풍을 일으키며 200만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났다.
번역과 동시에 작품활동도 이어갔다. 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출간하며 문단으로 돌아온 그는 중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적절한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또는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장편소설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등과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펴냈고, 그 밖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교양서와 『어른의 학교』,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 목차
[상권]
1. 제1일
1시과/3시과/6시과/9시과까지/9시과/만과/종과
2. 제2일
조과/1시과/3시과/6시과/9시과/만과 이후/종과/한밤중
3. 제3일
찬과에서 1시과까지/3시과/6시과/9시과/만과/종과 이후/한밤중
[하권]
1. 제4일
찬과/1시과/3시과/6시과/9시과/만과/종과/종과 이후/한밤중
2. 제5일
1시과/1시과/1시과/1시과/만과/종과
3. 제6일
조과/찬과/1시과/3시과/3시과 이후/6시과/9시과/만과와 종과 사이/종과 이후
4. 제7일
한밤중/한밤중/뒷말
– 저자 소개: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볼로냐대학교의 교수이다. 1932년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몬테주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세 철학과 문학으로 전공을 선회,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위논문을 발간함으로써 문학비평 및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2년 토리노대학교와 밀라노대학교에서 미학 강의를 시작했으며, 최초의 주요 저서인 『열린 작품 Opera apertas』(1962)을 발간해 현대미학의 새로운 해석방법을 제시했다. 이어 『제임스 조이스의 시학 Le poetiche di James Joyce』(1965), 『예술의 정의 La definizione dell’arte』(1968) 등 새로운 이론서를 발표해 문학비평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66년 상파울루대학교와 피렌체대학교에서 시각커뮤니케이션을 강의했으며, 1967년 『시각커뮤니케이션 기호학을 위한 노트』를 출간했다.
1968년 인간의 사고와 문화행위, 이념구성 등에 다양하게 관련되어 있는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 La struttura assente』를 발간했으며, 이어서 『내용의 형식 Le forme del contenuto』(1971)을 발간한 후 이 두 저서의 내용을 증보해 영문판 『기호학이론 A Theory of Semiotics』(1976)을 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Visio 문화, 즉 읽는 문화가 아니라 보는 문화의 전형적인 사례인 중세 미학과 러시아 형식주의, 그리고 아방가르드 문화로부터 출발했으며, 퍼스의 철학적 기호론을 통해 독특한 기호학 체계를 구축, 프랑스 중심의 언어학적 기호학이나 구조주의와 철저하게 맞대결하는 한편 프랑크푸르트 학파류의 마르크스주의와도 완연히 다른 예술 이해와 미학관을 보여주었다. 1971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국제기호학 잡지 『베르수스』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1974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 회의를 주관했으며, 1975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정교수 및 커뮤니케이션·연극학 연구소장으로 임명되었다.
기호학과 미학의 세계에 열중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당시 원자핵의 확산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세기말적인 위기를 문학으로 표현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2년 반에 걸쳐 집필을 완료해 1980년 첫번째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을 발표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 1988년 두 번째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 Il pendolo di Foucauilt』를 발표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1994년 자전적 작품인 세 번째 장편소설 『전날의 섬 L’isola del giornoprima』을 발표해 작가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에코는 문학은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고 말할 정도로 문학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라는 책에서 문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리고 문학이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학의 몇 가지 기능에 대해’에서 시작하여 마르크스, 단테, 네르발, 와일드, 조이스, 보르헤스 등의 작품에 대한 비평과 문체, 상징, 형식, 아이러니 등 문학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등을 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퍼스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호학·철학·역사학·미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문적 지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에스파냐어까지 통달한 언어의 천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그의 기호학이론은 오늘날 세계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학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 Prospect/Foreign Policy 공동 조사에게 움베르토 에코는 노엄 촘스키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3위는 리처드 도킨스였다.
