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장벽의 문명사 : 만리장성에서 미국-멕시코 국경까지, 장벽으로 본 권력의 이동과 세계 질서
데이비드 프라이 / 민음사 / 2020.10.30
- 장벽, 누가 그것을 세웠는가? ‘언택트’ 시대에 읽는 연결과 단절의 세계사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과 그에 맞선 방역, 격리는 삶의 방식을 크게 바꾸고 있다. 이제 우리는 사소한 습관 속에서,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안전이라는 가치를 재발견한다. 역사를 통틀어 보면 벽 안쪽에서 안전을 추구해 온 사람들이 보인다. 교활한 적들을 피해 벽 안에서 구원을 찾은 사람들이다.
『장벽의 문명사』는 유라시아 대초원에 숨겨진 장벽들로, 로마 병사들이 지키는 제국 최북단의 방벽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할리우드 스타들의 낙원 말리부로 우리를 이끈다. 스파르타인들의 기괴한 영웅주의에서, 베를린을 무대로 한 스파이 영화에서 우리는 벽과 그 시대정신을 발견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벽과 우리 사이에 있는 놀라운 연결 고리를 점진적으로 드러내고, 흥미로우면서도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장벽이 문명을 가능하게 했는가? 우리는 벽 없이 살 수 있는가? 오늘날 장벽을 쌓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 대학의 역사학 교수이자 장벽에 관한 독보적 전문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프라이가 벽 (wall)이라는 주제를 통해 지난 수천 년간의 인류 문명사 전체를 조망한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4000여 년 전에 세워진 고대 시리아의 장벽에서 출발해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중국, 로마, 몽골, 아프가니스탄, 미시시피강 하류,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오늘날의 미국-멕시코 국경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 온 벽의 양면성을, 즉 안전을 보장하는 폐쇄성과 교류를 촉진하는 개방성을 모두 강조한다. 또한 전염병과 마약, 불법 이민자 같은 가장 최근의 불안 요소들이 어떻게 21세기에 벽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를 불러왔는지 주목한다.
○ 목차
선별 연표
서장: 황무지를 막아선 벽
1부 건설자와 야만족
문명의 산파: 역사 여명기의 장벽 건설자들 ― 고대 서아시아 (기원전 2500~기원전 500년)
벽을 쌓을 것인가, 말 것인가? ― 그리스 (기원전 600~기원전 338년)
‘통곡’ ― 중국 (기원전 214년)
장벽 건설자와 전사: 벽 너머의 삶 ― 유라시아 (기원전 2000~기원후 1800년)
2부 위대한 장벽의 시대
위대한 장벽 시대의 서막: 알렉산드로스의 문 ― 시대를 초월한 민담
장벽이 유라시아를 연결하다 ― 중국과 중앙아시아 (기원전 100년 무렵)
하드리아누스 방벽 ― 로마 제국 (117~138년)
잃어버린 낙원 ― 로마 제국 (300년 무렵)
장벽 안의 무방비 ― 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 (400~600년)
장벽의 주기와 폭군들 ― 중국 (280~1600년)
장벽과 묵시록 ―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500~1300년)
3부 전환되는 세계
끔찍한 포격 ― 콘스탄티노폴리스 (1453년)
페일 너머 ―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러시아 제국 (1494~1800년 무렵)
상심의 요새 ―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선사시대~1800년)
4부 상징들의 충돌
최후의 전투 ― 중국과 프랑스 (1933~1940년)
‘전쟁보다 훨씬 나은 지옥’ ― 베를린 (1961~1989년)
종장: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네 울타리를 허물지는 말라.” ―지구 (1990~현재)
감사의 글
각 장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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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데이비드 프라이 (David Frye)
고대 후기를 전문으로 하는 역사학자로 듀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 대학의 교수로서 고대사와 중세사를 가르치고 있다. 영국과 루마니아에 있는 로마 제국의 고대 국경을 발굴하는 등 국제적인 고고학 발굴 작업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장벽의 역사에 관한 독보적인 전문가로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과 학자 모두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 역자 : 김지혜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박사과정을 마쳤다. 한양대학교,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세종대학교에서 영화와 역사를 주제로 강의했고 현재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영화, 역사』, 『역사 속의 매춘부들』, 『로버트 단턴의 문화사 읽기』, 『잭 구디의 역사 인류학 강의』, 『시인을 체포하라』,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공역), 『대중의 국민화』(공역)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거의 모두 최소 하나의 도시 성벽을 건설했고, 많은 왕이 여러 개의 성벽을 건설했다고 선전했다. 그들은 자기 업적이 오래 유지되지 않을 것을 알았고 선임자들의 수고를 되풀이하게 될 것도 알았지만, 장벽의 건설을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다섯 명의 왕이 바빌론을 위해 장벽을 건설했다. 그리고 적어도 네 명의 왕이 우르를 위해 장벽을 쌓았다. — p.39
