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종교에 대하여
존 스튜어트 밀 / 책세상 / 2018.2.28
– 합리주의의 성자 밀, 존재의 기원과 종교를 성찰하다 : ‘인간종교’를 ‘미래의 종교’로 제시하다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자유주의와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러한 규정에 가둘 수 없는 깊고 넓은 사유의 스펙트럼을 펼친 사상가이다.
자본주의의 강점을 정교하게 이론화한 자유주의자이면서 그 한계를 날카롭게 직시했으며, 노동자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급진 개혁운동을 주도한 진보적 인물이었다. 인민의 참여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이상을 제시하는 한편 이론을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 정치에 투신해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분투했던 실천가이기도 하다.

엄격한 과학적 사고의 당위를 역설해 ‘합리주의의 성자 聖者’라 불리지만, 또한 인간 존재의 근원을 파고드는 온기도 품고 있었다. ‘종교론’이 바로 이러한 밀 사유의 온기를 드러내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종교에 대하여』(1874)는 밀이 존재의 기원과 삶의 방향, 그리고 종교의 역할에 대해 오래 성찰한 바를 담은 저작이다. 1850년부터 1870년 사이에 집필되었던 세 편의 글 ([자연을 믿지 마라] [신은 존재하는가?] [종교는 필요하다])을 밀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에 의붓딸인 헬렌 타일러가 묶어 출간했다. 밀은 신의 존재에 관해서는 불가지론을 고수했고 기독교로 대표되는 기성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종교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지적인 측면에서는 존립 근거가 희박하더라도 도덕적?사회적 ‘유용성’의 측면에서 종교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자유론』에서 “장소를 불문하고 종교적 믿음이 진지하고 강렬한 곳일수록 관용의 폭이 좁다”라고 경계하면서도 “도덕 감정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종교”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통찰이다.
종교를 천상의 차원이 아니라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싶었던 밀은 신의 존재나 초자연적 현상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종교’를 제창했다. 이 새로운 종교는 ‘보편적 선’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철학을 종교의 위상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 행복의 요체인 보편적 사랑의 실천, 인간을 올바르게 살게 하는 것. 이것이 밀이 생각한 진짜 종교이다.
신이 된 인간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가 과학이라는 날개를 달고 ‘불멸, 행복, 신성’의 영역으로 다가가고 있는 오늘날, 낙관과 비관의 전망이 공존하는 가운데 다시 인간의 본질을 궁구해야 하는 지금, 오래전 ‘인간종교’를 ‘미래의 종교’로 제시했던 밀의 혜안을 음미할 때이다.
○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자연을 믿지 마라
제2장 신은 존재하는가?
1. 서론
2. 유신론
3. 유신론의 증거?
4. 신의 속성
5. 영혼불멸
6. 계시
제3장 종교는 필요하다
제4장 결론 – 새로운 종교
해제 – 인간의 종교, 지상으로 내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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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밀은 정규학교에서가 아니라 경제학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에게 세 살 때부터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해, 열네 살까지 그리스어, 문학, 논리학, 역사, 수학, 경제학의 중요한 고전들을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독특한 천재 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 방식은 아침 식사 전에 항상 함께 산책을 하면서 밀이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암기하도록 하고, 그 주제의 핵심을 주입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밀이 스스로 생각해 어느 정도 이해한 다음에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 후 1년간 프랑스에서 생시몽의 사회주의와 콩트의 실증주의를 접하는 등 견문을 쌓았다.
17세에 아버지의 조수로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했고, 20세 무렵 인간이 행복하려면 엄격한 이성주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히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섬세한 감성이 필요하다고 느껴 음악, 시, 미술 등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또한 아버지의 친구인 벤담의 공리주의(功利主義)에 공감해 『판례의 합리적 근거』의 저술에 참여하고 토론회를 결성해 왕성하게 보급했으며, 동인도회사가 해산될 때까지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틈틈이 저술들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 적용하고 경험적 사례들에서 일반적 법칙을 발견해 내는 귀납논리를 정립한 『논리학 체계』(1843), 생산법칙과 분배법칙을 분리해 경제학을 사회과학으로 체계화하고 개인의 욕구와 다수의 행복을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해 노동계급의 지위와 복리를 향상시킨 『정치경제학 원리』(1848), 개인의 자유와 사회 권력의 올바른 관계 속에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통해 민주사회의 기본 원리를 확립한 『자유론』(1859), 공리주의에 질적 요소를 보완해 원숙한 윤리학으로 제시한 『공리주의』(1863), 민주정부의 이상을 밝히고 대중정치의 문제점을 분석한 『대의제정부 고찰』(1863), 남녀평등 보통선거와 비례대표제 등을 실시할 것을 주장한 『여성의 종속』(1869)이 있다.