작품으로 장편소설『장미의 이름』(1980) 과『푸코의 진자』(1988),『전날의 섬』(1994), 동화『폭탄과 장군』(1988),『세 우주 비행사』(1988), 이론서『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열린 작품』, 『대중의 슈퍼맨(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논문 잘 쓰는 방법』 등이 있다.
2016년 2월 19일 향년 84세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밀라노 자택에서 타계했다.
– 역자 : 이윤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 책 속으로
[상권]
.’화를 낸 것은 제가 바로 수사학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사학도이기 때문에 이교도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읽습니다. 저는 이교도의 작품이라 해도 기독교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믿습니다. 아무튼,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베난티오는 다른 서책 몇 권의 이름을 들먹거렸고, 호르헤 노수도사는 베난티오의 말에 몹시 화를 내었습니다.’ ‘어떤 서책의 이름이 등장하던가?’ 베노는 머뭇거렸다.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만, 이 일과 그 서책의 제목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p.210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것, 알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알 수 있었던 것, 알아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190
나도 이제 깨쳤는데,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이야. -133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네. 허나 내 가슴은 무엇인가를 감지하지. 가슴으로 말하고 얼굴에 묻되, 남의 혀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게 -25
.이것 보아라, 아드소. 내 너에게 뭐라고 하더냐? 우리 같은 운수 행각승은, 세상이 위대한 책을 통해 우리에게 펼쳐보이는 사물의 정황을 유심히 관찰한는 법이라고 하지 않더냐? 일찍이 알라누스 데 일술리스는 이렇게 노래하셨느니라. 옴니스 문디 크레아투라 구아시 리베르 에트 픽투라 노비스 에스트 인 스페쿨룸 -49
.세상에 이단 아닌 것 없고 정통 아닌 것 없다. 어느 한 세력이 주장하는 신앙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그 셰력이 약속하는 희망인 거이야. 모든 이단은 현실, 즉 소외의 가치와 같은 까닭에 있다. 이러한 이단자들을 긁어 보면 바닥에 잇는 문둥병 자국이 보일 것이다. 이단 전쟁은 오로지 문둥이는 문둥이로 소외시킬 것을 요구한다. -330
.윌리엄 수도사: 내 말은,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와는 별개의 문제로, 이러한 이단 교파들이 무식한 사람들 계층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식한 사람들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지요. 내 말은, 무식한 사람들은 카타르 파, 파타리아 파,심령파를 혼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장님, 무식한 사람들의 삶이란 현명한 사람들의 분별력이나 학식을 그리 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질병과 가난, 무지로 인한 눌언(訥言)과 더불어 삽니다. 그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에겐 이단자들의 모임에 가담하는 것이, 그들의 절망을 외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직자의 완벽한 삶을 요구하기 때문에 추기경의 사저에다 불을 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직자가 가르치는 지옥은 없다고 믿기 때문에 불을 지를 수도 있습니다. 이 땅에 이미 지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저질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목자가 아닙니다. -172
