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장 그르니에 선집 세트 전4권 : 섬 / 카뮈를 추억하며 / 어느 개의 죽음 / 일상적인 삶
장 그르니에 / 민음사 / 2020.11.9
민음사에서 출간한 장 그르니에 선집 4종은 1997년 8월 첫선을 보였으며, 한 세기가 넘도록 독자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 왔다. 이번에 『섬』을 필두로 장 그르니에 선집 네 권 모두 개정판으로 출간하여 독자들에게 가을 선물처럼 다가가려고 한다.
이번 개정판 장 그르니에 선집 4종은 기존에 수록된 번역을 전면 수정 및 새로 번역하여 현대적 언어 감각과 번역의 완성도를 높였다. 디자인도 바뀌었다. 선집 4종 모두 에토프에서 작업한 산뜻한 일러스트를 표지 디자인에 반영하여 친근함과 새로움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했다. 여기에 1997년 판 특유의 공허하고 고요한 느낌도 남겨 두어 비우고 감추고 섬세한 물성을 지닌 선집이 되도록 했다.

- 섬
1997년 8월 첫선을 보인 이래 이십삼 년간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온 장 그르니에의 『섬』이 2020년 10월, 번역도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우리에게는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다수의 미술서와 에세이집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미학에 대한 소신을 전달해 왔다.
그르니에는 특히 일상 속에서 경험한 다양한 일화들을 성찰적 어조로 간결하게 풀어내는 글을 썼기에, 그의 글은 쉽고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마음에 깊이 닿아 오늘을 사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장 그르니에의 『섬』은 특히 알베르 카뮈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카뮈는 찬사에 가까운 서문으로 스승이 쓴 이 책에 대한 감동을 전한 바 있다.
- 카뮈를 추억하며
1997년 8월 첫선을 보인 이래 이십삼 년간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온 장 그르니에 선집이 2020년 10월, 번역도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학자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수의 미술서와 에세이집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미학에 대한 소신을 전달해 왔다.
‘장 그르니에 선집’ 2권인 <카뮈를 추억하며>는 1930년 삼십 대였던 그르니에가 알제의 고등학교에 철학 교사로 부임해 졸업반 학생이었던 알베르 카뮈를 만난 이후 1960년 카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삽십 년에 걸쳐 지속된 두 지성의 교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어느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선집 3권 『어느 개의 죽음』이 번역도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특히 사랑하는 반려견 타이오의 죽음 앞에서 가눌 길 없는 슬픔을 느낀 장 그르니에가 그를 회상하며 써 내려간 애도 글이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그르니에의 탁월한 통찰과 성찰이 담겨 있다.
그르니에는 “1955년 5월 15일에서 6월 1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쓴 아흔 편의 짧은 단상들을 적어 나갔다. 글에서도 자신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키우던 반려견 타이오의 죽음이고, 타이오의 죽음이 야기한 고통과 부재가 남긴 슬픔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르니에는 이미 선집1 『섬』에서도 「고양이 물루」를 통해 반려동물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애정을 글로 담아낸 바 있다.
그보다 뒤에 쓴 『어느 개의 죽음』은 「고양이 물루」보다 담담하지만 한결 슬픈 어조로 병든 타이오를 수의사에게 데려가 안락사시킨 뒤 정원의 월계수 아래 묻어 주고 떠나는 과정을 회상한다. 특히 노년을 앞둔 그르니에에게 개의 죽음, 그로 인한 고통과 슬픔은 죽음 자체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며, 그 안에는 개의 죽음을 ‘치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이 들어 있다.
그르니에는 개에게 다가온 임종의 고통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다 결국 ‘영원히’ 낫게 해 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키지만 그것이 정말 개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인지 회의한다. 그래서 이 글은 ‘내 개’ 혹은 ‘그 개’의 일회적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서나 반복될 수 있는 ‘어느 개’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 일상적인 삶
1997년 8월 첫선을 보인 이래 이십삼 년간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온 장 그르니에 선집이 2020년 10월, 번역도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학자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수의 미술서와 에세이집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미학에 대한 소신을 전달해 왔다.
장 그르니에 선집 4권 『일상적인 삶』은 ‘여행’, ‘산책’, ‘수면’, ‘독서’ 등 일상적인 행위와 ‘포도주’, ‘담배’, ‘향수’ 등 생활 속의 사물을 포함하는 총 열두 가지 주제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들여다본다. 차분하고 관조적인 태도로 그르니에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상을 잃어버린 코로나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따뜻한 울림을 전해 줄 것이다.

