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종교론 :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 대한기독교서회 / 2002.9.1
이 책은 초기 낭만주의와 독일 관념론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근대의 비판적 신학의 성취에 일획을 그은 슐라이어마허가 1799년에 발표한 ‘종교론’ 완역판이다. 형이상학이나 도덕과 확연히 구별되는 종교의 고유성과 불변성을 드러내 보여주면서, 계몽주의 운동에 의해 자연화된 종교나 초자연주의적 신 개념에 근거하는 도덕 종교는 인간 내면의 새로운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의 실제적인 현실과 무관하다는 점을 주지하면서, 생생한 실존적 체험에 근거한 종교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있다.
○ 목차
옮긴이 머리말
첫째 강연 : 종교 변증론
Ⅰ. 어떻게 해서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와 같이 잊혀진 것에 대해 강연하게 되었나?
Ⅱ. 슐라이어마허는 왜 하필 교양인들에 대해 묻는가?
Ⅲ. 교양인들은 왜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가?
Ⅳ.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어떻게 변증하려 하는가?
둘째 강연 :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Ⅰ. 종교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듯이 지식이나 행위가 아니며, 형이상학이나 도덕, 혹은 이 둘의 합성물도 아니다.
Ⅱ. 종교는 우주의 영원하고 이상적인 내용과 본질에 대한, 그리고 무한자와 시간적인 존재 가운데 있는 영원자에 대한 경건한 직관이며 느낌이다.
Ⅲ: 교의와 특정한 교의적 개념은 종교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이차적이며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하고 전통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Ⅲ-1: “신”과 “영혼불멸성”에 대한 특별 부록
셋째 강연 : 종교의 형성과 교화에 대하여
머리말
Ⅰ. 인간은 어떻게 종교로 형성되며 이는 무엇으로부터 이루어지는가? 왜 요즈음 사람들은 이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가?
Ⅱ.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종교의 장애는 어떻게
넷째 강연 : 종교 내적 교제에 대하여, 혹은 교회와 성직에 대하여
머리말
Ⅰ. 진정한 교회,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들의
Ⅱ. 정당한 비판과 공격은 종교에 해당된다기보다
Ⅲ. 이러한 교의적 교회에 가장 곤란한 짐을 지우는
Ⅳ. 이러한 궁경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
Ⅴ. 종교를 위해 활동하고자 하는
맺음말 : 진정한 교회를 위한 송영
다섯째 강연 : 여러 종교들에 대하여
머리말
Ⅰ. 종교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개별 종교를 탐구해야 한다.
Ⅱ. 개별 종교 고찰 : 특히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고찰
맺음말
해제 : 근원적 새로움의 개성적 자기화
슐라이어마허 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 세부 목차
옮긴이 머리말 … 5
첫째 강연 : 종교 변증론 … 15
Ⅰ. 어떻게 해서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와 같이 잊혀진 것에 대해 강연하게 되었나?
Ⅱ. 슐라이어마허는 왜 하필 교양인들에 대해 묻는가? Ⅲ. 교양인들은 왜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가?
Ⅳ.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어떻게 변증하려 하는가?
둘째 강연 :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 45
Ⅰ. 종교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듯이 지식이나 행위가 아니며, 형이상학이나 도덕, 혹은 이 둘의 합성물도 아니다.
Ⅱ. 종교는 우주의 영원하고 이상적인 내용과 본질에 대한, 그리고 무한자와 시간적인 존재 가운데 있는 영원자에 대한 경건한 직관이며 느낌이다.
A: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정의, 종교는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이다. 그것은 형이상학과 도덕에 병행하는,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제3의 인간 정신이다.
