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 에밀리 디킨슨 시선
에밀리 디킨슨 / 파시클출판사 / 2020.12.21
내가 읽은 책 한 권으로 인해 온몸이 오싹해졌는데 그런 나를 어떤 불로도 따뜻이 못한다면,
그게 시예요. 마치 정수리부터 한 꺼풀 벗기듯 몸으로 느껴진다면, 그게 시예요.
오직 이런 식으로만 나는 시를 알아요. 다른 방법 있나요? _ 에밀리 디킨슨, 토마스 웬트워스 히긴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시클 출판사의 첫 에밀리 디킨슨 시집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 새로운 표지와 구성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개정판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은 초판에 수록된 시들을 필사본에 맞춰 시 형식을 다시 정리하여 옮겼다.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 가운데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대표적인 시들을 번역자 박혜란이 고르고 모았다. 시인의 평생을 함께한 주제였던 시학, 여성적 자아, 고독과 고립, 자연, 삶과 죽음, 등을 다룬 56편의 ‘제목 없는’ 시들을 8장으로 묶어 시집에 담았다.

○ 목차
멜로디의 섬광 Bolts of Melody
나 계속 노래할래! 13 / 시인은 이랬어 15 / 그림 나라면 그리지 않을 듯 17 / 그들은 나를 산문 속에 가두었지 21 / 내게서 나를 추방하는 23 / 시인들은 그저 램프를 밝힐 뿐 25 / 군함 없어도 책 한 권이면 돼 27
어떤 비스듬 빛 하나 A Certain Slant of Light
성공의 달콤함을 가장 잘 헤아리는 건 31 / 위에 계신 아빠! 33 / 어떤 비스듬 빛 하나 들어오는 35
나는 고통의 모습이 좋아요 37 / 영혼은 직접 선택해서 사귀지 39 / 내 머릿속에서 장례식이구나 생각했지 41 / 더 고독할지 몰라? 43
바람의 술꾼 Inebriate of Air
나는 전혀 숙성 안 한 술맛을 알아 47 / 난 아무도 아냐! 넌 누구니? 49 / 그녀는 오색 빗자루로 청소하다 51 / 다친 사슴이 가장 높이 도약한단다 53 / 생각은 아주 엷은 막 밑에서 55 /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어 57 / 나 아름다움을 위해 죽었으나 드문 일 61
장전된 총 A Loaded Gun
내 평생 세워둔 장전된 총이었는데 65 / 세상에 보내는 나의 편지 69 / 나는 딱 두 번 잃어버렸어요 71 / 토끼방울꽃이 자기 거들을 풀어 73 / 밤은 사납고 거칠어! 75 / 그가 시키는 대로 그녀는 일어났다 77 / 출판은 경매예요 79
풀밭 속 가느다란 녀석 A Narrow Fellow in the Grass
새 한 마리가 산책길에 내려왔는데 83 / 가느다란 녀석이 풀밭 속을 85 / 내가 일찍 출발했거든 나의 강아지도 함께 갔어 89 / 노란 길 따라 그 눈이 93 / 친절한 눈으로 제때 뒤돌아보면 95 / 나 죽을 때 파리 한 마리 붕붕대는 소리 들렸는데 97
가능 속에 살아 Dwell in Possibility
나는 가능 속에 살아요 101 / 진실을 모두 말해 하지만 삐딱하게 말해 103 / 두뇌는 하늘보다 넓지 105 / 나는 광야를 본 적 없어요 107 / 내가 예측건대 모두 헤아려보니 109 / 대평원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클로버 하나 벌 한 마리 111
“희망”이란 깃털 달린 놈 “Hope” the Thing with Feathers
많이 미치면 굉장한 신의 감각이 생겨 115 / 말 한마디가 있어 117 / “희망”이란 놈은 깃털이 있어 119 /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 하러 갔으나 121 / 큰 소리로 싸우는 것은 매우 용감해 123 / 죽어가는 이들에게는 별로 필요한 것이 없어요, 그대여 125 / 이렇게 신성한 상실로 127 / 어떤 이들은 안식일을 지키려 교회 가는데 129 / 이 세상이 결론은 아니지요 131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The Things that Never can Come Back
사랑이 전부라는 것 135 / 사랑 삶보다 먼저 137 / 마음이 즐거움을 물어오지 처음에는 139 / 황홀한 순간마다 141 / 널찍이 이 침상을 펴 143 / 우리가 어른이 되어 사랑이 시들해지면 다 그렇듯 145 /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 더러 있지 147
번역 후기: 시, 시인, 시집, 고르고 옮기는 일 150
시 원문 찾아보기 162

○ 저자소개 : 에밀리 디킨슨 (1830 ~ 1886)
미국 매사추세츠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살며 평생 1800편의 시를 남겼다.
