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알베르 카뮈, 까뮈 / 책세상 / 2000.10.31
20세기 최고의 지성 알베르 카뮈(까뮈)의 대표적인 희곡작품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두 편이 우리나라 대표적 카뮈 연구가인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우리에게 선보인다.
‘정의의 사람들’은 정의와 따듯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고뇌하고 행동하는 젊은이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계엄령’은 이미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히는 ‘페스트’와 같은 주제를 가지면서 또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색다른 카뮈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 목차
1. 정의의 사람들
2.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에 부친 서평 의뢰문과 소개의 말/알베르 카뮈
『정의의 사람들』해설/일로나 쿰
『계엄령』서문/피에르 루이 레
카뮈 연보/로제 키요
○ 저자소개 : 알베르 카뮈 (까뮈)
1913년 알제리의 몬도비(Mondovi)에서 아홉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지만 1930년 폐결핵으로 중퇴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고 대학을 중퇴한 뒤에도 가정교사, 자동차 수리공, 기상청 인턴과 같은 잡다한 일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평생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를 만났다. 1935년 플로티누스(Plotinus)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학사 학위 과정을 끝냈다. 아마추어 극단을 주재했고 가난했지만 멋쟁이였으며 운동을 좋아했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면적인 갈등을 겪다 탈퇴했다. 진보 일간지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단번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에세이《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 등을 발표했다.1947년에 7년 동안 집필한 《페스트》를 출간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비평가상을 수상했고 4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47세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사고 당시 카뮈의 품에는 발표되지 않은 《최초의 인간》 원고가, 코트 주머니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전철 티켓이 있었다고 한다.
– 역자 : 김화영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이다. 저서로는 『행복의 충격』, 『김화영의 번역수첩』, 『여름의 묘약』,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랑스 문학 산책』, 『바람을 담는 집』, 『발자크와 플로베르』,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 『지상의 양식』, 『마담 보바리』, 『섬』, 『지중해의 영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어린 왕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팔월의 일요일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짧은 글 긴 침묵』, 『뒷모습』, 『예찬』, 『내 생애의 아이들』, 『걷기예찬』 외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칼리아예프 그러나 우리는 인민을 사랑하고 있어.
도라 사랑하고 있지. 그 말은 맞아. 기댈 곳 없는 그저 막연한 사랑으로, 불행한 사랑으로 우리는 인민을 사랑하고 있어. 인민과 멀리 떨어진 방구석에 죽치고 들어앉아서 제 생각에만 골몰한 채 살고 있는 거야. 그럼 과연 인민은 우리를 사랑하고 있을까?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인민은 말이 없어. 이 막막한 침묵, 이 막막한 침묵 ….
칼리아예프 그러나 사랑이란 바로 그런 거야. 모든 것을 다 주는 것, 보상받을 희망도 없이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것 말야.
도라 그럴지도 모르지. 그건 절대적인 사랑, 순수하고 고독한 기쁨이지. 과연 내 가슴을 태우고 있는 사랑은 바로 그거야. 그렇지만 어떤 때는 사랑이란 좀더 다른 어떤 것이 아닐까, 독백이기를 그치고 더러는 대답도 들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난 이런 상상을 해봐. 하늘에는 태양이 빛나고 고개가 부드럽게 숙여지고 마음은 거만함에서 벗어나고 두 팔이 활짝 벌려지는 거야. 아! 아네크, 잠시 동안만이라도 세상의 이 참혹한 비참을 잊고서 몸과 마음을 푸근히 맡겨둘 수만 있다면! 잠시 동안만이라도 다 잊어버리고 제 생각에만 몰두하는 것, 그런 걸 생각해볼 수 있어?
칼리아예프 물론이지, 도라. 그게 바로 부드러움이라는 거지.
도라 너는 언제나 말을 잘 알아들어, 바로 그래. 그게 바로 부드러움이라는 거야. 그런데 너는 그걸 정말 실감할 수 있어? 정의라는 것을 진정 가슴속에서 부드럽게 사랑하고 있어? (칼리아예프는 말이 없다) 너는 우리 인민을 그런 부드럽고 푸근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로 복수와 반항에 불타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어? 어느 쪽이야? (칼리아예프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것 봐. (도라는 칼리아예프 쪽으로 간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럼 나는 어때? 너는 나를 그런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어? — pp.73-74
칼리아예프 그러나 우리는 인민을 사랑하고 있어.
