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
에른스트 블로흐 / 열린책들 / 2009.1.30
– 모든 권력과 금력에 저항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 정신이다!
기독교 사상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인간의 저항과 불복종 정신을 치밀하게 추적한 역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권력과 금력에 탐닉하는 기독교는 가짜일 뿐, 본연의 기독교 정신은 지배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지배 체제의 억압과 모순으로부터 인간 해방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는 지극히 현실적인 철학서이다.
독재와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한국의 주류 기독교는 스스로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때로는 권력과 쉽게 결탁하고 자본에 길들어졌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그에 걸맞은 사회, 종교적 책무를 다하기보다는 적지 않은 사회 문제를 야기한 게 사실이다. 일부 교회의 권력화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블로흐가 기독교 사상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저항 정신을 치밀하게 추적해 가는 과정은 종교적 문제를 떠나 우리 사회의 모든 불합리한 권력에 침묵하거나 순종하는 일이 인간 정신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 목차
제1부 모퉁이를 돌면서
1. 다만 조용히
2. 가시에 대항하여
3. 노예적 언어에 대한 시각
4. 힌덴부르크의 코밑수염
5. 말씀은 비스듬히 지나친다
제2부 분노와 광기
6. 더 이상 자신을 낮추지 않기
7. 탄식에서 불평까지
8. 거절 그리고 마력에서 잘못 깨어난 자들
9. 성서와 성서 언어에 나타난 기이한 편재성(遍在性)
10. 반론: 독일 주교의 마지막 교서
11. 누구를 위한 성서인가?
제3부 프로메테우스 역시 신화이다
12. 스스로 높이 뛰어넘기
13. 불평에서 언쟁까지
14. ‘주는 암흑 속에 거주하기를 원한다’
15. 성서 속의 반대 원칙들: 천지창조 그리고 묵시록(‘보라, 참으로 좋았노라’, ‘보라, 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노라’)
16. 신화적인 것 속의 구분 사항들, 불트만의 영혼 휴식에 관한 단순한 이론에 반하여, 또한 오토와 카를 바르트의 탈인간화된 ‘은폐된 무엇’에 대항하여.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포함한 모든 신화들은 탈신화화를 요구하는가
17. 마르크스주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하여
18. 탐정처럼 성서를 비판하기. 감추어진 텍스트 속의 핵심 사항 그리고 신정주의의 해체
제4부 야훼 신에 관한 상상 속의 엑소더스, 신정주의의 해체
19. 지금까지처럼 추종하지 않으면서
20. 예수의 듣지 못한 말씀, 완전한 출발
21. 분출되어 나온 오래된 상(像)들, 뱀에 대한 첫 번째 관찰
22. 야훼 신에 대한 신정주의의 상에서 스스로 출현해 나온 것들, ‘엑소더스의 빛'(「출애굽기」 13장 21절)에 대한 첫 번째 관찰
23. 나사렛 사람들과 예언자들, 우주의 도덕적 예견 속으로 빠져나온 야훼 신
24. 인내의 한계점, 욥 혹은 신이 아닌 야훼에 대한 상상 밖으로 나온 엑소더스, 메시아 사상의 날카로움
제5부 카이사르인가, 그리스도인가?
25. 인간은 얼마나 끓어오르는 존재인가
26. 온화함 그리고 ‘그의 노여움의 빛'(윌리엄 블레이크)
27. 야훼 신 내부에 자리한 예수
28. 신의 아들 대신에 그리스도의 암호로서 인간의 아들, ‘하늘나라의 비밀’
29. 인간의 아들의 위대함 또한 사라진다. 하늘나라는 ‘작다’
30. ‘인간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종말론적이다. ‘주님 그리스도’라는 호칭은 예배를 위한 것이다
31. 남김 없는 그리스도 중심적 특성, 「요한의 복음서」 17장 ‘복음의 비밀’에 입각하여
32. 사도 바울이 주장한 십자가의 인내, 부활과 삶에 관한 서약
33. 재론: 부활, 승천 그리고 희생적 죽음에도 불구하고 갈망의 신비로움으로
간구되는 재림,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신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 동질성’
조차도 인민의 지도자 예수를 해롭게 만들지 않는다
34. 뱀에 대한 두 번째 관찰(21장과 비교하라): 오피스 종파(배사교도)
35. ‘엑소더스의 빛’에 대한 두 번째 관찰(22장과 비교하라), 마르키온, 이 세상에 없는 어느 낯선 신에 관한 전언
제6부 로고스인가, 코스모스인가?
