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한영 합본) : 고전 여성 문학의 향연
루이자 메이 올콧, 샬럿 브론테, 실비아 플라스,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루시 모드 몽고메리, 메리 셸리,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앤 브론테, 크리스티나 G. 로세티, 마거릿 풀러, 엘라 휠러 윌콕스, 에이미 로웰 / 봄날에 / 2019.5.15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개정판. 여성에겐 어떠한 권리도 없던 시대를 살았던 여성 시인들의 시를 엮고 삶을 담았다. 19세기에는 사회적인 편견과 제약 때문에 여성 작가 대부분은 가명으로 책을 출간해야 했고, 여성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도 했다. 수많은 난관도 무색하게 글쓰기를 기어코 업으로 삼았던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시를 소개한다.
○ 목차
– 제인 오스틴
연민에 부치는 시 / 두통으로 침대에 누우니 / 젊은 친구를 위한 찬사 / 두통이 심해요 / 이 쪼그마한 쌈지 / 봐요, 그들이 와요
– 에밀리 디킨슨
견디려 밤을 공유하고 / “희망”은 날개가 달린 것 / 고요한 화산의 생은/ 광폭한 밤 광폭한 밤! / 이것은 세상에 보내는 나의 편지다 / 나는 아무도 아니에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의 강은 그대에게로 흐르고 / 좋은 아침이에요 한밤중이여 / 작디작은 배 한 척이 / 고통엔 망각의 요소가 있어 / 날아가는 것이 있으니 / 가슴은 우선 기쁨을 갈구하며 / 상처 입은 사슴은 가장 높이 뛰어오르고 / 상처받은 가슴 하나 위로할 수 있다면 / 영혼이여, 당신은 다시 주사위를 던질 건가요? / 나는 아름다움을 위해서 죽었답니다 / 진실을 모두 말하되 에둘러서 말해주오 / 새 한 마리가 오솔길로 내려앉아 / 내가 죽음을 찾아갈 수 없었기에 / 언제나 사랑했다는
– 샬럿 브론테
삶 / 후회 / 정열 / 기쁨 / 앤 브론테의 죽음에 바치는 시
– 에밀리 브론테
해는 지고 / 과거, 현재, 미래 / 추모 / 사랑과 우정 / 희망 / 연민 / 오, 내가 잠든 동안은 / -에게 바치는 시
– 앤 브론테
어느 바람 부는 날 숲에서 / 오, 나의 희망을 훔쳐갔구나 / 갇힌 비둘기 / 호소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능숙하지 못함 / 기쁨 속에 고통이 /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고요? (소네트 43) /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소네트 14) / 내 미래는 내 과거를 오롯이 따라 하지 않을 거예요 / 나는 환영을 친구삼아 살았어요 (소네트 26) /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게 옳을까요? (소네트 9) / 다시 말해주세요, 한 번 더 (소네트 21) / 처음 키스하던 때, 그는 (소네트 38)
– 크리스티나 로세티
노래 / 이브의 딸 / 기억해주세요 / 첫날 / 오르막길 / 바닷가에서 / 마침내 잠들었구나 / 생일
– 죠지 엘리엇
달콤한 결말이 왔다 가네요, 사랑이여 / 런던의 한 응접실에서 / 잃어버린 날을 꼽아보라 / 세상은 위대하네 / 두 연인
– 메리 셸리
부재 / 오 그대에게 노래할 테니 들어주세요 / 사랑이 충만한 그대의 진한 눈빛을 잊을 테요 / 오, 꿈으로 나에게 와주오, 내 사랑
– 루이자 메이 올컷
금빛 그림자는 밝게 빛나고 / 비누 거품의 노래 / 장미 가족 – Song II / 흰 곱슬머리 한 가닥
– 마가렛 풀러
/ 불완전한 사고 / 사랑의 부재 / 영국 문학의 비평 : 시인과 비평가의 대화 (1846)
– 엘라 휠러 윌콕스
세상의 방식 : 고독 / 당신을 사랑합니다 / 고단한 / 당신은 어느 쪽인가? / 후회 / 사랑이 오네요 / 운명의 바람 : 범선
– 루시 몽고메리
이리 와, 잠깐 쉬어요 / 황혼 / 그대 / 행복을 찾는 사람 /
– 에이미 로웰
고집스러운 생각 / 택시 / 꽃잎 / 막간 / 부재 / 역설 / 연인 / 중년 / 비율 / 눈은 내리고
○ 저자소개 : 루이자 메이 올콧, 샬럿 브론테, 실비아 플라스,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루시 모드 몽고메리, 메리 셸리,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앤 브론테, 크리스티나 G. 로세티, 마거릿 풀러, 엘라 휠러 윌콕스, 에이미 로웰
– 루이자 메이 올콧
1832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저먼타운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에이머스 브론슨 올컷은 저명한 초월주의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가였고, 어머니 애비게일 메이 올컷은 상상력이 풍부한 여성이었다. 올컷은 인내와 절제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교육철학을 온몸으로 떠안고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벗이었던 초월주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여성주의자 마거릿 풀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어려운 가정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바느질, 가사노동, 가정교습, 글쓰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남북전쟁중인 1862년에 자원입대하여 북군의 야전병원에서 간호병으로 복무하다 장티푸스 폐렴을 앓은 뒤 평생 건강문제로 시달린다. 당시 야전병원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병원 스케치』(1863)는 그에게 작가로서의 첫 성공을 안겨주었다. 그뒤 1863년부터 1870년까지 A. M. 버나드라는 필명 또는 익명으로 고딕풍의 선정소설들과 스릴러들을 발표했다.