자신의 시를 직접 출판하거나 세상에 거의 공개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친구와 가족, 지인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800여편의 시를 직접 필사하고 편집한 손제본 형태의 파시클 fascicle 40권에 보관했고 더러는 편지봉투를 뜯어 그 안에 적어두기도 했다.
주변의 일상과 자연을 시에 담아 사랑, 죽음, 상실, 영원함, 아름다움, 글쓰기와 읽기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인은 당시 청교도의 엄숙함이나 가부장적 질서, 물질주의 생활양식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리듬과 형식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유했다.
현재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국 시인 가운데 한 명이며, 많은 후배 시인과 비평가는 물론 음악가와 예술가에게 큰 영감을 주는 페미니스트 뮤즈이기도 하다.
– 역자: 박혜란
영문학을 전공했다. 희곡에 관심이 많았고, 내러티브 이론에 대한 논문을 썼지만,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서 페미니즘 시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그렇게 책만 오래 붙들며 시간을 보냈는데, 덕분에 글의 이해와 생각의 폭은 넓어진 것 같다.
강의와 번역을 오래 했고, 지금은 틈틈이 에밀리 디킨슨 시를 번역해 모았다가 시집으로 만들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딸은 축복 속에서 자란다』 (들녘), 『흑설공주 이야기 1 –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동화』 (뜨인돌), 『흑설공주 이야기2 –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신화』 (뜨인돌), 『젠더와 민족』 (그린비), 『플롯찾아읽기 – 내러티브의 설계와 의도』 (강)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내가 읽은 책 한 권으로 인해 온몸이 오싹해졌는데 그런 나를 어떤 불로도 따뜻이 못 한다면, 그게 시예요. 마치 정수리부터 한 꺼풀 벗기듯 몸으로 느껴진다면, 그게 시예요. 오직 이런 식으로만 나는 시를 알아요. 다른 방법 있나요? (5쪽)
그들은 나를 산문 속에 가두었지 –
꼬마 계집애였을 때
그들이 나를 옷장 속에 넣었듯이 –
그들은 내가 “가만히” 있는 걸 좋아했거든 – (21쪽)
군함 없어도 책 한 권이면 돼
우리를 멀리 대륙으로 데려다주지
군마 없어도 한 페이지면 돼
시를 활보하지 – (27쪽)
위에 계신 아빠!
쥐도 좀 생각해줘요
고양이에게 눌려 지내잖아요!
이 쥐 녀석을 위해 “저택” 한 채
당신의 왕국 안에 남겨주세요! (32쪽)
내 머릿속에서 장례식이구나 생각했지
문상객들이 오고 가며
계속 짓밟고 – 짓밟고 – 이러다
감각이 박살 나겠구나 싶더라 – (41쪽)
나란 놈은 – 바람의 술꾼 –
게다가 이슬의 고주망태 –
갈지자 춤추며 – 끝도 없는 여름 한낮 내내 –
녹아내린 파란 하늘 주막을 나선다 – (47쪽)
난 아무도 아냐! 넌 누구니?
너도 – 역시 – 아무도 아니니?
그렇다면 우리는 단짝!