36. 문 앞에서의 외침
37. 오르페우스와 세이렌들
38. 벗어나기, 스토아 사상 그리고 영지주의 속에서 보존된 우주
39. 점성술 신화 그리고 성서 속에 첨가된 이집트 바빌로니아의 지구적 삶과 천체로 화한 천국의 상
40. 부언: 아르카디아와 유토피아
41. 부언: 고매한 쌍, 혹은 사랑과 그 유토피아 속에서 해와 달의 삭망
42. 다시 로고스 신화 혹은 인간과 정신, 포이어바흐의 이론: 신은 어째서 인간인가? ─ 기독교 신비주의
43. 로고스 신화로 계속 작용하는 결과들: 강림의 축제, ‘창조주 영혼이여 오세요’, 자연 없는 하늘나라의 모습
44. 반론: 점성술 신화는 이 세상의 것이다. 스피노자의 범신론, ‘신 혹은 자연’ 속에 담긴 반박할 수 없는 유산. ‘하늘나라’의 유토피아 속에 담긴, 기독교 사상으로 함께 작용하는 자연의 문제
45. 공통되지는 않지만 기이할 정도로 분명한 특성: 인간학과 유물론은 모두 ‘신적인 초월’ 속으로 잠입하며 신의 자리를 차지한다
제7부 삶의 용기의 근원
46. 충분하지 않다
47. 인간은 어디에 개방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
48. 진정한 계몽주의는 통속화되지 않을 뿐더러, 결코 배경 없이 행해지지 않는다
49. 계몽주의와 무신론은 신의 실체와 정반대되는 동일한 형상인 ‘악마적인 것’과 만나지 않는다
50. 삶의 용기에서 나타나는 도덕적인 무엇 그리고 근원
51. 죽음의 용기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들 혹은 출발
52. 굶주림, ‘어떤 사실에 관한 꿈’, ‘희망의 신’, 우리를 위한 사물
53. 결론: 마르크스 그리고 소외를 일탈시키기
옮긴이의 말 기독교 사상의 핵심은 권력과 금력에 대한 거역과 반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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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블로흐 연보
○ 저자소개 :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
1885년 7월 8일 루트비히스하펜 암 라인에서 철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뮌헨과 뷔르츠부르크에서 철학, 물리학,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 입학 후 여섯 학기밖에 지나지 않은 1908년 ‘리케르트와 근대 인식론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해명’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탁월한 천재성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루카치, 브레히트, 벤야민, 크라카우어, 아도르노 등 동시대의 지성인들과 친교를 맺으며 루카치와의 표현주의 논쟁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으며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왕성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저술 활동에 몰두하여 철학, 정치 경제학, 신학, 문학,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법철학, 예술 등 가히 백과사전적이라 할 정도로 폭넓은 분야를 섭렵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는, 아도르노와 벤야민 등 동시대 지식인들의 청년 시절에 큰 영향을 미친 『유토피아의 정신』을 비롯해 『기독교 속의 무신론』,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 『흔적들』,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 『주체 – 객체: 헤겔에 대한 주해』, 『크리스티안 토마시우스』, 『아비센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유물론의 문제들』, 『기독교 속의 무신론』, 『경향성 – 잠재성 – 유토피아』 등이 있다.