여성주의적 관점과 노예해방사상 등 급진적인 사상이 여실히 담겨 있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이후 여성주의 문학연구자들에게 새로이 발굴되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868년과 이듬해에 ‘소녀들을 위한 책’ 『작은 아씨들』 1, 2권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명성을 얻었다.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한 이 작품이 굉장한 인기를 끈 덕분에, 올컷은 재정적인 안정을 확보하고 작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후 『구식 소녀』, 『작은 신사들』, 『조의 소년들』 등의 아동문학과 『변덕』, 『일』 등의 성인문학을 펴냈다. 생의 말년까지 여성운동과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올컷은 1888년 3월 보스턴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 샬럿 브론테
영국 요크셔주의 브래드퍼드에서 성공회 목사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다섯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여덟살 때 네 자매가 함께 카우언브리지 기숙학교에 입학했으나, 극도의 열악한 환경으로 이듬해에 두 언니마저 폐결핵에 걸려 사망한다. 어린 샬럿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남긴 이 경험은 훗날 『제인 에어』(1847)의 로우드 기숙학교로 재현된다. 남은 세 자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는 자신들만의 가상세계를 창조해 놀이처럼 글을 쓰며 성장한다. 1831년 로헤드 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간 샬럿은 1835년부터 1838년까지 그곳에서 교사로 일한다. 1842년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품고 벨기에 브뤼셀로 유학을 떠나, 에제 부인의 기숙학교에서 학생 겸 영어 교사로 2년간 지낸다. 이때의 경험이 『빌레뜨』(1853)의 바탕이 되었다. 1846년 에밀리, 앤과 함께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를 펴내고, 1847년 『제인 에어』를 출간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같은 해에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아그네스 그레이』도 출판되어 1847년은 브론테 가족에게는 물론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됐다. 『제인 에어』에서 마지막 소설인 『빌레뜨』까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정신적 독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던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 ‘불온한 책’으로 취급되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오늘날엔 선구적인 페미니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밖에 장편소설 『셜리』(1849), 처음으로 집필한 장편이지만 사후에야 출간된 『교수』(1857) 등을 남겼다. 독신을 고집했던 샬럿은 1854년 아버지 교회의 부목사인 아서 벨 니컬스와 결혼하지만, 이듬해 봄 임신 중에 건강이 악화되어 서른여덟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실비아 플라스
미국의 시인, 소설가. 1932년 10월 27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처음 <보스턴 헤럴드Boston Herald>에 시 작품을 실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문학적 영감이 풍부했다. 1950년에 스미스대학 장학생으로 입학해 문학을 공부했으며 우등으로 졸업 후 1955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이때 만난, 촉망받는 시인 테드 휴스와 1956년 결혼하고 1957년부터 이 년 동안 모교인 스미스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재직했다. 1960년 10월에 첫 시집 『거대한 조각상 The Colossus and Other Poems』을 출간했다. 같은 해 4월에 딸 프리다가 태어났고 1962년에 아들 니콜라스가 태어났다. 1962년 10월에 테드 휴스와 별거에 들어갔으며, 두 아이를 키우다 1963년 2월 11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죽기 몇 주 전 자전적 소설 『벨 자 The Bell Jar』(1963)가 빅토리아 루커스 Victoria Lucas라는 가명으로 출간되었으며 사후에 시집 『에어리얼Ariel』(1965) 『호수를 건너며 Crossing the Water』(1971) 『겨울나무 Winter Trees』(1972)가 출간되었다. 1981년 테드 휴스가 엮은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The Collected Poems』은 이듬해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시 부문에서 작가 사후에 출간된 책이 퓰리처 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며 지금까지 유일하다.