얘기하지 마! 걔네들이 떠벌릴 거야 – 너도 알잖아! (49쪽)
다친 사슴이 – 가장 높이 도약한단다 –
사냥꾼이 하는 말을 들은 적 있어 –
하지만 그건 죽음의 절정일 뿐 –
이후 덤불은 조용하지! (53쪽)
내 평생 세워둔 – 장전된 총이었는데 –
구석에 처박혀 있던 – 어느 날
주인이 지나다 – 알아보고는 –
날 챙겨 나갔다 – (65쪽)
세상에 보내는 나의 편지
세상이 나한테 써 보낸 적 없어서 –
자연이 전해준 소박한 소식에 –
다정한 장엄을 곁들였어요 (69쪽)
대평원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클로버 하나 벌 한 마리
클로버 하나 그리고 벌 한 마리
그리고 꿈
벌이 별로 없다면
꿈만 있어도 될 거야 (111쪽)
우리가 어른이 되어 사랑이 시들해지면 다 그렇듯
서랍에 넣어두지 –
그러다 구닥다리가 되어 –
마치 선조들이 입던 의복처럼 보이겠지 (145쪽)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시인은 ‘집안의 천사’로 살아야 했던 당시 중산층 백인 여성들이 대체로 그러했듯 집안을 돌보고 가족을 보살폈다. 집안의 명망이나 오빠 에드워드 디킨슨의 활발한 사회 활동으로 미루어 지역사회에서 사교 모임과 교류가 많았을 수도 있으나 디킨슨은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당시 유명했던 초월주의 대표 철학자이자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도 디킨슨의 아버지와 교류했다고 하는데 디킨슨을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빵을 구워 마을 대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고, 지금까지 연구가 될 정도로 정원을 잘 가꾸었을 뿐, 누군가를 방문하거나 낯선 이를 초대한 적은 없었다.
영혼은 직접 선택해서 사귀지 –
그리고 – 문을 닫아버리지 –
그렇다고 외부와 소통을 아예 끊고 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족과 친척, 친구들과는 늘 가까이 교류하며 종종 편지를 써서 정서적 위로와 조언을 주고받았고, 책에 대해 논하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활발히 소통했다. 물론 시인의 유머와 재치, 은근한 독설은 덤이었을 것이며 편지와 함께 직접 쓴 시를 보내 감상을 묻기도 했다. 시인의 개인적 교류와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록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사랑과 상실에 관한 시들이 많으니 몇 번의 연애 혹은 연애 감정과 실연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시인의 삶이 시를 해석하는 일종의 참고 문헌이 될 수는 있겠으나 시의 언어와 문장으로 시인의 삶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다 싶다. 그저 독자인 나는 아무개 Nobody의 삶이 만든 시로 다가가고 싶다. (152-153쪽)

○ 출판사 서평
내가 읽은 책 한 권으로 인해 온몸이 오싹해졌는데 그런 나를 어떤 불로도 따뜻이 못한다면,
그게 시예요. 마치 정수리부터 한 꺼풀 벗기듯 몸으로 느껴진다면, 그게 시예요.
오직 이런 식으로만 나는 시를 알아요. 다른 방법 있나요? _ 에밀리 디킨슨, 토마스 웬트워스 히긴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100여 년 전 페미니스트 뮤즈로부터 당신에게
미국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의 시선집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 출간되었다. 책은 8장으로 구성되어 총 56편의 ‘제목 없는’ 시들을 담고 있다. 시인이 생전에 손제본 형태로 직접 만들곤 했던 시집을 일컫는 이름인 ‘파시클’, 이 책을 낸 출판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에밀리 디킨슨은 현재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국 시인 가운데 한 명이자, 후배 시인과 비평가는 물론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는 페미니스트 뮤즈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디킨슨의 시가 처음부터 전 세계 독자들이 애송하는 시였던 것은 아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작고 조용한 도시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18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무려 1,800여 편의 시를 썼지만 생전에 발표했던 시는 지역 신문에 실린 7편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디킨슨이 자신의 시를 대중에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디킨슨은 친밀한 사람들에게 편지 형태로 시를 보내곤 했다. 그리고 40여 편씩 시를 묶어 직접 필사하고 편집하여 ‘파시클’이라는 시집을 만들어두었다. 그 파시클 44권이 시인이 죽은 후 발견되었고, 4년이 지나 첫 시선집이 크게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뒤로도 계속해서 시선집이 출간되어 세상에 전해졌다.