○ 목차
-『섬』
『섬』에 부쳐서 / 알베르 카뮈 4
공의 매혹 20
고양이 물루 31
케르겔렌 군도 72
행운의 섬들 90
이스터섬 105
상상의 인도 122
사라져 버린 날들 159
보로메 섬들 166
옮긴이의 말
글의 침묵/ 김화영 171
저마다의 마음속에 떠도는 섬/ 김화영 175
- 『카뮈를 추억하며』
서문 4
카뮈를 추억하며 8
옮긴이의 말 193
- 『어느 개의 죽음』
어느 개의 죽음 9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관하여 99
옮긴이의 말
부재와 기억. 사랑했던 것들을 위해 / 윤진 105
- 『일상적인 삶』
여행 8
산책 35
포도주 58
담배 76
비밀 93
침묵 113
독서 137
수면 167
고독 193
향수 211
정오 227
자정 242
옮긴이의 말 262

○ 저자소개 : 장 그르니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그르니에는 1898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브르타뉴에서 성장했고, 파리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22년에 철학 교수 자격증을 얻은 뒤 아비뇽, 알제, 나폴리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누벨르뷔프랑세즈 (NRF)》 등에 기고하며 집필 활동을 했다. 1930년 다시 알제의 고등학교에 철학 교사로 부임한 그르니에는 그곳에서 졸업반 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만났다. 1933년에 그르니에가 발표한 에세이집 『섬』을 읽으며 스무 살의 카뮈는 “신비와 성스러움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상기시켜” 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고, 몇 년 뒤 출간된 자신의 첫 소설 『안과 겉』(1937)을 스승에게 헌정했다. 그르니에는 1936년에 19세기 철학자 쥘 르키에 연구로 국가박사학위를 받았고, 팔 년간의 알제 생활 이후 릴,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등지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말년에 소르본 대학교에서 미학을 가르치다가 1971년 사망할 때까지 꾸준히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들을 발표했으며, 현대 미술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다수의 미학 분야 저술들을 남겼다. 그르니에의 사상은 흔히 말하는 철학적 ‘체계’와는 거리가 있고, 실존주의적 경향을 띠고는 있지만 다분히 회의주의적이고 관조적인 철학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장 그르니에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들은 무엇보다 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일상적 삶에 대한 서정적 성찰로 확장시킨 산문집들이다. 그 출발은 물론 그르니에가 알제리 시절에 세상에 내놓았고, 1959년에 몇 개 장(章)이 추가된 개정판이 『이방인』(1942)으로 이미 명성을 얻은 카뮈의 서문과 함께 출간되면서 더욱 화제가 되었던 『섬』이다. 그 외에도 그르니에는 『어느 개의 죽음』(1957), 『일상적인 삶』(1968), 『카뮈를 추억하며』(1968) 등의 에세이집을 남겼고, 카뮈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알베르 카뮈와의 서한집』(1981)도 그의 사후 출간되었다. 포르티크 상, 프랑스 국가 문학 대상 등을 수상했다.
– 역자: 김화영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 평론가, 불문학 번역가로 활동하며 팔봉 비평상, 인촌상을 받았고,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되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여름의 묘약』, 『문학 상상력의 연구』, 『행복의 충격』, 『바람을 담는 집』, 『한국 문학의 사생활』 등이, 옮긴 책으로 미셸 투르니에, 파트리크 모디아노, 로제 그르니에, 르 클레지오 등의 작품들과 『알베르 카뮈 전집』(전 20권), 『섬』, 『마담 보바리』, 『지상의 양식』, 『어린 왕자』,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등이 있다.
– 역자: 이규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교에서 철학 D.E.A 학위를 취득한 뒤 서울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했다. 옮긴 책으로 『성의 역사Ⅰ』,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 『천사들의 전설』 등이 있다.
– 역자: 윤진
아주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파리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서전의 규약』 『문학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등의 문학이론서와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우리 아버지들의 마지막 나날』 『사탄의 태양 아래』 『페르디두르케』 『위험한 관계』 『목로주점』 『벨아미』 『파울리나 1880』 『태평양을 막는 제방』 『알렉시・은총의 일격』 등의 소설, 『달리』 『몽파르나스의 키키』 등의 그래픽노블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역자: 김용기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몽펠리에 폴발레리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수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연구 논문으로 「계몽의 낙관주의와 디드로의 생물학적 사유」 등이, 옮긴 책으로 『어린 왕자』, 『시간으로부터의 해방』(공역)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장 그르니에 선집 4종 『섬』, 『카뮈를 추억하며』, 『어느 개의 죽음』, 『일상적인 삶』
우리 시대 참스승의 메시지를 새 디자인, 새 번역으로 만나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장 그르니에 선집 4종은 1997년 8월 첫선을 보였으며,(선집 1 『섬』, 선집 2 『카뮈를 추억하며』, 선집 3 『어느 개의 죽음』, 선집 4 『일상적인 삶』) 한 세기가 넘도록 독자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 왔다. 이번에 『섬』을 필두로 장 그르니에 선집 네 권 모두 개정판으로 출간하여 독자들에게 가을 선물처럼 다가가려고 한다. 이번 개정판 장 그르니에 선집 4종은 기존에 수록된 번역을 전면 수정 및 새로 번역하여 현대적 언어 감각과 번역의 완성도를 높였다. 디자인도 바뀌었다. 선집 4종 모두 에토프에서 작업한 산뜻한 일러스트를 표지 디자인에 반영하여 친근함과 새로움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했다. 여기에 1997년 판 특유의 공허하고 고요한 느낌도 남겨 두어 비우고 감추고 섬세한 물성을 지닌 선집이 되도록 했다. 알베르 카뮈가 존경하던 스승 장 그르니에의 아름다운 에세이들을 새 디자인, 새 번역으로 만나 보자.
- 장 그르니에 선집 (개정판)
1 섬 LES ILES 김화영 옮김 : 카뮈의 스승 장 그르니에가 주변의 이웃을 바라보고, 함께 살던 반려묘의 죽음을 지켜보며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여행을 성찰하며 써 내려간 에세이.
