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젊은 예술가의 초상
원제 :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1916년)
제임스 조이스 / 민음사 / 2001.3.13
아일랜드가 배출한 세계적인 거장 제임스 조이스의 데뷔작. 소년 스티븐 디덜러스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청년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자전적 요소가 강할 뿐더러, 후에 <율리시스> 등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될 ‘의식의 흐름’ 기법이 어렵지 않게 도입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기숙학교에 다니던 유년기부터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5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일화들은 주인공 스티븐이 예술가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어가는 과정의 안과 밖을 그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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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 세상은 정치와 종교가 삶의 두 버팀목인 혼란스런 아일랜드. 감수성 예민한 스티븐은 그 속에서 성장기의 통과의례를 겪고, 극심한 종교적 죄의식에 시달린다. 하지만 결국 그는 모든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예술가의 삶을 선택하고, 스스로 조국과 종교를 등진 유배생활을 자처해 나선다.
이 성장소설에 방점을 찍게 하는 것은 그 내용 뿐 아니라 형식 덕이기도 하다. 소설은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주인공 스티븐에게 뭔가 다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작가는 주저없이 그의 상념으로 독자를 인도하여 ‘옆길’로 빠진다.
또한 스티븐의 의식의 흐름은 주로 그의 감각에서 촉발된다. 그가 무언가를 만질 때, 볼 때, 맛볼 때, 들을 때, 그의 마음 속에서 어떤 기억과 상상들이 퉁겨져나오는 것이다. 그 다면적이고 풍성한 실타래를 따라가는 것은 어떻게 섬세한 소년의 마음속에서 사건들이 기억으로 재구성되는지, 어떻게 소년의 감수성이 그를 예술가로 이끌어가는지를 알게 한다.
이번 번역본은 이상옥 교수가 76년에 처음 번역했던 것을 전부 다시 손보아 낸 것이다. 역주가 없는 페이지가 거의 없을 만큼 주석에 공을 들여 아일랜드와 조이스에 대한 뒷설명을 붙임으로써, 안 그래도 복잡한 소설의 뉘앙스를 최대한 쉽게 느끼도록 했다.
○ 목차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작품 해설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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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1882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나, 예수회 학교들과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UCD)에서 교육을 받았다. 대학에서 그는 철학과 언어를 공부했으며, 대학생이던 1900년, 입센의 마지막 연극에 관해 쓴 긴 논문이 《포트나이틀리 리뷰》지에 발표되었다. 당시 그는 서정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나중에 《실내악》이란 시집으로 출판되었다. 1902년 조이스는 더블린을 떠나 파리로 향했으나, 이듬해 어머니의 임종으로 잠시 귀국했다. 1904년 그는 노라 바너클이란 처녀와 함께 다시 대륙으로 떠났다. 그들은 1931년 정식으로 결혼했다. 1905년부터 1915년까지 그들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 함께 살았으며, 조이스는 그곳의 벨리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09년과 1912년, 그는 《더블린 사람들》의 출판을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이 작품은 1914년 영국에서 마침내 출판되었다. 1915년 한 해 동안 조이스는 그의 유일한 희곡 《망명자들》을 썼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1916년에 출판되었다. 같은 해 조이스와 그의 가족은 스위스의 취리히로 이사했으며, 조이스가 《율리시스》를 작업하는 동안 그들은 심한 재정적 빈곤을 겪어야 했다. 이 작품은 미국의 잡지 《리틀 리뷰》지에 연재되었다. 연재는 1918년에 시작되었으나, 작품에 대한 외설 시비와 그에 따른 연재 중지 판결로 1920년에 중단되었다. 《율리시스》는 1922년 파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며, 조이스 가족은 양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그곳에 체류했다. 1939년에 《피네간의 경야》가 출판되었고, 이어 조이스 가족은 스위스로 되돌아갔다. 두 달 뒤, 1941년 1월에 조이스는 장궤양으로 사망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초고의 일부인 《영웅 스티븐》이 1944년 저자 사후에 출판되었다.