B: 이 정의에 대한 보다 정확한 규정
1. 종교적 ‘직관’과 연관해서 2. 종교적 ‘감정’과 연관해서
C: 구체적인 예를 통한 이 정의의 상술
1. 종교적인 여러 ‘직관’과 연관해서 2. 종교적인 여러 ‘감정’과 연관해서 Ⅲ: 교의와 특정한 교의적 개념은 종교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이차적이며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하고 전통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Ⅲ-1: “신”과 “영혼불멸성”에 대한 특별 부록
셋째 강연 : 종교의 형성과 교화에 대하여 … 119 머리말
Ⅰ. 인간은 어떻게 종교로 형성되며 이는 무엇으로부터 이루어지는가? 왜 요즈음 사람들은 이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가?
Ⅱ.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종교의 장애는 어떻게 …..
넷째 강연 : 종교 내적 교제에 대하여, 혹은 교회와 성직에 대하여 … 151
머리말
Ⅰ. 진정한 교회,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들의 ….
Ⅱ. 정당한 비판과 공격은 종교에 해당된다기보다 ….
Ⅲ. 이러한 교의적 교회에 가장 곤란한 짐을 지우는 ….
Ⅳ. 이러한 궁경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 ….
Ⅴ. 종교를 위해 활동하고자 하는 ….
맺음말 : 진정한 교회를 위한 송영
다섯째 강연 : 여러 종교들에 대하여 … 197
머리말
Ⅰ. 종교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개별 종교를 탐구해야 한다.
1. 종교는 ‘실정종교들’로 개별화된다. 2. 종교의 개별화는 우주에 대한 가능한 직관 가운데서 하나의 직관이 …. 3. 종교 일반은 이러한 실정적 형태를 띨 때 비로소 ….
Ⅱ. 개별 종교 고찰 : 특히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고찰
1. 머리말 2. 유대교 3. 그르스도교 : 그리스도교의 본질/ 그리스도교가 담지하는 ….
맺음말 해제 : 근원적 새로움의 개성적 자기화 … 255
슐라이어마허 연보 … 269
참고문헌 … 270
찾아보기 … 273
○ 저자소개 :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 ~ 1834)
저명한 신학자이자 철학자. 1768년 독일의 브레슬라우에서 출생했다.
1787년부터 1790년까지 할레 대학에서 신학, 철학, 고전학을 연구하였고, 그 후에는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 원목을 지냈다.
1804년부터 1806년까지 할레 대학에서, 1810년부터는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했다. 베를린 학술원의 저명한 구성원으로서 베를린 대학 창립을 주도한 바 있다. 1834년 숨을 거뒀다.
지은책으로 ‘변증법’, ‘해석학’, ‘윤리학’, ‘기독교 신앙’ 등이 있다.
– 역자 : 최신한
독일 튀빙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남대학교 철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주관심 분야는 형이상학, 종교철학, 해석학이며 이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과 저술을 발표했다. 한국해석학회, 한국헤겔학회, 대한철학회, 철학연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인문학총연합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대표저술로 『독백의 철학에서 대화의 철학으로』, 『지평확대의 철학』, 『헤겔철학과 형이상학의 미래』 등이 있으며, 『종교론』, 『해석학과 비평』(Schleiermacher), 『종교철학』(Hegel), 『인간적 자유의 본질』(Schelling)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출판사 서평
슐라이어마허가 1799년에 발표한 {종교론} 1판의 완역이 새로 출판되어 나왔다. 신학사에서뿐만 아니라 철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슐라이어마허의 주요 저서이다. 그는 할레(Halle)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 및 고전학을 공부했으며, 이 책은 베를린의 샤리데 병원 원목으로 있을 때 집필한 것이다. 이 완역본은 루돌프 오토가 편집한 책을 대본으로 삼았으며, 거의 매 문단 편집자의 주석이 붙어 있어 다른 어느 판본보다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완역본에서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이 주석을 책의 좌우 여백에 달아놓았으며, 원문에는 없는 차례를 덧붙였고, 본문의 내용과 연관된 성서의 구절을 밝혀놓고 있다.