.”동물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 기쁨보다 유효한 게 딱 하나 더 있지요. 바로 고통이랍니다. 고문을 당하면 몽환 약초를 먹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고문을 당하면, 어디서 들었던 것, 어디에서 읽었던 게 고스란히 머리에 떠오르지요. 흡사 천당이 아닌 지옥으로 실려 가고 있는 것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고문을 당하면, 조사관이 알고 싶어하는 것뿐 만이 아니라, 조사관을 기쁘게 할 만한 것까지 모조리 말하게 됩니다. 고문당하는 자와 고문하는 자 사이에 어떤 유대(이거야말로 악마적인 유대가 아니겠어요)가 생겨나기 때문이지요 … 우베르티노, 나는 알아요. 하얗게 단 쇠붙이로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편에 서 본 적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알아 둬야 합니다. 자백을 강요하는 그 쇠붙이는 바로 강요당하는 자들의 불길에서 달구어졌다는 것을 … 고문을 당하면서 벤티벵가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는지도 몰라요. 왜냐? 말하고 있는 것은 벤티벵가가 아니라 벤티벵가의 열망, 즉 벤티뱅가의 영혼 안에 자리잡은 악마였을 테니까요.” -123-124
[하권]
.한때 엄장한 건축물로 장관을 이루던 그곳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고대 로마의 이교도들이 남긴 기념비와 흡사한, 그나마 띄엄띄엄 눈에 띄는 폐허뿐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벽과,기둥과,문틀의 잔해 위로는 인동덩굴이 기고 있었고 바닥에는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예전의 채마밭과 뜰은 어디에 있었는지 분간도 할 수 없었다. -907
.한동안 내가 그 수도원 살인 사건의 혐의자로 말라키아를 의중에 두었던 것도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막상 이승을 뜨고 보니, 그가 어쩐지 채울 수 없는 욕망에 쫓기던 가엾은 존재, 할 말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겠지만 늘 당혹과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의미에서 흡사 수도사들이라는 쇠그릇 사이에 끼인 질그릇 같다는 생각도 했다. -782
.특히 사랑이라는 병은 괴질이기는 하되 사랑 자체가 곧 치료의 수단이 된다는 이븐 하즘의 정의는 인상적이었다. 이븐 하즘에 따르면, 사랑이 괴질인 까닭은,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통찰인가! 나는 그제서야, 그날 아침 내 눈에 보인 것들이 그렇게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까닭을 이해했다. 안치라 사람 바실리오에 따르면 사랑은 눈을 통해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는 병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들뜨거나, 혼자 있거나, 혼자 있고 싶어하거나 공연한 심술을 부리거나 바로 이 심술 때문에 말수가 적어지거나 한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만나지 못 할 경우에는, 심한 자기 학대 증세를 보이면서 하루 종일 침상을 떠나지 않는데, 이 상사병 증세가 지나쳐 뇌가 영향을 받게 되면 정신을 잃거나 헛소리를 하게 된다는 대목에서는 겁이 덜컥 났다. 이 병이 악화되면 목숨을 앗을 수 있다는 대목도 꺼림칙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여자를 생각하다가 육체가 희생되어도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600~601
.오늘날에 와서는 성자와 선지자들 까지도 신봉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 철학자의 일자 일언이 바야흐로 세상의 형상을 바꾸어 놓기에 이르렀어요. 이 서책의 공공연한 해석의 대상이 되는 날 우리는 하느님이 그어 놓으신 마지막 경계를 기어이 넘게 되고 말 것이오. -737
.서책이라는 것은 서책 자체의 내용도 다루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서책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것을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문득 장서관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면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쳐 서책끼리의 음울한 속삭임이 계속되는 곳.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는, 살아 있는 막강한 권력자, 만든자, 옮겨 쓴 자가 죽어도 고스란히 살아 남을 무한한 비밀의 보고인 셈이었다. -529
.문서 사자실이 추워 손이 곱다. 나는 이제 이 원고를 남기지만, 누구를 위해서 남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911