– 에밀리 디킨슨
1830년 12월 10일 매사추세츠 (Massachusetts)의 애머스트 (Amherst)에서 변호사이자 정치가, 대학 이사였던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 (Edward Dickinson)과 어머니 에밀리 노크로스 (Emily Norcross)의 사이에서 세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애머스트에서 살았다.
또한 그녀는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은둔 생활을 했는데, 1872년 이후로는 의사도 집으로 찾아와 약간 열린 문틈으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보며 진찰을 해야 했을 정도로 과도한 대인 기피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디킨슨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그녀의 악화된 시력은 물론,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병약한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딸로서의 책임감, 종교 문제, 아버지와의 사고방식의 차이, 식구들 사이에서의 경쟁의식, 그리고 주 의원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로 인해 끊임없이 드나들던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거부감 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로, 그녀의 생애에 걸쳐 몇 번 있었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위기를 들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바깥세상과 점점 담을 쌓게 된 것이다. 특히 디킨슨을 “북극광처럼 빛나는” 존재로 여기던 로드 판사가 1884년에 죽자 실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다가, 그녀 자신의 건강까지 악화되어 그녀조차 1886년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녀는 55년 5개월 5일간의 생애를 마치게 된다.
디킨슨은 초등교육 과정을 거친 후, 애머스트 아카데미 (Amherst Academy)에서 희망하는 강좌를 선택해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과 문예 창작 훈련을 받았으며, 약 1년간의 신학교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이 밖의 정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성서보다는 문학작품에 더 많은 흥미를 가졌던 그녀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과 창작에 대한 열의와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깊이 탐독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녀의 삶과 자아 탐색 정신이 세상과 단절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지만, 사실 그녀는 실제로 만나 접촉을 하지는 않았어도, 서신을 통해 당대 최첨단의 정신을 가진 지식인들과 시를 교류하며 부단한 교우 관계를 가졌다. 그녀는 또한 자선 단체와 어린 시절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유명한 작가이던 헬렌 헌트 잭슨 (Helen Hunt Jackson)에게 출판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생전에 출판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이를 거부했다.
그녀는 종교의 반항아로서 청교도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었으며, 구원의 희망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친한 친구를 비롯한 많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찍부터 기독교의 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강한 회의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전통의 사고방식과 기존 종교에 대한 불신과 전통적인 시 형식에 대한 반발로 나아가도록 했고, 이러한 사고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의 시에 혁신적인 요소를 불러오며 시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일찍이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도록 했다.
그녀 생전에는 그녀의 요구에 의해 그녀의 시가 익명으로 일곱 편밖에 출간되지 못했지만, 그녀 사후에 44개의 시 꾸러미가 여동생 러비니아 노크로스 디킨슨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녀의 문학 상담 역할을 해왔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 작가인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 (Thomas Wentworth Higginson)과 토드 부인 (Mrs. Todd)의 주선으로 1775편의 시가 세 권의 시집으로 1890년, 1891년, 1896년에 연속 출간되고, 두 권의 서간집이 1894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으로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디킨슨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55년 토머스 존슨 (Thomas H. Johnson)에 의해 그녀의 시선집이 출판됨으로써 그녀는 오늘날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에밀리 브론테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한 권의 대작으로 국내 소설가로만 알려져 있으나, 영미권 대학의 영문학과에서는 중요한 시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잉글랜드 북부 요크 주에서 태어났으며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하워스 교구에서 자라났는데, 세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청소년기에 세 명의 언니들도 병사했다. 월터 스콧, 바이런, 셸리 등의 작품을 좋아했고, 이야기를 짓고 일기 쓰기를 즐겼다.
1846년 샬럿이 에밀리의 시를 발견하고는 출판사에 시집 출판을 문의하여 세 자매의 가명을 제목으로 한 공동 시집 『커러, 엘리스, 액튼 벨의 시 작품들』을 냈다. 1847년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그리고 샬럿의 『제인 에어』가 출간되었다.