이 책은 부제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에 싫증난 시대와 종교로부터 멀어져 가는 종교 망각의 시대를 종교로 되돌리려는 근본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종교는 교양이 없고 인생의 이상을 결여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풍부한 정신적 삶을 누리는 교양인과 조화로운 인격자에게 필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슐라이어마허는 이 책을 크게 5개의 강연으로 구성하고 있다.
“첫째 강연”에서는 계몽주의적 종교 비판으로부터 종교를 옹호한다. 종교는 교양인들의 체계적인 개념의 틀 속에 갇힐 수 없으며, 오히려 이것을 체험하는 사람의 내면 가운데서 생동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둘째 강연”에서는 ‘종교의 본질’을 규명한다. 종교의 고유한 영역은 이성이나 의지보다는 직관과 감정에 의해 인간의 심정이 무한자의 적극적인 활동에 전적으로 사로잡힘으로써 형성된다는 것이다.
“셋째 강연”에서는 종교의 형성 가능성과 종교 교육에 대해서 묻는다. 종교의 형성 가능성과 종교 교육은 교의적인 가르침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로지 무한자에 대한 감각 능력의 개방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넷째 강연”에서는 종교의 외적 · 사회적 현상인 교회와 성직에 대해 천착한다. 진정한 교회와 교의적 교회를 구별하며,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관계를 설정하고,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강조한다.
“다섯째 강연”에서는 역사적으로 현상한 개별 종교를 분석하고 이로부터 진정한 종교의 이상을 제시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의 내용을 개념적으로 추상화하고 체계화하는 자연종교 내지 자연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역사적인 실정종교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종교의 생명력은 보편적인 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내용이 그때마다 개성적으로 형태화하는 데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론}을 풀이해 놓은 “해제”에서는 종교론이 생성된 과정, 종교의 본질과 직관, 자연 · 인간성 · 종교, 종교와 종교 공동체, 종교의 실정성과 새로움의 체험, 종교론의 현재적 의미 등을 다루고 있다.
부록으로는 슐라이어마허의 “연보”와 “참고문헌”이 실려 있다.
지난 1999년에 독일 할레에서는 {종교론} 출간 200주년을 기념하여 대규모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종교론}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과 그 현재성이 다양한 영역에서 다루어졌다. 이 책이 ‘신학적 철학적 계몽주의’와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1800년이라는 정신사의 축을 중심으로 ‘낭만주의와 관념론’의 양대 영역을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적 관점에서 재조명되었으며, ‘종교이론’과 ‘문화이론’과 같은 현대의 매력적인 주제에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이것은 {종교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철학과 신학을 중심으로 생동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요한 정신의 보고(寶庫)임을 확인시켜 준다. 할레 대학에서 교수 활동을 시작한 슐라이어마허는 베를린 대학의 창립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베를린 학술원의 저명한 구성원으로 일했다. 철학적으로는 초기 낭만주의와 독일 관념론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근대의 비판적 신학은 그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는 고전 문헌학자로서 플라톤 전집을 독일어로 옮긴 플라톤 해석자였으며, 당시 독일 문화계에 큰 영향을 끼친 문화 철학자였고, 국가와 교회의 개혁을 주도한 실천적 지성인이기도 했다. 번역자 최신한은 한남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다. 그는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학술교류처(DAAD)의 초청으로 튀빙겐대학교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하였으며, 국제헤겔연맹과 국제슐라이어마허학회 정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그는 철학과 관련하여 다수의 책을 집필 혹은 번역하였으며, {독백의 철학에서 대화의 철학으로}(문예출판사)는 2001년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 독자의 평 1
미숙한 하나님에 대한 변증이다. 헤겔과 더불어 독일의 지성인으로 최고봉으로 인정받는 슐라이어마허가 하나님을 변증했다. 책의 부제는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들을 위한 강연’이다. 18세기 독일은 합리주의와 이성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시기다. 종교를 미신과 그릇된 사고에서 비롯된 불합리로 무시했다.