.뒷 이야기이지만 수도원은 그 뒤로도 사흘 밤낮을 탔다. 불길을 잡아 보려던 마지막 노력도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생존자들은, 수도원 건물 중에 지켜 낼수 있는 건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하느님의 응징에 맞서 보려고 쳐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이 때는 그 엄장하던 건물이 모두 외벽뿐인 폐허로 남고, 교회가 빨아 들이 듯이종탑을 삼켜 버린 다음이었다. 우리가 그 수도원에 머문 지 이레째 되던 날의 일이었다. 몇 동이의 물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집회소와 수도원장 공관은 그날 아침까지도 타고 있었다. -뒷말 169
.’내 일찍이 일렀듯이 나는 내가 세운 가정은 미리 언표하지 않는다. 니콜라의 말에 일리가 있기는 해. 흥미있는 대목도 많고…허나 내가 지금부터 가려는 길은 이와는 정반대 되는 길이야. 아니 어쩌면, 방향만 다를 뿐 한 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 말인데, 상자 속에 든 걸 보고 너무 기죽지 말아라. 나는 다른 교회나 수도원에서도 거룩한 십자가 조각을 많이 보았다. 모두가 진짜라면 우리 주님은 통나무 두 개를 걸쳐 만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 아주 널찍한 숲속에서 돌아가신 모양이다.’ ‘아니, 사부님. 어떻게 그런 말씀을…’ ‘말이 그렇다는 것이야. 이곳에 있는 것보다 더 귀한 보물은 다른 데 얼마든지 있다. 내 어느 해 쾰른 성당에서 세례 요한의 두개골을 보았는데… 기가 막혀서…… 열 두어 살 먹은 아이의 두개골이더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세례 요한께서는 연세가 훨씬 드신 다음에 처형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두개골은 또 다른 교회의 성보 상자에 들어 있을 테지…’ -780-781
.나는 얼마 안 있으면, 참으로 신심있는 자들이 지복을 누리는 광막한 사막으로 들어간다. 오래지 않아 동등과 부동이 존재하지 않는, 적막과 화합과 적멸의 나라인 하늘의 어둠에 든다. 이 심연에서는 나의 영혼 역시 무화하여 동등함과 부동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심연에서는 모든 불화가 사함을 얻는다. 나는 곧 모든 차이가 잊혀지고 같음과 다름에 대한 분별이 없는 깊고 깊은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수고도 없고 형상도 없는 무인지경의 적막한 선성에 든다. 문서 사자실이 추워 손이 곱다. 나는 이제 이 원고를 남기지만, 누구를 위해서 남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775-776
.그분은 당신의 지식을 쓰시되, 하느님 백성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쓰셨다. 따라서 그 분은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은 구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베노는 제 삶을 가꾸는 수단으로서, 제 비천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다른 인간을 믿음의 전사나 이단의 첨병을 만드는 수단으로서의 지식을 구한다. 이것이 탐욕이다. -735
.그런데 서글펐다. 수많은 사물을 통하여 보고 누렸다고는 하나 허상일 뿐. 역시 내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 모순을 풀어서 설명할 수 없었다. 인간의 정신로 나약한 것이다. 세상은, 완벽한 삼단 논법의 세계를 세운 신성한 이란 참으이성의 도정이지만 인간의 정신에는 그 논법에서 이탈하여 저에게 유리한 명제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악마의 농간에 넘어가는 것일 터이다. 하면, 그날 아침 그토록 내 마음을 흔들어 놓던 그 여자에 대한 상념 역시 악마의 농간이었더라는 말인가?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신분이 수련사였다는 데 있다. 내가 수련사만 아니었다면, 인간의 마음에서 인 그런 격정 자체는 크게 허물될 바 아닐 것이다. 남자의 마음에 여자에 대한 그러한 격정이 있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그래야 이방의 사도들이 바라듯이 육과 육이 만나 새로운 인간이 지어지면서 선거하는 세대가 있고 후래하는 세대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방의 사도들이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보아준 것은 우리 같이, 동정 지키기를 서운한 사람이 아닌 속인들게 한하기는 한다. -516
