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정원의 수도사 :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의 잃어버린 삶과 업적
로빈 헤니그 / 사이언스북스 / 2006.4.28
완두콩 교배로 현대 유전 공학의 기원을 세운 그레고어 멘델 (Gregor Mendel, 1822~1884)의 삶과 연구, 그리고 그 사후의 논의들을 소개한다. 공식적으로 남긴 과학 관련 문헌은 3편의 짧은 논문, 편지 7통, 짧은 자기 소개서가 전부이지만 묵묵히 수천 그루의 완두콩을 키워나가며 유전 법칙을 발견한 그의 연구를 자세히 들여다 본다.
책은 연극의 형식을 차용하여 구성되어 있다. 멘델의 삶과 업적을 재구성한 1막, 그리고 그 이후 연구 결과를 발표한 멘델의 후반 생을 다룬 막간극, 그리고 멘델 사후 16년이 지나 멘델의 업적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려주는 2막으로 짜여져 있다. 그만큼 멘델의 연구 결과는 그가 살아있던 당시에 그의 업적에 위기감을 느낀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폄하되고 깎아내려 졌다는 것.
멘델의 연구가 있은지 35년 후 그의 업적이 어떻게 재조명되었는지에도 주목하고 있다. 세 나라에서 세 명의 과학자가 동시에 멘델의 잊혀진 논문에서 연구 성과들을 캐내고, 이를 통해 유전학 (Genetics)이 탄생하고, 현대 생명 과학의 근간이 형성된 것. 책은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며 유전 공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에 유전학의 창세기를 돌아본다.
그 외에도 가난한 자영농의 아들로 태어나 학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수도사가 된 이야기, 오스트리아의 수도원에서 보낸 은둔자와 같은 조용한 삶, 타고난 부끄러움 때문에 교원 시험을 망친 일화, 수도원장이 된 후 스트레스로 고집불통 노인네가 된 이야기 등 유쾌하고 성실하지만 수줍음 많은 과학자 멘델의 매력을 충실히 보여주는 일화들을 다수 실었다.
○ 목차
프롤로그 – 1900년 봄
제1막
1장 온실에서
2장 남쪽으로 난 정원
3장 과학과 신 사이에서
4장 빈에서의 좌절
5장 정원으로 돌아오다
6장 잡종 교배
7장 첫 번째 수확
8장 이브의 작은 인간
9장 꽃피는 다윈 사상
10장 정원에 대한 성찰
11장 2월의 보름달
막간극
12장 침묵
13장 나의 시대가 오리라
제2막
14장 동시에 피어나는 꽃
15장 돌아온 멘델
16장 수도사의 불도그
17장 어떤 죽음
18장 멘델 법칙의 창안
19장 멘달 광장의 조각상
에필로그 – 또 다른 봄
감사의 인사
주석과 문헌
참고 문헌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 저자소개 : 로빈 헤니그
‘뉴욕 타임스 매거진’, ‘디스커버’, ‘USA 투데이’ 등에서 과학사와 의학사를 중심으로 과학 칼럼을 쓰며 과학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춤추는 매트릭스(Dancing Matrix)>, <여자는 어떻게 늙어가는가> 등이 있다.
– 역자 : 안인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밤베르크대학에서 유학했으며, 1990년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비롯해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 《발자크 평전》,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등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여 츠바이크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1995년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로 제2회 ‘한독문학번역상’, 2000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로 ‘한국번역가협회 번역 대상’을 수상했으며, 독일어권 대표 번역자이며 인문학자로서 유럽 문화사의 중요 저작들을 끊임없이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게르만 신화와 바그너 히틀러》,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3》 등이 있으며, 《데미안》, 《모든 역사의 시작》,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윌 듀런트의 역사의 교훈》,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역사 속의 영웅들》 등 다수의 문학 작품과 인문교양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 책 속으로
모라비아의 봄은 교배하기에 완벽한 시기이다. 꽃들이 방금 봉우리에서 나왔지만 아직은 피기 전이었다. 멘델은 한 손에는 족집게를, 다른 손에는 낙타털로 만든 붓을 들고서 완두의 대열 사이로 걸어 다녔다. 힘들게 허리를 굽히고 두 부분으로 된 꽃의 속 켜 (용골판이라고 알려진 부분)를 열고 수술을 드러냈다. 그들은 기다란 안테나 모양의 대들로 끝에는 아주 조그맣고 노란 둥근 덩어리 (꽃밥)가 달려 있었다. 꽃밥은 가루 형태로 된 노란 꽃가루를 가지는데, 바로 웅성 배우자의 원천이었다. 멘델은 족집게로 꽃밥을 잡아 뽑아 꽃가루를 제거하고 그로서 식물의 정자를 효과적으로 제거하였다.
수도사가 식물의 성적 기능을 없애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그러나 멘델은 생명의 사실에 놀라 뒷걸음치거나 물러난 적이 없었다. 그는 짝짓기와 출산의 리듬이 일상적인 시골에서 자랐다. 한창 사춘기 소년들인 학생들은 때때로 번식에 대한 멘델의 강의에 당황해서 몇 마디 하거나 킥킥거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이 점잖은 신부는 간혹 이렇게 소리쳤다. ‘바보 같은 소리들 하지 마라! 이건 자연의 일이란 말이다!’ – 본문 92쪽에서
○ 출판사 서평
유전학의 역사에서 잃어버린 35년, 사람들은 왜 그레고어 멘델의 업적을 감추려 했는가?
유전학의 아버지 그레고어 멘델의 잊혀진 삶과 업적을 살펴본다.
멘델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까지는 정원사의 이야기다.
끈질기게 식물을 보살피고, 채집하고, 헤아리고, 그 비율을 계산하고, 그 놀라운 발견을 침착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모습, 그리고 자기 말을 이해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이것은 한 세대 일찍 태어난 조용한 혁명가의 이야기다.
○ 그레고어 멘델 (Gregor Mendel, 1822 ~1884)에 대하여
1822년 7월 20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메렌 지방 (현재의 체코)의 작은 마을인 하인첸도르프에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나 22일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어려서는 리프니크에 있는 피아리스트 학교에 다니다가 이후 오파바에 있는 인문고등학교, 즉 김나지움에 진학했고, 1840년 올뮈츠 에 있는 철학연구소 2년제 과정에 입학해 1년간의 휴학 끝에 1843년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정원 일, 꿀벌 키우기 등에 관심이 많았으나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철학연구소를 졸업한 뒤, 경제적 문제도 해결하면서 공부하기 위해 1843년부터 브륀에 있던 성토마스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멘델은 기상학, 식물학, 물리학, 수학 등을 자유롭게 공부했으며, 특히 온실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었다. 1851년부터는 빈 대학 물리학과 수업 보조 조교 생활을 시작했고, 수학, 화학, 곤충학, 고생물학, 식물학, 식물생리학 등의 강의를 수강했다. 특히 도플러 효과로 유명한 도플러 교수의 실험물리학 강의를 들으면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서도 이해했다. 1853년에는 다시 브륀으로 돌아와 1854년부터 완두콩을 교배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