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장식
안토니 가우디 / 아키트윈스 / 2014.8.15

– 가우디Antoni Gaudi i Cornet (1852 . 1926)가 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1873년부터 졸업 이듬해인 1879년까지 7년간 사용했던 노트에서 발췌한 것
‘장식’은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가 직접 손으로 기록하여 ‘레우스의 수기’ (Manuscrito de Reus)로 불리기도 하는 가우디 노트 중에서 건축적으로 특히 주목할 만한 ‘장식’ 부분을 엮은 책이다. 독립된 건축가로서 자신만의 작업을 시작한 그 시기의 기록을 통해 진지한 건축적 고민에 빠져 있는 패기 있는 건축가 가우디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 목차
가우디 노트를 펴내며
장식
주석. 도판출처
가우디 연표 1,2
참고
○ 저자소개 : 안토니 가우디 (Antoni Placid Gaudí i Cornet, 1852 – 1926)
본명은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넷 (Antoni Gaud i Cornet, 1852 ∼ 1926). 정열의 나라 스페인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가우디는, 카탈루냐 지방의 레우스에서 태어나 ‘예술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했다.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 놓은 듯 구불구불한 6층 아파트 ‘카사 밀라’, 기묘하고 아름다운 창문장식이 보는 이를 매혹시키는 ‘카사 바트료’, 환상적인 돌조각과 타일장식이 공원 전체를 구불구불 덮고 있는 ‘구엘 공원’ 등의 걸작을 남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남긴 대표작은 신이 머물 지상의 유일한 공간이라 말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성聖가족) 교회’이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네 개의 탑과 생동감 넘치는 우아한 조각으로 장식된 이 교회는 착공한 지 115년이 지났고 완성되려면 앞으로도 200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가우디는 일찍이 바그너가 주창했던 종합예술론과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괴테의 자연론에 영향을 받아, 스페인 고유의 고딕 양식과 이슬람 양식 (무데하르, Mudejar) 양식을 재창조하여 대담하고 환상적인 건축양식을 완성했다. 피카소, 미로, 카잘스 등 동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도 바르셀로나 곳곳에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건축을, 자연의 여러 가지 형상을 기초로 하여 구조·형태·기능·상징의 종합으로서 제시한 위대한 건축가였다.
– 역자 : 이병기
2002년 서울시립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스페인에 거주하며 가우디의 모교인 바르셀로나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특히 대학 내에 소재한 ‘가우디 연구원(C?tedra Gaud? )’을 통해 수많은 가우디의 원본 자료와 관련 서적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십년간 그의 건축물과 그가 사랑했던 도시를 가까이서 보고 경험하면서, 가우디를 시대와 건설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던 도시 건축가로 바라보게 되었다.
○ 출판사 서평
이 글은 가우디 (Antoni Gaudi i Cornet, 1852 ~ 1926)가 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1873년부터 졸업 이듬해인 1879년까지 7년간 사용했던 노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가우디가 직접 손으로 기록하여 ‘레우스의 수기’ (Manuscrito de Reus)로 불리기도 하는 이 노트는 1881년 2월 ‘라 레나이센샤’ (La Renaixenca)에 기고한 ‘장식예술 박람회’의 소개 글,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제외하고 그가 남긴 유일한 기록물로 인정받고 있으며,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노트를 접하기 전까지 저는 가우디를 건축가라기보다는 기괴한 형상의 실험을 멈추지 않던 장식 예술가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접하게 된 이 노트에서 저는 젊은 날 그가 가졌던 건축적 고민들과 이후 그의 건축을 이끌어간 사고의 단초들을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건축적으로 특히 주목할 만한 글이 바로 이 책에 소개된 “장식” (이 글의 제목인 장식은 ‘La Ornamentacion’으로 써야 옳지만, 이 노트에는 ‘Hornamentacion’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이라는 토막글입니다. 이 글은 가우디 건축의 성격을 규정하는 ‘장식’이라는 주제를 다룰 뿐 아니라, ‘1878년 8월 10일’부터 ‘9월 22일’까지라는 날짜가 기록된 것으로 볼 때 가우디 인생에서 어느 해보다 특별했던 1878년 여름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 1878년은 가우디에게 아주 특별한 해였습니다. 그는 1878년 3월 15일 바르셀로나 상급건축학교를 졸업하여 건축사를 취득했으며, 졸업 직후인 5월 1일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에 코메야스 씨의 의뢰를 받아 장갑 진열대를 제작했습니다. 훗날 자신의 후원자가 될 에우세비 구엘 (Eusebi G?ell i Bacigalupi)을 만난 것도 바로 이 파리 박람회였습니다. 이 토막글이 기록된 것은 박람회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에 사무실을 열었고, 자신이 사용할 책상을 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던 당시 제작된 박람회의 진열대나 그 책상의 디자인에서는 당대의 양식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젊은 건축가의 패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가우디는 이미 학생이 아니었으며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가 독립된 건축가로서 자신만의 작업을 시작한 그 시기의 기록이며,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우리는 가우디의 건축이 딛고 선 바로 그곳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1853년 승인된 도시 확장 계획인 에이샴플라 (L’Eixample)를 통한 도시 개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고, 신흥자본가라는 새로운 사회계층의 급부상에 발맞춘 새로운 문화와 예술의 분위기로 충만했습니다. 19세기 말, 전 유럽에서 고전의 건축 언어가 이미 어느 정도 그 힘을 잃어가던 상황 속에,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는 자연주의 경향의 건축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분들은 가우디의 건축을 유사한 범주에 두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뜻밖에도 가우디는 이 글을 통해 ‘시대의 건축’과 ‘건설’에 관한 주제를 이끌어 냅니다. 그리고 26세의 가우디는 우리에게 ‘왜 새로운 건설 방식과 새로운 의미의 장식이 필요한지’를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출간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가우디 개인의 기록물입니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조금은 산만하고 거칠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내용 중 어떤 부분은 완성된 문장의 형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명칭이나 인물이 명백히 잘못 기록되거나 심지어 쓰다가 만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 글을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하는 까닭은 이 글이 젊은 날 가우디의 문제의식과 호기심은 무엇이었는지, 또 이후 그것들이 건축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말해 주는 유일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소개된 가우디 관련 저술들이 주로 그의 건축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에 기댄 것이었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진지한 건축적 고민에 빠져 있는 패기 있는 건축가 가우디를 직접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만남은 이후 펼쳐질 그의 건축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나아가 확신에 찬 그의 글이 말하고 있는, 또한 이후 그의 건축 작업에서 다시 확인되는 형태의 성격들, 특히 ‘조화’에 관한 부분은 오늘날 우리의 건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문은 본래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글을 모아놓은 형태의 노트였습니다. 저는 전체 내용을 ‘가우디 노트’라는 시리즈로 기획하여 두 권의 소책자로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되는 “장식”이라는 글은 원문의 전반 1/3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