알렉산드로스는 캅카스산맥에 거대한 철문을 세우라고 명령했다. 3000명의 대장장이와 3000명의 놋쇠공이 문을 제작하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문이 완성되자 알렉산드로스는 훈족과 함께 불어닥친 북풍을 차단했다. 그는 문에 예언을 새겼다. 826년에 알렉산드로스의 장벽이 무너지고 훈족이 페르시아와 로마를 모두 정복하게 될 것이며, 940년 뒤에 신과 문명,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최후의 거대한 전쟁에서 훈족을 물리치고 마침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 p.120
길이만으로 장성의 영향력을 다 피력할 수는 없다. 그나마 동원된 인원으로 말하면 조금 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수 문제는 585년에 3만 명을 동원해 장성을 짓게 했고 이듬해에는 15만 명을, 다음 해에는 추가로 10만 명을 동원했다. 그의 아들 수 양제는 607년에 장성을 축조하는 데 100만 명을 동원했고, 608년에는 20만 명을 추가로 동원했다. — p.201
초원 지대 습격자들은 카자크의 괴멸적 공격에 위협받고, 점차 늘어나는 러시아의 방어선들에 위협을 받으며 칭기즈 칸 같은 지도자를 갖지 못한 채 앞서 고대 갈리아인들이 최후에 맞이했던 변화를 겪고 있었다. 1600년에 크림반도의 타타르족은 점점 더 문명화되었으며, 시를 쓰고 미술과 교육을 후원하는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1689년에 이르면 과거에 유목민이던 이들이 정착민들의 가장 특징적인 전략을 채용했고, 옛 공식을 뒤집은 희귀한 방식으로 러시아인들을 막기 위해 해자를 팠다. — p.272
기술력의 위업으로만 보면 고대 중국인들도 능가하는 인도의 노동자들은 2004년에 공기가 희박한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 일부를 가로질러 일부에 전류가 흐르는 12피트 높이의 장벽을 세워 불합리하게 배치된 파키스탄 접경을 안전하게 했다. 같은 시기에 인도인들은 방글라데시와의 접경을 따라 200마일이 넘는 울타리와 장벽을 건설했다. 그것은 곧 2000마일 길이의 철조망과 콘크리트로 확대된 장벽의 첫걸음이었다. — p.346~347
○ 출판사 서평
- 21세기의 새로운 만리장성 : 트럼프 장벽
오늘날 많은 미국인이 남쪽 국경 너머를 의심 어린 눈초리로 경계한다. 그곳에서 온갖 좋지 않은 것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장벽을 세워 국경을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최근에는 그 거리 두기의 대열에 도널드 트럼프가 합류했다.
만리장성은 엄밀히 따지면 시황제만의 작품이 아니다. 시황제는 이미 존재하던 장성들을 연결했을 뿐이다.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이전에 세워진 장벽이 국경 곳곳에 있다. 여러 미국 대통령이 관련 법안에 서명하고 힐러리 클린턴 같은 유력 정치인들이 지지해 준 덕택이다. 트럼프의 장벽 건설 현황을 살펴보면 새로운 구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기존의 장벽을 보수하고 대체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면 2200여 년 전의 시황제와 오늘날의 트럼프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 피와 벽돌로 문명을 쌓아 올리다 : 장벽 건설자들
최초의 장벽 안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전사일 필요는 없음을 깨달았다. 많은 남자가 무기를 내려놓고 전사의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장벽이 없었다면 중국의 학자도, 바빌로니아의 수학자도, 그리스의 철학자도 없었을 것이다.” 그 어떤 발명도 문명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벽보다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벽 안의 삶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성벽 안에서 남성들은 허약해졌다. 수메르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조차도 도시 바깥에서 온 엔키두의 야성을 꺼렸다. 성벽 밖은 위험으로 가득했다. 청동기시대의 어느 왕은 자기 신세가 ‘새장에 갇힌 새’와 같다고 한탄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성벽을 가리켜 ‘여성의 처소’와 다를 것이 없다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벽 안에 웅크린 채 불안에 떨던 사람들이 바로 문명을 만든 사람들이었다.
최초의 문명을 건설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도시를 토벽으로 둘러쌌다. 진흙은 점토판을 만드는 데는 유용했지만, 벽돌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벽돌에서 진흙이 흘러내려 배수로를 막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진흙 바구니를 이고 나르며 벽 쌓기를 멈추지 않았다.