– 역자: 이상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거쳐 뉴욕주립대학교(스토니부룩)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1965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정년퇴임 후에는 들꽃 탐사에 열중해왔다. 『조셉 콘라드 연구』 및 『이효석의 삶과 문학』 등을 썼고, 산문집 『두견이와 소쩍새』 『가을 봄 여름 없이』와 『이제는 한걸음 물러서서』 외에 번역서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 기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내밀한 기록』 등을 냈다. 근년에는 『이효석전집』(전6권,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을 책임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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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하느님, 아버지와 어머니께 축복을 내리사 저와 함께 살도록 하소서!
하느님, 어린 동생들에게 축복을 내리사 저와 함께 살도록 하소서!
하느님, 단티와 찰스 아저씨에게도 축복을 내리사 저와 함게 살도록 하소서!
그는 성호를 그은 후 재빨리 침대로 올라가서 잠옷의 끝자락을 두 발 밑으로 접어넣고는 싸늘한 하얀 시트 아래서 온몸을 웅크리고 누운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기도를 올려으니 죽어도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겠지. 이렇게 몸이 떨리는 것도 멎을 것이고, 기숙사의 소년들에게 잘 자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덮고 있던 것 너머로 잠시 내다보니 침대 앞과 사면에서 노란 커튼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스등불은 조용히 낮아지고 있었다.
생도감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갔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계단을 내려가서 복도를 따라가는 걸까? 어둠이 보였다. 밤이면 검정 개 한마리가 마차의 등불처럼 눈에 불을 크게 켜고 어둠 속을 나돌아 다닌다는데 그게 정말일까? 그 개는 한 살인자의 유령이라는 것이었다. 무서움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몸을 떨었다. 성의 침침한 현관이 보였다. 옛날 옷을 입은 늙은 하인들이 계단 위에 있는 다리미방에 있었다. 오래전 일이었다. 그 늙은 하인들은 말이 없었다. 그방에는 불이 있었지만 현관은 아직도 어두웠다. 누군가가 현관에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원수(元帥)의 제복인 흰 외투를 걸치고 있었는데 얼굴은 창백하고 기이해 보였으며 한쪽 손으로 옆구리를 누르고 있었다. 그는 이상한 눈초리로 하인들을 바라보았다. 하인들은 그를 쳐다보았고, 주인 어른의 얼굴과 외투를 눈여겨 보며 그가 치명상을 입은 것을 알았다. – 30-31쪽
그러나 그는 배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만약에 마음이란 곳도 아플 수가 있다면 바로 그 마음이 지금 아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레밍이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오다니, 참 고마운 일이었다. 울고 싶어졌다.
그는 팔꿈치를 식탁에 기댄 채 귓바퀴를 닫았다 열었다 해보았다. 그가 귓바퀴를 열 때마다 식당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밤에 기차가 요란하게 달리는 소리였다. 귓바퀴를 닫으면 터널 속으로 들어간 기차처럼 그 요란한 소리가 단절되었다.
설사 너에게 아직도 울 힘이 남아 있어서 너의 눈물이 지옥에 온통 홍수를 일으킬 정도로 참회한다 해도, 네가 인간 세상에 살고 있을 때에 진정한 회개의 눈물 한 방울이면 얻을 수 있었을 하느님의 용서를 이제는 영영 얻지 못하고 말 것이다. 이제 너는 인간 세상에서의 삶을 한 순간이나마 다시 허용해 준다면 회개하겠다고 애원하겠지만, 물론 헛된 일이다. 회개할 시간은 사라졌다.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202쪽
연민은 인간의 고통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엄숙하고 항구적인 것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그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과 결부시키는 감정이야. 공포는 인간의 고통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엄숙하고 항구적인 것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그 고통의 은밀한 원인과 결부시키는 감정이고 -315쪽
이해 가능한 것들의 가장 원만한 관계에 의해서 충족되는 지성이 포착하는 바가 진실이요, 반면에 지각 가능한 것들의 가장 원만한 관계에 의해 충족되는 상상력이 포착하는 바가 아름다움이야. 진실을 향하는 첫걸음은 지성 자체의 윤곽과 범위를 이해하고 사유 행위 자체를 포착하는 것이지. -320쪽
너는 내게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냐만 물어왔어.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말해 주마.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
예수님! 오, 예수님! 예수님!
