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저우언라이 평전
리핑 / 한얼미디어 / 2005.7.9
- ‘영원한 인민의 벗‘, ’영원한 2인자‘ 저우언라이
중국 최고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평생 근검절약하고,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인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눈 저우언라이는 인민해방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또한 중국 공산당 내의 엘리트 그룹을 이끄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게 없는 대중 선동술을 마오쩌둥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그에게 1인자 자리를 양보했으며, 덩샤오핑을 현대화된 중국의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기도 했다.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중국의 혁명은 결코 불붙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그 불길은 다 타서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라는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그는 ‘영원한 2인자’였을지 모르지만 ‘영원한 인민의 벗’으로서 평생을 국가와 인민의 해방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이 책은 중국 중앙문헌 연구실 저우언라이 연구팀장을 역임한 저자가 각종 문헌 자료와 당대 저우언라이와 교류했던 많은 사람들의 기록물들을 통해서 저우언라이의 일생을 재구성한 것이다. 지도층이라고 자임하는 사람들의 모범과 헌신성을 찾기 어려운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진정 배우고 본받아야 할 지도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목차
서문한얼미디어의 신간
저우언라이 평전
- 세 어머니의 영향
- 국토는 파헤쳐져도 조국은 마음속에서 건재하다
- 5.4운동의 영웅
- 프랑스 유학
- 황푸의 빛
- 두 차례의 무장봉기를 이끌다
- 대혁명 실패 후 재기하다
- 리리싼의 과오
- 마오쩌둥의 군사지도력을 지지하다
- 내전을 종식시키고 힙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다
- 다당합작의 기초를 다지다
- 평화를 추구하고 내전을 피하다
- 마오쩌둥을 도와 3년간 천하를 평정하다
- 건국의 기초를 다지다
- 탁월한 사고
- 한국전쟁 참전
- 경제건설을 최우선으로 하다
- 모든 것을 인민에게 유리하게 하라
- 4대 현대화
- 자력갱생과 개방
- 평화공존 5개 원칙을 제기하다
-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외교를 펼치다
- 지식인을 정확하게 대우하다
- 단결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집중시킨다
- 각 민족의 단결을 도모하다
- 가족계획을 제창하다
- 실사구시
- 대약진운동
-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
- 국민생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첨단과학기술의 개발
- 눈 속의 붉은 마음
- 힘겨운 세월
- 영화(英華)를 수호하다
- 생산은 절대로 멈출 수 없다
- 나 아니면 누가 고해(苦海)로 들어가리
- 극좌(極左)를 비판하다
- 간부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 조각(組閣) 투쟁
- 유언
- 인민을 위해 몸을 바치다
저자 후기
역자 후기
저우언라이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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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리핑 (力平)
본명은 천쓰위엔 (沈思源). 저장 (浙江) 자싱 (嘉興) 출신이다. 1927년생으로 베이징 대학 졸업, 중국 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 연구원, 실무위원 겸 저우언라이(周恩來) 연구팀 팀장, 중국 공산당 중앙당사학회 상무이사, 베이징 대학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저우언라이 연보』, 『주더 (朱德) 연보』 주편 (主編), 『저우언라이 선집』, 『주더 선집』 편집, 『렌비스 (任弼時) 연보』, 『둥삐우 (董必武) 연보』, 『나의 아버지 덩샤오핑 (鄧小平)의 ‘문화대혁명’ 시절』 등을 감수했다.
저서로 『중국 홍군 장정사』, 『1919 ~ 1949 중국대사집요』, 『군인 저우언라이의 일생』, 『1949년 저우언라이와의 대화』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마오쩌둥 (毛澤東)과 대중」, 「딸의 눈에 비친 덩샤오핑」이 있다. 이 책은 중앙문헌연구실 내에서 수상경력이 있다.