에밀리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잇따른 죽음을 경험해야 했지만 상상력을 통해 “죽음에서 아름다운 생명을 불렀”으며, 피아노와 외국어를 독학하면서 좁은 집에 머물렀지만 “성스러운 목소리로, 현실의 세상에 대해 속삭”였다.
– 제인 오스틴
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났으며 8남매 중 일곱째였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심취했던 그녀는 10대부터 꾸준히 습작 활동을 한다.
1793년, 서간체 단편 소설인 『수잔 부인(Lady Susan)』을 집필하기 시작해 1795년에 완성한다. 같은 해에 집필한 『엘리너와 메리앤(Elinor and Marianne)』은 훗날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으로 개작된다. 그녀는 1796년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남자 측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첫인상 (First Impressions)』(1797)을 완성해 런던의 한 출판사에 가져갔으나 거절당한다. 훗날 이 작품은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1813)으로 개작되어 출판된다. 이 무렵 『이성과 감성』과 『오만과 편견』은 큰 인기를 얻어 매진 후 재판 인쇄에 들어간다. 연이어 『맨스필드 파크 (Mansfield Park)』(1814)와 『엠마 (Emma)』(1815)가 출판되는데, 이 작품들 역시 매진 사례를 기록한다. 1817년, 그녀는 『샌디션 (Sandition)』을 집필하기 시작한 후에 건강이 악화된다. 결국 그녀는 1817년 7월 18일,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 조지 엘리엇
조지 엘리엇은 19세기 영문학 사상 중요한 작가로,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엘리엇을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황무지(The Waste Land)>를 쓴 T. S. 엘리엇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자는 19세기 영국의 여성 소설가이며 후자는 20세기 영국 시인이다.
19세기는 영문학사상 유례없이 소설 장르가 융성한 시기이며 그 시기에 활약한 많은 작가 중 조지 엘리엇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엘리엇은 1819년 워릭셔 아베리에서 태어났으며, 36세라는 늦은 나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여성 작가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본명인 메리 에번스(Mary Evans)라는 이름 대신 조지 엘리엇이라는 남성의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몇 작품이 발표될 때까지 독자는 물론 평론가까지도 모두 그녀를 남성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 작가들의 어리석은 소설들(Silly Novels by Lady Novelists)>이라는 에세이에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상투적 로맨스나 쓰는 당시의 여성 작가들을 경멸하면서 자신은 그런 작가들과 다름을 천명했다.
그녀는 ≪웨스트민스터 리뷰 (Westminster Review)≫라는 비중 있는 잡지의 부편집장을 지냈으며, “남성처럼 생각하는 여자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지적인 작가였다. 이처럼 그녀는 여성 작가라기보다 당대의 어느 남성 작가에 견주어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위대한 작가로 평가된다.
20세기 저명한 문학 비평가 리비스(F. R. Leavis)는 그의 저서 ≪위대한 전통≫에서 위대한 영국 소설의 전통이 제인 오스틴→조지 엘리엇→토머스 하디→데이비드 로런스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처럼 그녀는 여성의 감성을 뛰어넘은 탁월한 지적 작가이자 도덕적 작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깊이 천착한 작가이자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한 작가, 그리고 여성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지닌 작가로서 평가되고 있다.
지금은 엘리엇이 더 유명하지만, 당대에는 엘리엇보다 훨씬 더 저명한 문학 비평가였던 루이스 (G. H. Lewes)의 격려로 그녀는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엘리엇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유부남인 루이스와 동거한 문학 외적인 사실로 더 유명했다. 이 동거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그녀는 오빠 아이작과 의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인 이 사건에 대해서는 루이스의 아내가 자유연애주의자로 이미 남편 친구와 동거 중이었지만, 가톨릭교도인 루이스가 아내와 이혼할 수 없었다는 점,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루이스의 아내가 낳은 아이들까지 엘리엇이 부양했으며 루이스가 엘리엇의 남편이자 문학적 스승이었다는 사실 등을 참작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조지 엘리엇의 작품 활동은 1878년 암으로 인한 루이스의 사망과 더불어 끝났다. 메리 앤 에번스를 소설가 조지 엘리엇으로 만든 루이스는 엘리엇이 자기 불신과 고독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면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격려해 주곤 했다. 루이스의 병을 알지 못했던 엘리엇은 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그를 잃은 슬픔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두문불출한 채 루이스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다음해 2월 말에 가서야 존 크로스의 방문이 허락되었다. 엘리엇이 크로스를 처음 만난 것은 1869년 4월 18일 로마에서였고, 당시 크로스는 29세의 키가 큰 미남이었다. 엘리엇은 ≪미들마치≫의 성공으로 수입이 증가해서 1873년에는 약 5000파운드의 돈을 갖게 되었고, 루이스가 이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루이스가 전담해 오던 재정 관리에 문제가 생기자, 크로스를 불러 자주 의논하게 되었다. 루이스를 잃은 엘리엇과 어머니를 잃은 크로스는 함께 단테를 읽으며 문학을 토론하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1880년 5월 5일 엘리엇은 20년 연하인, 조니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크로스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엘리엇은 이 결혼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이 결혼으로 다시 한번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이 결혼을 통해 30년간의 공백을 깨고 오빠 아이작과 화해했다.
