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전날의 섬 : L’isola Del Giorno Prima
움베르토 에코 / 열린책들 / 2001.11
별 관측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위도에 비해, 경도의 측정은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우선 시간을 정확히 잴 수 있는 시계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 정밀 시계란 엄연히 20세기의 산물이다.
17세기, 추기경의 명령으로 로베르또 델라 그리봐는 항해를 떠난다. 경도의 측정, 날짜 분기선 너머 ‘전날의 섬’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항해에서 과학에서 한 걸음 앞서나가는 것이다.(실제로 18세기에도 정확한 경도 측정에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 속에서 17세기의 과학과 예술, 문화까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상하권으로 나뉘었던 것이 합본으로 다시 출간된 것이다
– 목차
제1장 다프네
제2장 몬페라토 사건의 전말
제3장 기이한 별궁
제4장 어른 구실
제5장 세상의 미로
제6장 빛과 그늘의 위대한 곡예
제7장 눈물의 춤곡
제8장 그 시대 정신에 대한 흥미 있는 훈수
제9장 아리스토텔레스의 망원경
제10장 수정 지리학과 수정 수로학
제11장 분별의 기술
제12장 영혼의 고난
제13장 사랑의 지도
제14장 전술에 관한 소론
제15장 진자 시계
제16장 공명약에 대한 담론
제17장 경도 측정법
제18장 호기심
제19장 세계 일
– 내용
14세기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종교학과 범죄소설의 이종교배서격인 「장미의 이름」, 스릴러적 기법을 차용한 「푸코의 진자」. 이들에 이어 94년에 발표한 세번째 소설 「전날의 섬」은 수많은 발명과 발견으로 오히려 지적 혼란이 가중됐던 17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
1643년 조난당한 젊은 첩보 장교 로베르토는 날짜 변경선인 경도 180도의 바다 가운데 버려진 큰 배 「다프네」호에 홀로 살아 남는다.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로베르토는 아버지와 참전했던 30년전쟁, 존재를 확신하는 환상속의 동생 페란테, 어느 살롱에서 만난 여인 릴리아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한다. 배에서 만난 또다른 조난자 카스파르 신부는 백과사전과 같은 인물로 두 사람은 종교적 철학적 논쟁을 거듭하게 되고, 거리상으로는 지척이지만 시간상으로는 24시간이 차이나는 「전날의 섬」에 이를 방법을 강구한다. 이시대에는 수영을 익힌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신부는 결국 자신이 만든 잠수종으로 전날의 섬을 향해 떠나고 홀로 남은 로베르토는 자기 삶을 마무리 짓기 위해 소설을 써나간다. 자신의 난파가 동생 페란테의 음모였다는 소설 줄거리는 점차 그의 현실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섬 반대편에 릴리아가 떠내려와 있다고 생각한 로베르토는 날짜 변경선을 따라 표류를 시작한다.
물론 이 소설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면 타자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세적 자기인식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며, 항해술, 병법, 그리스 로마신화의 허구성 등을 백과사전적으로 제시한 고급 저작물이다.
하지만 이런 심오한 부분을 들어낸다해도 그의 소설 「전날의 섬」이 주는 파편적 재미는 보통 이상이다. 소설을 통째로 이해하지 않는 것도 독자의 권리라면 에코의 독자들은 대부분 그 권리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 저자소개 :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볼로냐대학교의 교수이다. 1932년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몬테주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세 철학과 문학으로 전공을 선회,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위논문을 발간함으로써 문학비평 및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2년 토리노대학교와 밀라노대학교에서 미학 강의를 시작했으며, 최초의 주요 저서인 『열린 작품 Opera apertas』(1962)을 발간해 현대미학의 새로운 해석방법을 제시했다. 이어 『제임스 조이스의 시학 Le poetiche di James Joyce』(1965), 『예술의 정의 La definizione dell’arte』(1968) 등 새로운 이론서를 발표해 문학비평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66년 상파울루대학교와 피렌체대학교에서 시각커뮤니케이션을 강의했으며, 1967년 『시각커뮤니케이션 기호학을 위한 노트』를 출간했다.
1968년 인간의 사고와 문화행위, 이념구성 등에 다양하게 관련되어 있는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 La struttura assente』를 발간했으며, 이어서 『내용의 형식 Le forme del contenuto』(1971)을 발간한 후 이 두 저서의 내용을 증보해 영문판 『기호학이론 A Theory of Semiotics』(1976)을 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Visio 문화, 즉 읽는 문화가 아니라 보는 문화의 전형적인 사례인 중세 미학과 러시아 형식주의, 그리고 아방가르드 문화로부터 출발했으며, 퍼스의 철학적 기호론을 통해 독특한 기호학 체계를 구축, 프랑스 중심의 언어학적 기호학이나 구조주의와 철저하게 맞대결하는 한편 프랑크푸르트 학파류의 마르크스주의와도 완연히 다른 예술 이해와 미학관을 보여주었다. 1971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국제기호학 잡지 『베르수스』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1974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 회의를 주관했으며, 1975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정교수 및 커뮤니케이션·연극학 연구소장으로 임명되었다.