– 역자 : 박설호
부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신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는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 『동독 문학 연구』, 『떠난 꿈 남은 글』, 『유토피아 연구와 크리스타 볼프의 문학』, 『작은 것이 위대하다』 ,『독일현대시 읽기』, 『새롭게 읽는 독일현대시』, 『현대 문화 이해의 키워드』(공저), 『하이너 뮐러 연구』(공저), 『독일인, 어떻게 살(았)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 『서양 중세 · 르네상스 철학 강의』, 베냐민의 『베를린의 유년 시절』, 라이히의 『문화적 투쟁으로서의 성』, 횔덜린의 『빵과 포도주』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성서 속에 담긴 거대한 격정은 누구보다도 소시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는 당파적으로 불평을 터뜨리는 자들 그리고 나아가 한없이 원망을 터뜨리는 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이와는 정반대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성서에는 다른 종교 서적에 담겨 있지 않는 놀라운 사항들이 내재하지 않는가? 이를테면 어떠한 경우에도 계속 지니고 싶지 않은 괴로움, 탈출과 해방, 선 창조하기 등에 관한 애타는 저항으로서의 기대감 그리고 다르게 변화하기 등과 같은 특성을 생각해 보라. 물론 성서에는 몇몇 순종과 겸허함을 드러내는 「시편」의 구절도 있다. 그렇지만 욥Job의 부르짖음은 얼마나 저항적이고 강렬한가? 오로지 억압에 조용히 굴종하지 않는 사람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경건함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나아가 성서는 유토피아의 충직함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진정한 신자는 성서를 읽으면서, 불안하기는 하나 오랫동안 머무는 기대감과 처절한 갈망을 마음속 깊이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 p.64
‘보라, 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노라’는 예수의 말씀은 폭동의 발언과 같았다. 그것은 관료화된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매우 뼈아픈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혁명적 발언에는 자유주의 방식이 교묘하게 덧칠되었다. 이로써 예수의 발언은 거세되어 보수주의의 사고로 변질되고 말았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사랑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한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토마스 뮌처와 그의 동지들이었다. 가령 뮌처는 예수만큼 열광적 태도를 취하면서 사랑의 나라를 ‘즉시’ 건설하려고 했다. 그런데도 뮌처와 같은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끔찍하게 혹평을 당했으며, 대개 외면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처음에 기이하게 보이는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의 설교 속에서 불타는 종말론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러한 ‘즉시’가 시민주의 신학 한복판에서 다시 감지되었다는 사실이다. — p.105
주지하다시피 제우스는 살인적 홍수를 내리고,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를 암벽에 묶고 마치 십자가의 고통스러운 형벌 같은 벌을 가했다. 성서에서도 제우스에 대항하는 세계의 주인인 야훼 신이 등장한다. 야훼 신에 대항하여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을 위해서 반역을 꾀하고 있는데, 이러한 저항은 그들의 신보다도 더 낫다. 말하자면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오랫동안 은폐되어 있다가, 정반대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정태적 사상과는 다르게 이해되고 있다. 이는 새로운 무엇의 도움으로 미래에 출현할 수 있는 역동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역동성은 성서에서 고유한 시각을 얻게 되어, 유토피아적 차원에 도달할 것이다. — p.114
보통 사람들은 인간의 모든 불평이 초월된 공간으로 고착되어 자리하고 있는 저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보상받게 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는 그 대신에 진정한 기독교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양자 간의 대화가 서로의 입장을 단순히 중화하고, 타협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만약 힘들게 일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면, 자유의 나라의 깊이가 마르크스주의의 의미에서 정말로 혁명적 의식의 실질적이고도 본질적인 내용이 된다면, 과거 농민전쟁에서 출현한 바 있는 혁명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연합이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을 거둘 것이다. — p.509
○ 출판사 서평
– 권력을 좇는 종교는 인간 정신을 황폐화하는 재앙,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권력의 화신을 끌어내리고 가장 혁명적이고 저항적인 인간 정신을 재발견하는 일!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사상에서 유토피아의 입구를 찾아내고자 한 현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 블로흐의 독특한 사상에 매료돼 그의 방대한 저서 『희망의 원리』(전 5권)를 비롯해 『서양 중세 · 르네상스 철학 강의』를 국내에 번역 소개한 역자 박설호. 두 사람의 만남은 기독교 사상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인간의 저항과 불복종 정신을 치밀하게 추적한 역작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를 번역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블로흐는 이 책에서 권력과 금력에 탐닉하는 기독교는 가짜일 뿐, 본연의 기독교 정신은 지배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기독교 사상과 성서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결코 종교 서적이 아니다. 블로흐는 궁극적으로 모든 지배 체제의 억압과 모순으로부터 인간 해방을 이야기한다. 이런 논의가 이미 철 지난 것들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시야를 좀 더 넓혀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갈등 상황이나 세계 권력 체제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부조리한 지배와 억압 체계가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인 철학서이다. 1968년 유럽에서 시작된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당시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읽힌 까닭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 책이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독재와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한국의 주류 기독교는 스스로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때로는 권력과 쉽게 결탁하고 자본에 길들어졌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그에 걸맞은 사회, 종교적 책무를 다하기보다는 적지 않은 사회 문제를 야기한 게 사실이다. 일부 교회의 권력화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블로흐가 기독교 사상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저항 정신을 치밀하게 추적해 가는 과정은 종교적 문제를 떠나 우리 사회의 모든 불합리한 권력에 침묵하거나 순종하는 일이 인간 정신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체제 유지를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교묘하게 작동하고 개개인은 낯선 존재로 방황하다 본연의 인간성을 상실한다. 종교 비판은 인간을 인간다운 주체로 되돌리려는 학문적 행위!