2 카뮈를 추억하며 ALBERT CAMUS 이규현 옮김 :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카뮈가 세상을 떠난 뒤 스승 장 그르니에가 쏟아지는 질문들에 답하다. 알베르 카뮈의 소소한 습관부터 그의 작품을 관통했던 사상과 철학까지, 카뮈라는 한 인격체의 미세한 윤곽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그려 나간 회고록.
3 어느 개의 죽음 Sur la mort d’un chien 윤진 옮김 : 떠돌이 개로 거리에서 처음 만나 삶을 함께하게 된 반려견 타이오를 회상하는 이야기.
타이오를 추억하며 그르니에는 죽음이 야기한 고통, 그의 부재가 남긴 슬픔을 애도한다.
4 일상적인 삶 La vie quotidienne 김용기 옮김 : 여행, 산책, 수면, 독서 등 일상의 평범한 행위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들여다본다. “주제가 심오할수록 그 표현은 소박하다.”라고 말하는 장 그르니에의 ‘일상론’이자 ‘인생론.’

- 섬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 (…)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펼쳐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알베르 카뮈
“여기, 우리들에게서 가장 먼…… 그래서 가장 가까운…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 단장한 아름다움의 섬, 어머니의 섬… 보로메의 섬들이 여러분을 기다린다.” – 김화영(옮긴이)
.섬세한 미학적 사유, 일상에서 발견한 성찰의 언어들: 장 그르니에 『섬』 개정판 출간
1997년 8월 첫선을 보인 이래 이십삼 년간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온 장 그르니에의 『섬』이 2020년 10월, 번역도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우리에게는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다수의 미술서와 에세이집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미학에 대한 소신을 전달해 왔다. 그르니에는 특히 일상 속에서 경험한 다양한 일화들을 성찰적 어조로 간결하게 풀어내는 글을 썼기에, 그의 글은 쉽고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마음에 깊이 닿아 오늘을 사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장 그르니에의 『섬』은 특히 알베르 카뮈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카뮈는 찬사에 가까운 서문으로 스승이 쓴 이 책에 대한 감동을 전한 바 있다.
내가 『섬』을 발견하던 무렵 나도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막연한 생각이 진정으로 나의 결심이 된 것은 그 책을 읽고 난 뒤였다. 다른 책들도 이 같은 결심에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그 역할이 끝나자 나는 그 책들을 잊어버렸다. 그와는 달리 이 책은 끊임없이 나의 내부에 살아 있었고 이십 년이 넘도록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다. 오늘에 와서도 나는 『섬』 속에, 혹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 속에 있는 말들을 마치 나 자신의 것이기나 하듯이 쓰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알베르 카뮈, 「『섬』에 부쳐서」, 11~12쪽)
카뮈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된 인생의 책이 바로 『섬』이었기에, 카뮈는 그르니에가 쓴 이 책으로부터 받은 수혜를 가슴에 담아 두고 평생 배움으로 삼았다. 카뮈는 『섬』이 “우리가 우리의 왕국으로 여기고 있던 감각적인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그와 병행하여 우리들의 젊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그 어느 시기보다 막막한 현실을 견디고 있는 우리이기에 카뮈의 이 문장들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르니에는 담담한 어조로 혼자 살아가는 삶, 이웃과 함께하는 일상의 가치를 독자들에게 일깨우고, 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역설한다.
.가르치지 않고 무심히 ‘보여’ 주는 장 그르니에 : 이웃과 동물과 함께하는 진정한 삶, 그것이 희망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는 삶을 무조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과시하지 않으며 이웃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르니에는 삶 속에서 꾸준히 삶을 철학하며, 스스로의 나약함 속에서 강건한 삶의 희망을 찾아낸다. 그르니에는 자신의 사유를 강요한다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일상에서 만난 이웃의 삶을 존중해 주며,(「이스터섬」) 철학자로서 인간 지성의 우월함을 동물에 비견하지 않고 오히려 동물이 지닌 사랑의 본성이 삶에서 가장 뛰어난 가르침임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고양이 물루」) 그르니에의 에세이가 지닌 진정성은 관조와 관찰에서 드러나는데,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특별히 의미 부여를 한다거나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은 채 그저 관심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그저 지켜보고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우리가 삶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 마련해 주는 그 예기치 않은 놀라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병이 낫지 않을 거라고 절망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문득 자리에서 일어서게 된다. 우리가 잔뜩 믿고 있었는데 돌연 그 믿음이 무너진다. 끝은 항상 똑같지만 거기에 이르는 우여곡절은 러시아 산맥의 비탈들만큼이나 다양하다.(「이스터섬」119쪽)
사실 어떤 절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할 때, 그러기 위한 모범으로 한 마리의 동물보다 더 나은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흔히 감정이란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동물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고양이 물루」57-58쪽)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에서 유독 빛나는 또 다른 사유의 지점은 ‘빈 공간’이다. 그르니에는 우리 삶을 채우는 의미화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비어 있음 그 자체에 대해 언어화한다. 이는 세상을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백[空]이 포함된 유기적 삶의 흐름을 반영한다. 그래서 그의 사유가 가리키는 언어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것이다. 카뮈의 고백처럼 ‘『섬』은 우리에게 환멸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고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문화를 발견한다.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해당하는 문화가 아니라 주변의 평범한 이웃과 자기 생각을 말로 대변할 수 없는 동물까지 함의된 문화. 지식으로만 구성된 문화가 아니라 삶의 정감이 반영된 꾸밈 없고 솔직한 문화를 보여 준다.