.”우리가 불지르고 노략한 것은, 일찍이 청빈을 우주적 율법으로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타인이 옳지 못한 방법으로 쌓은 부를 전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교구에서 저 교구까지 뻗어 있는 탐욕의 거미줄 한 가운데를 걷어 버리고 싶었을 뿐이지, 얻기 위해 노략하고 노략하기 위해 불지른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징벌하기 위해, 더러운 자들을 피로 정화하기 위해 죽였습니다. 어쩌면 정의를 향한 미치광이 같은 욕망에 쫓긴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인 한, 하느님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나 지나친 무류에 겨워 죄를 짓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보내셨고, 마지막 날 영광의 승리자로 선택하신, 참 영혼을 가진 대중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네들의 파멸을 앞당기고, 천국에서 그 상을 받고자 했습니다. 우리만이 그리스도의 사도였을 뿐, 다른 이는 모두 그분을 배반한 이단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게라르도 세가렐리는 신목(神木), 이었습니다. 우리 교단은 하나님께서 목소 세우신 교단입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당신네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무고한 자도 죽이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평화와 행복이 모두에게 두루 미치는, 보다 나은 새 세상을 바랐습니다. 우리는 당신네들의 탐욕이 불러 일으킨 전쟁을 줄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당신네들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정의와 행복이 뿌리내리려면 우리 모두가 피를 흘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은 … 사실은 그런데도 최후의 날은 앞당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타벨로에서 카르나스코 강물을 핏빛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피도 섞여 있었습니다. 우리 피와 당신네들의 피가 …돌치노의 예언이 실현될 날이 가까워진 듯해서 우리로서는 그 징조가 보이는 날을 앞당겨야 했던 것이지요.” 레미지오는 부들부들 떨면서 두 손을 법의 자락에다 비볐다. 머리로 상상했던 피를 실제로 닦고 있는 것이었다. “저 돼지가 이제 정결함을 다시 얻었다.” 사부님이 속삭였다. “이게 정결함입니까?” -713-714
– 줄거리 요약
프란치스 수도사, 바스커빌 출신의 윌리엄과 그를 모시는 수련사, 멜크 수도원의 아드소는 황제측과 교황측 사이의 회담 준비를 위해 회담이 열릴 수도원에 도착한다. 원장은 윌리엄에게 그 수도원에서 있었던 의문의 죽음의 비밀을 풀어달라고 간청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몇몇의 수도사들이 사망한다. 윌리엄은 이 사건의 중심에 미궁의 장서관이 있다고 보고 그곳을 조사하는 한편, 수도사들을 탐문한다.
결국 윌리엄은 여러 자료를 통한 추론으로 장서관의 밀실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낸다. 장서관의 밀실에는 윌리엄의 예상대로 호르헤 노수도사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윌리엄과 호르헤는 마지막 논쟁을 펼친다. 장서관의 비밀을 지키려는 호르헤에 의해 장서관은 불에 휩싸인다.
본관 3층의 장서관에서 본관 전체로, 본관에서 다른 건물로 계속 불이 옮겨 붙고, 그 불은 사흘 동안 타오른다. 기독교 최대의 장서관을 자랑하던 그 수도원은 결국 폐허가 된다. 이후 아드소는 멜크 수도원으로 돌아가고 윌리엄은 혹병 유행기에 사망한다.
– 주요 등장 인물
.배스커빌의 윌리엄 : 주인공, 영국 출신의 프란체스코 수도사. 전직 이단심문관. 로저 베이컨의 제자. 수도사답지 않게 인문학보다는 자연과학과 기호학을 내세우며, 다소 거만한 감이 있다. 해당 수도원이 화재로 폐허로 변하고 아드소와도 이별한 뒤 흑사병 유행기에 사망한다.
.멜크의 아드소 : 소설의 서술자, 사건 당시 베네딕토 멜크 수도원의 수련사, 윌리엄의 제자.
.포사노바의 아보 : 수도원장, 사부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신을 들쳐업은 것으로 유명하다. 여섯 번째 피살자로, 장서관을 찾아갔다가 기계장치에 의해 압사당한다.
.카잘레의 우베르티노 : 베네딕토 수도원에 망명한 전프란체스코 엄격주의파 수도사, 윌리엄의 친구. 반교황파의 전설적인 인물. 베르나르 기의 간계로 인해 살해위협을 받아 도주하지만 2년 뒤 의문사한다.
.오트란토의 아델모 : 채식장인 수도사. 베렝가리오와 동성애 관계. 첫 번째 피살자로,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을 이기지 못하고 천길 낭떠러지에서 자살한다.
.살베메크의 베난티오 : 그리스어, 아랍어 번역가. 두 번째 피살자로, 독살된 뒤 돼지피 항아리에 처박힌채 발견된다.