– 역자 : 허유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와 동 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가장 쉽게 쓰는 중국어 일기장》이 있다.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불안하지 않게 사는 법》, 《법화경 마음공부》, 《인생에 가장 중요한 7인을 만나라》,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버리기로 했다》, 《유대인 엄마는 회복탄력성부터 키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외국어를 시작했다》, 《입까지 살아서 가는 생존 영어》, 《디어 마이 미어캣》, 《삼체》, 《송나라에 간 고양이》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책 속으로
덩샤오핑의 딸 덩룽(鄧榕)이 덩샤오핑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유럽에서 유학할 당시 누구와 가장 가깝게 지내셨나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덩샤오핑이 입을 열었다. “저우언라이 동지란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지. 프랑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공부하면서 함께 살았단다. 나에게 그는 언제나 형이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혁명의 길로 들어섰고, 그는 동지와 인민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았다.” 덩샤오핑의 얼굴에 아련한 미소가 떠올랐다. — p.94
저우언라이는 늘 간부와 병사들에게 민간인들이 국민당 부대의 약탈과 학살 등에 시달려 생활이 피폐해있으므로 민가에 절대로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스완진(石灣鎭)을 지날 때에는 곡식들이 제대로 추수되지 못해 논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간부들이 그 곡식이 국민당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불살라 버리자고 주장했지만 저우언라이는, “안 된다. 곡식은 인민의 피와 땀이다. 한 뿌리도 불 태워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 p.311
미얀마 총리가 저우언라이와 대회를 나누다가 한 가지 우화를 이야기했다. 커다란 코끼리가 숲속에서 사냥꾼이 놓은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작은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그물을 한 올 한 올 입으로 물어뜯어 코끼리를 살려주었다는 이야기였다. 미얀마 총리는 중국이 바로 이 코끼리이고, 미얀마는 토끼라면서 중요한 시기에 미얀마가 중국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저우언라이는 그의 속뜻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중국은 나라의 크기와 관계없이 모든 나라를 평등하게 대할 것입니다. 중국은 인구는 많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습니다. 앞으로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도 옛 친구를 잊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훗날 미얀마 총리는 “저우언라이는 대국의 지도자이면서도 약소국의 지도자와 회담할 때 언제나 평등한 태도로 대했다.”라고 말했다. — p.426
1950년대, 베이징 시에서 대중교통이 부족해 사람들이 불편을 겪자, 저우언라이는 어느 날 저녁 혼자서 중난하이에 있는 집무실을 나와 북문 밖에 있는 베이징도서관 앞에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얼마 후 버스에서 내려 전차로 갈아타고 베이징 시내를 돌며 대중교통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퇴근 시간이라 차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누군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고, 결국 차의 승객들이 모두 그가 저우언라이라는 것을 알고는 너도나도 앞 다투어 자리를 양보했다. 하지만 그는 모두 사양한 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승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중난하이로 돌아온 그는 곧장 관련부서에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 p.507
당시 저우언라이 동지가 끝까지 버티지 못했더라면 린뱌오와 장칭 등 반혁명 세력들이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권력을 장악하고 마음대로 농단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공산당이 몰락하고 나라는 분열되고, 또 군대도 구심점을 잃고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것이며, 경제가 완전히 파탄해 국민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졌을 것이다. — p.521
1968년 10월 1일 공산당 창건기념일, 톈안먼의 성루에서 노동자 출신의 중앙위원 웨이펑잉(尉鳳英)은 선양에서 가져온 마오 주석의 초상휘장을 저우언라이에게 보여주며 “새로 나온 휘장인데, 누가 가져다 준 걸세. 반짝반짝하지?”라고 자랑했다. 그러자 저우언라이는 웃으며 “자네들 것은 언제나 변하는군. 내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지.”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는 자기 가슴에 달려있는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라고 적힌 휘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이것이 제일 좋네.” 그는 공정을 중시하고 사사로운 일에 신경 쓰지 않았으며, 자신의 생명을 모두 바쳐 인민을 위해 이바지하기로 결심했다. — p.613

○ 출판사 서평
중국 중앙문헌연구실 저우언라이 연구팀장을 역임한 저자가 각종 문헌 자료와 당대 저우언라이와 교류했던 많은 사람들의 기록물들을 통해 저우언라이의 일생을 재구성한 평전. 그 동안 부분부분 알고 있는 저우언라이의 모습을 통사적이며 총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중국 공산당 내에서 엘리트 그룹을 이끄는 선두주자였지만, 중국 혁명의 주체는 농민이며, 자신에게 없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마오쩌둥에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마오쩌둥에게 1인자의 자리를 양보하고 현대화된 미래의 중국을 위해 덩샤오핑을 다음 시대의 확실한 지도자로 만들어내는 데 온 힘을 쏟았던 저우언라이.
권력을 탐하지 않고, 높은 자리에 있지만 언제나 소박하고 검소하게 인민과 국가를 위해 충성했던 저우언라이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부재한- 그러나 필요한 우리가 진정 배우고 본받아야할 지도자상의 전형을 그려볼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