그는 오히려 한 마리 고양이의 죽음, 어떤 정육점 주인의 병, 꽃의 향기, 흐르는 시간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이 책 속에서 정말로 다 말해 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는 모두가 어떤 비길 데 없는 힘과 섬세함으로 암시되어 있다. 정확하면서도 꿈결 같은 이 가벼운 언어는 음악처럼 흐른다. (……) 그는 다만 우리에게 단순하고 친숙한 경험들을 눈에 드러나게 꾸미는 일 없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우리 각자 좋은 대로 해석하도록 맡겨 둔다. (알베르 카뮈, 「『섬』에 부쳐서」, 13~14쪽)
나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공백의 페이지다. 완전히 공백 상태인 오늘만이 아니다. 내 일생 속에는 수많은 페이지들이 거의 공백 상태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인심 좋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쪼잔한 이해관계의 대상으로 변질시키지 않는 일이다. (「사라져 버린 날들」, 161-162쪽)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이야기, 이런 스승이 필요하지 않을까. 카뮈의 말처럼 “일단 시작하면 그 생명의 불이 꺼질 줄 모르며 서로의 생애를 가득 채워 줄 수 있는 대화”가 가능한 스승. 김화영 역자의 말처럼 “마치 견고한 통나무나 대리석을 더 이상 깎을 수 없을 때까지 깎아 내어 마지막 남은 작품의 핵심, 혹은 진면목을 찾아내는 조각가처럼, 죽음과 마주앉은 수도사처럼, 절제와 정신의 헐벗음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아 생각하고 글을 쓰는 철학자” 장 그르니에. 우리 시대 참스승 장 그르니에의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에세이들이 힘겨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 독자들을 따듯하게 어루만지며 알찬 메시지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십삼 년 만에 새로이 단장한 장 그르니에 『섬』, 김화영 역자의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떠오르다
장 그르니에 선집 1 『섬』 개정판은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새로이 한 것뿐만 아니라 김화영 역자가 이 책을 처음 번역한 지 사십 년 만에 완전히 새로 번역하였기에 더더욱 기대가 크다. 김화영 역자는 이번 개정판 『섬』을 새로이 번역하며, 장 그르니에 특유의 절제된 문장의 기품과 비밀을 살리기 위하여 과도한 설명적 번역 문장의 친절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아울러 글의 깊은 암시와 의미를 부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독립된 지식과 관련된 각주들을 자세히 추가하여 이해를 도왔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장 그르니에는 재료들을 조합하거나 서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견고한 통나무나 대리석을 더 이상 깎을 수 없을 때까지 깎아 내어 마지막 남은 작품의 진면목을 찾아내는 조각가처럼, 죽음과 마주 앉은 수도사처럼, 절제와 정신의 헐벗음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아 생각하고 글을 쓰는 철학자다. 그 점, 책의 첫머리에 붙인 짧은 몇 마디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와도 같다: “신앙, 연민, 사랑과 같은 것도 과연 실재하는 현실들임에 틀림없다. 또 고대 사원은, 교회는, 궁전은, 그리고 오늘날의 공장은 절망을 막아 주는 든든한 피난처들이다. 인간이 후천적으로 얻은 그런 것들…은 여기서 말하려는 바가 아니다.” 이것은 헛된 장식들이나 위안 따위와는 거리가 먼 부정과 거부의 세계다. 따라서 번역문의 단어 및 음절의 수를 가능한 한 최소화하여 그 자체로 그 자체로 섬들처럼 고독하고 견고하고 격리된 문장들, 혹은 어휘들 주위에 큰 침묵이 고이도록 유의하였다. (옮긴이의 글에서)
『섬』의 초판은 1980년 12월 10일 민음사에서 처음 나왔다. 당시 국내에서는 장 그르니에라는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의 글을 출판하기 어려운 여건이었고,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김화영 역자는 한국 독자들에게 그르니에를 꼭 알리고 싶어서 문학 매체에 『섬』 중 「케르겔렌 군도」를 소개했고, 이후 민음사에서 출간을 제안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섬』은 출간 이후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었고,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섬』의 진가를 알아보는 두 지성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다시 그르니에의 ‘섬’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섬』을 소개한 뒤, 많은 세월이 경과한 2012년 여름 나는 오트 프로방스 산간에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들을 떠돌다가 “케이크 위에 박은 체리” 같은 13세기적 중세 성탑이 산꼭대기에 박혀 있는 시미안 라 로통드 마을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좁은 골목의 그늘진 곳에 식탁 몇 개를 벌려 놓은 식당 주인에게 혹시 장 그르니에가 살던 집이 어딘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여주인이 반색을 하면서 그의 아들 알랭 그르니에 대사가 바캉스 때면 이곳 시골집에 내려온다면서 마침 며칠 전에, 곧 내려올 예정이니 자기 집 창문들을 열어 환기를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언덕 아래쪽에 있는 옛 장 그르니에의 집 앞에 서서 오래도록 보라색 라벤더가 찬란한 프로방스의 빛을 받고 있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마조레 호수 한가운데의 보로메 섬들을 떠올렸다. 언젠가 이 지루한 코로나 역병에서 해방되는 날이 오면 로카르노에서 멀지 않은 마조레 호수 가운데 뜬 그 섬들을 찾아가 보고 싶다. (옮긴이의 글에서)