기독교 정신의 본질을 추적하기에 앞서 블로흐는 과거의 기독교가 권력자들에게 충성하고 그들에게 축복을 내렸다고 비판의 포문을 연다. 목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권력자들을 정성을 다해서 섬긴 반면, 가난한 사람들과 착취당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인내하라고 설교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배 체제를 흔드는 어떠한 저항도 출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블로흐가 지적하는 기독교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폐해다. 폐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독교는 억압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에는 철저히 눈을 감았다. 억압자들은 백성들에게 매일 은밀하게 위협을 가했으며, 천한 자들이 봉기했을 때 무차별하게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때도 목자들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목자들은 권력자들이 사용한 가스와 피스톨을 그저 ‘방어’라고 명명한 반면에, 백성들의 무장 봉기를 ‘테러’로 단언하였다.(본문 501면) 권총만으로는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없었으므로 권력자들은 자신과 유사한 신을 찬양하도록 조처했고, 목자들은 권력자의 뜻을 받들어 상부의 폭력을 교묘하게 가리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마련한 것이다. 기독교와 권력은 이런 식으로 결탁해 공고한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이런 체제 아래에서 가진 것 없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했을까? 블로흐는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 아모스의 절규를 들려준다. ‘그들이 제단을 금은보화로 장식하고 있는 동안, 가난한 자들은 굶주린 배를 끌어안고 괴로워하고 있다!’
블로흐는 역사적으로 이렇게 형성되어 온 지배 이데올로기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고, 그 결과 인간 소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보았다. 블로흐가 말하는 인간 소외 현상이란 개개인들이 낯선 존재로 방황하다가 급기야는 본연의 인간성을 상실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인간 소외 현상은 자본주의 체제, 특히 모든 인간과 사물이 완전한 상품으로 변해 있는 독점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분명하게 눈에 띈다고 한다. 교묘하고 거짓된 지배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권력 체계 안에서 개개인은 점차 소외되고, 급기야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블로흐는 이러한 모든 소외 현상에 대한 분석 그리고 소외된 상태에서 인간다운 주체로 되돌리려는 학문적인 행위는 역사적으로 종교 비판을 통해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블로흐가 이 책에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권력과 금력을 탐닉하는 기독교는 가짜! 오리지널 기독교 정신은 저항과 반역이다! 기독교 사상에 숨어 있는 혁명적 인간 정신을 치밀하게 추적하다!
사회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기독교 사상에서 유토피아의 희망을 보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통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철저히 부정해 왔다. 전복시켜야 할 또 하나의 거대한 지배 체제였다. 그러나 블로흐는 기독교 이데올로기를 걷어 내야 할 장애물로 보면서도 기독교 사상에 담긴 본질적 가치를 치밀하게 추적해 간다. 수세기 동안 교회가 철저히 은폐하고 왜곡해 온 성서에 담긴 진실을 백과사전적 지식을 총동원해 발굴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성서와 기독교에서 구해 낸 보물은 바로 저항과 반역의 인간 정신이다. 즉 성서에는 상부에서 하부로 전달되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는 저항의 목소리가 도사리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하여 그가 내세운 명제는 다음과 같다.