신혼여행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엘리엇과 크로스는 12월 런던에 새집을 마련하고 이사했지만, 시골 출신의 지적이며 진보적인 작가 조지 엘리엇은 그해 12월 22일 목의 통증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하게 된다. 12월 29일 런던 교외에 있는 하이게이트(Highgate) 묘지에 루이스와 나란히 묻혔다.
조지 엘리엇은 모두 여덟 편의 장편 소설을 썼는데, 평자들의 통상적인 구분상 전기의 ≪목사 생활 풍경 (Scenes of Clerical Life)≫, ≪애덤 비드 (Adam Bede)≫(1859),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The Mill on the Floss)≫(1860), ≪사일러스 마너 (Silas Marner)≫(1861)와 후기의 ≪로몰라(Romola)≫(1863), ≪펠릭스 홀트 (Felix Holt)≫(1872), ≪미들마치 (Middlemarch)≫(1871∼1872), ≪대니얼 데론다 (Daniel Deronda)≫(1876)로 나누어진다. 이 여덟 편 외에 노벨라 <들춰진 베일 (The Lifted Veil)>과 드라마 <스페인 집시(The Spanish Gypsy)>, 시 <암거트 (Armgart)>가 있다. 이 중에서 ≪미들마치≫는 단연 대표작으로 꼽힌다.
– 루시 모드 몽고메리
1874년 11월 30일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섬 클리프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우체국을 경영하는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끼적이는 것을 좋아했고,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열여섯 살 때 쓴 시가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1893년 샬럿타운에 있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 대학에 입학해 교사 자격증을 받고, 핼리팩스의 댈하우지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스물네 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외할머니를 위해 캐번디시로 돌아와 우체국 일을 도왔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으나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였다. 꾸준히 써낸 단편들이 잡지와 신문에 실렸으며, 핼리팩스의 신문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착안해 앤의 이야기를 썼지만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후 마침내 1908년 보스턴 페이지 컴퍼니에서 첫 소설 『빨간 머리 앤』이 출간된다. 낭만과 사랑이 가득한 앤의 이야기는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의 앤의 삶을 담은 후속작들을 써냈다. 1911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약혼자였던 이완 맥도널드 목사와 결혼하고, 이후에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캐나다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문학 예술 왕립 학회의 회원 자격을 얻었으며, 1935년에는 대영 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42년 4월 24일 토론토 자택에서 사망해 캐번디시의 묘지에 묻혔다. 20여 권의 소설을 비롯해 다수의 단편과 시, 에세이를 남겼으며 캐나다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 메리 셸리
1797년 영국의 급진 정치사상가인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주의자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후 며칠 만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아버지는 재혼했고, 부녀의 돈독한 유대 관계를 질시했던 계모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의 서재에서 무수히 많은 장서를 독파했고, 당대 최고 사상가들과 아버지가 함께 나누는 대화를 어깨너머로 들으며 지적 허기를 채워 나갔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의 제자 퍼시 비시 셸리를 만나 그와 함께 프랑스로 도망쳤다. 1816년 시인 바이런 경, 의사 존 폴리도리, 남편 셸리와 모인 자리에서 괴담을 하나씩 짓기로 약속해 ‘무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1818년에 《프랑켄슈타인》으로 출간됐다.