벽 쌓는 일이 고단하기로는 중국도 만만치 않았다. 한 여인이 사흘 밤낮을 통곡해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뒤에도 중국인들은 건설을 멈추지 않았다. 한 무제 시절에도, 약 1500년 뒤의 명 왕조 치하에서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장성을 쌓고 있었다.
로마인들도 벽을 쌓는 사람들이었다. 아리스티데스는 ‘부서지지도 허물어지지도 않는’ 로마의 장벽을 찬양했다. 그에 따르면 장벽으로 보호받는 로마 제국은 학문과 미술, 과학의 낙원이었다. 과장되기는 했어도 어느 정도는 사실을 담은 주장이었다. 장벽에는 큰 수고를 들일만 한 가치가 있었다.
- 벽의 유용성에 관하여 : 난공불락이라는 신화
무너져 내리는 벽만큼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인 메시지가 있을까?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만화 「진격의 거인」에서, 영화 「퍼시픽 림」에서 벽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벽의 붕괴와 함께 외부의 위협이 들이닥치고, 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1453년, 그 운명의 날에도 벽은 무너졌다. 오스만 제국의 군대는 파괴된 성벽을 넘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내로 진입했다. 위대한 도시의 함락이라는 주제는 곧 많은 작가를 사로잡았다. 특히 오스만 측의 신무기인 대포는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헝가리인 기술자가 만든 무시무시한 대포 앞에서 옛 시대의 유물인 낡은 성벽은 무력하게 묘사된다. 그 덕분에 이 삼중 성벽이 도시를 1000년 가까이 지켜 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되곤 한다. 저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벽이야말로 그 의도를 가장 성공적으로 달성한 벽이라고 말한다.
만주족은 중국을 정복했지만, 만리장성을 정복하지는 못했다. 산해관을 지키던 명의 장군이 문을 열어 준 뒤에야 비로소 장성을 넘을 수 있었다. 오늘날 관용어로 살아남은 마지노선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기갑부대는 마지노선을 피해 우회했을 뿐,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마지노선을 지키던 프랑스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선전하다가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마지못해 항복했다.
- 무엇을 막을 것인가? : 새로운 개념의 장벽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살던 시대에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급격한 감소는 큰 문제였다. 조지 워싱턴은 사라져 가는 인디언들을 보호하려면 ‘중국식 장벽’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해 장벽을 지어야 한다는 이러한 발상은 장벽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서베를린은 동독 영토 한가운데에 떠 있는 자본주의 진영의 섬이었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동독인들에게 서베를린은 매력적인 탈출구였다. 1961년의 어느 일요일까지는 그랬다. 동독 정부는 자국민의 이탈을 더는 두고 보지 않았다. 철조망과 콘크리트로 구성된 장벽이 서베를린을 통째로 에워쌌다.
처음에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을 반겼다. “그 장벽은 전쟁보다 훨씬 나은 지옥이다.” 장벽은 그 당시에 서방의 지도자들이 우려하던 핵전쟁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언론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곧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상징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 되었다.
장벽을 건설함으로써 동독 정부는 체제의 우월성을 두고 벌인 경쟁에서 패했음을 시인한 셈이 되었다. 그 장벽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억압적인지 생생하게 보여 주는 증거였다. 저자는 베를린 장벽이 동독 정부에 해롭기만 했던, 역사상 가장 쓸모없는 벽이었다고 단언한다.
- 장벽 건설은 계속된다 : 우리 시대의 장벽들
1989년의 요란한 희극과 함께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그리고 왕년의 스타 데이비드 해셀호프만큼이나 빠르게 잊혔다. 베를린 장벽의 콘크리트 파편은 기념품에서 흉물로 전락했다. 이제 장벽을 언급하는 것은 촌스럽고 비효율적인 일로 보였다.
이처럼 쇠락하는 듯했던 장벽은 놀랍게도 21세기에 들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인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케냐, 튀니지, 리비아, 에콰도르 등에서 새로운 장벽이 솟아나고 있다. 난민의 대량 유입, 테러, 전염병, 마약 등에 대한 두려움이 장벽 건설을 전 세계적 현상으로 만들었다.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의 건설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통념적으로 다리는 연결의 상징으로, 장벽은 단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반대인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로마인들은 강 건너편을 침공하기 위해 다리를 건설했다. 그에 반해 저자는 장벽이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고 개방과 평화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스파르타인들이 성벽을 거부했기에 오히려 자유를 잃었음을 떠올려 보면 장벽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장벽 건설은 다음과 같은 선택지만을 제시하는 듯하다. 고립될 것인가, 고립시킬 것인가? 무엇을 고르든 고립은 피할 수 없다. 각국이 유형과 무형의 장벽을 쌓아 올림으로써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지금, 이 책이 보여 주는 통찰력이 필요한 이유다.