도라 사랑하고 있지. 그 말은 맞아. 기댈 곳 없는 그저 막연한 사랑으로, 불행한 사랑으로 우리는 인민을 사랑하고 있어. 인민과 멀리 떨어진 방구석에 죽치고 들어앉아서 제 생각에만 골몰한 채 살고 있는 거야. 그럼 과연 인민은 우리를 사랑하고 있을까?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인민은 말이 없어. 이 막막한 침묵, 이 막막한 침묵 ….
칼리아예프 그러나 사랑이란 바로 그런 거야. 모든 것을 다 주는 것, 보상받을 희망도 없이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것 말야.
도라 그럴지도 모르지. 그건 절대적인 사랑, 순수하고 고독한 기쁨이지. 과연 내 가슴을 태우고 있는 사랑은 바로 그거야. 그렇지만 어떤 때는 사랑이란 좀더 다른 어떤 것이 아닐까, 독백이기를 그치고 더러는 대답도 들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난 이런 상상을 해봐. 하늘에는 태양이 빛나고 고개가 부드럽게 숙여지고 마음은 거만함에서 벗어나고 두 팔이 활짝 벌려지는 거야. 아! 아네크, 잠시 동안만이라도 세상의 이 참혹한 비참을 잊고서 몸과 마음을 푸근히 맡겨둘 수만 있다면! 잠시 동안만이라도 다 잊어버리고 제 생각에만 몰두하는 것, 그런 걸 생각해볼 수 있어?
칼리아예프 물론이지, 도라. 그게 바로 부드러움이라는 거지.
도라 너는 언제나 말을 잘 알아들어, 바로 그래. 그게 바로 부드러움이라는 거야. 그런데 너는 그걸 정말 실감할 수 있어? 정의라는 것을 진정 가슴속에서 부드럽게 사랑하고 있어? (칼리아예프는 말이 없다) 너는 우리 인민을 그런 부드럽고 푸근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로 복수와 반항에 불타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어? 어느 쪽이야? (칼리아예프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것 봐. (도라는 칼리아예프 쪽으로 간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럼 나는 어때? 너는 나를 그런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어? — pp.73-74
○ 출판사 서평
카뮈는 『정의의 사람들』에 대해 “이 작품의 모티브는 역사상 실제로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의 사람들』이 역사극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나의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했었고 내가 말하는 바와 같이 행동했다.”고 밝히고 있다. 심지어 그는 주인공에게 실제 인물의 이름 – 칼리아예프 – 을 그대로 붙이기도 했다. 카뮈는 암살이라는 가장 잔혹한 과업을 수행하는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마음을 간직했던 그들에 대한 “존중과 찬미의 심정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도 고백한다.
이 작품의 칼리아예프는 카뮈의 그 어떤 인물보다도 더 확실한 작가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도 있고 즐거움도 엄연히 있다”고 못박아 말하는 그는 참여적 인간과 예술가의 이중적 열망을 동시에 요약한다. 카뮈 역시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억압과 폭력에 대해 항의를 표하거나 1949년 사형 선고를 받은 그리스 공산당원들의 옹호 운동을 벌이고,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을 인정한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유네스코를 탈퇴하는 등 지성과 행동을 겸비한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반항의 정신에 연민의 정신을 결합하는 섬세한 살인자들”이 등장하는 이 『정의의 사람들』은 앞서 1944년에 초연된 『칼리굴라』와 마찬가지로 100회 이상의 공연 실적을 올리며 비평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카뮈는 『전투 Combat』지에 “우리의 20세기는 공포의 세기다”라고 쓴 바 있다. 『계엄령』의 배경 또한 공포로 점철된 한 도시다. 카디스의 시민들은 갑작스럽게 출현한 혜성, 창궐하는 페스트, 그리고 새로운 통치자에게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끝까지 이에 굴복하지 않고 페스트와 정면으로 맞서는 디에고 역시 어쩌 수 없는 재앙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페스트를 일시적으로나마 물리치는데, 그에 결정적으로 일조한 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빅토리아의 사랑이다.