다섯 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그중 넷이 일찍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고, 1822년 남편 퍼시 비시 셸리가 스페치아 만에서 익사했다. 1816년 여름 이전까지는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1826년 퍼시 비시 셸리의 초상이라 할 수 있는 소설 《마지막 남자》를 출간했고, 《로도어》 《포크너》 등 여러 소설과 여행기를 출간했다. 여러 남성 작가들에게 구애를 받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돌보며 죽을 때까지 ‘메리 셸리’로 남기를 원했다. 이후1848년 발병한 뇌종양으로 인해 1851년 53세의 나이로 부모와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들 중 한 사람이며, 빅토리아기에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작가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Elizabeth Barrett Browning)은 1806년 3월 6일 영국의 더럼에서 아버지 에드워드 몰턴 배럿 (Edward Moulton Barrett)과 어머니 메리 그레이엄 클라크 (Mary Graham Clark) 사이에서 열두 명의 형제자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남동생들의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존 밀턴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읽었으며, 곧 고전문학과 형이상학에 지적으로 심취하게 되었다. 여섯 살인가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시를 썼으며, 열네 살이던 1820년에 그녀의 아버지는 생일 선물로 그녀가 쓴 네 권으로 된 서사시집 ≪마라톤에서의 전투 (The Battle of Marathon)≫를 출간해 주었다. 정식으로 출간된 그녀의 첫 번째 시집은 1826년 ≪마음에 관한 에세이와 기타 시들 (An Essay on Mind, with other poems)≫인데, 이 시집의 출간으로 인해 그녀는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학자들과 서신 왕래를 하게 되었고, 그리스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1844년에 출간된 ≪시≫로 인해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의 대열에 들어섰고 당시 무명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라우닝 (Robert Browning)의 열렬한 구애 편지를 받게 된다. 스무 살이 될 무렵부터 당시로서는 진단을 내릴 수 없는 희귀병으로 인해 병마와 싸워 온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로버트의 구혼을 거절했으나 결국 로버트의 진심에 감동하여 부친의 반대를 피해 이탈리아로 도망쳐 결혼한다. 엘리자베스는 1861년 6월 29일 15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마치고 죽었다.
엘리자베스가 로버트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그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쓴 상태였지만, 그와 만난 이후 ≪포르투갈어에서 옮긴 소네트 (Sonnets from the Portuguese)≫와 ≪오로라 리 (Aurora Leigh)≫라는 유명한 작품들을 쓰게 되었다. “포르투갈어 (Portuguese)”는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부르던 애칭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의 사랑시 소네트는 남편인 로버트의 주장에 따라 다음번 시집에 포함되어 출간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그녀의 지위는 더 높아지고 확고해졌다. 워즈워스가 죽은 후인 1850년에 그녀는 계관시인 승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계관시인의 영예는 테니슨에게로 갔다. 1856년에 출간된, 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오로라 리≫는 그녀의 야심적인 장시 작품으로 인기가 많았다.
1860년에는 이탈리아인들의 정치적 사건에 관한 ≪의회 이전의 시 (Poems before Congress≫라는 시집을 남편에게 헌사하며 출간했다. 그녀의 마지막 시집은 ≪악기 (A Musical Instrument)≫로, 그녀가 죽은 후에 남편이 출간한 것이었다.
– 앤 브론테
필명이 액턴 벨(Acton Bell)인 앤 브론테는 1820년 1월 17일,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주의 손턴에서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론테의 딸로 출생했다. 위로는 언니 마리아, 엘리자베스, 샬럿, 에밀리와 오빠 브랜월이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고, 손위 이모가 집안일을 돌봐준다. 다섯 살 때 마리아와 엘리자베스 두 언니가 사망한다. 1834년, 언니 에밀리와 함께 첫 번째 자전적인 글을 완성하는데 이 글에서 처음으로 곤달이 등장한다. 1835년, 샬럿이 하워스를 떠나 로헤드 학교 교사가 되고, 에밀리는 학생으로 같은 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에밀리는 향수병으로 곧 집에 돌아오고, 대신 앤이 로헤드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에밀리와 함께 두 번째 자전적인 글 완성하지만 심각한 병으로 2년 후 로헤드 학교를 떠난다. 1839년, 19세의 나이에 머필드의 블레이크 홀로 이주하여 잉햄 집안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해 12월 가정교사 일을 그만두고 하워스로 돌아와 곧바로 요크 근교의 토프 그린 홀에서 다시 가정교사 일을 시작한다. 1844년, 브론테 자매는 고향 하워스에 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하워스에서 가족이 재결합한다. 1846년, 샬럿, 에밀리와 함께 쓴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 (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에 21편의 시를 발표, 1847년 10월에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출간되고, 이어 12월에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함께 출간된다. 1848년 앤 브론테는<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출간했다. 그해 9월에 브랜월, 12월에 에밀리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 다음해인 1849년, 앤 브론테도 29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 크리스티나 G. 로세티
1830년 12월 5일 영국 런던의 샬럿 가 38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이탈리아 중부 지방인 아브루초에서 런던으로 정치 망명한 이탈리아 시인 가브리엘레 로세티였고 모친은 바이런과 셸리의 친구이며 내과 의사이자 작가인 존 윌리엄 폴리도리의 여동생 프랜시스 폴리도리였다. 막내딸인 그녀에게는 두 명의 오빠와 한 명의 언니가 있었는데, 오빠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Dante Gabriel Rossetti)는 빅토리아조 후기 예술가들의 문예 운동인 라파엘 전파 (Pre-Raphaelite Brotherhood)를 결성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이끈 화가이자 시인이었고, 또 다른 오빠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와 언니 마리아 프란체스카 로세티는 작가였다.