- 카뮈를 추억하며
“유일한 행복은 지상에서의 행복이며, 유일한 삶은 속세에서의 삶이다. 알베르 카뮈를 생각할 때는 이 출발점을 꼭 상기하자. 이것을 도달점으로 여기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르니에와 카뮈 사이의 거리 때문에 이 글은 더욱 치밀해졌다. 이 거리는 스승과 제자의 차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 여러가지 견해의 차이 (…) 등을 포함하는 실존적 간극이다. 그는 이 운명적인 간극을 억지로 좁히려 하지 않는다.” – 이규현 (옮긴이)
.카뮈의 죽음 이후 쏟아지는 질문들에 답하다: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 개정판 출간
“그는 기꺼이 혁명가가 되려는 반항인이었다. 결코 회의주의자가 되기 쉬운 비관론자가 아니었다. 카뮈의 경우에는 에너지, 내면의 긴장과 존재의 고독을 통해서만 표출될 수 있는 그러한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10-11쪽)
1997년 8월 첫선을 보인 이래 이십삼 년간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온 장 그르니에 선집이 2020년 10월, 번역도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학자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수의 미술서와 에세이집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미학에 대한 소신을 전달해 왔다. 장 그르니에 선집 2권인 『카뮈를 추억하며』는 1930년 삼십 대였던 그르니에가 알제의 고등학교에 철학 교사로 부임해 졸업반 학생이었던 알베르 카뮈를 만난 이후 1960년 카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삽십 년에 걸쳐 지속된 두 지성의 교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좋은 선생 장 그르니에가 증언한 알베르 카뮈의 결과 격
알베르 카뮈가 마흔넷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 불과 삼 년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스승 그르니에는 쏟아지는 질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알베르 카뮈와 그르니에의 오래된 관계부터, 카뮈가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던 이유, 카뮈의 개인적인 생활과 알려지지 않은 습관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광범위했다.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출발해 그르니에의 제자이자 동료이며 동시대인이기도 했던 알베르 카뮈라는 한 인격체의 미세한 윤곽을 조심스럽게 그려 나간다.
“그르니에와 카뮈 사이의 거리 때문에 이 글은 더욱 치밀해졌다. 이 거리는 스승과 제자의 차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 여러 가지 견해의 차이 (……) 등을 포함하는 실존적 간극이다. 그르니에는 이 운명적인 간극을 억지로 좁히려 하지 않는다.” (옮긴이의 말, 195쪽)
카뮈의 유년 시절은 불운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가정부로 일했던 어머니와 할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런 카뮈를 ‘창작’의 길로 안내한 것은 고등학교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였다. 그르니에는 카뮈를 비롯하여 창작에 뜻이 있던 여러 학생들의 습작을 독려했고, 학생들의 글이 정기 간행물에 실리도록 도왔다. ‘남몰래 쓴 것을 모든 이에게 드러내 읽히도록 하는’ 출판의 역할이 훌륭한 자극제가 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알베르 카뮈가 베르그송과 일반 철학에 관해 썼던 글은 단연 돋보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던 1933년 스승인 그르니에의 에세이 집 『섬』이 출간되었고, 카뮈는 그 책을 접한 감동을 이렇게 묘사한다. “스무 살 때 이 책을 처음 읽고 내가 받은 충격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한 세대 전체에 끼친 충격 외에 비할 것이 없었다.” 실제로 이 책은 카뮈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그르니에는 카뮈에게 창작의 기회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가장 훌륭한 영감을 주었던 것이다.
“내가 본보기였을까? 문학상의 본보기? 이것은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는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 이전의 글에서도 나와의 차이점들이 분명히 나타나 있으며 문체도 매우 개성적이다.” (22쪽)
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선 카뮈가 마흔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이들이 둘의 관계가 멀어질 것이라 짐작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카뮈는 그 이후로도 작품을 쓰면 스승인 그르니에에게 먼저 보였고, 그르니에는 이에 대해 꼼꼼하게 읽고 답장을 하는 등 평생에 걸쳐 알려진 것만 이 백통이 넘는 서신을 교환했다. 그리고 카뮈가 세상을 떠난 뒤 세간의 관심에 답하기 위해 집필한 책, 『카뮈를 추억하며』에서도 그르니에는 카뮈의 말과 글을 토대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자취를 따라나선다. 자신이 카뮈에게 끼친 예술적·사상적 영향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제자의 몫을 정확하게 남겨 두며 그의 독자적인 성장을 인정하고 힘껏 기뻐했던 스승 그르니에. 비록 길지 않은 생애였지만, 이렇듯 특별한 스승과의 인연으로 카뮈는 진정 행복하지 않았을까?