이러한 도전에 대해 슐라이어마허는 변증을 위한 강연을 시작한다. 그는 종교(기독교)란 계몽주의자들이 말하는 형이상학과 도덕과 구별되며, 직관과 감정이 종교의 본질이며, 무한자인 하나님과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특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는 요일4:18 말씀을 강조하며 기독교야 말로 진정한 종교임을 천명한다.
그의 강조점은 교양인으로 자부하는 계몽주의자들의 인식의 틀에 갇힐 수 없으며 초월하는 타자이다. 이성으로서는 신과 접촉할 수 없고 감정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를 옹호하려했던 그의 열정은 칭찬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의 변증이 오히려 기독교를 오해하고 감정 안에 제한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합리적 사유로서 하나님을 인지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주장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모호하게 만들고 말았다. 후대의 신학자들은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첫째 강연은 계몽주의적 종교 비판에서 종교를 옹호하고, 둘째 강연은 종교의 본질을 규명한다. 셋째 강연은 종교형성의 가능성과 교육에 대해 묻고 무한자를 체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넷째 강연은 종교의 외적. 사회적 현상인 교회와 성지에 대한 기술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강연은 역사 속에서 개별 종교를 분석하고 진정한 종교로서의 이상을 제시한다. 자유주의와 비평신학의 문을 연 본서를 조심스럽게 읽을 필요가 있다.
– 밑줄 긋기
“종교는 자기 안에 어떠한 법전도 지니지 말아야 한다.”
“종교는 연역이 결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은총은 무엇인가? 모든 종교적 감정은 우주를 통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한에서만 종교적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이다.”
“우주는 모든 방식으로 직관되고 숭배되어야 한다. 무수한 형태의 종교가 가능한 것이다.”
○ 독자의 평 2
신의 존재와 부재로서의 철학
우스꽝 스럽게도 중세철학은 철학사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신학의 하녀일뿐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똑똑해 신을 멋지게 증명해낸 르네 데카르트의 사유철학 때문에 신을 추방하는 꼬투리를 잡았다. 이뿐 아니라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란 멋진 이론 때문에 합리성과 인간 자율성을 만들어낸 18세기 합리주의자들이 득세할 수 있었다. 권력의 헤게모니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 숙주처럼 기생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철학에서 무슨 ‘신’을 거론하느냐고 따져 묻는 이들이 있다면 “그대여 진정한 철학은 신학이라네”라고 말하고 싶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대가로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사형 이유는 신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무신론이 그의 사형 이유인 것이다. 플라톤은 스크라테스의 변명을 기술하면서 이 부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유명한 말을 남긴다. ‘악법도 법이다.’ 이 말의 저의가 무엇일까? 많은 철학자들과 법학자들은 이 고매한 문장을 풀려고하고 우려먹으며 수천년을 지내왔지만 아직도 모호한 문장이다. 진정한 철학은 결국 신논쟁이다. 이것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의 철학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영국은 아직도 신의 대리자가 있다. 일본도…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무너지기는 했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는 신의 역사이다. 태국도 아직도 신의 아들이 다스리고 있다. 그러니 신을 빼고 철학하는 것이야말로 무식하기 그지 없는 발상이다. 그러니 제발 신을 빼지는 말게나.
중세철학의 근간은 신종재증명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는 신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덧입혀지는 은총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신학대전>에는 신존재증명을 피하지 않았다. 이유는 신학을 피하고서 철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퀴나스의 신존재증명은 현대적 언어를 빌리면 ‘합리적 방법’을 사용했다. 순차적 논리를 따라 신을 증명해 내는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론을 빌려와 증명했다. ‘우주론적 증명’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 첫 이유 또는 원인은 ‘신’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신’에 의해 파생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더듬어 올라가다보면 제일원인으로서 ‘신’이 존재할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합리론적 증명은 후대에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경험주의를 여는데 기여를 하게 된다. 즉 무신론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는 것이 신이 있다는 신존재증명이라는 아이너리다.