주로 낭만적인 시, 종교적인 시, 동시를 쓴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조숙한 감상력을 나타냈으며, 오빠처럼 시인 기질을 타고 났는데, 열두 살인 1842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빠 단테는 일찍이 그녀의 천재성을 인정해 시를 발표하도록 권고했는데, 열여덟 살인 1848년에 그녀는 ≪아테나 신전 (Athenaeum)≫에 첫 번째 시를 발표했고, 그 후에는 “엘렌 앨런” (Ellen Alleyne)이라는 필명으로 라파엘 전파가 간행하고 오빠 윌리엄이 편집을 맡은 문학잡지 ≪기원 (The Germ)≫에 여러 편의 시를 발표했다. 그리고 서른한 살 때인 1862년에는 그녀의 첫 시집이자 가장 유명한 시집인 ≪고블린 시장과 기타 시들 (Goblin Market and Other Poems)≫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많은 비평적 찬사를 받았으며 그녀를 당대 주요 여류 시인으로 확고히 서게 해 주었는데, 1861년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이 죽고 그 이듬해에 나온 이 시집은 곧바로 그녀를 엘리자베스의 계승자로 열렬한 환호를 받도록 했다. 또한 환상적인 시, 동시, 종교시, 설교문, 논설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그녀에게 홉킨스, 스윈번, 테니슨 등도 찬사를 보냈으며, 후에 암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테니슨의 뒤를 이을 계관시인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1870년대 초부터 그녀는 고통스럽고 보기 흉한 그레이브스병(안구가 돌출되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걸려 고생했다. 그리고 1893년에는 유방암에 걸려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그 이듬해에 재발해 결국 1894년 12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생전에 미국 남부의 노예제도, 동물을 실험에 이용함으로써 학대하는 것, 미성년자를 창녀로 이용해 노동 착취하는 것 등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 마거릿 풀러
– 엘라 휠러 윌콕스
– 에이미 로웰
브루클린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려서부터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집에 약 7,000권의 도서가 있었으며, 이 덕분에 일찍부터 문학에 눈을 뜨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녀는 당시 가난했던 많은 시인들의 경제적 후원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국시를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에세이를 썼고, 두 권 분량의 존 키츠 문학 전기를 써냈으며, 영국에서 시작된 이미지즘 운동을 미국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시어의 장황함을 피하고 풍성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힐다 두리틀 Hilda Dolittle의 시를 보고 이미지즘을 연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수많은 이미지스트들의 작업을 미국에 소개했다. 당시 비평가들은 시인으로서 그녀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남자처럼 셔츠를 입고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비만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작품을 깎아내렸지만, 《몇 시입니까 What’s O’Clock》(1925)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역자 : 박영희
홍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한 번의 여행으로 이탈리아에 매료되어 어느 날 그곳으로 떠나 살게 된다. 그 후 언어 공부에 빠져 지금은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구사한다. 식물과 고양이를 키우고, 3개 국어와 인디자인 강의를 한다. 봄날에 출판사 대표이며 언어와 디자인 그리고 여성주의 고전문학 책을 만들고 있다.
출간 도서로 『영어 공부의 기술』, 『소소한 근육과 슬기로운 식사가 필요합니다』, 『인디자인CC 책 한 권 뚝딱 만들기, 편집 디자인 실무』, 『소중한 첫 여행 3개국어 –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그뤠잇! 넘 쉬운 여행 영어』,『겁없이 잉글리시 20일 동사편』,『두근두근 이제 영어로 말해요』 등이 있다.