○ 추천평
프라이는 역사적·고고학적 흔적을 생동감 넘치는 산문으로 바꾸는 데 능숙하다. – [월스트리트 저널]
모든 장은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 현재 미국에서 장벽을 두고 벌어지는 열띤 토론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책. – [북리스트]
도발적이면서도 잘 쓰였고, 지구 곳곳에 벽이 솟아오르는 지금,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게 도착한 책. – [커커스 리뷰]
인류 사회의 발전에서 자주 간과되는 요소에 관한 생생하고 대중적인 역사서. – [라이브러리 저널]
프라이는 오늘날 장벽들의 재등장에 관해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흥미롭고 통찰력 있게 제공한다. – [셸프 어웨어니스]
이 책은 문명의 중심부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문명이 충돌하는 경계를 조명한다. (…) 프라이는 특유의 역사관을 통해 현재를 위한 값진 교훈을 훌륭하게 빚어낸다. – 잭 웨더퍼드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의 저자)
도널드 트럼프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브라이언 페이건 (『고고학의 역사』의 저자)
안전과 자유를 향한 우리의 열망에 관한 유머러스하고 심오한 탐구. 프라이는 디테일에 밝은 소설가의 눈으로 벽의 위대한 역설을 보여 준다. 즉 두려움이 벽을 만들었지만, 문명은 그 벽 뒤에서 발전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되, 네 울타리를 허물지 말라.” 시대를 초월하는 교훈이다. – 라스 브라운워스 『바다의 늑대』의 저자)
○ 언론소개
- 장벽으로 본 권력의 이동과 세계 질서 『장벽의 문명사』
문명의 역사에서 벽은 얼마나 중요했을까? 문명인 가운데 장벽 밖에서 살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원전 1만 년 무렵에 예리코를 건설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였던 그들의 도시 주변에 방어물을 쌓았다. 시간이 가면서 도시화와 농업이 예리코와 레반트 지역에서 새로운 영토로 퍼져나갔다. 곧 아나톨리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발칸 그리고 그 너머로 확산됐다. 그리고 예외 없이 장벽이 그 뒤를 따랐다. 농부들은 어디에 정착하든 그들의 마을을 요새화했다. 그들은 터를 돋우고 집 둘레에 도랑을 파서 봉쇄했다. 공동체 전체가 마을의 안전을 유지하는 데 열중했다. 선사시대 트란실바니아의 농촌에 관한 연구는 마을 주변의 호를 파기 위해 1만4,000세제곱미터에서 1만5,000세제곱미터 사이의 흙을 운반해야 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성인 남성 60명이 40일 동안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호 주변에 돌을 쌓아 두르거나 울타리를 만들어 보강했다. 공동체가 충분히 오래 유지되면 그들은 측면을 방어하기 위한 망루를 추가했다. 이런 것들이 장벽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였다.
최초로 문명을 건설한 이들은 벽을 쌓은 이들의 후예였다. 그들은 조직과 수에서 새로 확인한 장점을 활용해 더 큰 장벽을 쌓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중략) 무엇이 두려워 벽을 쌓았을까? 문명 (그리고 벽)을 만든 사람들은 특별히 겁이 많은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문명을 건설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두려움이 더 커졌을까? 이런 물음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중략)
로마인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들의 전투에 다른 사람을 동원해 싸우게 하기를 즐겼다. 그 때문에 그들은 결정적인 문명 전파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이 위용을 잃게 했다는 상투적인 불평의 대상이 됐다. 도시 성벽과 이방인 수비대 뒤에서 안전해진 로마인들은 점점 더 유약해졌다. 그들은 정치가였고 철학자였고 제빵사였고 대장장이였다. 전사를 뺀 모든 직업에 종사했다. (중략)
장벽의 탄생으로 인간 사회는 저마다 다른 길로 향했다. 자아도취의 시로 향하는 길을 택한 사회가 있었는가 하면 과묵한 군사주의로 향하는 길을 택한 사회도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길은 훨씬 더 많은 다른 길 (과학, 수학, 연극, 미술)로 이어졌다. 반면에 나머지 길은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을 죽음이라는 목적지로 이끌었을 뿐이다. 그 길에서 남성은 오직 전사여야 했고, 모든 노동은 여성에게 전가됐다.<23~28쪽> _ 독서신문 (2020.11.11)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