중세철학에서 한 명더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프로슬로기온>을 쓴 컨터배리 안셀름(라티식으로는 안셀무스)이다. 안셀무스의 철학은 단순 명료하다. 그러나 그의 신존재증명은 합리적 추론을 넘어 비약을 사용한다. ‘그 이상 사유될 수 없는 것’으로 신을 최종적 존재로 규정한다. 즉 신을 넘어 설 수 있는 이성은 없다는 것이다. 합리적추론을 통해 신에게까지 접근하지만 결국 신존재증명은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것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은 후에 일어난 실존주의 그 아버지인 키에르케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약은 이미 안셀무스 안에 있었던 것이다. 비약은 신에 대한 경배와 찬양으로 나타하게 되고, 종교적인 것이 철학적인 것이 된다. 안셀무스의 철학은 앎-지식과 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알 수없다면 신이 나이고 신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약이 들어설 수 없어 보이는 존재증명이지만, 결국 이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그는 주장하게 되는 모순을 담고 있다.
근대로 넘어 오면서 신존재 증명은 곁길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계몽의 주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추방당하기 시작된 신학은 신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합리주의자들은 경험될 수 없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는 추론을 통해 신을 추방할 이론적 근거를 닦았다. 그러나 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이들은 합리론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감정’이다. 감정철학의 대변자는 당시 독일 귀족 사교계를 이끌었던 슐라에르 마허이다. 그는 <종교론>이란 책에서 종교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지금까지 신을 합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반대하고, 비합리적인 방법 즉 느끼는 신으로 슬쩍 바꾸어 버린다. 그에게 있어서 ‘경험’은 매우 중요한 단어인데, 감정으로 신을 경험하는 것이 진짜 신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부터 신은 합리론을 버리고 감정적인 영역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슐라에르마허가 살았던 시대는 합리주의 사고가 철학을 주도하고 있었다. 철학사의 거장으로 알려진 헤겔은 슐라에르마허와 동시대인으로 두 사람은 서로 견제하며 경쟁했다. 그러나 헤겔은 당시에 알려지지 않는 무능한 약자에 불과했다.
슐라에르마허 이후 철학은 두 갈래로 분명하게 갈라서고 종교에서 철학이 독립하여 독자적인 학문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이후에 철학과 과학은 늙은 영감이 되어버린 신학을 구석진 방에 가두고 맹공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몇달 전에 출간된 도킨스와 몇몇 사람들이 공저한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하는가>에서 종교를 무식하고 오류범벅인 무식한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다.
19세기는 진화론과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축이 철학사와 경제사를 이끌어간다. 세상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 되었다는 주장을 통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확인하려 한 것이다. 진화론의 바닥에는 신을 존재를 부정하려는 무신론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창조라는 비약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산물로서의 인간을 강조했다. 또한 신의 완벽한 창조가 아닌 서서히 진화함으로 인간은 완벽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진화론은 우생학을 만들고, 덜 진화한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들을 2류 3류 종으로 만들어 놓는다. 제국주의 확장을 위한 적절한 이론을 다윈에 제공해준 셈이다. 다윈 덕분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양심의 가책 없이 동물같은 존재로 자위하면서 노예로 잡아 팔기 시작했다. 아픈 역사이지만 하나의 이론이 가져온 파귀적인 힘이다.