그는 성난 듯이 머리를 흔들어 그 소리를 귓전에서 떨어낸 후, 썩어가는 오물 사이를 허둥지둥 걸어가는데 혐오감과 쓰라림으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 어머니의 불평, 보이지 않는 여자의 비명 따위가 이제는 그의 오만한 젊음을 꺾기 위해 불쾌하게 위협하는 수많은 소리로 들렸다. 그는 그 소리들의 메아리를 저주하면서 마음으로부터 몰아냈다. 그러나 그가 길을따라 가면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사이로 그에게 바치는 잿빛 아침햇살을 느낀다든지 젖은 잎사귀와 나무껍질이 풍기는 이상한 야성적 냄새를 맡을 때 그의 영혼은 그 모든 참담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71-272p)
P. 155 시구가 그의 입술에서 사라졌고, 분명치 않은 부르짖음과 발언되지 않은 야수적 언어가 그의 두뇌를 밀치고 나왔다.
그의피는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어둡고 더러운 거리를 헤매면서 음침한 골목과 문간들을 기웃거리거나 무슨 소리건 들으려고했다. 좌절한 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야수처럼 그는 혼자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와 동류인 사람과 함께 죄를 짓고 싶었고, 다른 사람에게 함께 죄를 짓자고 강요하고 싶었으며, 죄를지으며 그녀와 함께 희열하고 싶었다.
P. 153 그는 다른 모든 것을 부질없고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곤 하던 그 격렬한 마음의 갈망들을 진정시키고자 열렬히 노력했다. 그는 자기가 지옥에 떨어질 큰죄를 저지르고 있다든지 자기의 생활이 둔사와 허위투성이라는 사실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가 심사숙고하고 있던 그 극악무도한 것들을 실현해 보려는 야망적 욕망 곁에서는 아무것도 신성할 수 없었다…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는 외부 세계의 왜곡된 이미지들 사이를 쏘다녔다.낮에는 새치름하고 순진해 보이던 여인의 모습도 밤이 되어 수면세계라는 그 꾸불꾸불한 어둠을 통해 나타날 때는 음란한 간계로 인해 얼굴이 이지러져 있었고 야수적인 환희로 눈은 빛나고 있었다.
P. 317 그와 마찬가지로 너의 육체가 어떤 나상(裸像)의 자극에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한 신경 계통의 반사 작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예술가가 표현하는 아름다움은 우리들에게 동적인 정서나 순수히 육체적인 감각을 일깨울 수가 없어. 그 아름다움은 미적 정지 상태를 일깨우거나 일깨워야 하고 혹은 유발하거나 유발해야 하지. 그 상태란 곧 이상적인 연민이나 이상적인 공포로서, 내가 아름다움의 리듬이라고 부르는 바에 의해 환기되고 지속되며 결국 해소되기도 하는 하나의 정지 상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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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5 다가오라, 삶이여
P. 21 만약에 마음이란 곳도 아플 수가 있다면 바로 그 마음이 지금 아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 82 부당한 처사였다. 불공평하고도 잔인했다. 식당에 앉아서 그는 자기가 받은 모욕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더올리며 괴로워했다. 결국 그는 혹시 자기의 얼굴에 무엇인가 잘못된 곳이 있어서 나쁜 짓이나 꾀할 학생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었고, 거울을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얼굴에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므로 그 처사는 잔인하고 부당하고 불공평했다.