.아룬델의 베렝가리오 : 보조 사서계 수도사. 멍청하고 음탕한 동성애자로, 아델모, 말라키아와 관계했다는 소문이 떠돈다. 세 번째 피살자로, 독살된 뒤 욕장에서 발견된다.
.장크트벤델의 세베리노 : 본초학자. 네 번째 피살자로, 윌리엄과 아드소의 수사를 돕다가 시약소에서 천구의로 살해당한다.
.힐데스하임의 말라키아 : 사서계 수도사. 다섯 번째 피살자로, 금지된 책을 읽다가 책에 묻어있는 독에 중독되어 죽는다.
.웁살라의 베노 : 수사학도. 지적 호기심에 목말라 한다. 세베리노가 죽은 그 날 말라키아에 의해 보조사서로 임명된다. 최후의 날 장서관에 불이 나자 불을 끄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소사한다.
.그로타페라타의 알리나르도 : 해당 수도원에서 가장 나이 많은 수도사. 젊었을 적 경쟁자에게 사서 자리를 빼앗긴 앙심을 가지고 있다. 약간의 노망기를 보인다. 윌리엄과 아드소는 알리나르도의 말에서 사건해결에 필요한 여러가지 단서를 얻는 다. 최후의 날, 불길에서 도망치는 가축들을 피하지 못하고 짓밟혀 압사한다.
.부르고스의 호르헤 : 해당 수도원에서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수도사로, 일찍이 장님이 된 전직 사서. 웃음을 악마로 여기는 정신착란을 앓는 늙은이. 신학에 대한 광신과 철학에 대한 증오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은폐하려 하고, 문제의 서적에 접근하려했던 수도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본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모델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라지네의 레미지오 : 식료계 수도사. 사하촌 처녀와 매춘을 하다가 발각당하고 과거 이단 수도회와 어울린 전과가 드러나 베르나르 기에 의해 화형당한다.
.살바토레 : 꼽추, 식료계 레미지오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수도사.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온 그는 유럽 곳곳을 떠돌아다닌 전력 탓에 온갖 잡다한 언어가 뒤섞인 언어로 이야기한다. 여러가지 요상한 주술을 알고 있다. 이단 심판관을 피해서 이리로 도망쳐 왔지만 베르나르 기에 의해 화형당한다.
.모리몬도의 니콜라 : 유리 세공사. 배스커빌의 윌리엄이 안경을 도둑맞자 그의 안경을 새로 만들어 준다.
.알렉산드리아의 아이마로 : 고문서 필사가. 매우 냉소적인 인물. 수도원장이 이탈리아인이 아닌 외국인들의 입김에 놀아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
.티볼리의 파치피코 : 실존인물
.베르나르 기 : 베르나르도 귀도니, 혹은 베르나르도 귀도. 교황측의 사절. 이단 심문관. 교황이 회담의 성사를 방해하기 위해 보낸 인물로 추정된다.
.교황 요한 22세 : 본명은 카오르의 자크 뒤엔스. 청빈을 주장하는 수도사들을 탄압하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트비히와 반목을 빚는 다.
.체제나의 미켈레 : 프란체스코 수도사. 윌리엄의 친구. 어떻게 해서든 수도회들과 교황권을 중재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이단으로 몰리게 되자 도주한다.
.오컴의 윌리엄 : 실존인물
.노바라의 돌치노 : 이단적인 종교단체인 ‘사도회’의 우두머리. 처음에는 세력을 키워 그를 따르는 신도수가 수천에 이르게 되지만 결국 ‘반역의 산’에서 베르첼리 주교 휘하의 군대에게 토벌당한다. 후에 연인 마르게리타와 화형당한다.
.베르트란토 데 포제토 : 교황측 사절. 추기경. 이단심문관으로 악명을 떨친적이 있다.
.카파의 제롤라모 : 카파의 대주교. 윌리엄은 그를 가리켜 ‘멍청이한 늙은이’라고 한다.
.베렝가리오 탈로니 : 실존인물
.파도바의 알도레아 : 실존인물
.장 드 본느 : 실존인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