진화론의 현대적 의미는 인종청소라 불리는 제노사이드이다. 인종청소의 근거는 생물학적 이유에 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의 근거는 그들이 중세에 게토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물렀다는 것이고, 인종학적으로 아리아인이 가장 탁월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데 있다. 휴스턴 스튜와트 쳄벌린(Houston Stewart Chamberlain)과 같은 19세기 인종차별주의적 사상가들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세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다. 보스니아 사건뿐 아니라 나치, 유럽의 아메리카 인디안 공격 등 수많은 제노사이드는 존재한다. 처절하고도 슬픈 역사의 단편들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인간은 다른 인간을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뉴욕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재직중인 폴 비츠가 재미난 책 한권을 출간했다. <무신론의 심리학>이 그 주인공이다. 폴 비츠는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지만 기독교를 버리고 출세를 향해 세상으로 나아간다. 독립적이고 존경받는 학자가 되기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심리학 내면에 숨겨진 무신론적 심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프로이트 등 심리학의 대가들의 아버지를 연구하게 되면서 치명적인 결함을 알게 된다. 그들의 아버지는 ‘결함이 있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었거나, 폭언과 폭력과 음주로 인하여 차라리 없으면 더 좋을 아버지들이었다.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왜곡된 부정은 하나님을 아버지로서의 인상을 갖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주장은 단지 무신론에대한 이론적인 비평이나 왜곡이 아니다. 아버지로서의 왜곡된 삶을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진정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신존증명으로서의 철학,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아버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그대는 참다운 아버지상을 던져주고 있는가?
○ 독자의 평 3
독일의 해석학자 슐라이어마허의 평전이 살림에서 나왔다. 살림출판사에서 ‘현대 신학자 평전’ 시리즈로 처음 출간한 네 권 중의 하나인데(이 시리즈는 30권으로 계획돼 있다고 한다), 이 출판사는 <천년의 사랑> 이후 한동안은 동아시아 담론 몰이에 나서더니 이젠 신학쪽으로 방향을 아주 잡은 모양이다. ‘우리시대의 신학총서’를 내더니 신학자 평전까지 손을 대고 있다. 어쨌거나, 신간의 저자는 국내에선 슐라이어마허 권위자로 꼽힐 만한 최신한 교수. 이미 <독백의 철학에서 대화의 철학으로>(문예출판사, 2001)란 연구서를 갖고 있고, 슐라이어마허의 책 가운데, <해석학과 비평>(철학과현실사, 2000), <성탄축제>(2000), <종교론>(기독교서회, 2002) 등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관련연구서로는 나도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강돈구의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이학사, 2000)이 정평있다.
현대해석학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이 신학자에게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신학이 아니라 해석학이고, 특히 그에게서의 언어적 전회의 경험/논리이다. 요즘 초심으로 되돌아가 12년전에 좀 읽던,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을 다시 손에 들었는데, 가다머에게서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는 하이데거만큼은 아니더라도 해석학의 전사로서 중요하다. 말이 나온 김에, <진리와 방법>은 20세기의 철학서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중요한 저작인데도 불구하고(이 책의 영역자는 두세 권 중의 한권으로 꼽고 있는데, 두 권이라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꼽힐 만하고, 세 권이라면, 거기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나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정도가 들어갈 듯싶다)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우리말로 완역되고 있지 않다(영역본은 1994년에 다른 역자에 의해서 개역판이 나왔는데, 비교해본 결과 훨씬 이해하기가 쉽게 되어 있다).
요는 (나로선) 가다머를 읽기 위해서 슐라이어마허를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그 슐라이허마허를 이해하는 길잡이로서 이번에 나온 평전은 읽어둘 만하다는 것이다. 가다머를 읽어야, 가다머와 데리다의 논쟁을 따라가볼 수 있다. 한편, 해석학내에서 가다머의 왼편에는 리쾨르가 놓이는데, 리쾨르의 왼편에는 다시 기호학자 그레마스가 놓이며, 그레마스는 엘름슬레우를 매개로 해서 들뢰즈/가타리와 마주하게 된다. 이 줄줄이 사탕들을 한번 꿰보는 것이 내년부터의 과제로 내가 계획하고 있는 바이다(나에게 이론의 네 가지 포지션은 해석학-해체론-기호학-정신분석학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