기호학과 미학의 세계에 열중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당시 원자핵의 확산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세기말적인 위기를 문학으로 표현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2년 반에 걸쳐 집필을 완료해 1980년 첫번째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을 발표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 1988년 두 번째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 Il pendolo di Foucauilt』를 발표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1994년 자전적 작품인 세 번째 장편소설 『전날의 섬 L’isola del giornoprima』을 발표해 작가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에코는 문학은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고 말할 정도로 문학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라는 책에서 문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리고 문학이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학의 몇 가지 기능에 대해’에서 시작하여 마르크스, 단테, 네르발, 와일드, 조이스, 보르헤스 등의 작품에 대한 비평과 문체, 상징, 형식, 아이러니 등 문학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등을 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퍼스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호학·철학·역사학·미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문적 지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에스파냐어까지 통달한 언어의 천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그의 기호학이론은 오늘날 세계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학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 Prospect/Foreign Policy 공동 조사에게 움베르토 에코는 노엄 촘스키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2위에 이름을 올렸다. 3위는 리처드 도킨스였다.
작품으로 장편소설『장미의 이름』(1980) 과『푸코의 진자』(1988),『전날의 섬』(1994), 동화『폭탄과 장군』(1988),『세 우주 비행사』(1988), 이론서『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열린 작품』, 『대중의 슈퍼맨(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논문 잘 쓰는 방법』 등이 있다.
2016년 2월 19일 향년 84세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밀라노 자택에서 타계했다.
- 역자 : 이윤기 (Lee Yoon-ki,李潤基)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스인 조르바』, 『변신 이야기』 , 『신화의 힘』, 『세계 풍속사』등 20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윤기는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전 5권)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신화 열풍을 일으키며 200만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났다.
번역과 동시에 작품활동도 이어갔다. 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출간하며 문단으로 돌아온 그는 중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적절한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또는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장편소설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등과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펴냈고, 그 밖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교양서와 『어른의 학교』,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 줄거리
1643년 7월에서 8월 사이 어느 날 로베르또 델라 그리봐라는 젊은이가 널빤지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해류를 따라 표류하고 있다. 그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뱃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배 <다프네>가 그를 맞이한다.
저마다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하여 항해를 거듭하는 유럽 강국들. 그 사이의 첩보전에 휘말린 젊은 귀족 로베르또는 만물이 풍성하고 금은보화가 넘친다는 솔로몬 섬과 아직 아무도 정확하게 측정해 본 적이 없는 경도의 신비를 벗기라는, 프랑스의 최고 권력자 마자랭 추기경의 밀명을 받고 홀란드의 첩보선 <아마릴리스>에 승선했다가 난파당한 것이다.
<파선(破船)을 경험하고, 또다시 버려진 배에 갇혀 본 사람은 오직 나뿐일것>이라는 기록을 통해 태연자약함을 드러내려던 로베르또는,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 존재를 인식하기 위하여 그가 사랑했던 <여인>에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쓴다. 아버지와 함께 참전했던 30년 전쟁, 아버지의 죽음, 어린 시절부터 그가 만들어 내어 거의 확신하기에 이르는 동생 페란떼의 존재, 냉소적이고 이단적 생각도 거리낌없이 들려주는 프랑스 귀족이자 무관인 생 사뱅,빠리 사교계의 생활, 어느 살롱에서 만난 <여인> 릴리아, 자기도 모르게 첩보전에 휘말려 바스띠유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프랑스 국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임무를 맡고 떠나기까지 자기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러던 중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배에서 또 다른 조난자 카스파르 신부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거리상으로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으나 그 사이를 날짜 변경선이 가로지르고 있어서 시간적으로는 24시간이 차이난다는 <전날의 섬>에 이를 방법을 강구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40일간이나 폭우가 퍼부었다는 노아의 홍수 때 어디서 그렇게 많은 물이 생겨났는지, 천동설과 지동설은 어떤 이론적인 문제 때문에 옳고 그른지, 이 세상은 무한한지 유한한지, 신의 존재는 어떻게 규명할 수 있는지 신학과 철학,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논쟁을 펼치기도 한다.
로베르또에게 수영을 가르쳐 전날의 섬에 이르게 하려던 카스파르 신부는 더 이상 오래도록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이 만든 잠수종(潛水鐘)을 이용하여 바다 밑을 걸어서 섬에 가려고 한다. 그리하여 카스파르 신부는 쇠가죽으로 만든 종 모양의 기구를 뒤집어쓰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