.카뮈의 팬들을 열광하게 할 가장 따뜻한 회고록
“그렇습니다만, 단지 불의를 없애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도 항거해야 하며, 먼 곳에서가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삶의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131쪽)
장 그르니에에 따르면, 알베르 카뮈는 누구보다 현실의 행복에 충실했던 작가였다. 종교적 구원에 기대지 않고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복’을 위해 기꺼이 투쟁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카뮈에게 ‘창작’은 가장 치열한 투쟁 수단이었다. 카뮈는 어려운 가정환경, 질병으로 인한 학업 중단 등 잇따른 불운에도 불구하고 ‘창작’을 통해 슬픔을 지혜로, 불운을 투쟁으로 승화할 수 있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라는 그의 고백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듯 삶의 부조리와 질곡을 직접 경험한 탓인지 훗날 세계적인 스타 작가가 되어 수많은 팬들의 편지와 방문에 시달릴 때도, 카뮈는 요양소에서 온 독자들의 편지에는 일일이 답장을 보냈고 독자들이 진지한 태도로 만남을 청하면 곧잘 마음이 약해졌다고 한다. 장 그르니에는 우리에게 ‘실존주의 거장’으로 알려진 카뮈가 무엇을 생각하고 썼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습관을 지니고 있었고 어떤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는지 생생하게 그 숨결을 복원한다. 그래서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그르니에는 사라지고 알베르 카뮈가 눈앞에, 그것도 아주 감동적으로 다가서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느 개의 죽음
“동물들은 매일 아침 당신을 찾아오고, 애정을 표한다. 그들의 하루는 사랑과 신뢰의 행위로 시작한다. 동물들은 적어도 솟구치는 애정을 품고 있다.”
“자신의 삶 속에 개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그 개의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같으면서 다르다.
죽음이 불러오는 상실과 함께 그 죽음에 대한 의무와 책임까지 짊어져야 할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 윤진 (옮긴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탁월한 성찰이 담긴 에세이 : 장 그르니에 선집 3 『어느 개의 죽음』 개정판 출간
1997년 8월 첫선을 보인 이래 이십삼 년간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온 장 그르니에의 [어느 개의 죽음]이 2020년 10월, 번역도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특히 사랑하는 반려견 타이오의 죽음 앞에서 가눌 길 없는 슬픔을 느낀 장 그르니에가 그를 회상하며 써 내려간 애도 글이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그르니에의 탁월한 통찰과 성찰이 담겨 있다. 우리에게는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다수의 미술서와 에세이집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미학에 대한 소신을 전달해 왔다. 그르니에는 특히 일상 속에서 경험한 다양한 일화들을 성찰적 어조로 간결하게 풀어내는 글을 썼기에, 그의 글은 쉽고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마음에 깊이 닿아 오늘을 사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어느 개의 죽음』은 떠돌이 개로 거리에서 처음 만나 삶을 함께하게 된 반려견 타이오의 이야기다. 그르니에는 “1955년 5월 15일에서 6월 1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쓴 아흔 편의 짧은 단상들을 적어 나갔다. 글에서도 자신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키우던 반려견 타이오의 죽음이고, 타이오의 죽음이 야기한 고통과 부재가 남긴 슬픔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르니에는 이미 선집1 『섬』에서도 「고양이 물루」를 통해 반려동물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애정을 글로 담아낸 바 있다. 그보다 뒤에 쓴 『어느 개의 죽음』은 「고양이 물루」보다 담담하지만 한결 슬픈 어조로 병든 타이오를 수의사에게 데려가 안락사시킨 뒤 정원의 월계수 아래 묻어 주고 떠나는 과정을 회상한다. 특히 노년을 앞둔 그르니에에게 개의 죽음, 그로 인한 고통과 슬픔은 죽음 자체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며, 그 안에는 개의 죽음을 ‘치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이 들어 있다. 그르니에는 개에게 다가온 임종의 고통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다 결국 ‘영원히’ 낫게 해 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키지만 그것이 정말 개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인지 회의한다. 그래서 이 글은 ‘내 개’ 혹은 ‘그 개’의 일회적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서나 반복될 수 있는 ‘어느 개’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내게 말할 것이다. “지금껏 누렸던 기쁨에 대해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기쁨을 안겨 주는 손과 빼앗아 가는 손이 같다면 (59쪽)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사람에게 돌연한 죽음을 안긴다면, 그것은 상대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인가, 당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인가? 숨이 끊어지는 모습은 지켜보기 힘들다. 하지만 당신은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있다. (43쪽)
그르니에는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여긴다거나 동물을 인간이 마음대로 좌우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는데, 그러한 생각은 고통과 죽음과 기쁨과 같은 감정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인간보다 탁월하게 ‘현재’를 살고 기쁨과 슬픔에 대해 즉각적으로 표현하고 반응한다. 자로 재듯 원칙에 매달리거나 계산하는 법 없이 자연 안에서 더 없이 자연스럽게 자유를 표출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 개처럼 그날그날을 순간 속에서 살며 매번 일어나는 일에 몰두했더라면, 나 역시 다가올 날을 쓸데없이 걱정하느라 괴롭지 않았으리라. 다가올 고통을 미리 생각해 보지 않았을 테니 냉정하게 기다릴 수 있었으리라. 나에게 이 세상의 삶에서 거짓이 필요하지 않았을 테고 내세의 삶에서도 위안이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93쪽)
.사랑하는 반려견 타이오에게 보내는 송가: 동물들은 매일 아침 당신을 찾아와 애정을 표현한다!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는 삶을 무조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과시하지 않으며 이웃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르니에는 삶 속에서 꾸준히 삶을 철학하며, 스스로의 나약함 속에서 강건한 삶의 희망을 찾아낸다. 그르니에는 자신의 사유를 강요한다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일상에서 만난 이웃의 삶을 존중해 주며, 철학자로서 인간 지성의 우월함을 동물에 비견하지 않고 오히려 동물이 지닌 사랑의 본성이 삶에서 가장 뛰어난 가르침임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르니에의 에세이가 지닌 진정성은 관조와 관찰에서 드러나는데,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특별히 의미 부여를 한다거나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은 채 그저 관심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그저 지켜보고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이 책 뒤에 부록처럼 붙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하여」에서는 개와 고양이가 각기 상징하는 친밀감과 거리감이라는 두 가지 대립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밀감’의 ‘애착’으로 이으려고 하는 개와 ‘거리감’의 ‘초연함’으로 나누려고 하는 고양이를 두고 그르니에는 그것을 ‘정신’과 ‘자연’, 충실성과 호기심, 사랑과 앎, 신과 신성이라는 이분법으로 파악하면서 인간에 대한 성찰을 이어 간다. 두 가지 삶의 방식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늘 함께 다니며 싸우는 두 존재에 상응하는 것이다.