P. 102 그는 자기 영혼이 그동안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던 그 실체 없는 이미지와 실제 세상에서 맞딱드리고 싶었다. 그는 어디서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인도하고 있던 어떤 예감은 그가 공공연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결국 그 이미지와 마주칠 수 있을 것임을 말해주었다. 아마도 어느 집 문간에서, 혹은 보다 은밀한 곳에서 오랜지기들이 만나듯이, 마치 만나자는 약속을 미리 해두었던 것처럼, 그들은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P. 149 스티븐은 아버지와 그의 두 친구들이 지난날을 회고하며 축배를 들기 위해 세 개의 유리잔을 카운터에서 치켜드는 것을 보았다. 운명과 기질의 차이가 그 자신과 그들을 심연처럼 갈라놓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달이 마치 자기보다 연소한 지구를 비추듯이 그의 마음은 그들의 갈등과 행복과 회환을 싸늘하게 비추고 있었다.
P. 149 그의 아동기는 죽었거나 상실되었고, 순박한 환희를 누릴 수 있는 영혼 또한 아동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불모의 껍질로 남은 달처럼 되어 삶 속을 떠돌고 있었다.
P. 149 그대의 얼굴이 창백함은
하늘을 오르며 땅을 굽어보며
외로이 떠도는 데 지쳤기 때문인가?
P. 158 그녀의 입술은 어떤 모호한 언어를 전달하는 매개체인 양 그의 입술뿐만 아니라 두뇌가지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입술 사이에서 그는 어떤 정체불명의 겁먹은 듯한 압력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것은 죄의 황홀경보다 더 어둡고 소리나 냄새보다도 더 부드러운 것이었다.
P. 164 기도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영혼이 파멸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에 기도를 올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되었을 것인가?
P. 175 스티븐이 말이 없는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짙은 안개가 그의 마음을 감싸는 듯했다. 그는 그 안개가 걷히고 그 속에 숨어 있던 것이 나타날 때까지 멍한 심경으로 기다렸다.
그는 유리창에 얼굴을 기댄 채 어두워지고 있는 거리를 내다보았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런 것이 바로 삶이었다.
(바로 삶이었다. 짙은 안개와 오락가락하는 모습들…)
P. 263 이제 그의 소년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제 운명을 피해 뒷걸음 치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상처에 대한 수치심을 혼자서 곰곰이 되씹으며 오욕과 발뺌의 집에서 퇴색한 수의와 건드리면 시들어버릴 화관을 걸치고서도 제왕처럼 행세하려 했던 그의 영혼이 아니었던가? 아니, 그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P. 305 ˝난 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도무지 그 문제엔 흥미가 없는걸. 너도 그걸 잘 알면서 그러니. 왜 그따위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거니?˝
˝그렇다면 너는 반동분자구나˝
˝너 따위가 목검을 휘두른다고 내가 겁을 낼 줄 아니?˝
˝알아듣기 쉽게 말하라고˝
˝네 우상니나 잘 지켜. 우리에게 예수 같은 분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좀 정당한 예수를 가지도록 하자고˝
P. 313 영혼이란 내가 말했던 그런 순간에 처음 탄생하는 거야. 그것은 더디고 어두운 탄생이며 육체의 탄생에 비해 더 신비한 거야. 이 나라에서는 한 사람의 영혼이 탄생할 때 그물이 그것을 뒤집어 씌어 날지 못하게 한다고. 너는 나에게 국적이니 국어니 종교니 말하지만, 나는 그 그물을 빠져 도망치려고 노력할거야
P. 315 연민은 인간의 고통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엄숙하고 항구적인 것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그 고통을 격고 있는 인간과 결부시키는 감정이야. 공포는 인간의 고통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엄숙하고 항구적인 것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그 고통의 은밀한 원인과 결부시키는 감정이고.
P. 374 내가 그것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것은 2천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뭉쳐진 권위와 존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한 상징에 대해 내가 거짓된 경의를 표할 때 내 영혼 속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화학 작용이라고.