- “출판은 경매예요”
이렇듯 에밀리 디킨슨이 생전에 시를 집필하고 세상으로 내보낸 특유의 방식, 그리고 작은 도시 안에서만 살며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았고 공적 저술이나 사회·정치 참여 활동 흔적이 없다는 점 등을 미루어 우리는 그녀를 ‘여성주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정의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실제 시인의 시들에서 그러한 특성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예리하게 읽어내는 재미를 놓치지 말자는 말이다. 시인이 시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면, 이때 여성의 목소리란 대체 무엇인지, 또한 여성의 삶 속에서, 동시에 그 삶의 울타리를 훌쩍 벗어나 그 목소리가 어디까지 가 닿는지, 이 책의 시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영문학 박사인 편역자 박혜란은 에밀리 디킨슨이 1,800여 편의 시에서 “기존 문학 전통과 관례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창적 표현을 실험”했으며, “주변의 일상과 자연 속에서, 혹은 독서를 통해 발견하고 사유했던 여러 주제들, 예를 들면 사랑, 죽음, 상실, 영원함, 아름다움 그리고 글쓰기와 읽기의 즐거움을 노래”했다고 설명한다. 주목할 점은 그러한 보편적인 주제를 노래할 때에도 “당시 청교도의 엄숙함이나 가부장적 질서, 물질주의 생활양식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리듬과 형식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 지적대로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아무리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읽기에 무겁지만은 않다. 점잔을 떨거나 자기 불만을 헛기침으로 에둘러 전달한다거나 정색하고 일침을 놓는 것은 전혀 디킨슨의 방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장난꾸러기 요정 또는 세상사에 통달한 여신이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이 얘기 저 얘기를 쏟아내는 느낌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엄숙함, 가부장 질서, 물질주의의 허를 찌르는 것이 가능해진다.
출판은- 경매예요 / 인간의 정신을 사고팔지요- / 가난으로- 그런 추잡한 일을 / 정당화하겠죠
(「출판은- 경매예요」 부분)
그가 시키는 대로 그녀는 일어났다- 평생 / 갖고 놀던 놀잇감들을 팽개치고 / 명예로운 일을 맡으려고 / 여자라는, 아내라는-
(「그가 시키는 대로 그녀는 일어났다- 평생」 부분)
나 죽을 때- 파리 한 마리 붕붕대는 소리 들렸는데- / 방 안은 고요 / 몰아치는 폭풍 사이- / 공중의 고요 같았다- // (중략) // 나는 내 유품을 유언하고- 서명을 마쳤다 / 나의 어떤 부분을 / 지정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때 / 거기 끼어든 파리 한 마리- // (후략)
(「나 죽을 때- 파리 한 마리 붕붕대는 소리 들렸는데-」 부분)

- 경계로부터 자유로운 수많은 ‘나’들의 향연
역자는 에밀리 디킨슨 시의 서술상 전반적인 특징 중 하나로 ‘1인칭 화자’를 꼽는다. 바로 ‘나’라는 인물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자기 감정과 생각을 직접 토로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일의 ‘서정시’로 국한하기는 어렵다. 디킨슨의 시에서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어디로든 옮겨가며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지 옛날 소도시에서 별다른 바깥 활동 없이 평생을 살았던 어떤 여자의 목소리라고 전제한 채 읽어나가다가는 놀라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느 시에서는 별안간 ‘총’이 화자로 등장한다.