엮고 옮긴 책으로는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고전 여성 문학의 향연』,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 찬란한 숲을 그대와』, 『어린왕자 – 치유하는 고전 낭독』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2019년 초판 발행 2년 만에 봄날에 출판사에서는 여성주의 문학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개정판을 펴냈다. 여성에겐 어떠한 권리도 없던 시대를 살았던 여성 시인들의 시를 엮고 삶을 담았다. 19세기에는 사회적인 편견과 제약 때문에 여성 작가 대부분은 가명으로 책을 출간해야 했고, 여성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도 했다. 수많은 난관도 무색하게 글쓰기를 기어코 업으로 삼았던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시를 벅찬 마음으로 소개한다.
“I can always live by my pen.”
나는 언제든지 글을 써서 살 수 있습니다. –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 에밀리 디킨슨,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크리스티나 로세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조지 엘리엇, 메리 셸리, 루이자 메이 올컷, 마가렛 풀러, 엘라 휠러 윌콕스, 루시 몽고메리 그리고 사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에이미 로웰까지 모두 14인의 시인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19세기와 20세기 초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들의 시를 신중하게 골랐고 그녀들의 삶의 흔적도 담았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시가 독자 여러분의 가슴에 쉬이 빛바래지 않는 환하고 뚜렷한 흔적을 남기길 바란다.
– 상처받은 가슴 하나 위로할 수 있다면
사춘기는 모든 것이 낭만이던 시절이었고, 마음이 보들보들하여 무엇에건 감동 받던 시절이었다. 곁으로 눈길을 주지 않고 무엇엔가 몰입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사춘기 소녀의 심장을 엇박자로 마구 뛰게 했던 책들이 꽤 있다. 그 책 중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최근에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그녀들의 또 다른 글쓰기인 시가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또한, 그 시절에는 안중에 없던 이 여성 작가들의 삶과 그녀들이 살았던 19세기의 군색한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에서 그녀들의 시를 엮고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자 한다.
상처받은 가슴 하나 위로할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쓰라린 삶의 고통을 덜어 주고
아픔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의식 잃어가는 울새 한 마리
둥지로 돌려보낸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 에밀리 디킨슨
시작은 에밀리 디킨슨이었다. 강렬한 그녀의 시를 번역하던 중에 19세기를 살았던 여성 시인들을 한 명씩 더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 크리스티나 로세티를 거쳐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에이미 로웰에게 까지 이르렀다.
제인 오스틴은 통찰력과 재치로 그득한 소설을 6편 넘게 썼으며 시도 곧잘 썼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시가 몇 편 되지 않아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하게 다뤘다. 시에도 소설처럼 풍자와 재치, 세밀한 관찰력이 드러난다.
에밀리 디킨슨은 1,800편에 가까운 시 중에 단 몇 편만 가명으로 발표했을 뿐, 생의 절반 이상은 은둔하며 오롯이 시만 썼다. 그녀는 시에서 자신의 삶을 still-volcano-life (고요한 화산의 생)이라고 묘사했다. 고요해 보이지만 뜨겁고 강렬한 불을 품고 있기에 언제 얼마만 한 힘으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 같은 삶을 살았다.
문학이 곧 삶이었던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세 자매는 61편의 시를 엮어 1845년 시집 『시 (Poems)』를 가명으로 출간한다. 어렵게 출판사를 찾았지만, 제작비용을 직접 지급하고서야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시집은 단 두세 권만 팔렸다고 한다. 하지만 세 자매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2년 뒤 역시 가명으로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를 출간하면서 세상의 관심을 확실하게 끌게 된다.
어떤 이는 세상에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어떤 이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썼다. 그들이 끝끝내 시 쓰기를 멈출 수 없도록 한 그 열정이 무엇이었는지, 어쩌면 시를 한 편씩 읽어 내려가면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에게 그녀들의 시가 잔잔하지만 뜨거운 울림이 되길 바라고, 시집을 넘기는 손끝으로 시 언어의 아름다움과 이들의 삶이 조용히 스며들어 전해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문학사의 변두리로 밀쳐졌던 그녀들이 또박또박 걸어 나왔으면 한다. 이제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이 여성 작가들을 제 위치에 눈에 띄게, 단호하게, 우뚝 세우면 된다. 환하게 밝히고 뚜렷하게 새기면 된다. 이제 문학사를 여성 작가 중심으로 기술할 때가 되었다. 봄날에 출판사에서 여성주의 문학 출판의 첫걸음을 떼었다. 그 길에 여러분이 동행해준다면 행복할 것이다.
이 시집의 출간을 응원하고 후원해준 모든 후원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9년 5월에 박영희)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