P. 379 너는 내게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냐만 물어왔어.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말해 주마.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
P. 380 외로운 것, 아주 외로운 것. 너는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너는 그 말의 뜻이라도 아니?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친구가 하나도 없음을 의미한다고.
그런 위험 정도야 감수할 용의가 있어
P. 390 다가오라, 삶이여! 나는 체험의 현실을 몇백만 번이고 부닥쳐보기 위해, 그리고 내 영혼의 대장간 속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내 민족의 양식을 벼리어내기 위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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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주인공 스티븐 디딜러스의 유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성장을 그린 교양소설로 특히 그 중에서도 예술가의 성장 과정을 그린 예술가 소설이다. 한편 스티븐은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 자신을 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자전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의 서술은 주인공의 자아상 탐색과 정신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제임스 조이스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또 미래를 위해 자신을 발견해 나가고, 자신을 묶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면서 성장기를 보내는 스티븐을 통해,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은 또한 실험적인 기법의 사용, 감각적 현실 파악 방식으로 인해 서구 모더니즘 사상을 대변하고 현대 소설의 형식적 전통을 선도한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다. 특히 이 소설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이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형상 완벽한 3인칭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론적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이 본격적으로 구사될 수는 없겠지만 이 소설 도처에서 스티븐의 의식 세계는 이 현대적 기법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표출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뒤이어 나온 조이스의 문제작『율리시스』속에서 본격적으로 구사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유년기에서 대학 시절에 이르는 동안 주인공이 겪는 지적, 종교적, 예술적 부딪힘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각 사건들의 연관은 흩어져 있는 수천 조각의 퍼즐처럼 나타난다. 더러는 <플래시 백>수법을 통해 회고되기도 하고, 실제로는 여러 날에 걸친 사건 및 장면들이 복잡하게 기록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또 이러한 스포트라이트 식의 서술 방법에는 조이스 자신이 에피퍼니라고 부른 바 있는 상징적 장면들의 계시적 의미가 드러난다.
그리고 조이스를 현대적인 작가로 만드는 동시에, 이 소설을 현대적인 소설로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이 소설에서 현실 파악 방법이다. 스티븐의 현실 파악에서 조래의 소설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감각적 현실 파악 방법이다. 픽, 팩, 퍽, 폭 소리를 내는 크리켓 방망이 소리에서 분수대에 솟은 물방울이 낙수반에 떨어지는 감각적 이미지를 느끼거나, 마음속으로 오만과 희망과 욕망이 약초처럼 향기를 뿜어올리는 것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 예인데, 이는 현대 문학에 있어서의 감수성의 혁명이라고 일컬어질 만한 것이다.
○ 추천평
기숙학교에 다니던 유년기부터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5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일화들은 주인공 스티븐이 예술가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어가는 과정의 안과 밖을 그려보인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 세상은 정치와 종교가 삶의 두 버팀목인 혼란스런 아일랜드. 감수성 예민한 스티븐은 그 속에서 성장기의 통과의례를 겪고, 극심한 종교적 죄의식에 시달린다. 하지만 결국 그는 모든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예술가의 삶을 선택하고, 스스로 조국과 종교를 등진 유배생활을 자처해 나선다.
이 성장소설에 방점을 찍게 하는 것은 그 내용 뿐 아니라 형식 덕이기도 하다. 소설은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주인공 스티븐에게 뭔가 다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작가는 주저없이 그의 상념으로 독자를 인도하여 ‘옆길’로 빠진다.
또한 스티븐의 의식의 흐름은 주로 그의 감각에서 촉발된다. 그가 무언가를 만질 때, 볼 때, 맛볼 때, 들을 때, 그의 마음 속에서 어떤 기억과 상상들이 퉁겨져나오는 것이다. 그 다면적이고 풍성한 실타래를 따라가는 것은 어떻게 섬세한 소년의 마음속에서 사건들이 기억으로 재구성되는지, 어떻게 소년의 감수성이 그를 예술가로 이끌어가는지를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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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