내 평생 세워둔- 장전된 총이었는데- / 구석에 처박혀 있던- 어느 날 / 주인이 지나다- 알아보고는- / 날 챙겨 나갔다- // (중략) // 그리고 밤이면- 근사했던 우리의 하루를 마치고- / 나는 나의 주인의 머리를 경호한다- / 함께하기에는 오리 솜털 / 푹신한 베개보다- 그게 더 낫다- // (중략) // 비록 그보다 내가- 더 오래 살 수 있더라도 / 그가 더 오래 살아야 한다- 나보다- / 나는 죽일 힘만 있고- / 죽을 힘은- 없으니까-
(「내 평생 세워둔 – 장전된 총이었는데 -」 부분)
이 독특한 체험을 제공하는 (독자 자신이 먼지 쌓여 있다가 드디어 쓰이게 된 ‘총’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시에 대해 역자는 “파괴의 힘을 지녔지만 주인/주체가 없다면 아무런 능력도 발휘 못하는 상상력일 수도 있고, 힘과 능력은 있으나 자유 없이 복종하며 주인을 지키는 존재인 노예의 상황일 수도” 있다고 해설한다.
이 시 외에도 디킨슨이 일종의 ‘빙의’를 통해 재현하는 ‘나’는 주로 ‘대상’으로 인식되던 어떤 존재인 경우가 잦다. 소녀 때 어른들에 의해 옷장 안에 갇혔듯이, 이제 산문 속에 갇힌 자 (「그들은 나를 산문 속에 가두었지」), 다들 ‘진리’를 위해 죽을 때 드물게도 ‘아름다움’을 위해 죽은 자(「나 아름다움을 위해 죽었으나 – 드문 일」), 심지어는 아무것도 아닌 자 [nobody] (「난 아무도 아냐! 넌 누구니?」) 등이 “자신을 주어로 말할 때, 자신이 지니고 있는 폭발력과 수동성의 역설을 말하는 언어의 힘”에 주목해 읽는다면 한층 긴장감 넘치는 읽기가 될 것이다.

- ‘파시클’의 첫 책, 디킨슨의 ‘파시클’
파시클 출판사에서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계속 번역하여 소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작년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 7편과 그 시들에 대한 신혜원 작가의 그림을 엮은 ‘그림 시집’ 4권을 스페셜 에디션으로 먼저 펴낸 바 있다. 파시클의 첫 책이 디킨슨이 생전에 자기 시를 세상과 나누던 고유의 방식을 따른 ‘파시클’ 시집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앞으로 이 출판사가 어떠한 마음으로 독자에게 책을 전하고 나눌지에 대한 포부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 첫 출발인 이 시집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실린 시들은 주로 역자가 특히 좋아하는 시들이라고 한다. “에밀리 디킨슨을 읽는 즐거움에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길 바라며 시들을 고르고 옮겼다.
사실 디킨슨의 시에는 전부 제목이 없으며, 그만큼 독자가 읽고 해석하는 바에 따라 다양하고 깊이 있게 읽힐 수 있다. 시집은 그 점을 충분히 존중하고자 원문의 맛을 살리고 원문(영어)도 번역문 바로 옆쪽에 함께 싣는 배려를 했다. 그러면서도 ‘옛날 시’라는 편견에 갇히지 않도록, 앞서 말한 디킨슨의 ‘엄숙함에 대한 거부’ 혹은 ‘발랄한 비틀기’ 등을 잘 드러내는 어투를 사용했다. 장별 구성 역시 임의적인 것으로, 반드시 지켜서 읽을 필요는 없으나 역자가 대략 정리한 기준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1장 〈멜로디의 섬광〉은 시의 의미와 능력에 대한 시들, 2장 〈어떤 비스듬 빛 하나〉는 ‘혼자’ 있는 것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시들, 3장 〈바람의 술꾼〉은 자연에 도취하고 아름다움과 활력이 넘치는 즐거운 시들, 4장 〈장전된 총〉은 기성 사회가 배제해 왔으나 큰 힘과 능력을 숨기고 있는 존재들과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시들, 5장 〈풀밭 속 가느다란 녀석〉은 새, 뱀, 석양, 강아지, 파리 등 주변에서 발견되는 아주 작은 자연의 백성들에 관한 시들, 6장 〈가능 속에 살아〉는 상상력 또는 언어의 능력에 관한 시들, 7장 〈“희망”이란 깃털 달린 놈〉은 디킨슨이 후기에 특히 많이 쓴 지혜의 말, 잠언의 격언들을 담은 시들, 8장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은 사랑의 상실로 인한 슬픔과 아픔에 관한 시들을 모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