결국 살아가는 방식에는 두 극이 있다. 하나는 가까이 있기, 다른 하나는 멀리 있기. 하나는 이어 주고 하나는 나눈다. 하나는 ‘정신’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방식이리라. 그러나 정신과 자연을 나누는 경계선은 알 수 없다. 단지 애착을 품고 이으려는 쪽과 초연하게 떨어지려는 쪽의 대립이 있을 뿐이다. (…) 고양이 쪽은 신성 (神性)을 지향하고, 개 쪽은 신을 지향한다. (102-103쪽)
사랑하는, 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과 달리, 죽음조차 나약한 나에게 내맡겨진 개의 죽음은 우리의 내면에 깊은 자국을 남기게 된다. 죽음이 불러오는 상실과 함께 그 죽음에 대한 의무와 책임까지 우리가 짊어져야 할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르니에는 자신이 글을 쓸 때마다 다가와 나가자고 조르던, 아침과 저녁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삶의 이유와 행복을 나의 현재에 전해 준 타이오를 회상하며 글을 쓴다. 타이오를 잃은 슬픔을 잠재울 유일한 방법이 그르니에에게는 그를 회상하고 그와의 추억을 써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개를 키우는 사람들, 집 안을 뛰어다니며 성가시게 굴던 어린 개가 동작이 굼뜨고 집 안의 일에 무관심해지는, 몸과 마음이 느릿해진 늙은 개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안다. 헤어질 순간이 머지않았음을. 자신의 삶 속에 개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그 개의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같으면서 다르다. 우리 운명의 주인인 대자연의 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저항하게 되는 점은 같지만, 개의 죽음 앞에서 자신은 그의 운명을 좌우하는 다른 주인이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동물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담아 동물에 대한 존엄을 이야기하는 장 그르니에. 환경이 점점 위태로워지고 동물에게 위협이 가해지는 이 시기, 인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따스한 이웃인 동물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 주는 이런 글이 지금 우리에게는 절실하지 않을까. 카뮈의 말처럼 “일단 시작하면 그 생명의 불이 꺼질 줄 모르며 서로의 생애를 가득 채워 줄 수 있는 대화”가 가능한 스승. 김화영 역자의 말처럼 “마치 견고한 통나무나 대리석을 더 이상 깎을 수 없을 때까지 깎아 내어 마지막 남은 작품의 핵심, 혹은 진면목을 찾아내는 조각가처럼, 죽음과 마주앉은 수도사처럼, 절제와 정신의 헐벗음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아 생각하고 글을 쓰는 철학자” 장 그르니에. 우리 시대 참스승 장 그르니에의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에세이들이 힘겨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 독자들을 따듯하게 어루만지며 알찬 메시지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 일상적인 삶
“다루는 주제가 심오할수록 그 표현은 소박하다. 모든 숭고한 것들은 언제나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이한 말들로 설법되는 법이다.“
“그르니에의 작품은 긴장, 까다로운 감수성,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평온함을 지니고 있어서 마치 독자가 무중력 상태에 빠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르 몽드》
“20세기 후반을 산 프랑스인이면서도 동양적 정서와 감수성을 갖춘 그르니에의 독특한 사유는 이따금 일상의 것들을 삶과 죽음이라는 자못 숙명적인 주제와도 결부한다.” ― 김용기 (옮긴이)
.일상이 사라진 시대를 향한 위로: 장 그르니에 선집 4 『일상적인 삶』 개정판 출간
1997년 8월 첫선을 보인 이래 이십삼 년간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온 장 그르니에 선집이 2020년 10월, 번역도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학자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수의 미술서와 에세이집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미학에 대한 소신을 전달해 왔다. 장 그르니에 선집 4권 『일상적인 삶』은 ‘여행’, ‘산책’, ‘수면’, ‘독서’ 등 일상적인 행위와 ‘포도주’, ‘담배’, ‘향수’ 등 생활 속의 사물을 포함하는 총 열두 가지 주제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들여다본다. 차분하고 관조적인 태도로 그르니에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상을 잃어버린 코로나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따뜻한 울림을 전해 줄 것이다.