‘희망이 있는 곳에 종교가 있을 뿐, 종교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블로흐의 이 명제는 종교의 본질적 가치를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블로흐는 결코 무신론자가 아니며, 종교를 혁명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인간의 본질적 갈망이 종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믿는다. 그는 기독교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지배 체제를 경계하지만, 그렇다고 종교의 비합리성을 주장하는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신은 죽었다’고 말하며, 종교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은 통속 마르크스주의자일 뿐,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는 신이 사라지고 없는 종교의 영역에서 어떤 새로운 기능을 발견해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저항을 통한 인간학적 진정성을 찾는 작업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그의 독특한 사상적 위치가 포착되는 대목이다. 블로흐에 따르면 ‘희망이 있는 곳에 종교가 있다’는 명제는 억압 상태의 모든 나라가 해방될 수 있는 격언을 담고 있기 때문에 유효하다. 이와는 반대로 ‘종교가 있는 곳에는 희망 역시 존재한다’는 명제는 경계의 대상인데, 이 말에는 종교적 천국과 권력의 당국이 퍼뜨린 종교 이데올로기의 냄새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종교는 신적 존재와의 재결합 (re+ligio)이라는 의미에서 반동적이고 억압적인 요소를 지녀 왔다. 이러한 ‘재결합으로서 종교’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비판은 무엇보다도 더 낫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인간적 희망에서 출발한다.
– 억압 체제에 저항하라, 거역하라, 불복종하라. 그것이 반역의 텍스트, 성서의 진실이다
사랑과 믿음의 기독교가 블로흐에게 저항과 반역의 종교로 읽히게 된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블로흐는 성서에 기록된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 이야기들은 신화학적으로는 분명한 내용이지만, 이후의 사제들은 수많은 폭동 내지 저항 행위들을 교묘하게 은폐하거나 날조해 놓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파라오, 그리고 권력자인 상부의 신에 대항하여 인간 가치를 갈구하며 스스로 인간이기 위해서 폭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성서의 저항적 내용을 중상모략하고,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곤 하였다. 블로흐는 왜곡되기 이전의 성서의 내용을 더듬어 가면서 성서 이면에 담긴 사실을 추적해 간다. 예를 들어 그는 천국의 뱀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선과 악을 인식하면, 너희는 신과 같게 되리라’라는 하나님의 전언은 역사를 형성하는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으며, 아직도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반역의 외침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후 기독교에서 천국의 뱀은 다만 에덴동산에서 나온 하나의 동물이자 사탄으로 치부되고 만다.
오래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성서가 오늘날의 그것과는 내용과 성격을 달리하고 있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로 블로흐는 1525년에 발발한 독일 농민전쟁을 꼽는다. 이 반란을 일으킨 인물은 루터와 대립한 토마스 뮌처. 그는 「출애굽기」에서의 탈출 그리고 예수에게서 혁명적 복음을 발견하고, 이를 혁명을 통해 실천하려고 한 인물이었다. 그가 만약 제우스, 주피터, 마르두크, 프타, 심지어는 아스텍족의 신, 악마 등과 같은 상부의 신만 중시했다면 독일 농민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블로흐는 지적한다. 영국과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일어난 농민전쟁도 비슷했다. 이 전쟁을 주도한 이들은 모두 자신의 행위가 성서에 기초하고 있다고 천명했다.
이 책에서 블로흐는 성서에 담긴 혁명적이고 저항적인 움직임을 날카롭게 포착해 내고, 이런 움직임이야말로 현실 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인간적 힘이라고 역설한다. 그가 많은 저서를 통? 보여 준 독특한 사유는 죽은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블로흐의 최종 도착지는 언제나 오늘, 그리고 곧 도래할 내일이었다. 그가 몰두한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사상은 모든 인간이 억압 체제에서 해방되는 유토피아에 이르는 계단으로 인식되었다. 현대 사회의 종교나 정치, 경제의 궁극적 지향점이 인간적 갈망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는지 그가 말년에 남긴 이 책에서 곱씹어 볼 만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