『자서전』(1873), 『종교에 관한 에세이』(1874), 『사회주의론』(1879)은 사후에 출간되었다.
– 역자 : 서병훈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라이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서양 정치사상, 자유주의, 현대문명론, 문학과 정치 등을 가르치고 있다. 숭실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을 지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을 다룬 『다시 시작하는 혁명』(1991),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사상을 분석한 『자유의 본질과 유토피아』(1995)와 『자유의 미학』(2000), 민주주의의 병리적 현상을 규명한 『포퓰리즘』(2008)을 썼고, 밀과 토크빌의 정치철학에 관한 2부작을 계획한 가운데, 그중 한 권인 『위대한 정치―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2017)를 출간했다. 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그의 저작 번역을 시작해 『자유론』 『공리주의』 『여성의 종속』 『대의정부론』 『종교에 대하여』를 우리말로 옮겼다. 여기에 『사회주의에 대하여』를 더해 ‘존 스튜어트 밀 선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 출판사 서평
- 믿음도, 무신론도 아닌 합리적 회의론의 자리에 서다 : 진리가 아니어도 종교는 필요하고 유용하다!
밀 역시 과학의 시대를 살았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숙고하면서, 자연과학의 발달이 인류의 종교 전통을 무력화하는 상황을 직시하면서 종교를 다시 사유했다. 종교를 갖지 않을 자유를 주창하면서 기성 종교를 비판한 밀이지만, 그는 무신론자라기보다 불가지론자였다. 종교 문제도 사실과 경험의 유추를 통해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제1원인론, 계시론, 창조론, 영혼불멸론 등을 차례로 검토한 끝에 다다른 결론이다. “신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신의 존재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는다.”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고 존재의 기원을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할까? 밀은 종교가 “개인적 만족과 고양된 감정의 샘”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으나, 아름답고 이상적인 관념을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실천하고 싶어 했다. 종교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리려 한 것이다.
사유하는 이성적 사람이었던 밀은 믿음과도, 무신론과도 구분되는 회의론의 자리에서 종교를 유용성의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인류가 내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종교를 배제하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해도 도덕적?사회적 목적을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진리가 아닐지라도 인간의 삶과 사회를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는 시각, 이는 진리와 배치되는 생각은 유용할 수 없다는 밀의 신념이 꺾인 것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삶의 문제가 절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식의 문제를 넘어서는 삶의 푯대로서의 무엇, 그것은 첨단과학의 시대를 살며 때로 ‘인간’을 망각하기도 하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절박한 질문이다.

- 지상으로 내려온 인간의 종교 : 인간을 행복하게, 바르게 살게 할 진짜 종교
밀이 생각한 종교는 초자연적 존재에 의지하는 기존 종교와는 달랐다. 보편적 사랑을 실천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또 바르게 살게 하는 ‘인간종교’, 이것이 밀에게 가장 중요한 철학이자 가장 뛰어난 종교였다.
밀은 인간이 이기적 욕망을 억제해야 아름답고 이상적인 관념을 현실에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상적 목적을 위해 감정과 욕망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밀에 따르면, 이기적 선악 개념에 매몰된 기성 종교는 이런 본질을 상실했다. 사후의 보상과 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탓에 비이기적 감정을 단련하는 도덕적 효과를 내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를 지상으로 끌어내리자, 이것이 밀의 과제였다. 온 인류와 일체감을 느끼고 공공선에 깊은 열정을 품게 하는 것, 보편적 선에 절대적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감정, 밀은 이것을 ‘진짜 종교’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콩트의 ‘인류교’ 개념을 빌려와 그것에 ‘인간종교 (Religion of Humanity)’라는 이름을 붙였다.
밀의 종교론은 그의 공리주의 철학과 다르지 않다. 공리주의의 제1도덕원리, 즉 이기심을 누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도덕률이 바로 인간의 참된 행복을 위한 인간종교인 것이다. 인간종교는 이해관계를 벗어나 숭고하고 비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밀은 이런 헌신을 삶의 규칙으로 삼으면 죽음이 임박한 순간까지 이상적으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종교가 다른 어떤 초자연주의 신앙보다도 이상적 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밀의 인간종교는 엄밀한 의미의 종교로 승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밀에게 그것은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 뛰어난 종교였으며, 초자연적 존재의 승인 여부와 상관없이 미래의 종교로 도래할 현실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