『계엄령』은 매우 스펙터클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카뮈는 ‘일러두는 말’에서 “서정적인 독백에서 군중극에 이르기까지 무언극, 단순한 대화, 소극, 코러스 등을 포함하는 모든 연극적 표현 양식들을 혼합”하고자 시도했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이 작품은 혜성의 출현, 강풍, 코러스의 등장, 장중하고 역동적인 대사를 구사하며 한편으로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극을 상정한다.
하지만 관객이나 비평가들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어서 1948년 10월에 초연되었을 당시 23회의 공연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정의와 연민, 부조리라는 카뮈의 중심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이는 동시에 극작가로서의 그의 역량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 추천평
나는 심지어 『정의의 사람들』의 주인공 칼리아예프에게는 그가 실제로 지녔던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도록 했다. 나태한 상상력 때문이 아니라 가장 잔혹한 과업을 수행하는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마음을 간직했던 그 남자들과 여자들에 대한 존중과 찬미의 심정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 때 이후 우리는 진보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이 예외적인 영혼의 소유자들을 짓눌렀던 증오심은 이제 안락한 체제로 변했다. 그럴수록 더욱 이 위대한 인간들의 그림자를, 그들의 올바른 반항을, 그들의 힘겨운 동지애를, 그들이 살인 행위와 일치시키기 위해 바친 그 엄청난 노력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고 그럴수록 더욱 우리의 변함없는 충정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알베르 카뮈, <서평의뢰문> 중에서
20세기 초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5막극 『정의의 사람들』은 1905년 러시아 황제의 숙부인 세르게이 대공을 암살한 모스크바의 사회주의 테러리스트들에게서 모티브를 따오 것으로 정의와 인간애 사이에서 고뇌하고 행동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막이 열리면 다섯 사람의 테러리스트가 한데 모여 모의를 한다. 시인으로 행복한 아름다움을 애호하며 삶에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목적 하나로 살인을 감행하는이반 칼리아예프, 그룹의 지도자이며 인정 많은 인물 보리스 아넨코프, 극단주의자 스테판 페도로프, 열정적이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젊은이 알렉시스 부아노프, 그리고 사랑과 정의의 감정에 넘치지만 연민의 정 또한 역제하지 못하며 칼리아예프를 사랑하는 도라 돌로프가 그들이다.
내일의 러시아를 위하서라면 희생시키지 못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스테판, 그리고 인간주의를 앞세우는 칼리아예프와 도라는 격렬하게 논쟁하며 대립하지만 결국 리더 아넨코프의 결정에 따라 칼리아예프는 다음 기회를 얻게 되고 결국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체포되어 사형당한다.
5부로 구성된 『계엄령』은 카뮈가 1947년에 발표한 소설 『페스트』와 동일한 소재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형식과 내용은 매우 다르다. 배경은 스페인의 항구 도시 카디스. 갑자기 불길한 혜성이 출현하여 도시는 한순간 공포에 휩싸이는데, 그 와중에 누군가 쓰러지고 그가 페스트에 감염되었음이 밝혀진다. 사람들은 서로들 자신의 안전을 챙기기에 바쁘지만 이 때 제복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난다. 여비서를 대동한 그 남자는 자신을 ‘페스트’라고 소개하고 총독의 모든 권력을 빼앗아 도시를 장악해나간다.
페스트가 통치하는 도시는 공포와 침묵, 그 자체다. 사람들은 죽어가며, 식료품은 배급되고 집은 징발된다. 통행과 회합 역시 제한받고 사람들은 재갈을 입에 물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정의를 앞세운 청년 디에고는 공포 속에서도 용감하게 페스트에 맞서는데 사랑하는 여인 빅토리아를 구해내는 대신 자신을 희생한다. 디에고와 민중들의 저항과 사랑의 힘에 페스트는 일시적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카디스에 아직 평화와 행복은 오지 않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