.일상의 이면을 통해 삶의 정면을 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 주는 수단이 아닐까? (57쪽)
그르니에는 사람들이 무심히 스쳐 버리는 일상의 편린들 하나하나에도 독특한 시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철학적인 사색을 펼친다. 이런 태도는 일상을 채우는 반복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들을 가만히 관조하게 만든다. 가령 「산책」을 이야기할 때는 먼저 ‘산책하다 (promener)’라는 단어가 쓰이는 상황을 예로 들며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어휘들의 기본적인 의미를 환기시킨다. 나아가 산책의 목적을 친교, 철학적 대화, 자연과의 교감 등으로 나누어 각각의 양상을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들을 통해 그르니에는 산책이란 단지 “곧장 걸어 나갔다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의도적인 공백’을 만들어 주는 행위라고 결론 내린다.
‘산책’에 대한 결론은 이 에세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르니에는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관조함으로써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가고, 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스스로 깨치도록 독려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라고, 일상 속에 매몰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 보라고 속삭인다. 예를 들어 「고독」이라는 장에서는 “가까이 있는 사람은 견디지 못하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사랑이 넘쳐 날 수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보여 주는 아량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가 느끼는 연민은 실상 많은 경우 하나의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 있는 자들을 향한 사랑으로 양심을 편안하게 만들기는 쉬운 노릇이다.”라며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환기한다.
하지만 그르니에는 「비밀」에서 우리들의 일상이 시간적으로 유한함을 분명히 상기한다. “매우 뜻밖의 사실이지만 비밀은 그 본질상 잠정적이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여행이나 산책 등 일상의 활동들 대부분이 이렇듯 다 덧없다. 이것들은 결국 스스로 소멸하거나 폐기되고야 마는 행위들이다.” 이렇게 언젠가는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소멸해 버리는 당연한 운명 앞에서도 그르니에는 생의 이면 속으로 파고든다. 이런 태도의 근저에는 삶의 허무를 껴안는 지극한 사랑이 있다. ‘비밀’을 갖는 것은 아름답지만,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는 것은 더욱 소담스럽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의 일상은 은폐와 발견, 덧없음과 충만함, 실망과 희망이 교차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삶’과 동의어이다.
.‘당신의 일상은 안녕하신가요?’ 그르니에가 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중요하지 않은 온갖 것들로부터 우리를 풀어놓아 주는 자정을 사랑하며, 정오가 오면 우리 자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제공하는 자정을 사랑한다. (267쪽)
이 책은 한마디로 여행이 사라진 시대의 여행기다. 최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록 물리적인 공간을 이동하며 풍경에 감응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우리의 평범한 하루하루를 매일 다르게 감각하며 ‘일상 여행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 지혜를 건네준다. 이 책의 김용기 역자는 “2019년 말 아시아 대륙 한가운데서 시작된 하나의 사건 (…) 한 영장류가 누려 온 과도한 번영에 대한 응보 같기도 한 낯선 풍경의 한가운데서 출판사는, 그르니에의 감성과 언어를 다시 다듬어서 간추려 보려는 시도를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개정판 작업을 시작하고 반 년이 흐르는 동안 코로나는 더욱 깊숙이 우리의 삶을 침범했고 우리는 어느 때보다 ‘살아간다는 것’에 진지해졌다. 20세기 후반을 산 프랑스인이면서도 동양적 정서와 감수성을 갖춘 그르니에는 이따금 일상의 것들을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주제와도 결부하는데,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멈춰 휴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의도적인 멈춤이야말로 여행자의 태도가 아닐까? 『일상적인 삶』은 그르니에의 관조적인 사유와 희망이 담긴 에세이로,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꼭 맞는 위로를 전해 줄 것이다.
- 장 그르니에 선집 4종 『섬』, 『카뮈를 추억하며』, 『어느 개의 죽음』, 『일상적인 삶』
우리 시대 참스승의 메시지를 새 디자인, 새 번역으로 만나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장 그르니에 선집 4종은 1997년 8월 첫선을 보였으며 (선집 1 『섬』, 선집 2 『카뮈를 추억하며』, 선집 3 『어느 개의 죽음』, 선집 4 『일상적인 삶』), 한 세기가 넘도록 독자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 왔다. 이번에 『섬』을 필두로 장 그르니에 선집 네 권 모두 개정판으로 출간하여 독자들에게 가을 선물처럼 다가가려고 한다. 이번 개정판 장 그르니에 선집 4종은 기존에 수록된 번역을 전면 수정 및 새로 번역하여 현대적 언어 감각과 번역의 완성도를 높였다. 디자인도 바뀌었다. 선집 4종 모두 에토프에서 작업한 산뜻한 일러스트를 표지 디자인에 반영하여 친근함과 새로움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했다. 여기에 1997년 판 특유의 공허하고 고요한 느낌도 남겨 두어 비우고 감추고 섬세한 물성을 지닌 선집이 되도록 했다. 알베르 카뮈가 존경하던 스승 장 그르니에의 아름다운 에세이들을 새 디자인, 새 번역으로 만나 보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